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해외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래비 매거진 Feb 14. 2024

담백함 속, 톡 쏘는 매력 '시즈오카현'

시즈오카현은 담백하다.
차, 음식 그리고 전통까지.
미치도록 짜릿한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와사비다.



절경을 곁들인 차 한 잔


후지산을 배경으로 드넓은 차밭이 펼쳐진 풍경. 시즈오카현을 대표하는 풍경이다. 일본에서도 시즈오카산 차는 최고급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시즈오카현은 일본 전체 녹차 생산의 반을 담당하는 최대 녹차 생산지다. 따사로운 햇빛,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거기에 후지산과 남알프스 만년설에서 흘러내려 온 맑고 깨끗한 물이 시즈오카 차의 그윽한 맛을 빚어낸다. 에도 시대부터 이 지역 귀족들은 차의 향, 맛, 색을 보고 어떤 가문의 차가 좋은지 내기를 했을 정도로 이곳에서 나는 차를 자부심으로 여겼다. 이 귀한 차를 후지산을 바라보며 마실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후지시에 있는 차노마오오부치사사바(茶の間大淵笹場)는 후지산 꼭대기를 향해 계단식으로 이어진 드넓은 차밭이다. 차노마는 원래 가족이 모여 식사와 차를 함께 하는 공간을 뜻하는데, 여기 녹차밭 한가운데 그런 공간이 있다. 6명 정도는 거뜬히 앉을 수 있는 나무 데크는 녹차밭 피크닉 장소다. 여기서 녹차, 홍차, 호지차와 과자를 먹으며 한가로이 티타임을 즐길 수 있다. 예약은 필수. 



후지산 앞에서 문득 겸허해지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인 후지산(3,776m)은 등산 애호가들에게는 오르고 싶은 명산이지만 7~9월에만 개방하므로 쉽지는 않은 일이다. ‘산을 꼭 올라야만 하는가?’ 쪽인 사람들에겐 후지산의 고고한 자태를 눈으로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다. 



화산으로 형성된 후지산은 탁 트인 구릉지대에 홀로 우뚝 솟아 있어 사방 어디에서나 후지산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특별한 경험을 더하고 싶은 여행자에게 추천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시즈오카시의 시미즈항과 이즈시의 토이항을 잇는 스루가만 페리를 타고 75분간 후지산을 감상하는 것이다. 페리를 타면 코발트빛 바다 너머로 거대한 후지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 위에서 후지산의 위용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일본에서도 시즈오카현이 유일하니 페리 경험은 더 특별하다. 



후지산이 내려다보고 있는 바다는 스루가만으로, 일본에서 가장 깊은 만이다. 이 스루가만의 탄생도 흥미롭다. 유라시아판, 필리핀판, 북아메리카판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필리핀판이 유라시아판 아래로 자리하며 이즈반도가 되었고, 유난히 깊은 스루가만(최대 수심 2,500m)이 생겼다. 이즈시에 있는 이즈반도 지오파크 뮤지엄 ‘지오리아(ジオリア)’에서는 영상과 전시물, 실험 등을 통해 지구의 역사와 이즈반도의 탄생 과정을 알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과 가장 깊은 바다를 가졌으니 시즈오카현이 지질 환경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이즈반도는 다채로운 자연환경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록됐다.



페리에선 다양한 디저트와 기념품도 판매한다. 특히 스루가만의 바다를 모티브로 만든 젤라토 아이스크림은 말차 젤라토로 유명한 ‘나나야(ななや)’에서 개발한 상품이다. 223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빵도 페리가 자랑하는 먹거리다. 페리가 지나가는 스루가만 바닷길은 2013년 공식적인 길로 인정받아 223번 현도가 되었다. 223은 후지산(ふ,じ,さん) 발음을 숫자로 옮긴 것이다.  



후지산엔 늘 만년설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10월 정도는 되어야 눈이 내리고, 그래야 새하얀 모자를 쓴 후지산이라는 걸작이 완성된다. 게다가 후지산은 구름과 안개로 늘 가려져 있어, 시즈오카 사람들조차 ‘후지산은 마음씨 착한 사람들만이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후지산의 경이로움은 규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도 있다. 일본 사람들은 후지산 등반로를 ‘순례길’이라고 할 정도로 후지산을 숭상한다. 후지산의 영험한 기운에 토착 신앙과 불교가 융합되면서 후지산은 오랜 기간 동안 신앙 그 자체가 되었다.



