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루즈 아쿠아리우스
고품격을 내세운 중장년층의 크루즈가 아니다.
보타이와 화려한 드레스가 없어도 된다.
타이완을 여행하고 크루즈 프로그램을 즐기다가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일본의 몰디브, 이시가키섬에 닿아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나 가족과 떠나면 좋겠다.
짐을 싸고 다시 풀어야 하는 수고도 없이 두 나라를 여행한다.
그것도 크루즈로!
스타크루즈 아쿠아리우스호
떠나기 전부터 설레었던 것은 선베드로 둘러싸인 수영장 사진 때문이었다. 푸른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하고 하얀 크루즈 안에서 바람을 맞으며 맥주 한 잔을 하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게 취한 것 같았다. 지구본의 파란 부분, 타이완과 일본의 그 어딘가에 나는 떠 있을 것이다. 타이완에 도착해 도시 여행을 즐기고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크루즈가 출발하는 저녁이다.
잠들기가 아까운 크루즈의 첫날 밤
크루즈는 타이완 지룽(기륭, 基隆)항에서 출발한다. 체크인과 출국심사, 선실에 짐을 풀어놓기까지 약 한 시간. 발코니가 딸린 오션뷰 객실은 두 명이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이 알차게도 꾸며 놨다. 소파와 안락의자 두 개, 퀸 사이즈 침대와 화장대, 텔레비전과 냉장고, 옷장이 알차게 꼭꼭 들어차 있어서 작은 집 인테리어 전문가의 솜씨 같다.
한국인 크루가 특별히 한국인 승객을 위해 진행해 주는 쉽 투어를 마치고 나니 배가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어지러운 기분이 들지만 이내 적응을 하고 미세한 흔들림이 요람처럼 편안해진다. 탑승 전 뱃멀미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주 민감한 편이 아니라면 리셉션에서 무료로 나눠 주는 멀미약이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차라리 객실 발코니에 나가 바닷바람을 쐬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이었다고 멀미를 경험한 일행이 귀띔해 준다.
크루즈의 첫날 밤. 일찍 잠드는 것이 왠지 손해인 것만 같다. 단언하건대 크루즈에서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 두어도 된다. 매일 아침 객실로 배달해 주는 선상 신문에는 하루 동안 배에서 진행되는 각종 이벤트와 쇼핑정보, 레스토랑 소식이 넘쳐난다. 마침 눈에 띈 것은 전신마사지 1+1 프로모션! 둘이서 한화로 9만원 정도니 나쁘지 않다. 망망대해를 떠 가는 크루즈에서, 그것도 단독 룸에서 마사지를 받았다. 배의 미세한 흔들림과 테라피스트의 부드러운 손길에 이내 잠이 든다.
Show Must Go On!
크루즈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단연 ‘쇼’를 꼽겠다. 장년층을 위한 고루한 쇼가 아닐까 했던 예상은 완전히 틀렸다. <하트 오브 퀸 Heart of Queen>은 여왕이 동화의 나라를 여행하는 스토리를 담은 뮤지컬이다. 단순한 묘기를 뛰어넘는 아찔한 아크로바틱과 화려한 춤, 출연진들의 무대 매너에 1초도 눈을 뗄 수 없다. 성인을 위한 환상의 나라다. 과장 조금 보태 어깨가 빠지도록 박수를 쳤다.
크루즈 안에서는 쇼만 봐도 하루가 즐겁다. 선상 신문을 보면, ‘크루즈가 쇼를 위해 마련된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쇼의 종류가 다양하다. 가족형 쇼, 아이들을 위한 쇼, 성인만 입장이 가능한 쇼까지, 취향에 따라 선택만 하면 된다.
쇼는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했고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카지노와 바(bar)까지 찾아다니니 눈이 점점 또렷해진다. 오늘 밤은 할 것이 너무 많다. 크루즈는 거대한 리조트이고 백화점이며 홍대 앞이고 이태원이었다. 뭐가 이리도 즐길 게 많은가 하는 순간 눈앞에 노래방이 나타났지만 체력은 여기까지.
