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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Sep 01. 2017

'홍성'에서는 그 누구라도 쉼표

서해안 중간 어딘가에 자리한 그곳.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대신 광활한 갯벌이 펼쳐져 있고, 

세련되지 않은 투박한 매력이 가득해 더 정겨운 곳. 

한 발자국 내딛으며 일상에서의 휴식을 취하기 딱 좋은 동네, 홍성에 다녀왔다.

남당항 전경. 오후에는 배들이 정박해 있다.

대하를 상징하는 조각물
봄철에는 바지락과 쭈꾸미를 넣은 해물 칼국수가 일품이다


수수한 매력과 맛에 취하다


한적한 홍성에 들어섰다. 홍성역에서 출발한 지 30분 만에 도착한 곳은 남당항. 조금 이른 도착이었는지 남당항에 늘어선 식당가에서는 하루를 준비하는 움직임으로 분주했다. 공백 가득한 주차장을 본 순간 아차 싶었다. 가을과 겨울에 특히 먹거리와 볼거리가 가득한 곳이라는 것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봄을 지나 여름으로 향해가던 뜨거운 6월의 남당항은 조용하고 수수한 매력이 가득했다. 


남당항은 홍성 서쪽에 자리한 작은 어촌인 남당리에 위치했다. 천수만 건너로 안면도가 보이고 잔잔한 수면 위로 떨어지는 석양이 아름다워 홍성 8경 중 6경으로 지정됐다. 내리 쬐는 햇볕으로 반짝이는 물빛만 봐도 석양으로 물들었을 때의 풍경을 감히 상상할 수 있었다.


남당항의 경치만큼 유명한 것이 ‘맛’이다. 항구에서 갓 수확한 싱싱한 수산물로 유명해 매년 가을에는 대하, 겨울에는 새조개를 맛보러 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천수만에서 잡아 올린 대하는 가을이 제철인데, 덕분에 매년 9월 중순부터 10월초까지 대하축제가 열린다. 또 다른 특산물인 새조개는 새처럼 빠르다는 의미의 조개다. 조개의 모양이 새의 부리처럼 생기기도 했는데, 육질이 쫄깃하고 단맛이 나는 특징이 있어 겨울철 별미로 꼽힌다. 뜨거운 육수나 물에 살짝 데쳐 먹는 샤브샤브로 가장 많이 먹으며 새조개 제철인 매년 겨울 남당항에서도 새조개 축제를 연다. 워낙 유명해 홍성은 몰라도 축제가 열리는 남당항은 아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새조개도 대하도 없는 느지막한 봄에는 바지락과 쭈꾸미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통통하게 살 오른 쭈꾸미와 싱싱한 바지락을 넣은 해물 칼국수는 깔끔한 국물 맛만으로도 일품이다.


속동갯벌마을에서는 외지인들이 신청하면 갯벌체험을 할 수 있다
모섬에서 속동전망대로 걸어가는 약 100m의 소나무길


갯벌과 바람 그리고 석양


서해의 매력은 넓디넓은 갯벌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남당항에서 10분만 이동하면 갯벌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속동갯벌마을이 나온다. 속동갯벌마을은 천수만에 위치한 농어촌마을이다. 서해안의 특징을 살려 시작한 갯벌 체험은 여행객들에게도 인기다. 갯벌 체험을 목적으로 마을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을 위해 봄에는 유채꽃을, 가을에는 코스모스를 볼 수 있는 단지도 조성했다.


이곳의 명당은 천수만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속동전망대. 주차장에 들어서기만 해도 소나무 사이 힐끗  천수만이 보인다. 전망대 위에서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지레 짐작했더랬다. 아니나 다를까 전망대에 올라서니 한 눈에 천수만을 담을 수 있었다. 전망대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 데 모여 주전부리를 하고 있었다. 갯벌 체험이 아니더라도 잠시 머물러 시간을 보낼 장소로는 충분했다.


