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초만 먹고 자라는 바다 고동을 일컫는 제주 방언, 보말. 보말칼국수는 말 그대로 바다 고동을 넣고 만든 칼국수다. 하지만 보말칼국수는 어느 음식점을 가든 비슷한 재료로 비슷한 조리법에 따라 비슷한 맛을 내는 음식이 아니다. 집집마다 주재료가 다르고 그에 따라 육수의 맛이 달라진다.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칼국수에 죽볶음으로 완벽한 마무리
해월정
성산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바다를 바로 앞에 둔 허름한 식당 하나가 보인다. TV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에 등장해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해월정이다. 당연히 대기는 필수. 가게 앞에 대기 명단을 적는 칠판이 있는데 눈길을 끄는 건 칠판과 그 옆 메뉴판에 써 있는 가게의 주문 규칙들이다. 1인 1메뉴로 주문할 것, 보말칼국수와 죽볶음 그리고 칼국수 추가는 모두 2인분 이상만 가능하다는 것, 앞접시는 1인 1개씩만 제공한다는 것 등. 규칙이 다소 엄격하고 까다롭다.
해월정의 보말칼국수는 고동과 다시마, 홍합이 골고루 적당히 들어가 있다. 신선한 해산물로 낸 육수에서 맵지 않게 얼큰한 맛이 나는데, 평소에 자주 접해 오던 익숙한 맛이다. 해월정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큰 장점은 샤브샤브처럼 즉석으로 끓여 먹는 조리 방식과, 국수를 다 먹고 난 후 죽볶음을 먹을 수 있다는 점. 보말죽과 죽볶음은 사장님이 직접 추천하는 메뉴인 만큼, 3인 이상 방문할 경우 꼭 먹어 볼 것.
걸어서 10초, 가게 바로 앞에는 우도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종달항이 있다. 우도에 가기 전, 혹은 우도에서 나와 따끈한 국수 한 그릇에 죽볶음으로 마무리하면 딱이겠다.
가격: 보말칼국수 9,000원, 죽볶음 3,000원, 보말죽 1만4,000원
오픈: 8:30~17:00(두 번째 화요일 휴무)
전화: 064 782 5664
두께가 들쑥날쑥 투박한 손칼국수
옥돔식당
가게 이름만 보고 판단하지 마시길. 옥돔식당은 옥돔이 아닌 보말칼국수 전문점이다. 메뉴는 보말칼국수 단 하나, 다른 메뉴는 없다. 2인 이상만 주문이 가능하다.
이곳의 보말칼국수는 미역으로 국물 맛을 낸 것이 특징이다. 직접 만드는 손칼국수 특유의 투박한 면발이 매력적인데, 쫄깃쫄깃하고 도톰해 씹는 맛이 있다. 고동도 다른 집에 비해 푸짐하게 들어 있는 편이라 쏙쏙 찾아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미역으로 우려 낸 만큼 육수 맛에서 미역국이 떠오른다. 물론 일반 미역국보다 진하고 걸쭉하지만, 미역국에 고동과 국수를 넣으면 이 맛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밑반찬으로 김치와 함께 콩나물을 내주는데, 취향에 따라 국수에 함께 넣어 먹으면 또 다른 보말칼국수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가게를 나서는 길에 직원분이 해바라기씨로 만든 과자를 맛보라고 주셨는데, 그게 어찌나 고소하던지. 결국 가게로 다시 들어가 5,000원을 주고 과자를 구입했다. 칼국수도 칼국수지만, 해바라가씨 과자 맛집이기도 하다.
옥돔식당은 모슬포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방어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한 모슬포항에서는 마라도까지 가는 배를 운영한다. 가게 바로 앞에서는 ‘모슬포 대정 5일장’이 열리기도 한다니, 시간을 넉넉히 잡고 주변 여행을 계획해 보는 것도 좋겠다.
가격: 보말칼국수 8,000원, 공기밥 1,000원
오픈: 11:00~16:00(매주 수요일 휴무)
전화: 064 794 8833
보말과 매생이의 눈부신 콜라보
한림칼국수
처음 이곳에 갔던 때를 기억한다. 가기 전에 운영시간 확인 차 전화를 했는데 응답이 없었다. 그러고 잠시 뒤, 문자가 왔다. 대표메뉴와 영업시간, 주소와 전화번호, 지도 링크까지 세세한 가게 정보를 보내 온 것이다. 연세 지긋하신 사장님이 최소 10년 이상은 운영해 온 가게겠거니, 어렴풋이 짐작했던지라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올해로 5년째 운영 중이시란다). 직접 마주한 가게는 자동응답 문자만큼이나 현대적이다. 외관과 내부가 깔끔하고 간판이나 메뉴판, 여기저기 박힌 해녀 캐릭터가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한림칼국수의 포인트는 매생이다. 어디에 들어가도 시원하고 부드러운 매생이와 쫄깃한 고동의 만남이 기가 막히다. 육수는 담백하고 시원한데, 어떠한 인공 첨가물도 없이 매생이와 고동 그리고 면으로만 맛을 낸 것 같은 순한 맛이다. 밀가루 음식, 특히 면이 두툼한 칼국수를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이곳 칼국수는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숭늉처럼 호로록 넘어간다.
시원한 매생이 국물에 밥 한 공기 뚝딱 말아 먹고 싶은 마음을 잘 아는 걸까? 셀프 바에는 밑반찬과 함께 밥이 마련돼 있는데, 심지어 무료다. 다른 집과는 달리 1인분씩 주문이 가능해 두 명이 가면 서로 다른 메뉴를 시켜 두루두루 맛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집의 장점이다.
가격: 보말칼국수 7,000원, 영양보말죽 7,000원, 매생이보말전 7,000원
오픈: 07:00~16:00(매주 일요일 휴무)
전화: 070 8900 3339
*복토끼의 <제주, 어디까지 맛봤니> 시리즈는 흑돼지, 오메기떡과 같은 제주 대표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소문난 음식점에 대한 주관적이면서도 솔직한 후기를 공유하며, 우리 모두의 맛있는 제주 여행을 응원한다.
홈페이지: post.naver.com/7luckybunny
글·사진 김연미(복토끼) 에디터 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