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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Aug 24. 2017

프로방스에서 만나는 건강한 맛

남프랑스 지역의 맛집

Romantic Cycling in Provence

자전거를 타고 프로방스의 수채화 같은 풍경 속을 달렸다. 
바람의 맛을 음미하고, 꽃과 구름의 색깔과 모양을 눈에 담고, 
들풀과 바람이 나누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페달을 밟은 시간의 기록.


DAY 0


자전거 여행자들의 천국으로 가는 길


상상 속에서 수십 번을 그렸다. 어느 날엔 꿈에도 나왔던 것 같다. 프로방스, 드디어 이곳에 우리가 있다. 한국에서 함께 비행기를 탄 자전거 두 대도 무사히 도착했다. 마르세유(Marseille) 국제공항에는 가이드 파브리스(Fabrice)가 ‘TRAVIE’라고 쓴 종이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경계선에서 여행은 시작되었다.


이렇게나 서정적인 여행의 시작


한국에서 가져 온 자전거 두 대와 마노스크에서 빌린 자전거 한 대를 차에 싣고, 포르칼키에(Forcalquier)의 샤랑보 호텔(Hotel Charembeau)에 도착했다. 서정적인 풍경 한가운데 홀로 그림처럼 자리한 이 호텔이 우리의 자전거 여행 시작점이라니! 호텔 직원은 체크인을 하기도 전에 자전거 보관소부터 보여 주었다. 전자식 비밀번호 자물쇠가 달려 있는 널찍한 보관소에는 간단한 자전거 조립과 수리에 필요한 도구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다른 여행자들이 주차해 놓은 자전거 옆에 나란히 우리 자전거를 세우고 나니 비로소 실감이 났다.


샤랑보 호텔은 자전거 여행자들에 특화한 호텔이다. 이 호텔의 오너는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의 모임인 ‘벨로 루아지르 프로방스(Velo Loisirs Provence)’ 협회의 회장이다. 그 스스로도 자전거를 오랫동안 즐겨 타 왔기 때문에 자전거 여행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다. 호텔에서는 자동차가 없는 투숙객들을 위해 인근 레스토랑까지 무료로 태워다 주고, 식사를 마치면 레스토랑으로 다시 데리러 온다. 또 전문 자전거 숍과 협업 관계에 있어, 여행자들의 자전거에 문제가 생길 경우 수리·정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자전거를 가져오지 않은 사람은 호텔에서 자전거 대여도 가능하다.

5성급 호텔의 조식 뷔페가 부럽지 않은 샤랑보 호텔의 아침식사


하지만 그러한 이점들이 없더라도 일부러 찾아와 머물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2,000년 전 로마제국이 있었던 자리에 1975년 문을 연 샤랑보 호텔은 500살이 넘은 나무를 품고, 수도원이 있었던 땅에 작은 농장을 가꿨다. 하나하나 정성으로 꾸민 25개 객실은 소박하지만 곱고 깨끗하다. 하얀 야외 테이블 위에 차려지는 아침식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매일 아침 호텔 오븐에서 직접 굽는 크루아상과 바게트, 호텔 앞마당의 꿀벌 박스에서 모은 꽃향기 가득한 꿀과 직접 만든 여러 가지 과일 잼, 키위·사과·딸기·체리·살구를 탐스럽게 담은 과일 그릇, 프로방스 지역의 과일로 만든 주스, 진한 커피와 요거트까지. 수십 가지 음식이 있는 5성급 호텔의 조식 뷔페보다도 고급스러운 아침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Restaurant for Dinner
비스트로 드 페이 드 니오젤(Bistrot de Pays de Niozelles)

포르칼키에 옆 니오젤은 인구 200여 명의 아주 작은 마을이다. 이 마을의 유일한 레스토랑이자 동네 사랑방인 ‘비스트로 드 페이 드 니오젤’에서 프로방스 첫 저녁식사를 했다. ‘비스트로 드 페이’는 프랑스 정부가 1993년부터 2,000명 이하의 주민이 사는 지역의 소상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라벨이다. 상점을 찾기 힘든 작은 마을에서는 이 라벨을 부여받은 곳이 식당과 상점 역할을 함께 하고, 여행객들에게 브로슈어 등 관광 자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큰 칠판에 분필로 적어 온 프랑스어 메뉴판을 더듬더듬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염소치즈가 들어간 샐러드와 고기 요리, 지역 크래프트 맥주를 주문했다. ‘퓨전’이라는 단어의 발길이 닿은 적 없는 듯한 프로방스의 음식.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자전거 여행이 아니었다면 평생토록 와 볼 일 없었을 이 작은 마을의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경험 자체가 재미있었다.
주소: Le Village, 04300 Niozelles, France  
전화: +33 4 92 73 10 17
홈페이지:  bistrot-niozelles.fr

bistrot de niozelles

Le Village, 04300 Niozelles, 프랑스




DAY 1


Le Pays de Forcalquier
페이 드 포르칼키에 코스


출발! 드디어 우리의 첫 프로방스 자전거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너무 예뻐요!” 페달을 밟은 지 5분 만에 민경이 흥분한 목소리로 뒤에서 외쳤다. “너무 예쁘네요!” 나도 외쳤다. 지극히 평범한 길,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 자체로 이미 예뻤다. 자동차로 휙 지나갔다면 느끼지 못했을, 자전거의 속도가 허락한 첫 선물이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자전거의 속도로 보는 세상은 언제나 왜곡 없이 아름답다.

