지중해 요트 여행
바다라면 얼마든지 보고 느꼈다 생각했다.
그러나 서는 곳이 달라지면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듯,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니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였다.
이 여행은 때로 목숨을 걱정해야 할 모험이었고,
때로는 그 누구도 해보기 힘든 귀한 경험의 순간들이었다.
길이 15m의 작은 배
단어의 조합만으로도 설레었다. 지중해, 요트 그리고 여행. 얼마나 낭만적인가. 2016년 12월 중순부터 2017년 1월 중순까지 3주 동안 나는 지중해에 떠 있었다. 한국인 최초로 무기항(어떤 항구에도 들르지 않는 항해) 세계일주를 이뤄 낸 해양모험가 김승진 선장님과 함께. 선장님이 크로아티아에서 새로 구입한 요트를 타고 한국까지 항해하는 특별한 여정의 일부를 동행한 것이다. 길이 15m의 작은 배에 다양한 직업과 생각을 가진 6명의 크루가 탔다.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해를 관통해 그리스의 이오니아해를 지나 이탈리아의 티레니아해에 도착할 때까지, 넓은 바다 위 조그만 요트 안에서 생활했다. 지중해 요트 여행이라는 말만으로도 멋지지만 때때로 여행이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험한 시간도 있었고, 지극히 잔잔한 바다를 보며 하루 종일 넋을 놓고 보낸 시간도 있었다. 이전까지 다녀 본 수많은 바다와는 전혀 다른 바다를 경험한 여행이었다.
바다에서 ‘생활’한다는 것
거친 바다도 선장님과 함께라면
바다를 ‘여행’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비행기로 날아 넘어갈 수도 있고, 배를 타고 건너갈 수도, 해변에 누워 바라볼 수도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즐기려면 서핑이나 다이빙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바다에서 ‘생활’한다는 건 어떤 걸까? 7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배에서 내리지 않고 지구를 한 바퀴 돈다는 건. 심지어 어떤 에너지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돛과 바람의 힘만으로, 홀로 여행한다는 건. 김승진 선장님처럼 말이다.
아시아에서는 아주 드물고, 전 세계를 통틀어도 100명에 불과한 사람만 해낸 일이라고 한다. 물론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였다. 2013년, 내가 진행하고 있는 팟캐스트 ‘여행수다’의 이야기 손님이었던 선장님을 처음 만났을 땐 아직 그 기록에 도전하기 전이었다. 선장님은 일본의 방송국에서 인정받는 피디였다가 사업을 하게 된 이야기, 사업이 어려워져 새로운 활로를 고민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다 뉴질랜드에서 지낼 때의 해양 레포츠를 떠올려 요트 항해를 결심하게 된 이야기, 아무런 정보 없이 직접 찾아다니며 배우고, 크로아티아에서 처음 요트를 사서 한국까지 온 험난한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긴 준비 끝에 김승진 선장님은 2014년 10월 세계일주를 위해 출항했다. 나는 ‘바다 사나이의 술’ 럼주 한 병을 들고서 항구를 찾아 선장님의 항해를 응원했다. 충남 당진 왜목항을 떠나 무려 209일 동안 적도를 두 번 지나고, 가장 험하다는 남극해 인근의 케이프 혼을 통과해, 총 4만2,000km를 돌아오는 길고 긴 여정이었다. 선장님은 그동안 어떤 항구에도 들르지 않고, 누구의 원조나 도움도 없이, 홀로 지구의 바다를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
험난한 바다에서의 사투를 이기고, 바다를 둘러싼 모든 존재와 친구가 되어 돌아왔다는 선장님. 귀국과 동시에 여러 방송과 강연을 통해 소개되어 제법 유명세를 치렀다. 선장님은 “무기항 세계일주는 목표가 아닌 출발점이었다”며 한국에서 요트스쿨을 만드는 등 해양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다 2016년 봄, 추운 바다를 피해 통영에 세워둔 요트를 가지러 갈 준비를 하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고. 세계일주 기록을 세운 요트를 해양박물관에 전시하기로 했는데, 그 요트로 하는 마지막 항해를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것. 그 계획을 자신의 SNS에 올렸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싶다며 지원했다. 나도 지원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그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통영에서 남해를 거쳐 서해의 전곡항까지의 구간을 선장님과 함께 항해했다. 봄기운이 가득한 햇살 속에서 바다를 미끄러지던 그 일주일간의 체험은 강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번 항해 여행이 계획되었다. 선장님은 “이번 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요트를 한국까지 가져오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과 넓은 바다에서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고 하셨다. 지중해부터 한국까지, 구간마다 다른 사람들이 타고 내리면서 총 8개월 동안 항해를 하는 여정이다. 또 한 번 그 여정에 함께하는 행운을 얻었다.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아무리 거친 바다라 해도 선장님과 함께라면 걱정이 없었다. 덕분에 또다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설렘으로 크로아티아행 터키항공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스플리트 출항 크루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유쾌함 덕분에 불편할 법도 한 선내에서 가족처럼 지낼 수 있었다.
