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USA
밀러 Miller
독일 맥주 아니에요
시카고에 살 당시, 1시간 30분 차를 타고 밀워키(Milwaukee)에 있는 밀러 브루어리에 간 적이 있다. 밀러가 이렇게나 맛있었나. 브루어리 투어를 마치고 맛본 맥주의 맛이 잊히질 않는다. 이름 때문에 간혹 독일 맥주로 오인받기도 하는 밀러는 미국에서 탄생했다. 1855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해 버드와이저 다음으로 미국 맥주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밀러는 맥주를 물처럼 마시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제격일 터. 밀러 라이트(Lite), 제뉴인 드래프트(Genuine Draft)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하이 라이프(High Life)를 가장 선호한다.
트래비스트 구도영
2. Ireland
기네스 Guinness
자연과 문화가 빚은 맛
세인트 패트릭(St. Patrick’s) 축제를 즐기러 아일랜드에 갔을 때였다. 한참이나 퍼레이드를 즐기다 목이 말라 근처 펍에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아일랜드 맥주인 기네스를 권했다. 잔을 타고 흘러내리는 크림 같은 거품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내가 알던 흑맥주와는 전혀 달랐다. 부드러우면서 진하고 쌉쌀한 맛은 아일랜드의 자연이 빚은 예술이다.
아일랜드 산맥 사이로 흐르는 리피(Liffey)강의 물로 기네스를 만들어 내고, 수도 더블린에 있는 기네스 팩토리(Guinness Factory)에서 철저한 공정을 거쳐 맥주 맛을 고르게 유지한다니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에 돌아와 맛본 기네스의 맛은 그때 그 맛이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어울려 마신 축제의 맛엔 비할 바가 없었다.
3. Belgium
린데만스 Lindemans
와인에 가까운 맥주
비단 호가든(Hoegaarden)만 있지 않다! 벨기에 맥주 종류는 아주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야생효모를 활용해 상온에서 발효시킨 ‘람빅(Lambic)’ 맥주를 추천하고 싶다. 람빅은 상온에서 발효시켜 신맛이 나며, 과일과 함께 발효된 덕분에 맥주보다는 와인에 가까운 독특한 맥주 종류다. 수많은 람빅 맥주 중 내가 맛본 브랜드는 ‘린데만스’였다. 신맛과 함께 떫은맛은 물론 탄산의 청량함까지 갖고 있는 특유의 매력에 자꾸만 손이 갔다. 람빅 맥주를 구했다면 와인 오프너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종류에 따라 코르크 마개를 활용해 입구를 봉인해 놓기 때문. 모르고 구매했다가 당황한 기억이 있다.
트래비스트 강한나
트라피스트 로슈포르 8 Trappistes Rochefort 8
수도원 원정의 시작
2014 브라질 월드컵이 절정으로 치닫던 여름, 벨기에에서 ‘수도원 맥주’라는 신문물을 접한 후 맥주 취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중에서도 독일이 브라질을 7:1로 완파한 4강전만큼 충격적이던 트라피스트 로슈포르 8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벨지안 스트롱 다크 에일(Belgian Strong Dark Ale) 종류인 로슈포르는 진한 커피색을 띄며 달콤한 초콜릿, 씁쓸한 커피 맛과 함께 향긋한 과일향이 피어오르는 복합적인 맥주다. 시원하게 먹는 라거와는 달리 온도가 오를수록 더욱 풍부한 향과 맛을 뽐내기 때문에 한 잔의 여운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다. 로슈포르를 만난 이후 벨기에 맥주의 신봉자가 됐고, 다른 수도원도 좇기 시작했다.
이성균 기자
4. Czech
필스너 우르켈 Pilsner Urquell & 코젤 Kozel
첫 혼술의 추억
내 생애 첫 혼술은 유럽 여행 중 체코에서 시작됐다. 숙소에서 친구와 다툼이 있었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나는 정처도 없이 프라하 시내를 누볐다. 마음껏 고불거리는 골목을 쏘다니다, 인적이 드문 어느 바를 발견했다. 그렇게 인생 첫 혼술로 체코 대표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을 마셨다. 조명 빛을 받아 반짝이는 프라하의 밤을 바라보며, 혼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다시 돌아온 숙소에서 친구와 나는 극적인 화해에 성공했고, 다음날 저녁 같은 가게에 친구와 함께 방문했다. 그리고 이번엔 흑맥주 코젤(Kozel)에 도전했다. 체코 맥주는 가히 세계 최고라 단언하며.
트래비스트 서지선
5. Indonesia
빈땅 Bintang
두유 노 빈땅?