오감이 짜릿한 와사비


와사비는 한자로 산규(山葵)라고 쓴다. 산에서 자라는 아욱(葵)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뿌리줄기인 와사비는 본연의 형태를 볼 일도 드물지만, 와사비 이파리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말 아욱과 비슷하게 생겼다. 



와사비는 일본 북부에서 자생하던 식물인데, 처음으로 재배를 시작한 곳이 시즈오카현이다. 이즈반도를 여행하다가 계단식으로 된 초록색 밭이 보인다면 그곳이 바로 와사비 밭이다. 그런 풍경을 보지 못했더라도 와사비를 한 공간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즈 와사비 뮤지엄(伊豆わさびミュジアム)에서는 수경재배로 자라는 와사비의 성장 과정을 관찰하고, 와사비를 갈아먹는 방법을 체험하고, 다양한 와사비 제품을 살 수 있다. 



와사비를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철갑상어 등껍질에 와사비를 일본어 ‘노(の)’ 모양으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상어 등껍질 강판이 워낙 귀하고 비싸 스테인리스 강판도 많이 쓴다. 강판에 따라 맛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도 흥미롭다. 하지만 어떤 강판을 쓰더라도 톡 쏘는 맛과 향은 또렷하고 강력했다. 쌀알만큼 맛봤는데도 회초리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즈 와사비 뮤지엄에선 다양한 와사비 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회에 곁들이는 와사비, 고기에 곁들이는 와사비, 와사비 마요네즈, 와사비 김, 와사비 소금, 와사비 과자, 와사비 아이스크림…. 와사비로 된 모든 먹거리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와사비 뮤지엄


시즈오카에서만 탄생하는 예술


시즈오카시의 한적한 마을엔 전통 공예 장인들이 모여 있는 문화예술 마을인 슨푸타쿠미슈쿠(駿府の工房 匠宿)가 있다. 여기선 대나무 공예 장인들이 대나무에 열을 가해 동그란 형태로 만들고, 도예 장인들은 흙을 만지작거리고, 직물 공예 장인들이 녹찻잎으로 천연 염색을 하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시즈오카의 전통 공예 방식이다. 그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면, 그 물건을 향한 무한한 애정과 장인에 대한 경외심이 생긴다. 물론 여기선 작품을 살 수도 있고 만들기 체험을 해 볼 수도 있다. 



시즈오카현은 도쿠가와 시대에 전국 각지에서 최고의 공예 장인들이 모여들어 와 전통 공예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시즈오카에 살지 않으면 시즈오카 장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공인된 시즈오카 장인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아야 한다. ‘시즈오카의 장인’은 무조건 시즈오카에서만 탄생한다. 예외가 없다. 


슨푸타쿠미슈쿠 대나무공예 장인


먹거리도 장인의 솜씨로 탄생한다. 커피콩을 한 알 한 알 선별해 로스팅을 하고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리는 카페, 무라모토 양봉장의 최고급 벌꿀과 지역 식재료를 사용하는 베이커리 그리고 수제 맥주 공방까지 있다.



작은 교토에서 즐기는 온천


슈젠지 온천마을은 이즈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지역이다.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가츠라가와강 양옆으로 100년이 훌쩍 넘은 고택들이 밀집해 있어서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젖는다. ‘작은 교토’라는 별명이 와 닿는 풍경이다. 


슈젠지 온천마을


슈젠지 온천마을엔 료칸 말고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노천 족욕탕이 많다. 마을 입구에서 강을 따라 조금만 걷다 보면 강 한가운데 정자가 눈에 띈다. 노천 족욕탕 돗코노유(独鈷の湯)는 무려 1,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온천으로,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소개돼 더욱 유명해졌다. 강 위엔 일자로 된 작은 노천 족욕탕인 카와라유(河原湯)도 있다. 



족욕 덕분에 한결 가벼워진 다리로 조금만 더 걸으면 대나무 숲길이 나온다. 400m 정도 이어지는 길은 울창해서 신비롭기까지 하다. 숲길 중간엔 널찍한 평상이 있는데, 이곳이 최고의 명당이다. 벌러덩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높게 솟은 대나무 사이로 새파란 하늘이 동그랗게 펼쳐진다.