스타크루즈, 그 이름의 비밀
크루즈의 밤이다. 칠흑 같은 망망대해와 환상적인 별빛 속에서 환상적인 시간을 보냈다는 지인의 경험담이 사실인지 궁금했다. 거대한 크루즈의 테두리는 조깅 트랙이다. 한 바퀴 돌면 약 2km 정도가 되는데 크루즈에서 과식을 한 승객들이(사실 과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낮 시간에 산책 장소로 이용한다. 9층 뱃머리 쪽으로 향했다. 인적이 아예 없었고 파도소리만 낮은 음으로 철썩거렸다.
내려다보면 바다요, 올려다보면 하늘이다. 검어서 사실 구분을 할 수가 없지만 은하수가 흐르는 곳이 하늘일 것이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검은 바다로 찰나에 별똥별이 떨어졌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안에서는 사람의 쇼가 계속되는데 밖에서는 우주쇼가 펼쳐졌다. 별만 바라보다가 새벽이 되었다. 그래, 이 배는 ‘스타크루즈’였다.
interview
저요? 스타크루즈의 한국인 크루랍니다!
클로이 임 Chloe Jaeyun Lim
스타크루즈 아쿠아리우스호에서 한국인 직원이 하는 일을 소개한다면?
스타 크루즈에는 11명의 크루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인 승객이 탑승하시면 원하는 분들에 한해 일대일로 크루즈 쉽 투어를 진행해 드리고 있고요. 의사소통이 불편하신 분들은 언제든지 리셉션에 요청하시면 한국인 직원의 도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체크인, 출입국 심사, 하선, 크루즈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까지 크루즈에서 일어나는 모든 업무를 밀착해서 도와 드리고 있으니 탑승만 하시면 됩니다. 레스토랑, 카지노 등등 선내 부대시설에도 한국인 직원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스타크루즈 아쿠아리우스호만의 매력이라면?
동양의 몰디브라고 불리는 이시가키섬을 기항한다는 점입니다. 크루즈에서의 2박 3일은 짧은 듯해도 알찹니다. 선상 신문에는 크루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취향과 컨디션에 따라 크루즈를 즐기실 수 방법을 선택해 보세요. 한화로 10만원 정도만 지불하면 이시가키섬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비라 비치와 우간자키곶, 이시가키에서 가장 큰 쇼핑몰인 막스 밸류 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크루즈라는 직장은 어떤 곳인지?
저는 근무한 지 7개월 된 새내기 직원입니다. 크루즈에서 9개월을 꽉 채워 근무하면 약 45일의 휴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배 안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는 것이 외로울 때도 있지만, 쉴 틈 없이 바빠서 생각보다 시간이 금세 흐릅니다. 한국인 승객은 가족처럼 매일 만나니 정이 들 때가 많아요(클로이는 이번 취재 후 일행을 떠나 보내는 자리에서 눈가가 붉어졌다).
스타크루즈 아쿠아리우스호의 수용인원은 총 1,500여 명, 객실수는 765개, 5만톤급의 중대형 선박에 속한다. 아쿠아리우스호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의 셰프들이 준비하는 음식을 다양한 레스토랑에서 즐길 수 있다. 그릴 오셔나 바비큐, 인터내셔널 뷔페, 마리너스 레스토랑 등 콘셉트와 메뉴가 달라 매끼 다양한 맛의 세계에 빠져든다. 또한 스타 더스트 라운지에서는 매일 밤 쇼가 펼쳐지며, 노래방, 요가 프로그램, 댄스 클래스, 풀 사이드 파티 등 다채로운 선내 프로그램들로 꾸며져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가족여행객들의 편의를 위해 키드존과 캐릭터 선실이 있으며, 피자 만들기, 케이크 꾸미기 등 갖가지 키즈 액티비티도 마련돼 있다. 선내 레스토랑에서는 한국인을 위한 김치(혹은 깍두기)를 특별히 제공하고 있다. 돌아와야만 하기에 여행은 소중하다. 빠듯한 비용과 한정된 시간, 새로운 것을 많이 보고 싶은 ‘욕심’과 바쁜 일상에서 탈출해 ‘한가로움’를 누리려는 마음. 타이완도 가고 일본 이시가키섬도 체험할 수 있는 기회. ‘양손의 떡’을 취할 수 있는 일이 스타크루즈 아쿠아리우스호에서 가능해졌다.
