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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Aug 28. 2018

마음속으로 그리던 인도의 모습,
라자스탄

자이나교 사원에서 수행자가 명상에 잠겨 있다


인도는 빠르게 변해 가고 있지만, 라자스탄의 시간은 더디 흘렀다. 
라자스탄엔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의 이미지가 오롯이 남아 있다. 


메헤랑가르성은 고개를 바짝 쳐들어야 꼭대기가 눈에 들어온다


여행을 마치고 온 지금도 라자스탄은 ‘색깔’로 각인돼 있다. 황량한 사막의 땅에 원색의 물감이 뚝뚝 떨어져 있었다. 초로의 남자는 알록달록한 터번을 쓰고 풍성한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코가 뾰족한 알라딘 가죽구두를 신고 다녔다. 라자스탄 여성들은 빨강, 노랑, 주황, 보라, 초록 등 원색의 사리인도 여성들이 입는 전통 의상로 온몸을 휘감고 사뿐사뿐 걸었다. 



인도 북부에 위치한 라자스탄(Rajasthan). “수천년 동안 외부의 침략을 많이 받아서 인도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면서 전통을 지키는 지역입니다.” 인솔자는 여행 내내 ‘보수’와 ‘전통’이라는 단어를 자주 꺼내어 설명했다. 보수와 전통이라. 덕분에 라자스탄에서는 덜 발전한, 덜 상업화한, 덜 도시화한 인도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델리에서 지체하지 않고 조드푸르(Jodpur)로 향했다. 프로펠러 비행기로 1시간 반 남짓. 창밖엔 바싹 마른 땅이 펼쳐졌다. 비행기에서 나눠준 샌드위치는 시금치와 옥수수를 으깨 속을 채워 만들었는데 어찌나 버석거리는지 라자스탄 흙을 씹는 기분이었다. 낡은 자동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모습이 점점 크게 다가오면서 조드푸르에 내려앉았다. 


헤랑가르성은 원래 마하라자의 소유지만 현재 거주하지는 않는다. 인도 전통 복장을 입은 인도 남성이 이 성의 주인처럼 내려다보고 있다


라자스탄 전사의 기질



조드푸르의 메헤랑가르성(Meherangarh Fort)으로 향했다. 성벽은 36m 높이로 솟아 있어 고개를 완전히 뒤로 꺾어야 성벽의 끝이 보인다. 들어서자마자 위용에 주눅이 들었다. 까마귀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시꺼먼 날짐승들의 몸짓에서 왠지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라자스탄 왕후들이 산 채로 죽임을 당한 흔적입니다.”


기운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성문 입구에는 15개의 손바닥 자국이 찍혀 있다. 마하라자(Maharaja), 산스크리트어로 ‘대왕’이라는 뜻이다. 전쟁에서 패하자 왕후들은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쳤다. 손바닥 자국은 부인들의 넋을 기린 표식이다.




라자스탄 지역은 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산 채로 불태워 버리는 ‘사티(Sati)’ 풍습이 오래 남아 있었다. 1829년에 사티 금지령이 선포돼 공식적으로는 사라져 버렸지만, 문명이 아직 닿지 않은 시골 어디에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전쟁에서 남편이 죽으면 외부세력인 무굴제국에 아내를 빼앗기게 되는데, 그처럼 불명예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겠다는 강한 저항의 표현이다. 여성 인권의 시각에서 보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라자스탄 사람들의 전사 기질 때문에 행해진 일들이다. 이곳 남자들은 또 어찌나 자존심이 강한지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조하르Johar’ 전통도 오래 지켰다.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강한 기질이 느껴진다. 


인도 전통 악기로 오가는 관광객의 흥을 돋우는 거리 연주자들


라자스탄(Rajasthan)의 의미를 알면 라자스탄의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라지푸트(Rajput)의 땅(Sthan)’이라는 뜻. 라지푸트는 ‘무사’ 혹은 ‘왕’을 의미하는데, ‘전사 정신을 가진 왕’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라지푸트는 수천년 동안 라자스탄 지역 내 각자의 영토에 자신의 토속국을 세워 지배해온 세력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넘어온 아리아족과 토착민으로 구성됐다. 라자스탄 사람들은 인근 왕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엄청나게 높고 웅장한 성을 지었다. 결국 16세기 무굴제국이 인도를 점령해 버리긴 했지만 라자스탄만은 끝까지 저항했다. 때문에 라자스탄은 인도의 다른 지역과 달리 곳곳에 거대한 성과 요새가 많아, 압도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다. 