슈젠지 온천마을 대나무 숲길



시즈오카현 한 그릇


와사비 덮밥부터 수제 소바집까지, 정갈한 음식 한 그릇에 시즈오카가 담긴다. 시즈오카현에서 꼭 맛봐야 할 먹거리 3가지를 소개한다. 


비린내 없는 담백함
시라스

시즈오카현 스루가만은 일본 다랑어와 가다랑어 어획량 1위에 달하는 풍요로운 어항이다. 게다가 벚꽃 새우와 시라스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시라스(しらす)는 멸치, 장어, 은어 등 몸에 색소가 없어 전체적으로 하얗고 투명한 치어들을 말한다. 하얀 쌀밥 위에 치어를 한가득 담아 낸 시라스 덮밥은 시즈오카현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에 꼽힌다.



생김새 때문에 멸치 덮밥이라고 부르지만, 멸치가 아니니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시라스 덮밥엔 벚꽃 새우나 다른 재료를 함께 얹기도 한다. 시라스는 보통 삶아서 먹지만 생으로도 먹는다. 어떤 방법으로 먹어도 비린내가 전혀 없다. 



고독한 미식가가 두 그릇을 먹은 이유 
와사비 덮밥

시즈오카의 카와즈 지역, 어느 한적한 국도 한 편엔 일본에서 너무나 유명한 와사비 덮밥집이 있다. 와사비엔 카도야(わさび園 かどや)에 들어서면 우선 계단식 수경재배 공간에 생와사비를 전시해 놓은 곳이 눈에 띈다. 그 뒤엔 유명인들이 남긴 사인이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



고로상이 먹은 것이 바로 와사비 덮밥이다. 주문을 하면 주인 할머니께서 생와사비와 상어껍질 강판을 내어 주신다. 와사비를 하얀 부분, 그러니까 끝까지 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팔 운동을 하다 보니 이내 허기가 졌다. 그럴 때쯤 반갑게도 음식이 나왔다. 가쓰오부시가 살랑살랑 춤을 추는 뜨거운 흰 쌀밥 한 그릇. 여기에 특제 간장으로 살짝 간을 하고 정성껏 갈아 놓은 와사비를 조금씩 얹어 먹으면 끝이다.


고로상과 수많은 사인들


대체 이걸 무슨 맛으로 먹냐고? 고로상은 여기서 두 그릇을 비웠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와사비 덮밥을 보좌하는 네 가지 반찬에 있다. 와사비 김, 와사비 된장, 와사비 절임, 와사비 줄기 삼배초 절임. 모두 심플하지만 베스트인 맛이다.  



고급진 메밀 오마카세
테우치소바 다카다

시즈오카에서 메밀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시즈오카시엔 특별한 소바집이 하나 있다. 테우치소바 다카다(手打ち蕎 たがた)는 시즈오카시 중심지에서 약간 벗어난 조용한 지역에 자리 잡은 고급 메밀전문점이다.



테우치(手打)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손으로 직접 메밀면을 뽑는다. 저녁이면 사장님이 면을 치는 장면을 구경할 수도 있다. 단, 가성비 맛집은 아니다. 진짜 메밀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메밀 오마카세 혹은 메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가깝다. 



우리가 보는 메밀면의 색깔은 갈색이지만 이곳의 순도 100%의 메밀면은 아주 연한 회색에 가깝다. 찰기 없이 뚝뚝 끊긴다. 메밀면에선 구수한 향이 나서 젓가락보다는 코가 먼저 마중 나간다. 익숙한 방법대로 쯔유에 담가 먹어도 되지만, 우선 소금에 찍어 먹어 보기를 추천한다. 의심하지 말고 한 번 맛보시라. 구수한 맛이 두 배는 강해진다.  




▶AIRLINE
매일 떠나는 시즈오카

국적사 가운데 가장 많은 일본 노선을 보유하고 있는 제주항공은 시즈오카 직항 노선을 매일 운항한다. 인천-시즈오카 항공편은 매일 오후 4시5분에 출발하며 1시간 55분이 소요된다. 복편은 매일 오후 6시50분에 출발하며, 비행시간은 2시간 25분이다. 



글·사진 김진  에디터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시즈오카현 국제경제진흥회 서울사무소

매거진의 이전글 80년대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오사카의 지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