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프바인의 바베큐 맛집
Grapevine
그레이프바인
그레이프바인은 이름에서부터 와인향이 솔솔 난다. 우리나라 직항편이 오가는 댈러스-포트워스 국제공항이 자리한 곳도 바로 이 그레이프바인이다. 서부영화 세트장 같은 그레이프바인 다운타운에서는 매년 10월이면 와인 테이스팅 축제 ‘그레이프페스트(Grapefest)’가 열려 전 세계 와인애호가들의 발길을 끌어 모은다.
와인과 함께 시간 여행
그레이프바인 역사 지구(Grapevine Historic District)를 텍사스 빈티지 마을이라고 칭하겠다. 낮은 채도의 건물들을 구경하다 보면 드라마 세트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레이프바인 역사 지구는 100여 년 전 서부 개척 시대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공연 시간과 제목만 덩그러니 쓰여 있는 서부시대 극장과 19세기풍 호텔, 원주민들이 살았던 오두막까지.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어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다.
그렇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와이너리다. 얼추 세어 봐도 소규모 와이너리가 10곳이 넘는다. 와인 앞에서 작아지지만 용기를 내 한 곳을 찾아갔다. 와인 리스트가 끝이 없어 와인 뷔페에 온 기분이다. 다섯 종류의 와인을 시음하고 나니 뭐가 뭐였는지 분간은 되지 않지만 훌륭한 맛만큼은 기억한다.
미국의 와인 하면 대부분 캘리포니아 와인을 떠올리지만, 텍사스는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와인 생산지다. 와인메이커가 이탈리아와 독일계가 많아 이탈리아, 독일 지역 품종을 사용한 텍사스만의 와인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다. 다양한 품종의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는데 직접 재배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언덕을 출렁이는 포도밭을 본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이런 배경 덕분에 이곳의 와이너리들은 포도 품종보다는 텍사스 와인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을 알리는 데 치중하고, 와인과 궁합이 좋은 음식을 소개하는 데 열을 올린다.
대표 와이너리로는 19세기풍 윌리스 호텔(Willis Hotel)에 자리한 ‘메시나 호프 그레이프바인 와이너리(Messina Hof Grapevine Winery)’가 있다. 그레이프바인에서는 포도밭보다 큰 돔 형태의 지붕이 있는 공장을 찾아가자.
스테이크보다 더 맛있었던 바비큐
그레이프바인에서는 항상 우버(Uber)로 이동했다. 우버 기사와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비지터 인포메이션 센터 같은 공식 기관에서 얻지 못하는 의외의 정보를 얻게 된다. 특히 맛집 정보는 우리나라 택시기사의 살아 있는 정보만큼 알차다.
검은 쫄티를 입은 것처럼 문신이 가득한 마이클은 첫인상 자체가 공포였다. 우버를 잘못 불렀나 싶었다. “일본에서 왔어요?” 서양인의 평범한 질문에 간단히 “아니요, 한국이요” 하니 친척이 부산에 살아서 한 번 가 본 적이 있는데 광안리에서 회를 먹었다는 둥 덩치에 맞지 않은 가벼운 수다를 이어 갔다. 먹는 이야기가 마이클의 주요 화제인 것 같아 맛집을 알려 달라고 했더니 한 곳을 강추했다. 하드 에이트 바비큐(Hard Eight BBQ)!
오전 11시, 조금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작고 조용한 마을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커다란 식당은 12시가 되자마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고 줄을 서기 시작한다. 일찍 오길 천만 다행이다. 사람들은 입맛에 따라 바비큐를 골라 먹는데, 구내식당처럼 식판 하나 들고 바비큐와 음료, 소스, 사이드 메뉴를 순서대로 집어 간다. 입구에서는 요리사들이 장작나무 숯불 위에 끊임없이 고기를 구워 낸다. 이 마을 모든 사람들이 여기서만 밥을 사 먹나 싶을 정도로 식당은 바글바글하다.
우버 기사가 추천한 대로 립과 소시지를 골랐는데 뼈 한 개가 돼지 족발만 하다. 텍사스에서는 뭐든 크다더니 소뼈도 크네? 짭조름하고 달콤한 바비큐는 맥주를 부르는데 간신히 참았다. 인생 바비큐를 만난 후 나에게 바비큐는 텍사스 바비큐와 그 나머지로 나뉘게 됐다. 맛있게 뜯어 먹었을 뿐인데 소 한 마리를 구워 먹은 것처럼 온몸에 숯불 향이 가득 배었다. 텍사스에서 제대로 고기 먹은 티를 냈다.
글·사진 김진 에디터 이성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