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해외여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래비 매거진 Aug 31. 2018

나일강 크루즈 타고 떠나는
고대 이집트 여행

이집트를 거슬러, 나일강 크루즈


피라미드를 지키는 스핑크스와 그 뒤로 보이는 카프레의 피라미드


“카이로에서 남쪽의 아스완으로 이동해 나일강 크루즈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올 예정입니다.  이집트 대부분의 도시는 나일강변을 따라 발달했기 때문에, 유명한 유적들이 많이 모여 있거든요.”

“그럼, 배에서는 며칠 동안 묵게 되나요?”

“총 4박 5일 동안 배에서 묵으며 고대 유적지를 둘러보는 일정이 될 겁니다.”

이번 출장의 담당자와 통화를 나누며 이집트 여행에 대한 기대치는 이미 최고조에 달했다.

가슴속에서 매 순간 꿈꿔 왔던 나의 이집트, 더군다나 나일강 크루즈라니.

“이집트에 올 수 있었던 건 올해 최고의 행운이었어요.”

여행이 끝나갈 무렵 일행에게 몇 번이고 말했듯이, 이집트는 우연히 내게 찾아온 운명 같은 여행지였다.




기자 피라미드로 시작한 고대 이집트 여행


먼저 고대 이집트의 대표 유적인 피라미드를 비롯해 나일강 주변에 남아 있는 신전과 왕의 무덤을 둘러볼 심산이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40여 분, 도시 밖으로 나서니 피라미드가 나타난다. 기자(Giza) 고원의 사막에 있어 흔히 ‘기자 피라미드’라 부른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 거대하게 서 있으리라 생각했던 피라미드는 주거단지를 지나치니 곧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좀 실망스러웠다. ‘그새 여기까지 개발이 된 건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피라미드는 꽤나 멀리 있었다. 단지 크기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도시 뒤에 있는 것처럼 보인 것뿐. 3개의 피라미드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대로 압도당하고 말았다. 상상을 뛰어넘는 피라미드의 크기와 규모에.


피라미드 주변의 낙타 호객꾼. ‘원달러’로 시작하지만, 낙타에 태우고 터번을 두르면서 값이 20~30달러까지 솟아오른다. 흥정의 고수가 되거나 안 타는 것이 상책


연달아 만날 유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알아야만 했다. 고대 이집트의 신들과 스스로 신의 아들이라 칭했던 파라오들, 신화와 고대왕국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아무리 가이드가 설명을 잘 해주어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이집트를 여행하며 만나게 되는 유적 대부분은 BC 3,00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고대 이집트 역사의 시작을 보통 BC 3,000년 전으로 보는데, BC 30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전까지 30개의 왕조가 번성했다. 이중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건 3왕조 때, 대규모 피라미드가 건설된 시기도 바로 3~4왕조 때다. 특히 4왕조의 파라오인 쿠푸(Khufu)왕과 카프라(Khafra), 멘카우라(Menkaura)왕 시대에 지어진 피라미드는 대부분 기자 고원의 사막에 모여 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피라미드 70여 개 중 역사적으로 기자 피라미드를 가장 빼어난 것으로 손꼽는다. 


기자 피라미드 바깥의 상인.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은 먼지 쌓인 기념품을 판다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으로 잘 알려져 있다. 왕이 하늘로 오를 수 있는 계단 역할을 했다는 가설이 있는 반면 왕의 무덤이 아닐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가장 큰 쿠푸 피라미드의 현재 높이는 137m다. 원래는 147m였는데 위의 7단이 무너져 내려 현재의 높이가 되었단다. 가까이서 마주한 피라미드는 커다란 직사각형의 돌을 쌓아 올린 형태로, 돌의 크기가 50cm에서 2m가 넘는 것까지 일정하지 않다. 이런 돌을 무려 230만개 사용해 210단이나 쌓아 올렸으며, 완성하기까지는 20년이 넘게 걸렸다.



매끈할 줄 알았던 피라미드의 표면은 무척 거칠었다. 과거에는 돌을 쌓아 올린 후 외장석을 붙여 매끈하고 번쩍이게 만들었지만 욕심 많은 이들이 값비싼 화강암을 다 떼어 가 버렸단다. 현재는 떼어 내기 힘든 꼭대기 부분에만 조금 남아 있을 뿐, 외장석은 거의 다 벗겨진 상태다. 과거 매끈하고 거대한 자태로 빛났던 피라미드를 상상해 봤다. 마치 사막 속 보석처럼 눈부신 자태를 뽐냈을 테다.  