발리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현지인이 ‘두유 노 빈땅?’이라며 물어 왔다. 기대감에 가득 찬 그의 얼굴로 유추해 보건대,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두유 노 박지성’과 비슷한 물음이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정작 식사시간에 그가 건넨 빈땅은 가운데에 별이 그려진 맥주 캔이었다. 박지성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대표 맥주, 그러니까 그의 물음은 ‘두유 노 소주’ 혹은 ‘두유 노 막걸리’에 가까웠던 셈이다. 당황한 나는 그 자리에서 당장 캔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고, 그런 모습이 재밌는지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솔직히 말해 빈땅의 향이라든지 목 넘김 같은 감각은 희미해졌지만, 미지근한 온도였음에도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더없이 훌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맥주 한 캔을 비우는 행위만으로 누군가를 웃게 했다는 쾌감도 진하게 남았다.
전용언 기자
6. Philippines
산 미구엘 San Miguel
햇볕 아래 한 모금 오아시스
건강미 넘치는 구릿빛 피부가 되리라 마음 먹고 보홀(Bohol)의 한적한 프라이빗 비치에 누웠다. 그러나 한낮의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에 몇 시간 동안이나 땀을 쭉쭉 빼고 있자니, 굳건한 의지의 한국인 모드로도 도저히 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목을 축일 겸 시원한 미구엘 맥주 한 병을 사서 빨대를 꼽아 한 모금 들이키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뼛속까지 쭈뼛하도록 시원함이 전해지더니, 곧이어 옥수수 향을 머금은 산 미구엘 본연의 구수함과 달콤함이 입 안 가득 퍼져 왔다. 정말이지 나만 알고 싶은 황홀한 맛이었다.
트래비스트 차승준
7. Vietnam
비어 라루 Biere Larue
내 간엔 네가 딱이야
다낭 바닷가 어느 해산물 식당에서, 목욕탕 의자에 쭈그리고 앉은 채였다. 베트남 중부 지방에서 주로 마신다는 비어 라루를 처음 만났다. 개인적인 입맛이지만 그동안 마셔 본 하노이 비어(Hanoi Beer), 비아 사이공(Bia Saigon)과 같은 다른 베트남 맥주들은 좀 쓰게 느껴졌었다. 얼음에 부어 마시는 동남아식 음주법을 감안하고서라도. 그런데 라루는 어찌나 간이 딱 맞던지. 그리 쓰지도 밋밋하지도 않은 맛은 해산물과 최고의 궁합을 만들어냈다. 이후 분짜, 반미 등 다른 베트남 음식과의 조합 실험을 거친 결과, 실패는 없었다.
김예지 기자
8. Laos
비어라오 다크Beerlao Dark
둥글둥글한 흑맥주랄까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까지, 무려 7시간을 달렸다. 하루 종일 미니 밴에서 덜컹거렸으니, 입맛이 있을 리가. 그때, 비어라오 다크를 마셨다. 뒷맛이 적당히 쌉쌀하고 깔끔해 입맛을 돋우기 제격이었다. 구수한 맥아와 달콤한 캐러멜 향이 달달하게 느껴져 부드럽게 넘어갔다. 누군가는 다른 흑맥주들에 비해 ‘많이 싱겁다’고 말하곤 하지만 어느 하나 ‘탁’ 튀는 맛이 없는 것이 매력이다. 그러나 6.5%로 일반적인 다크 라거보다 도수가 꽤 높은 편. 고수가 듬뿍 들어간 칠리소스에 치킨 윙을 푹 찍어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강화송 기자
9. Japan
기노사키 비어 Kinosaki Beer
뜨끈한 온천 여행의 맛
일본 온천마을 기노사키 온센에서 처음 가노사키 비어란 걸 맛봤다. 맥주 자체에 대한 경험이라기보다는 마실 때의 분위기와 감성이 남긴 추억의 잔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지만, 누군가 맥주에 대한 기억을 물을 때면 그때 그 맛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몽롱한 온천욕을 즐기고 들이킨 첫 맥주여서인지, 안주로 곁들여 먹은 기노사키 대게 요리의 감칠맛 덕분인지. 붉은 취기가 더해져 여행 중 가장 꿀맛 같은 단잠을 잔 날로 기억한다.
트래비스트 이고은
10. Korea
누룩사워프로젝트 NSP
맥주와 전통주의 조화
부산 송정에 위치한 ‘와일드 웨이브 브루잉(Wild Wave Brewing)’에서는 맥주와 전통주를 조합한 누룩사워프로젝트NSP를 마실 수 있다. 금정산성 막걸리 누룩 속의 유산균과 야생효모를 이용해 만든 사워 맥주로, 독일 샴페인 맥주라 불리는 ‘베를리너 바이세 스타일’을 모티브로 양조했다. 가벼운 신맛과 적당한 몰트 풍미가 어우러지는 맛은 누구에게나 상쾌하게 매력적이다. 게다가 부산 바다가 배경이라니. 굳이 멀리 세계여행이 필요할까?
트래비스트 오윤희
글 트래비스트, 트래비 취재부 정리 트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