메헤랑가르성 곳곳의 포탄 자국이 격렬했던 전쟁의 흔적을 말해 준다. 움푹 파인 흔적을 손으로 더듬으며 성 꼭대기에 오르니 사람들이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벽을 따라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온통 파랗다. 저 곳이 너무나도 궁금하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맘에 서둘러 성을 나왔다. 





인도 아이들의 미소는 저절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차이 한 잔으로 시작한 블루시티


오토릭샤(Auto-rickshaw)는 쉴 새 없이 삑삑거린다. 태국에서 ‘툭툭’이라 불리는 이 서민의 교통수단은, 인력거를 뜻하는 일본어인 ‘리키샤(力車)’에서 유래했다. 오토릭샤의 끊임없는 경적음은 “여기 내가 있으니 조심하시오!”라는 의미라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무의식적인 운전습관이다. 삑삑거리는 소리 때문인지 느릿느릿한 사람들도 오트릭샤를 몰면 성질이 급해진다. 좌로 휙, 우로 휙 돌고, 마구잡이로 끼어드는 자전거에는 더 높은 데시벨로 삑삑거린다. 단, 소에게는 예외다. 소는 어슬렁거리면서 좀처럼 길을 내어주지 않아도 운전사는 한없이 너그럽다. “소님, 천천히 일을 보고 지나가십시오.” 


인도에서 소는 거리의 왕이다


사람들은 인도와 차도를 넘나들었고, 중앙분리대 화단에서는 거지 몇 명이 낮잠에 빠져 있었다. 역주행하는 자동차 때문에 몇 번 아찔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안전하게 사다르 시장(Sardar Market)에 도착했다. 사다르 시장이 유명한 이유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거대한 재래시장이면서 블루시티로 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서울로 치면 남대문 시장 정도랄까. 북적거리는 시장엔 향신료 냄새, 사람 사는 냄새가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호객 행위에 혹해 차이(Chai)를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 차이는 인도의 대표적인 차이면서 국민 음료.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인도 사람들은 차이를 즐겨 마신다. 주인장은 스크랩북을 꺼내 송혜교 사진과 사인을 보여 주면서, “송혜교가 우리 집에서 차이를 마시고 갔어요”라고 너스레를 떤다. 누가 봐도 빤한 거짓말. 글씨도 삐뚤빼뚤. 게다가 송혜교 사진은 촌스러움의 극치로 웃음이 나올 정도다(혹시 송혜교씨, 정말 이곳에서 차이를 마시고 간 거라면 <트래비>로 연락 주세요). 과장이 심한 주인장은 차이 하나만큼은 자기네가 최고라며 차이 만드는 과정을 보여 줬다. 주전자에 찻잎과 계피, 생강, 정향, 샤프란 등을 넣고 10분 정도 끓인다. 맑은 차를 체에 거른 후 옆으로 흐르든 말든 인심 좋게 팍팍 찻잔에 담아 줬다. 리필은 기본이란다.


인심은 후하다. 차이는 보통 우유와 설탕을 넣어 진하고 달콤한 밀크티로 마시지만 여긴 우유를 넣지 않는다고 했다. 차의 품질이 좋기 때문이란다. 향신료 때문에 입 안이 조금 얼얼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났다. “차이 실력만은 거짓말이 아니군!” 폭염에 선풍기도 없는 찻집에서 뜨거운 차라니. 이 정도 뜨거운 차라면 내뱉는 숨이 더 뜨거워야 하는데 아직도 바깥공기가 더 뜨겁다. 45도다.


조드푸르 사다르 시장. 현지의 활기와 여행자들의 호기심이 뒤엉켜 인간미가 풀풀 풍긴다


본래 인도에는 차를 마시는 풍습이 없었다고 한다. 차를 좋아하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면서 인도인들도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차는 영국 식민지 시절 초기에 상류층만 마실 수 있는 고급 기호식품이었다. 상류층은 품질이 좋은 고급 차를 마시고 하층민들은 품질이 떨어지는 찻잎을 썼다. 그러니 맛이 없을 수밖에. 그래서 고안해 낸 레시피가 오랫동안 우려낸 차에 우유와 설탕, 각종 향신료 등을 넣어 맛을 낸 것이다.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 마살라 차이(Masala Chai). ‘마살라’는 각종 향신료를 뜻한다. 인도 남부 지방은 커피를 선호하지만 북부는 아직도 차이 같은 차를 선호한다.