쿠푸 피라미드에는 두 개의 문이 있는데, 사진 속 문은 이슬람 시대에 알 마문왕이 도굴을 위해 폭파해 뚫은 입구. 현재 이곳을 입구로 사용하고 있다


피라미드를 둘러본 뒤, 쿠푸의 피라미드와 동쪽 마스타바(직사각형 형태의 초기 1, 2왕조 시대의 분묘) 사이에서 발견된 헤테페레스(쿠푸의 어머니) 1세의 무덤으로 향했다. 이곳을 내려가는 길은 뒤로 돌아 내려가는 것이 안전할 만큼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한 발씩 조심히 발걸음을 옮겨 헤테페레스 1세의 무덤에 도착했다. 텅 빈 공간이었다. 가이드가 열심히 여왕의 시신이 어떻게 놓여 있었는지 설명을 덧붙였지만, 석관도, 보석도, 유물도 없이 휑한 공간은 그저 작고 초라해 보일 뿐이었다. 



세 개의 피라미드를 모두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세 개의 피라미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한 번 더 이집트의 우주를 내려다본 후, 일행은 스핑크스가 있는 곳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피라미드를 지키는 역할, 그러니까 지금의 보디가드쯤인 스핑크스는 높이만 20m에 달하는 거구다. 가까이는 들어갈 수 없다. 그저 내 얼굴만 하게 잡히는 스핑크스를 배경 삼아 사진 몇 장 찍을 수 있을 뿐. 현재 유일하게 남은 스핑크스는 코가 잘리고 수염이 사라져 있다. 오랜 세월 든든하게 피라미드를 지켜 오던 이집트의 보디가드마저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 


스핑크스를 마주하고 있는 광장에는 하얀 철제의자들이 빼곡히 놓여 있다. 야간에 펼쳐지는 빛의 쇼를 보기 위한 자리다. 1798년 이집트 원정을 나섰던 나폴레옹은 피라미드를 보고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을 보았다며 평생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220년이 지난 지금, 무수한 여행객들이 피라미드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말할 수 없는 것은 여전하다. 4,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불가사의한 존재니 말이다. 





놀라움의 도시, 카이로 


그랜드 나일타워 호텔에서 내려다본 카이로의 풍경.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모래색 낮은 건물들이 가득하다


이집트 고대왕조의 시간에서 벗어나 카이로(Cairo)로 돌아왔다. 헌데 여전히 믿을 수 없는 광경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신호등과 주행차선을 찾아볼 수 없는 도로를 뒤엉켜 다닌다. 물론 이런 풍경은 하노이에서도, 인도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스케일이 다르달까. 8차선은 됨직한 혼돈의 도로를 건너는 일은 거의 기적과도 같았다. 


고대 이집트의 유물이 가득한 이집트 박물관 


카이로에는 기본 100년은 넘은 모래색 건물들로 가득했다. “건물이나 아파트를 새로 지으려면 사막에 있는 신도시로 나가야 합니다. 정책상 도시 안에는 건물을 지을 수가 없죠. 신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아침마다 도시 안으로 몰려들면서 교통체증이 심해져요. 창문이 없는 건, 비싼 나무 값 때문이에요. 이집트는 사막이 대부분이라 나무를 전량 수입하거든요. 쉽게 말하면 돈이 모자라 짓다 만 건물인 셈이죠.”


이집트 박물관 안에서 상형문자의 뜻을 설명해 주는 에즈딘 가이드


카이로에서 가이드를 맡아 준 에즈딘의 설명이 없었다면, 이 도시를 좀처럼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카이로에는 서울보다 많은 1,700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호텔 로비나 버스 안에서는 사람들이 담배를 태우고 있으며, 이집트 박물관에는 10만점 넘는 유물이 별다른 보호 장치 없이 창고 물품처럼 줄지어 놓여 있다. 


투탕카멘의 장기를 담은 4개의 카노푸스 단지가 들어 있던 컨테이너의 뚜껑 부분


세월을 전시하는 이집트 박물관


카이로에서 단 한 군데만 갈 수 있다면 당연히 이집트 박물관으로 향할 것이다. 이집트 박물관에는 실로 방대한 양의 유물이 보관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투탕카멘의 무덤 관. 파라오의 무덤 중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면서 엄청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것들을 한데 모아 두었다.