스타크루즈 한국사무소
운항시간: 매주 수, 금요일 타이완 지룽항 출발(2박 3일). 수요일 출발편 기항지-일본 이시가키섬, 금요일 출발편 기항지-일본 요나구니섬
전화: 02 733 9033
홈페이지: www.starcruisekorea.com
Port of Call
스타크루즈 아쿠아리우스호는 타이완과 일본의 이시가키섬(石垣島)을 오간다. 짧은 여행 기간에 알차게 두 나라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은 이 크루즈의 가장 큰 장점. 여행기간이 일주일 이내이고 멀지 않은 곳에서 조금 다른 스타일의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게 ‘강추’하고 싶다.
크루즈는 타이완 지룽항에서 출발해 이튿날 아침 이시가키섬에 도착했다. 예전에 오키나와를 여행하면서도 이시가키섬은 가보지 못했다. 일본이지만 너무 멀었고, 타이완 여행은 오로지 타이완에만 집중돼 있었으니까. 타이완과 이시가키섬을 엮은 크루즈라니! 일석이조 일타이피!
게다가 잠을 자는 동안 이동하고, 자고 일어나면 나라가 바뀌어 있다. 이동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효율적이고, 다른 여행지에서 짐을 다시 풀고 싸는 과정이 없으니 몸이 한결 가볍다. 흔들리는 요람에서 잠들어 버린 아이처럼 한마디로 크루즈에서 푹 잤다. 눈을 뜨니 커튼 사이로 푸른 빛이 새어 들어와 객실이 온통 파랗다. 인터내셔널 레스토랑은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까지 새파랗다. 모닝커피 한 잔에도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든다. 배는 꼬리에 하얀 포말을 길게 남기며 동쪽으로 서서히 나아간다.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시가키가 가까이 와 있다.
▶Port of Call 1 - Japan
일본의 몰디브 이시가키
이시가키섬에 갈 수 있다는 점은 스타크루즈 아쿠아리우스호 최대의 자랑거리다. 오키나와에 갔었지만 이시가키만은 가 보지 못했었다. 지리적으로 이시가키는 일본보다 타이완에 더 가깝다. 예쁜 바다 성애자인 나는 이시가키가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연인 같아 더욱 다가가고 싶었다. 이시가키에 닿자마자 이국의 정취가 훅 들어온다. 뜨거운 햇살은 거리에 만개한 히비스커스 꽃처럼 타올랐다. 여러 번 느꼈던 남국의 분위기지만 여기는 분명 일본이다. 한산한 거리에 오가는 몇몇의 여행자들과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사탕수수밭은 섬 사람들의 수입원을 짐작케 했다.
거친 자연과 신의 기운, 우간자키
우간자키(御神崎)곶은 포토샵으로 콘트라스트를 한껏 높인 사진 같다. 파랑은 아주 파랗고 하양은 아주 하얗고 풀은 진한 연둣빛이다. 강한 파도와 바람이 만든 거친 바위 위에 천연의 물감을 무심히 칠한 듯하다. 구름은 하얀 등대를 스쳐 지나간다. 뜨거운 날씨에도 여행자들은 등대로 올라가 인생 사진을 찍는다. 한 쪽 바위는 바다를 향해 삐죽 내밀고 있는데 이곳에는 타다 남은 초와 그릇, 바구니가 놓여 있다. 기도를 드린 흔적이다. 우간자키는 이시가키 사람들이 신이 내려왔다고 믿었을 정도로 신성시하는 장소라고 한다. 최고의 전망 포인트를 넘어 광활함과 신성한 기운을 가졌다.
