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주의 탄생 조건
쌀 & 코스
일본주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에 쓰인 역사책 <하리마 풍토기播磨風土記>에 남아 있다. ‘신에게 바치기 위해 올린 양식에 곰팡이가 생겼다.’ 아주 오래 전부터 발효를 통해 술을 빚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주란 구체적으로 어떤 술을 말하는 걸까? 일본 주조조합중앙회에서는 주 원료로 ‘쌀’을 사용하며 ‘코스こす’라 불리는 공정을 거친 술을 일본주라 정의하고 있다. 코스란 모로미もろみ, 즉 걸러지지 않은 상태의 술을 발효 및 여과 살균 과정을 거쳐 원주原酒와 술지게미로 나누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코스’를 거쳐 비로소 맑고 투명한 일본주(청주)가 완성되는 것이다.
일본주의 종류를 알아야 할 2가지 이유
음식 궁합 & 온도
일본 전역의 수많은 양조장에서는 저마다의 전통을 이어 술을 빚고 있다. 특히 교토의 후시미伏見, 고베의 나다灘, 히로시마의 사이조西條 지역은 일본주의 3대 고장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중에서도 깔끔하고 담백한 맛으로 이른바 ‘여성의 술’로 불리는 후시미의 일본주와 강한 향과 감칠맛이 일품인 나다산 일본주는 현지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각지에서 빚어내는 술은
주조 방식에 따라 맛도 천차만별이다.
일본주는 크게 쿤슈薫酒, 주쿠슈熟酒,
소우슈爽酒, 준슈醇酒 4가지로 분류되는데
쿤슈는 향이 진하고
주쿠슈는 숙성한 맛이 나며
소우슈는 매끈하고 부드럽다.
준슈는 은은하면서도 깊고 풍부한 맛이 난다.
일본주의 종류를 알면 알수록 더 맛있는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술에 따라 어울리는 음식이 가지각색으로 달라지기 때문. 진한 향이 일품인 쿤슈의 경우 맛과 향이 센 음식보다는 조개, 굴과 같은 어패류와 잘 어울리는 반면 오랜 숙성을 거쳐 쓴 맛과 감칠맛을 띠는 주쿠슈는 뱀장어 양념구이나 돼지고기 조림豚の角煮, 부타노 카쿠니와 같이 맛이 강한 음식과 함께 먹으면 밸런스가 잘 맞다.
부드러운 맛을 자랑하는 소우슈는 다른 술에 비해 쓴 맛과 산미가 적어 생굴, 두부, 문어 가라아게 등을 곁들이는 것이 좋고, 준슈는 걸쭉한 소스의 고등어 된장 찜이나 돈까스, 소스를 곁들인 닭구이 등의 음식과 궁합이 좋다.
일본주의 종류를 알면 유리한 이유는 온도에도 있다. 각 술마다 마시기에 가장 적합한 온도가 따로 있으니 말이다. 쿤슈는 10~16도 가량의 온도를 유지하여 마시는 것이 가장 최적이며, 주쿠슈의 경우 차갑게 해서 마시는 것이 이상적이다. 소우슈는 15~35도 사이가 가장 좋고 준슈는 10~45도, 즉 차갑게 마셔도 살짝 데워 먹어도 나쁘지 않다.
일본주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한 방법
야와라기미즈 & 여유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나 일본 전통 요리 전문점에 가면,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틈틈이 물로 입을 헹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야와라기미즈和らぎ水’라 부르는데, 현지 지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게 입을 헹궈 줌으로써 일본주 본연의 맛과 향을 계속 즐길 수 있기 때문이란다.
술을 담는 잔과 병의 명칭도 각각 다르다. 이자카야나 일식집에서 일본주를 주문하면 네모난 상자처럼 생긴 ‘마스升’를 줄 때가 있는데, 여기에 유리잔을 넣어 마시거나 직접 술을 부어 마셔도 된다(180ml 가량의 술이 들어간다). 조그마한 크기의 사기잔은 오쵸코おちょこ, 손잡이가 없는 병은 도쿠리徳利라 부른다.
방법도 도구도 다 좋지만, 진정으로 술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건 여유로운 마음이 아닐까. 과음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술 자체의 향과 맛을 즐기는 일본 현지 문화에 따라 그날 먹는 음식에 맞춰 일본주를 주문해 보자. 술과 음식이 만드는 조화는 다양하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여행의 기억은 다채롭다.
글 TAN(박탄호) 사진 TAN, 트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