황금가면을 쓰고 있던 투탕카멘의 미이라는 4개의 황금관을 차례로 열어야 한다. 미이라로 만들기 위해 빼냈던 투탕카멘의 장기들은 황금 소녀 동상들이 에워싸고 있는 큰 황금관 안에 보관되고 있다. 무덤 안에서 발견된 황금침대와 의자, 항아리, 각종 장식과 보물까지 전부 만나 볼 수 있다. 2층에는 투탕카멘의 묘관과 함께 역대 파라오의 미이라를 한곳에 놓아둔 전시관이 자리한다.


입장료를 따로 내고 들어가야 하는 미이라 전시실에는 람세스 2세와 그의 아버지 세티 1세, 핫셉수트 여왕의 미이라 등 총 12구가 전시되어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손발톱과 치아는 물론, 머리카락 한 올마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미이라도 있다. 4,000년의 세월을 견뎌 냈다는 점에 벌어지는 입을 차마 막을 수 없었다.



이집트 박물관을 둘러보고 카이로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 ‘칸 엘 칼릴리 시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시장 안에 자리한 180년 된 카페에서 시샤(물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마셨다. 외국인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던 카페에는 현지인 가족들이, 커플들이, 친구들이 모여 앉아 밤을 즐기고 있었다. 낯선 동양인 무리를 신기하게 쳐다보던 그들에게 먼저 미소를 건네 봤다. 그들은 더 큰 미소로 화답하며 한 번 펴 보겠냐며 불쑥 시샤를 내밀었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그들과 사진으로 추억을 나눴다.



카이로 사람들은 정말 친절했다. 한 가지 힘든 점이라면, 카페에 앉아 있는 내내 끊임없이 물건을 팔기 위해 모여드는 잡상인들. 온갖 액세서리를 팔고, 파피루스를 팔고, 헤나를 내밀고, 돈을 달라며 구걸을 한다. 그들은 절대 물러나는 법이 없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동행한 관광경찰의 입김이 강력했다는 것. 그가 “쓰읍” 하고 혀를 차는 순간 잡상인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단체가 아닌 개별 여행이었다면, 꽤나 시달렸을 테다. 


칸 엔 칼릴리 시장 안에 있는 180년 된 카페




아길리카섬으로 가는 배를 타러 가는 길. 선착장까지 기념품을 파는 노점이 늘어서 있다


아스완에서 룩소르까지, 나일강 크루즈


카이로에서 비행기를 타고 늦은 오후 아스완(Aswan)에 도착했다. 아스완은 나일강 크루즈가 시작하는 출발지다. 이집트 남부의 아스완에서 콤옴보, 에드푸를 거쳐 룩소르까지 올라갈 계획이었다. 일정에 따라서는 룩소르에서 남부로 가는 크루즈를 선택할 수도 있다. 



“웰컴 홈!” 체크인을 하기 위해 배에 올라타니 지배인이 인사를 건넸다. 뫼벤픽 크루즈는 앞으로 4박 5일 동안 우리들의 집이 될 터였다. 우리가 탑승한 배는 리버 크루즈이기 때문에 모든 시설을 콤팩트하게 갖추고 있다. 그렇다고 지중해나 카리브해를 떠다니는 대형 오션 크루즈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1층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 2층과 3층은 객실, 갑판 위에는 작은 수영장과 선 베드, 푹신한 소파 등이 마련되어 있는 야외 자리가 있다. 객실은 수퍼 킹 사이즈의 침대와 2인용 탁자, 그리고 빈티지한 욕실로 알차게 채워져 있었다.



아스완에 정박해 있는 배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다음날 아침 일정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향한 곳은 ‘필레 신전’. 필레섬에 있던 신전으로, 아스완 하이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될 위기에 놓였던 것을 다행스럽게도 1972년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아길리카섬으로 옮긴 것이다. 신전을 이전할 때 4만 개의 조각으로 잘라 돌 하나하나에 번호를 붙여가며 다시 복원했다고 하니, 엄청나게 대대적인 작업이었을 것이다. 필레 신전은 고대 이집트의 주요 신 중 하나인 ‘이시스(Isis)’를 모신 곳이다. 이집트인이 세운 마지막 왕조인 30왕조 때 건축을 시작해 이후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 BC 332~30에 완성되었다. 