어떻게 찍어도 인생 사진이 나오는 카비라 비치
여기서는 아무데서나 찍어도 인생 사진이 된다. ‘일본의 몰디브’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곳이다. 이곳에는 250여 종의 산호가 서식하고 있어서 햇살에 따라 바다는 시시각각 변한다. 보석 같은 바닷물 속에는 진짜 보석인 흑진주가 자란다. 잔잔해 보이지만 보기보다 조류가 강해 수영은 금지돼 있다. 하지만 발만 담가도 괜찮다. 포근한 바닷물 속에는 각종 물고기들이 떼 지어 지나가며 발을 간지럽힌다.
▶Port of Call 2 - Taiwan
역사와 문화의 향기 타이베이
화산, 중산, 송산…. 타이완에서 핫한 곳에는 모두 산(山) 자가 불어있다. 화산은 타이완의 쌈지길이니 송산은 삼청동이니 하며 한국인들이 별명을 붙였다. 타이베이의 세 산(山) 중에서도 도시재생으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화산(華山)과 송산(松山)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화산(화산1914 창의문화원구)은 양조장을 개조한 곳이고, 송산(송산문창원구)은 옛 담배공장을 뜯어고친 곳이다.
문화와 창의가 가득
타이베이 문화여행 1순위로 추천하고 싶은 송산문창원구(松山文創園區, Songshan Cultural and Creative Park)는 말 그대로 문화와 창의가 가득한 곳이다. 타이베이를 여행하다 보면 군사시설과 군수산업의 흔적을 자주 보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송산문창원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는 자본 확보를 위해 이곳에 대규모 담배공장을 지었고 패망 후 타이완 정부가 국영 산업으로 운영하다가 문화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담배 공장 내부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는 이제 담배 대신 책이, 담배공장 창고에는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타이완 청년들의 핫 플레이스다. 일제가 여성노동자를 위해(결국 일제를 위한 것이었겠지만) 지었다던 육아보호소는 트렌디한 카페로 변신했다. 이제 이곳에서는 담배 연기 대신 예술의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옛 양조장의 빈티지 매력
옛 양조장이 완전히 다시 태어났다. 오래된 건물은 깎이면 깎인 대로 벗겨지면 벗겨진 채로 두었다. 대신 내용물이 달라졌다. 시간이 흘러 단단해진 나무뿌리가 낡은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 화산1914 창의문화원구(華山1914, Huashan 1914 Creative Park)에는 갤러리와 카페, 공연장과 아기자기한 수공예품 숍이 가득하다. 각자의 브랜드를 출시한 독립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몇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잔디 위에는 벼룩시장이 열려 볼거리가 풍부하고 레고 전시장에는 레고 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마치 공업지역이었던 성수동이 빈티지한 매력을 보존하면서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소품의 새로운 지평
송산문창원구에 위치한 에슬라이트 쇼핑몰(誠品生活松菸店, The Eslite Spectrum)에는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은 어여쁜 소품들이 널려 있다. 그중 오르골은 일본보다 훨씬 저렴하고 디자인도 다양해 인기가 많다. 또한 수제 디지털 카메라 숍도 사진 마니아들이 지나칠 수 없는 곳. 수제 디지털 카메라뿐 아니라 골동품처럼 오래된 카메라도 판매하고 있다. 아련한 추억이 담긴 사진을 일일이 설명해 주시는 사장님은 영어가 서툴지만 친절하다. 수제 디지털 카메라는 소재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 돈으로 약 15만원 정도.
지하 2층에는 유명 빵집인 우바오춘(吳寶春) 베이커리가 있다. 빵집은 인심도 넉넉해 에그 타르트를 왕만두만 하게 잘라 시식을 권한다. 보존료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구입 후 1시간 이내에 먹으라고 강조 또 강조한다. 시식을 하면 반드시 사게 되는 마성의 타르트. 유명한 이유는 혀가 알고 있다.