블루시티는 가난한 동네지만 아이들은 그저 해맑다


파란 마을 곳곳을 누비며


차이 때문에 입이 얼얼한 채로 시장을 빠져나와 골목으로 향했다. 파란 마을에 깊게 들어가 보고 싶었다. “인도 뒷골목을 혼자 다니면 안 돼.” 지인의 조언은 저 멀리. 혼자 가겠다고 하니 일행 중 남자 셋이 나를 따랐다. 길거리에 무력하게 누워 버린 개에게 다가가니 일행은 “인도 개에게 물리면 죽어요”라며 말렸다. 인도 뒷골목에선 내 의지와는 달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괜찮을 것 같은데요”라는 말은 별로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시선을 피해 개 사진도 찍고 소에게 다가가 보기도 하고, 공동 수도에서 손도 씻었다. 


메헤랑가르에서 바라본 블루시티


푸른빛이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서서히 멀어져 갔다. 골목은 모세혈관처럼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여기서도 소는 거리의 왕이다. 어슬렁거리며 걷다가 아무데나 배설을 했고 염소, 개, 닭과 사람은 뒤엉켜 놀았다. 길가에는 오염된 물이 거품을 일으키며 도로 위로 풍풍 솟았다. 마을에 하수구 공사를 시작하려는지 땅을 다 헤집어 놓아 걷기에도 불편했다. 골목길 곳곳엔 대마초를 말아 파는 가게, 세탁소, 미용실, 헤나숍 같은 가게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온통 푸른색으로 칠한 집


영화 <김종욱 찾기>의 배경으로 나와 더욱 유명해진 블루시티. 조드푸르라는 도시명은 낯설어도 인도의 ‘블루시티’로는 여행자들에게 꽤 알려진 곳이다. 원래 카스트 제도의 브라만 계급이 집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집을 파란 색으로 칠했다는 설과 그저 파란색이 시원해 보이는데다 모기를 쫓는 데 효과가 있어서 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지만 파란 마을은 그 자체로 여행자를 끌어당긴다. 영화 속 로맨틱한 분위기를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수는 있겠다. 이곳은 그저 서민들이 사는 평범한 마을이라 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마주하게 되니까. 단 한 가지, 블루시티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눈빛은 너무나 치명적이다. 극단적으로 순수했고 때론 극단적인 가난을 품고 있었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길은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놀이터라서 어딜 가나 ‘꺄르르’ 소리가 들린다. 성인 두 명이 겨우 지나다닐 만한 좁은 골목길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동양여자가 신기했는지 카메라로 자기들 사진을 찍어 달라고 성화다. 순수함에 반해서 사진을 서너 장 찍었다. 그러자 이내 두 손을 내밀고 돈을 달라고 하는 아이들. 인도에서 이런 아이들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문득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인도 사람들은 구걸을 하는 게 아니야. 네가 선행을 쌓아 내세엔 부자가 될 기회를 주는 거라고.” 





자이나교 사원은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새하얗다


보석처럼 빛나는 자이나교 사원


라낙푸르(Ranakpur)에서 이곳에 안 간 여행자는 없다는 곳이 자이나교 사원(Jainism Temple)이다. 조드푸르에서 휑한 사막을 관통하며 세 시간 달렸을까. 깊은 산 속 하얗게 빛나는 거대한 사원이 눈에 들어왔다. 사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신발을 벗어야 한다. 45도를 넘는 날씨 탓에 땅이 워낙 뜨겁게 달궈져 있어 사원 입구로 걸어가는 것 자체가 고행이다. 종교적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어 들어갔다. 


자이나교 수행자 중 한 명은 영화배우처럼 잘 생겨서 나도 모르게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된 기둥 사이로 수행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유독 붙임성이 좋은 수행자는 서슴없이 다가와 이름을 물었다. “Jin”이라고 답했더니, 자이나교에서 ‘완전히 깨달은 자’를 ‘지나(Jina)’라고 한다며 너무나 좋은 이름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까불면서 들어왔는데 완전히 깨달은 자라니 왠지 뿌듯했다.  