자전거 여행 중에는 식당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점심식사는 피크닉으로 해결했다. 무얼 먹어도 꿀맛이었다

점심은 코스 중간에 있는 뤼르산(Montagne de Lure) 중턱, 12세기에 지어진 교회 앞에서 피크닉을 하기로 했다. 어제 저녁식사를 했던 레스토랑에서 포장해 온 치킨 샐러드와 초콜릿 케이크, 오늘 아침 호텔에서 구운 바게트. 별것 없는 메뉴지만 열심히 땀 흘린 뒤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먹은 음식이니 얼마나 맛있었겠는가. 꿀 같은 식사를 마치고 들어가 본 교회 내부는 동굴처럼 시원했다. 오랜 세월 사용되지 않았다고 해도 피크닉하러 오는 지역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 아주 버려진 느낌은 들지 않았다. 언뜻 보아도 수백 살은 되어 보이는 교회 주변의 거대한 나무들도 운치 있었다.
 


Restaurant for Dinner
캉파뉴 생 라자르(Campagne Saint Lazare)

첫 라이딩을 무사히 마치고 나른해진 몸으로 찾아간 채식 레스토랑. 샤랑보 호텔에서 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계절에 따라 우리의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가진 음식을 선보인다. 식재료로는 레스토랑의 정원에서 키우거나 포르칼키에 지역에서 난 채소만을 사용한다. 


이날 우리는 산에서 채취해 왔다는 버섯, 식용 꽃을 넣은 샐러드, 토마토와 올리브로 만든 주황색 머핀, 인도식 콩 요리, 통밀과 두유로 만든 요리 등을 맛보았다. 이 음식이 몸의 순환을 도와주어 건강해질 거라고 레스토랑 주인이 자신 있게 말했다. 운동도 하고 건강한 음식도 먹고, 그동안 인스턴트 음식으로 혹사시켰던 몸에 모처럼 좋은 일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좋았다.
주소: Ancienne Route de Dauphin, 04300 Forcalquier, France
전화: +33 4 92 75 48 76
홈페이지: www.stlazare.net 
 

La Campagne St Lazare chambres et restaurant Forcalquier

Ancienne Route de Dauphin, 04300 Forcalquier, 프랑스




DAY 2


Autour du Luberon a velo
뤼베롱 주변 코스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긴 열기구 투어를 마치고, 둘째 날 자전거 여행을 위한 채비를 했다. 이틀 밤을 묵은 포르칼키에를 떠나 압트(Apt)까지 달리는 코스다. 하루 만에 프로방스의 길에 익숙해진 우리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라이딩을 시작했다. 

프로방스에서든 한국에서든 자전거를 타고 자연 속을 달리다 보면 정체 모를 곤충이 얼굴에 와서 퍽! 부딪히고 가는 일이 많다. 첫날엔 그때마다 너무 놀라 한동안 숨을 골라야 했는데, 둘째 날은 그것마저 익숙해졌는지 또 뭐가 부딪혔구나, 체념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자전거 타다가 벌레 먹는 사람도 많아요!”라는 용성의 말을 듣고선 아무리 숨이 차올라도 입을 꾹 다물었다.

이날 코스에서는 풍경보다 사람이 더 기억에 남는다. 첫날 코스보다 길 위에서 다른 자전거 여행자들을 마주치는 일이 많았는데, 그들과 서로 “봉쥬르(Bonjour)!” 하고 인사를 나누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반대쪽 끝에서 달려오는 자전거가 보이면 빨리 인사를 나누고 싶어서 페달을 더 빠르게 밟을 정도였다. 그들이 보내는 경쾌한 목소리, 반가운 손짓, 상냥한 미소에 우리 역시 최선을 다해 화답했다. 자전거 여행자들끼리만 통하는 끈끈한 유대감, 그런 것이 프로방스의 자전거길 위에 진하게 흐르고 있었다.