전망대 우측에는 소나무로 가득한 작은 섬이 있다. 모섬이다. 본래는 마을과 연결된 육지였는데, 오랜 시간 파도로 인해 흙이 깎여 나가면서 지금의 섬이 되었다. 속동전망대에서부터 시작된 나무 계단은 모섬까지 약 100m 정도 이어져 있다. 모섬 정상의 전망대까지 연결돼 있는데 이곳의 전망대는 배 모양으로 꾸며져 ‘타이타닉 포토존’으로도 불린다. 해송으로 둘러싸인 모섬의 꼭대기에서는 갯벌의 운치를 완벽하게 느낄 수 있다. 해질녘 어스름한 시간이라면 더없이 만족스럽다.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 앞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마련된 노란 벤치와 곳곳에서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정성 가득한 수목원


해송을 따라 걷는 길이 짧아 아쉬웠던 참에 홍성 8경 중 4경에 속하는 ‘그림이 있는 정원’에 도착했다. 460여 종의 목본류와 870여종의 초본류 등이 어우러져 있어 봄부터 겨울까지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은 개인이 꾸며 놓은 수목원이지만 어엿한 홍성 8경 중 한곳이다.


정원이란 집 앞의 작은 뜰을 말하는데, 사실 이곳을 정원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몸집이 크다. 축구장 면적의 12.5배(8만9,449m²)에 달해 여유롭게 둘러보려면 넉넉히 세 시간 이상 투자해야 한다. 눈을 뗄 수 없는 야생화와 곳곳의 소나무들은 분명 누군가 정성스럽게 가꾼 티가 난다.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일 테다.


그림이 있는 정원의 시작은 병상에 누워있는 아들을 위해서였다. 30년 전, 대학 시절 불의의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꾸미기 시작한 것.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전부였던 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를 심으며 정원을 가꿔나갔고, 그 모습을 보던 아들 역시 입으로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구필화가로 활동하게 됐고, 완성한 작품들은 당시 수목원 내 미술관에 전시되었다. 2005년에 문을 열어 몇 년간 운영했지만 안타깝게도 3년 전부터 새로운 주인과 함께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곳곳에는 아버지의 정성이 듬뿍 담긴 나무들이 가득하다. 이제 수목원 내 미술관에서 아들의 작품은 볼 수 없지만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수목원에는 미술관부터 온실 식물원, 전통가구 전시장, 돌탑정원, 폭포에 카페테리아까지 곳곳에 재미 요소를 갖췄다. 곳곳에 배치된 색색의 벤치는 나무, 꽃들과 어우러지고, 걷다 쉬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코끝을 스치는 산바람, 귓가에 맴도는 물소리와 새소리를 듣고 있으면 도시에서의 흔적이 옅어지는 기분이다. 


시기별 수목원의 분위기를 알아채는 것도 매력이다. 봄에는 수선화부터 진달래와 튤립이 자리하고 여름에는 뜨거운 햇볕을 막아줄 우직한 나무들이 푸르다. 야트막한 수목원 정상에 자리한 정자는 가을철 오색 단풍을 즐기기에 더 없이 적합한 곳이다.

이곳엔 꼭!

광천토굴새우젓시장 


홍성의 광천시장은 조선시대부터 번성해왔다. 한때 주춤했던 시장을 다시 되살린 것이 바로 ‘토굴새우젓’. 폐광된 토굴에서 새우젓을 숙성·발효시키는 방법으로, 일정한 온도(14도)에서 숙성시킨 덕분에 새우젓의 맛과 향이 타 지역의 새우젓보다 뛰어났다. 덕분에 전국에서 소비되는 새우젓의 70%를 담당할 정도로 흥하게 됐고, 매년 가을철이면 토굴새우젓을 사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김장철 직전인 10월 중순경에는 토굴새우젓과 광천김을 주제로 한 축제도 펼쳐진다. 광천역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열차를 이용해 홍성을 방문한다면 필수 코스다. 시장 인근에는 무료 주차장이 잘 구비돼 있어 자동차를 이용하더라도 주차 걱정 없다.



글·사진=양이슬 기자 ysy@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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