필레 신전의 제2탑문. 10개의 기둥이 있는 작은 공간으로 탑문 벽 오른쪽에 이 신전의 주인인 이시스와 호루스가 새겨져 있다


그리스인에 의해 시작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고대 이집트 왕조와 종교, 문화를 그대로 계승해 전성기를 누렸다. 많은 신전들이 바로 이 시기에 지어졌으며, 수천년 동안 사용해 온 이집트의 신성문자와 종교의식 역시 꾸준히 행해졌다. 기원전 30년, 클레오파트라 7세가 자살하고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로마의 속국이 되면서 신전들은 폐쇄되었다. 로마는 기독교 외의 모든 신과 종교를 이단으로 단정했기 때문이다. AD 550년에 지어진 필레 신전을 마지막으로 고대 이집트의 신전들은 모두 폐쇄되었으며, 진정한 의미의 이집트 문명도 끝을 맺게 된 셈이다. 


제2탑문 안의 마당 오른쪽에는 머리 부분의 연꽃 위에 하토르 여신의 얼굴이 조각된 원기둥들이 있다



이집트 나일강 크루즈 Egypt Nile River Cruise


이집트 룩소르나 아스완을 기점으로 중간 기착지인 콤옴보, 에드푸, 에스나 같은 도시를 들러 주요 유적지를 둘러보는 크루즈 상품이다. 3박 4일 혹은 4박 5일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 크루즈는 매일 출항하지만 요일에 따라 배의 종류와 등급이 다양하다. 크루즈 자체의 등급과 시기에 따라서도 요금이 달라진다. 나일강 리버 크루즈는 2성급에서 6성급까지 있는데 여행객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등급은 5성급이다. 이번에 이용한 뫼벤픽 로열 로투스는 5성급 크루즈로, 60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크루즈 상품에는 공항 픽업 서비스, 기착지 투어, 펠루카 체험, 마차투어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모든 식사는 배 안의 레스토랑에서 제공한다. 전 식사가 뷔페로 나오는 것은 아니며, 식사마다 잘 선정된 코스요리를 즐길 수 있다. 음식은 중동과 서양요리가 주로 나오는데 동양인에게도 잘 맞는다. 

홈페이지: www.movenpick.com/en/africa/egypt/cruise/cruise-royal-lotus 


 

햇빛도 아플 수가 있더라


아이러니하게도 이집트의 마지막 신전을 이집트에서 첫 번째로 만났다. 덕분에 필레 신전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양쪽으로 늘어선 열주 기둥과 광장 뒤로 보이는 거대한 제1탑문에는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적을 물리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문의 오른편에는 신전의 주신인 이시스와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 호루스의 부인인 하토르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 두 번째 탑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바닥은 점점 높아지고 천장은 점점 낮아진다. 어둡고 깊은 공간, 지성소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이곳에는 이시스의 신성한 범선이 놓여 있던 화강암 받침대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이른 시간 신전을 방문하고 낮에는 선탠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크루즈의 승객들


필레 신전을 전부 돌아보고 시계를 보니 아침 10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헌데 태양의 열기는 한낮의 온도를 훨씬 넘어 가고 있었다. 아스완이 있는 이집트 남부의 날씨는 5월만 해도 46도까지 치솟기 때문에 늦어도 오전 11시 정도에는 크루즈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곤 늦은 오후 다시 투어를 시작한다. 고작 오전 일찍 필레 신전만 둘러보고 왔는데 더위를 한 움큼 먹어 버렸다. 하지만 그건 더위도 아니었다는 걸 다음날 에드푸 신전에서 느꼈다. 일정상 한낮에 에드푸 신전을 방문했는데, 이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픈’ 더위를 느꼈다. 강렬한 태양 빛이 화살이 되어 드러난 내 모든 부위를 찔러대는 느낌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대표 신전을 가다 


늦은 밤 아스완을 출발한 크루즈는 새로운 여행지를 향해 힘차게 항해했다. 이른 아침, 창문을 열자 처음 보는 도시 위로 동이 트고 있었다. 크루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멋진 순간이었다. 곧장 ‘콤옴보 신전’으로 향했다. 이곳은 악어머리 형상을 하고 있는 ‘소베크 신’과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 신’을 모시는 신전이다. 두 개의 신전을 결합해 하나의 신전으로 만들었는데, 보통 이집트 신전이 동서축으로 건설된 것과 달리 콤옴보 신전은 남북을 축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이다. 콤옴보에는 악어로 가득한 섬이 있다고 한다. 과거 이집트 사람들은 두려운 악어의 존재를 신으로 숭배함으로써,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신전 곳곳에는 파라오가 소베크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부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신전 근처에는 악어를 미이라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는 악어 박물관도 위치해 있다. 