(좌) 함께 항해한 크루 중 한명인 화가 김물길. 눈부신 아침햇살을 받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우) 바다 한가운데서 수영을 하고 옷을 널어 둔 채 저녁을 먹는다. 어디서도 하기 힘든 멋진 경험
출항 준비
있어야 할 건 다 있고요
아드리아해에 접한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 스플리트에 크루 멤버들이 속속 도착했다. 선장님은 한 달 전부터 준비를 위해 스플리트에 계셨고, 유럽을 여행하다 온 크루, 남미 여행을 마치고 온 크루도 있었다. 글을 쓰는 작가, 화가, 회사를 그만두고 온 직장인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우리는 며칠 동안 스플리트항에 머무르며 앞으로 3주간 배에서 생활할 때 필요한 물자와 식량을 준비하고 배에 필요한 장비를 설치했다. 중간중간 기항지에 들르는 여정이었기 때문에 선장님이 무기항 세계일주를 했을 때보다는 준비가 어렵지 않았다. 스플리트는 인터넷도 잘 되지 않았고, 요트를 정박한 마리나 근처는 번화가도 아니어서 늘 조용했다. 아침에는 바다를 따라 뻗은 숲길에서 조깅을 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 산책을 하는 그런 일상. 좁다란 배에서 먹고 자는 것도 그리 불편하지 않다.
좁다고 해도 갖출 것은 다 갖췄다. 방향타가 있는 콕핏은 테이블을 펼치면 근사한 피크닉을 즐길 수 있고 계단을 내려가면 나오는 주방 겸 거실도 여덟 명이 오붓하게 식사하기에 좁지 않다. 거기에 네 개의 객실이 있고 화장실도 세 개나 된다. 작지만 샤워실도 갖췄다. 좁은 공간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계속 이동한다는 사실이 불편할 수도 있었겠지만, 함께한 사람들의 서로에 대한 배려와 유쾌한 분위기 덕에 마지막까지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서로 더욱 단단해지게 만들었다.
여유시간이 생겨 스플리트 시내와 그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스플리트에서 버스로 40분 정도 가면 나오는 조그만 항구도시, 트로기르는 특히나 아름다웠다.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작은 마을은 아드리아해의 중세를 가득 머금은 채 석양에 물들고 있었다. 반나절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숨은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바다로 나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드디어 출항. 모두가 얼마나 기다려 온 순간인가. 적당한 바람과 맑은 날씨가 우리의 항해를 축하해 주었다. 기쁨을 만끽하며 조잘조잘 대화를 나누던 것도 잠시. 한 명 두 명 멀미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요트는 일반 배보다 작아 파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거기에 돛을 펼치면 바람의 방향에 따라 배가 기울어지기 때문에 적응이 더 힘들 수 있다.
출발할 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다들 잠을 자거나 먼 바다를 보며 간신히 몸을 추스렸다. 육지보다 바다에서 지내는 것이 더 편하다는 선장님은 홀로 부지런히 돛과 방향타를 조정했다. 평소에 멀미를 잘 하지 않는 나도 계속 흔들리는 배에서 중심을 잡으려니 만만치가 않았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크고 작은 배를 타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넓은 바다에서 이렇게 조그만 요트를 탄 것은 처음이었다. 선장님과 한국에서 요트 여행을 했을 때와는 달랐다. 아름다운 바다 위로 해가 떨어지고 나니 그 차이를 더욱 크게 느꼈다. 항해를 하는 동안 전기는 꼭 필요한 만큼만 아껴 써야 하기 때문에 밤에도 불을 켜지 않는다. 겨울이라 5시면 해가 지는데 말이다.