사원 안의 조각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섬세함에 감탄을 넘어 경악할 정도다


자이나교 사원은 여느 사원과는 달리 엄숙하지 않다. 찬란하다. 천장 틈 사이로 내리꽂히는 햇빛은 하얀 대리석에 닿아 반짝거렸다. 거친 것은 부드럽게, 어두운 것은 밝게 변화시키는 마법의 공간이다. 손으로 일일이 새겼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둥과 천장의 조각은 세밀하다. 이것도 선업을 쌓기 위한 고행이었을까? 


자이나교는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종교다. 불교, 시크교와 함께 모두 업(業), 즉 카르마(Karma)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중 자이나교는 유독 극단적인 고행을 통해서만 영혼을 가볍게 하고 나쁜 카르마를 흩어 버릴 수 있다고 믿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불살생(不殺生)이다. 자이나교에도 여러 계파가 있지만 그중 가장 엄격한 금욕으로 알려진 공의파(Digambara)는 자신과 연결되지 않은 모든 것을 거부한다. 옷차림이 사회적 편견을 의미한다고 생각해 실오라기 하나 없이 벌거벗고 다니며 곤충을 밟지 않기 위해 빗자루로 발 앞을 쓸면서 걷는다. 심하게는 미생물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흰 마스크를 쓰기도 한다는데 불살생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방법은 들을수록 의아하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인도에서 성공한 사업가 중에 자이나교 출신이 많다는 것.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재미있다.


“동식물을 함부로 죽일 수 없으니 군인도, 도살업자도, 농부도 될 수 없어요. 그래서 물건을 사고파는 일만 하다 보니 사업자 기질이 저절로 생겨났죠.” 자이나교에서 중시하는 신용과 검소한 기질도 한몫한다.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마힌드라 모터스나 대우전자를 인수한 비디오콘 같은 대기업도 자이나교 신자들의 차지다. 인도 인구의 0.4%에 불과한 자이나교도가 국가 세금의 24%를 낸다는 것도 흥미롭다. 고행과 가난을 택한 자이나교도들이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에 속한다는 것은 어쨌거나 아이러니다.   




산악지대에 지어진 쿰발가르 요새


산골의 웅장한 성에서 경계가 무너졌다
쿰발가르 


자이나교 사원에서 나와 척박한 대지를 가로지르며 달렸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간혹 작은 호수가 나타났다. 검은 물소는 물속에서 슬로모션처럼 움직였다. 밋밋한 고속도로가 끝나니 꼬부랑 산길이다. 도착지는 쿰발가르 요새(Kumbhalgarh Fort). 라자스탄주에서 유일한 산악지역이다. 40도가 넘는 더위에 며칠을 시달렸던지라 “쿰발가르에서는 서늘함을 느낄 수 있어요”라는 인솔자의 말에 절로 기운이 솟았다.



이모작 혹은 삼모작까지 가능하다는 논에선 해진 옷을 입은 아이들이 나비처럼 뛰놀았다. 페르시아 양식의 우물에서는 소가 뱅글뱅글 돌며 논에 물을 대는 막중한 업무를 수행한다. 원숭이는 나무에, 사람들은 작은 버스에 매달려 다녔다. 아낙네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뭘 이고 다녔는데 남자들이 일하는 모습은 볼 수 없어 의아했다. 낙타는 주인에 끌려 짐을 날랐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탄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오르는 길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물항아리를 머리에 얹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성.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쫓아가기가 힘들었다


귀가 멍멍해져서 해발고도를 물으니 1,000m란다. 30도가 넘는 날씨인데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휴가철이면 바다로 향하지만 인도인들은 더위를 피해 이런 고지대로 온다고 한다. 아, 어쨌든 상쾌한 공기다. 산등성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성벽이 눈에 들어왔다. 쿰발가르 요새는 만리장성 다음으로 긴 성벽으로 길이가 38km에 이르지만, 규모에 비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심지어 인도인에게도 아직 낯설어서 산악지대에 자리잡은 고급 리조트로 휴가를 온 부유한 인도 가족들만이 여행을 오는 듯 보였다. 역시나 외국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산골마을 사람들은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내게 친밀함을 표시했다. 날다람쥐처럼 뛰어서 다가와 셀카를 찍자고 하는 건 기본. “OK”를 하면 순식간에 가족이 모여들어 외국인을 가운데 둔 가족사진을 찍고야 만다. 그걸 본 다른 가족이 보기 드문 ‘얼굴 하얀 동양 여자’를 모셔 간다. 나중엔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어 “Sorry” 하고 냉정하게 지나쳤더니 어찌나 섭섭해하던지…. 그 표정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다이푸르 피촐라 호수 주변엔 오래된 하얀 건물들이 로맨틱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호수와 궁전으로 기억되는 도시
우다이푸르