Restaurant for Dinner
라 폰탠느 레스토랑(Restaurant La Fontaine)

3개의 자전거 루트가 지나가는 압트는 지하철로 치면 환승역 같은 도시여서 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이 베이스캠프로 삼으며 하루 이상 묵는다. 하지만 도시 자체의 매력은 크지 않아,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우리는 압트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예쁜 마을, 빌라르(Villars)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서쪽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시간, 라 폰탠느 레스토랑은 이미 저녁식사를 시작하는 손님들로 북적북적했다. 로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맛집인 동시에 남프랑스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감도는 곳이었다. 한입 크기의 애피타이저인 ‘아뮤즈 부쉬(Amuse-Bouche)’도 하나하나 맛있었고, 와인과 함께한 스테이크와 생선 요리, 디저트까지 거의 남기지 않았을 정도로 만족한 저녁식사였다.
주소:  Place de la Fontaine, 84400 Villars, France
전화:  +33 4 90 75 48 55
홈페이지:  www.restaurantlafontaine.com




DAY 3


Les Ocres a velo
레 오크르 코스


오크르(Ocre), 즉 ‘황토’를 테마로 한 코스를 달리는 날이다. 황토 하면 찜질방부터 생각났던 터라 프로방스에 황토 자전거 코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3일차가 되자 프로방스의 도로에 완전히 적응한 우리. 여유로운 마음으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프로방스는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우리가 갔던 5월의 색은 빨강이었다. 곳곳마다 빨간 양귀비   꽃이 피어나 있었고, 체리나무의 체리도 새빨갛게 익어 있었다. 체리나무에 꽃이 피어나는 4월은 온통 하얀색으로, 라벤더 꽃이 피어나는 6월과 7월은 온통 보라색으로 넘실댄다고.


Hotel & Restaurant for Dinner
르 크리용 호텔 & 레스토랑(Hotel Restaurant Le Crillon)

르 크리용 호텔은 작은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빨간 체크무늬 천이 곱게 깔린 식탁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손님들도 모두 이 호텔 투숙객인 듯했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처럼 자전거로 여행 중인 듯했다. 파리 여자 같은 외모에 시골 여자 같은 상냥함을 가진 호텔 주인이 직접 주문을 받고 서빙을 했다. 호박죽과 스테이크도 몹시 맛있었지만, 그날 아침 동네 체리나무에서 딴 체리로 만들었다는 파이는 엄지를 치켜들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이번 여행 멤버들이 모두 가장 맛있었던 곳으로 꼽은 레스토랑이기도 하다.
주소: Rue du Brave Crillon-84220 Murs, France
전화:  +33 4 90 72 60 31  
홈페이지: www.provence-hotel-gordes.com  
이메일: contact@lecrillon-luberon.com 




DAY 4


La Veloroute du Calavon
칼라봉 벨로루트 코스


서울의 한강변처럼 프로방스에도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다. ‘그린웨이(Green Way)’라고도 불리는 이 길은 오직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왕복 2차선이다. 라이딩 마지막 날, 이 길을 달려 보기로 했다. 이날 코스의 시작점인 쿠스텔레(Coustellet)로 가는 길 중간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인 고르드Gordes가 있다. 루시용이 황토 집으로 가득한 마을이라면, 고르드는 돌집으로 가득한 마을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빼곡하게 지어진 마을의 풍경이 탄성을 자아낸다. 아침 일찍부터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한 그곳에서 우리도 인생 사진을 하나씩 남겼다.


Hotel & Restaurant for Dinner 
라 바스티드 드 불론
La Bastide de Voulonne Demeure & Table d’hotes

장미꽃이 만발한 정원을 가진 로맨틱한 저택, 라 바스티드 드 불론은 마을에서 뚝 떨어진 한적한 외곽에 위치한 호텔이다. 주변에 편의시설이라곤 보이지 않았으므로 다른 곳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건 매우 불편한 일로 보였다. 또 이렇게 낭만적인 분위기의 호텔을 두고 굳이 나갈 이유도 없을 것 같았고. 그런 이유들로 이 호텔에서는 모든 투숙객들이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 


저녁시간이 되자 야외 레스토랑 가운데에 큰 테이블이 놓였고, 스파클링 와인과 여러 가지 핑거 푸드가 준비됐다. 그 테이블 주위로 하나 둘 사람들이 모였다. 우리도 식전주와 애피타이저를 맛보며 이게 맛있다 저게 맛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메인 요리는 각자의 테이블로 서빙되었는데, 애피타이저를 즐기며 인사를 나눠서인지 옆 테이블에 말을 거는 일이 어색하지 않았다. 음식도 좋았고 분위기도 좋았지만 사람들이 가장 좋았다. 은은한 촛불이 빛나는 테이블에서 와인을 몇 잔이고 비우며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랬다.
주소: Quartier Voulonne - D148, 84220 Cabrieres-d’Avignon, France
전화:  +33 4 90 76 77 55 
홈페이지: www.bastide-voulonne.com  



기획·글=고서령 기자, 사진=고아라, 영상=이용일, 모델=김민경·조용성, 취재협조=프랑스관광청·터키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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