지난번 남해 연안에서 항해 여행을 했을 땐, 매일 저녁이면 닻을 내려 바람이 덜 부는 어딘가에 정박해 놓고 저녁을 먹었다.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곁들이는 술이 그렇게나 달았다. 저녁을 먹은 뒤엔 요람처럼 흔들리는 배 안에서 편안히 잠을 잤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때와 같은 낭만을 기대했지만 지중해 망망대해에서 하는 항해는 달랐다. 배를 정박할 곳도 없을뿐더러, 밤새워 불침번을 서며 배의 항로를 계속 체크해야 했다. 밤 동안 이동하지 않고 세워 두면 조류에 의해 의도치 않은 곳으로 흘러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끝없는 흔들림 속, 암흑의 밤이었다. 기대했던 낭만은 어디에도 없고 사방에 어둠만 남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3일 정도면 된다. 더 빠른 사람도 있고, 좀 더 걸리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다들 금세 적응을 마치고 바다 위의 생활을 즐기게 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엔 강력한 폭풍우를 만났다. 높이 5~6m의 집채만 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왔다. 커다란 풍랑을 넘느라 배는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쳤다. 요트 앞부분에선 잠을 자려고 누우면 무중력 상태처럼 몸이 붕 떠올랐다. 물론 요트는 다른 배에 비해 복원력이 우수해 뒤집히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모두가 깜짝 놀랐다. 파도가 배를 때리는 소리는 당장이라도 배를 쪼갤 듯 거셌다. 배 위로 나오려면 암벽등반 장비인 카라비너를 몸에 걸고 어깨에 안전줄을 매야 했다. 펼쳤던 돛을 접고, 방향만 잡으며 어렵사리 앞으로 나아갔다. 선장님의 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모두 힘을 합쳐 이틀간의 사투 끝에 도착한 이탈리아 시칠리아 항구. 세상에, 그렇게 문명이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누군지도 모르는 마리나 직원을 향해 반가운 손을 흔들어댔다.
돌고래, 바다수영, 음식
선물 같은 시간들
배 안의 조그만 주방은 나름 가스레인지부터 오븐까지 다 갖췄다. 항해 중엔 잘 활용하지 못하지만 정박하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시칠리아에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마침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에서 출발한 한국 배가 시칠리아에 닿았다기에,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기로 했다.
항해하는 동안 흔들리는 배에서 저녁을 해 먹기가 쉽지 않았던 터라 음식다운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컸나 보다. 더 이상 흔들리지도 않고 물과 전기를 아껴 쓰지 않아도 괜찮은 요트 위에서 모두가 들떠 요리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각종 양념과 현지에서 구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들로 진수성찬이 차려졌고, 정말 잊을 수 없는 우리만의 특별한 파티를 가졌다.
망망대해의 배에 하루 종일 있으면 심심하지 않느냐고 많이들 묻는다. 바다 위의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간다. 우선 해가 뜰 무렵 일어나 차를 한 잔 마시며 밤새 고생한 크루들과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철썩이는 바다를 곁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식사 준비를 한다. 바다가 잔잔할 땐 누군가 나서서 요리 솜씨를 발휘한다. 요트에 저장해 놓은 물의 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한 그릇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덮밥이나 국밥, 샌드위치 등이 주 메뉴다. 식사 후엔 배의 이곳저곳을 정비하고 다시 바다에 시선을 던진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배가 많이 흔들리면 그마저도 할 수 없다. 낚시 줄을 내려 바다 위의 세월을 낚는 사람도 있고, 그저 생각에 잠기는 사람도 있다. 다시 빨갛게 해가 내려앉는 모습을 보며 밤을 맞이한다.