인도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친구는 인도에 대해 항상 시큰둥했다. 하지만 우다이푸르(Udaipur)만큼은 예외였다. 그래서인지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나는 이 도시가 궁금했다. 라자스탄 남부에 자리잡은 우다이푸르는 ‘인도의 베니스’라고도 한다. 눈치 챘겠지만 우다이푸르는 물의 도시다. 정확하게는 호수의 도시다. 호수는 이 도시를 사랑스럽게 만드는 일등공신인데 놀라운 것은 대부분 인공호수라는 점이다. 그런 호수를 더 빛나게 하는 것이 있는데 ‘궁전’이다. 호숫가를 빼곡하게 채운 하얀 색의 오래된 건물들과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는 궁전은 도시를 한없이 로맨틱하게 만든다. 이토록 아름다운 인도를 본 적이 있던가. 실제로 많은 인도인들이 허니문으로 우다이푸르에 온다는데,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라자스탄이 ‘색깔’로 각인된 것은 이런 풍경 때문이다. 원색의 풍경 속에 사람들의 미소가 있었다


‘시티 팰리스(City Palace)’는 라자스탄에서 가장 큰 궁전군이다. 궁전군이라고 하는 이유는, 우다이푸르를 건설한 우데씽 2세가 처음 지은 뒤 마하라자가 건물을 덧붙여 지금의 거대한 궁전을 만들어 냈기 때문. 궁전의 주요 부분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한 해에 수십만 명이 다녀갈 만큼 우다이푸르의 대표적인 명소로 유명하다. 시티 팰리스에서 우다이푸르를 내려다보면 인공호수인 피촐라호수(Pichola Lake) 한가운데 하얀색 궁전이 떠 있는 것이 보인다. 


우다이푸르 시티 팰리스 내부. 왕비가 기거했던 방은 색감이 더욱 화려하다


시티 팰리스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온통 아이보리 빛이다


‘레이크 팰리스(Lake Palace)’. 1754년 지어져 왕실 궁전으로 사용되다가 1955년,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럭셔리 호텔로 탈바꿈했다. 최상급 룸의 1박 비용이 1,000만원을 훌쩍 넘고 가장 작은 객실도 40만원이 넘는다고. 제임스 본드 영화인 <옥토퍼시>1983년 개봉의 촬영지기도 하다. 워낙 오래된 영화라 상상이 되지도 않고 별 감흥도 없는데도 우다이푸르에서는 아직도 <옥토퍼시> 촬영지로 홍보한다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다이푸르에서 가장 큰 힌두교 사원인 작디시 사원(Jagdish Mandir)과 그 부근은 배낭여행자들에겐 태국의 카오산로드 같은 곳이다. 토실토실하게 살찐 소들이 길을 막고 있으니 난감했다. 조악한 옷과 기념품, 가죽 가방, 수첩, 스카프 등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데 주인장들은 더위에 지쳐서인지 판매의욕이 별로 없어 보였다. 모이기로 한 장소로 가기 위해 구글 맵을 찍고 걸어가는데 물컹. 소똥이다. 미끄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하며 걷는데 커다란 나무 위에 검은 비닐봉지가 수백 개 매달려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봤더니 박쥐떼다. 거꾸로 매달려 날개만 팔랑거렸다. 로맨틱한 호숫가, 괴상한 풍경도 인도답다.  