뜨거운 독서열기 속으로
성품서점으로 알려져 있는 청핀서점(誠品書店, The Eslite Bookstore)은 타이완 책 덕후들의 핫 플레이스. 타이완은 출판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 있고, 국민들의 독서 열기가 높으며 국민교육 보급률이 100%에 가깝다. 청핀서점은 타이완에서 가장 방대한 오프라인 서점으로 24시간 영업한다.
게임을 파는 야시장
타이완 최대의 재래시장이자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스린 야시장(士林夜市場, Shirin Night Market)은 길거리 음식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편으로는 ‘게임의 천국’이기도 하다. 다트 게임, 마작, 인형 따기같은 익숙한 놀이뿐 아니라 새우잡이 게임, 빈 병 세우기 등 정체불명의 유흥이 넘쳐난다. 게임에 진 사람들의 표정을 구경하는 것은 스린 야시장의 또 다른 볼거리. 키치한 소품, 달인이 만드는 길거리 음식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여기든 저기든 후끈거리는 스린 야시장은 타이완의 소박한 모습을 만나기에 최적의 명소다.
행방불명이 되고 싶다
지우펀(九份, Jiufen)에서 이화동 벽화마을이나 통영의 동피랑 마을, 오래된 강원도 탄광촌이 겹쳐 떠올랐다.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지만, 지우펀은 흥망성쇠를 거듭한 도시다. 1920년대 금광 채굴로 번영을 누리던 곳이었지만 폐광된 이후 가난한 시골 마을로 쇠락했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좁은 골목길에서는 고단했던 과거가 엿보인다.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따라 예스러운 건물과 홍등이 어우러져 이국적이다.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시간여행을 떠나 보면 좋겠다. 고수가 들어간 땅콩 아이스크림이나 꼬치를 하나 사들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지우펀을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정말 행방불명이 될 수도 있다. 기념품가게 바닥에 앉아 놀던 아기는 귀여웠고, 옆 가게에선 모자가 소원을 빌며 부적을 태웠다. 관광지가 아닌 마을 지우펀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행방불명이 되도 괜찮은 이유다.
바위 이름은 무얼까?
타이완의 필수 여행지인 예류 지질공원(Yehliu Geopark)은 입구에서부터 숨이 막힐 것 같은 더운 기운이 느껴진다. 예류의 기암괴석들은 더위에 익어서 물러진 듯 보인다. 파도와 바람이 만든 자연 조각 전시회장은 끝없이 이어져 있고 여행자들도 끊임없이 모여든다. 바위 이름을 맞춰 보는 것도 재밌겠다. 여왕머리 바위는 정말 여왕머리처럼 생겼고 슬리퍼 바위는 슬리퍼처럼 생겼다.
에슬라이트 호텔
에슬라이트 호텔(Eslite Hotel)은 청핀서점에서 운영하는 호텔답게 5,000여 권의 책으로 꾸며져 있다. 로비, 레스토랑, 각 층의 벽마다 예술가들의 아트워크로 채워져 있어 호텔이 아니라 갤러리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모든 작품은 타이완의 역사와 문화를 담았다.
호텔 입구에 들어서면 높은 천장까지 책이 가득 차 있고 카페는 로스팅한 커피의 향기가 그득하다. 부티크 호텔이라고 하기에는 문화의 향기가 깊고, 대형 호텔이라고 하기에는 무척 트렌디하다. 사각거리는 이불을 박차고 커튼을 열면 송산문창원구와 탁 트인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순-얏-센 메모리얼 홀 MRT역(Sun-Yat-Sen Memorial Hall MRT Station)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며 타이베이 쑹산 공항까지는 차로 10분, 타오위안 국제공항까지는 차로 45분 정도 걸린다. 송산문창원구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글·사진 김진 에디터 천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