지루할 것 같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바다는 우리에게 계속 선물 같은 즐거움을 준다. 겨울이어도 지중해의 바닷물은 그리 차갑지 않아서, 햇살이 좋은 날엔 바다 한가운데 퐁당 들어가 수영을 한다. 또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으면 가끔씩 수면 위로 뭔가가 뛰어오르는 것을 포착할 때가 있다. 물고기 또는 돌고래다. 하지만 너무 짧은 순간이어서 그걸 발견한 사람이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그 놀라움을 나눌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환호성을 멈추지 못할 만큼 놀라운 일을 마주했다. 돌고래 다섯 마리가 우리를 계속해서 따라오며 헤엄을 치고 있었던 것! 두 마리가 동시에 뛰어오르기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한참이나 우리와 함께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고래를 본 적도 있고, 제주도의 돌고래를 멀리서 본 적도 있었지만, 그토록 가까이에서 함께 헤엄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소름 돋도록 신기하고 고마웠다.
새카만 밤이 와도 할 일이 없지 않다. 나를 둘러싼 하늘 전부가 오롯이 별로 가득한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갑판에 누워 그 별 이불을 덮고 있노라면 여기가 내가 알던 지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망망대해는 이렇게 인간에게 외로움과 나약함을 느끼게 하기도, 홀가분한 자유와 포근함을 주기도 한다.
항해 그 후
부유하는 삶, 부유한 삶
세상에는 참 다양한 여행이 있고 사람들은 여러 곳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촬영을 위해 또는 여행으로 지중해 근방의 여러 나라를 다녔고 바다라면 얼마든지 보고 느꼈다 생각했다. 그러나 서는 곳이 달라지면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듯, 바다 한가운데에 나가니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였다.
요트는 크루즈처럼 큰 배가 아니어서 바다를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어디 다른 곳을 갈 수가 없으니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단 1초도 흔들리지 않는 순간이 없는 시간. 밤하늘에 빼곡하게 박힌 별을 사진에 담고 싶었지만 흔들리는 곳에선 카메라도 무용지물이었다. 누군가에겐 멀미를 유발하는 그 멈추지 않는 흔들림이 많은 것들을 재조합시켰다. 단순히 하나의 여행 방식을 경험한 것이 아니었다. 바다는 이래야 하고, 여행은 무릇 이래야 한다는 편견들이 있었다. 그전까지 갖고 있던 바다, 요트, 여행, 사람에 대한 생각 하나하나가 파도에 부딪혀 부서지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다시 조립된 느낌이다.
이 여행은 때로 목숨을 걱정해야 할 모험이었고, 때로는 그 누구도 해보기 힘든 귀한 경험의 순간들이었다. 특히 캡틴으로서 우리를 이끌었던 선장님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홀로 외로움과 파도와 싸우며 7개월 동안 항해한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이렇게 다양한 크루들을 하나로 모으고 신경 쓰며 바닷길을 가는 일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선장님은 자칫 위험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도 흥분하거나 권위적인 모습 없이 모두에게 매사를 나누고 수평적으로 대해 주셨다.
사진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나의 경우 직업의 특성상 돈은 멀고 경험은 가까이에 있다. 나름의 뜻을 품고 사진이라는 분야에 들어왔어도 늘 좋지만은 않았다. 흔들리고 흔들거리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 흔들리는 파도 위에서 수많은 생각을 했지만, 하나로 모여진 생각은 이것이다. “부자가 될 수 없다면, 부자의 삶을 살자.” 시간부자, 경험부자, 생각부자는 왜 부자가 아니란 말인가.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이야말로 부유한 사람이 아닐까? 선장님은 지금 대서양을 건너는 중이라고 한다. 남은 6개월의 여정도 부디 무사히 마치고 반가운 마음으로 왜목항에서 다시 뵙기를.
(좌) 돛을 세우는 기둥인 마스트에 높이 올라가 배를 점검하는 선장님. 이번 항해 과정은 다큐멘터리로 제작될 예정이다 (우) 긴 시간 작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한 크루들. 육지에서의 시간이 되려 낯설어지는 묘한 경험을 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전명진 사진가는 2009년 세계 일주를 마치고 여행이 주는 삶의 기쁨을 나누고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인물과 건축 사진에 매진하고 있으며 팟캐스트 ‘여행수다’를 진행하며 여행의 매력을 전하고 있다. 포토 에세이집 <낯선>을 썼다.
@mjrogueplanet
글·사진 전명진 작가 에디터 고서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