그날은 정말로 더웠다. 아니, 뜨거웠다. 최고 온도 47도. 호숫가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벌컥벌컥 마셨다.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아무리 마셔도 몸은 끊임없이 수분을 원했다. 일행은 모두 지쳐 누워 버렸다. 카페인으로 에너지를 보충한 나는 해 질 무렵이 되어 다시 호숫가로 나갔다. 힌두교 의식인 듯 총천연색의 사리를 입은 여인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노래를 부르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내 카메라를 발견한 한 소녀가 벌떡 일어나 사진을 찍어 달라며 이런저런 포즈를 취했다. 다섯 컷을 찍을 때까지 소녀는 자리에 앉지 않았다. 미소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라자스탄에서 뭐가 가장 좋았어?”라고 묻는다면,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겠다. 라자스탄 사람들은 전통을 지키지만 외부인을 향한 호기심도 유별났다. 얼굴이 하얀 동양 여자가 신기해 코앞에서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은 예사고 서슴없이 다가와 사진을 찍었다. 애나 어른이나 수행자나 길거리 상인이나 비슷했다. 사람 사이 경계를 지키며 살아왔던 나는 무턱대고 다가오는 사람들 때문에 알 수 없는 혼돈에 빠지기도 했다. 누군가는 인도 여행을 마치고 오면 수첩이 이메일 주소나 연락처로 빼곡해진다고도 했다. 이해가 된다. 라자스탄에서 마주친 눈빛들이 아직도 선하다. 


우다이푸르 전경




travel  info


AIRLINE


라자스탄 지역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델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편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에어인디아가 인천-델리 직항편을 운행하고 캐세이패시픽항공, 중국남방항공, 타이항공이 1회 경유편으로 델리까지 취항한다. 인천-델리 직항편 비행시간은 7시간 30분~8시간 30분 정도 소요. 


통화 


인도 루피Rupee가 통용되며, 다른 통화는 거의 받지 않는다. 미 달러USD는 대형 호텔이나 여행사 정도에서 받는 경우가 있지만 보편적이지 않다. 대형 마트, 호텔, 리조트에서는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 미 달러로 환전을 한 후 인도 시내 환전소에서 환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루피는 한화로 16원 정도다(2018년 7월 기준). 사설 환전소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현장에서 반드시 환전 액수와 함께 지폐의 손상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이번 동행인 중에 지금은 쓸 수 없는 구화폐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전압 


전압은 220V, 주파수는 50Hz로 멀티 플러그 호환 없이 한국에서 쓰던 전자제품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식수 


수돗물을 마시는 것은 금기시될 정도다. 중급 이상의 식당에서는 시판용 생수를 주므로 큰 문제가 없다. 인도에서는 어디서나 가게에서 생수를 쉽게 구할 수 있다.


WEATHER


라자스탄의 겨울철 기온은 8도에서 28도이며, 여름엔 25도에서 46도를 웃돈다. 우기는 7월에서 9월 사이고, 사막 지역은 비가 내리더라도 양은 적지만 남동쪽 지역의 강우량은 연간 650mm 정도다. 라자스탄엔 두 개의 호랑이 보호구역이 있다. 라자스탄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11~2월이다. 4~6월은 극심한 더위 때문에 여행하기 무척 힘들지만 장점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별로 없어 이동이 편하고 물가가 저렴하며 주요 관광지에서 줄 서는 일도 없다. 


RELIGION


인도는 힌두교(약 80%), 이슬람교(약 10%)로 양분되지만 불교, 기독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한다. 종교마다 문화, 전통이 다르므로 사전에 공부를 해 두면 인도여행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힌디어인 ‘나마스떼Namaste’는 이슬람교도에게는 그다지 반가운 인사법이 아니며, 힌두교도에게 쇠고기 스테이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쾌할 수 있다. 


인도에 다양한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것은 인도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이다. 종교적 불화가 심한 지역이 있기는 하나, 인도에서 가장 큰 종교인 힌두교에는 종교적인 관용이 내재돼 있어 인도인 모두가 하나의 단일한 종교적 믿음이나 관습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라자스탄은 인도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주다. 서쪽은 파키스탄과 국경을 접하며, 남서쪽은 구자라트주와 맞닿아 있다. 주도는 자이푸르(Jaipur). 라자스탄은 면적이 넓은 만큼 다양한 기후가 공존한다. 서부에는 타르 사막(Thar Desert)이 넓게 펼쳐져 있어 매우 건조하다. 남서쪽은 좀 더 비옥하며 구릉과 산악지대가 있다.



글·사진 김진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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