콤옴보를 돌아본 뒤, 크루즈를 타고 에드푸로 향했다. 나일강을 따라 철렁이는 배의 움직임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 놓치기 싫었다. 결국 그 뜨거운 햇빛 아래 누워 선탠을 즐겼다. 오랜만에 가져 보는 여유로운 시간이 그저 평화로울 따름이었다. 4시간쯤 지났을까, 에드푸에 도착했다. 크루즈에서 여유로이 점심 식사를 즐긴 뒤 ‘에드푸 신전’으로 향했다. 가는 길은 마차를 이용했는데, 선탠 후 입은 반바지가 화근이었다. 오후 1시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드러난 다리 위로 사정없이 꽂혔고, 선탠으로 이미 익은 다리는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집트의 태양은 필히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콤옴보, 에스나 신전과 함께 에드푸 신전은 프톨레미 왕조의 대표 신전으로 꼽히는데, 혼이 나갈 것만 같던 더위 때문에 신전을 자세히 둘러볼 정신이 없었다. 호루스에게 봉헌된 에드푸 신전 역시 필레 신전처럼 거대한 탑문이 있으며, 프톨레미 12세가 파라오 앞에서 적의 머리를 잡고 내리치려는 모습도 똑같이 새겨져 있다. 모래사막에 묻혀 있던 에드푸 신전은 1860년이 되어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기원전 237년에 짓기 시작해 100년 동안 만들어진 신전, 살인적인 날씨만 아니었다면, 좀 더 집중해서 볼 수 있었을 텐데. 크루즈로 돌아온 나는 거의 혼절 직전이었다. 





죽은 왕들이 사는 룩소르의 서안 



룩소르는 고대 이집트 신 왕국 시대의 수도로, 가장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한 도시다. 이틀 동안 이곳에 정박하며 유명한 왕가의 무덤과 신전들을 둘러볼 차례다. 룩소르는 나일강을 기점으로 동안과 서안으로 나뉜다. 동안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서안은 죽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왕의 무덤과 제사 의식을 치르는 장제전, 일반 사람들의 무덤은 모두 서안에 있다. 반면 동안은 룩소르, 카르나크 같은 신전이 많이 남아 있고, 신전과 궁전으로 이어지는 탑문이 100개나 존재한다. 


현대 건축물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하트셉수트의 장제전. 절벽 아래 세 개의 단으로 지어졌다


정박한 배에서 바라보는 동서의 풍경에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서안은 강변을 따라 드문드문 집들이 위치해 있어 밤에는 더욱 적막하게 느껴진다. 따스함이 느껴지는 불빛은 하나도 없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동안에는 노란 불빛이 가득하고 모스크와 첨탑 등이 가득하다. 


해가 뜨기가 무섭게 서안으로 향했다. 신 왕국 시대의 대표 여성 파라오였던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을 보기 위해서다. 이곳은 기원전 15세기에 하트셉수트 여왕을 위해 지은 것으로, 석회암 절벽 아래 3개의 단으로 지어졌다. 



다른 유적과 달리 장제전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모던하고 절제된 건축양식 때문이다. 도저히 2,500년 전에 지어진 건축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계단을 오르면 하트셉수트의 거상이 늘어서 있는데, 여성 파라오라고 느껴지는 부분은 전혀 없다. 하트셉수트는 건장한 체격과 턱에 단 가짜 수염까지, 늘 남성 파라오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하트셉수트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18세기 신성문자를 해독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장제전과 함께 서안에서 꼭 들러볼 유적지는 ‘왕가의 계곡’이다. 신 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은 과거의 왕들처럼 더 이상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고 룩소르 서안에 왕실의 공동묘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곳이 바로 왕가의 계곡이다. 이집트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투트모세 3세와 세티 1세, 투탕카멘을 비롯한 여러 왕들의 무덤이 모여 있다.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무덤은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된 투탕카멘의 묘다. 황금 마스크와 황금관, 황금으로 그려진 벽화까지 그대로 남아 있던 투탕카멘의 무덤은 현재 관람이 가능하다.  


서안을 빠져나오면서 본 멤논의 거상. 신전은 사라지고 아멘호텝 3세의 석상 두 개만 남아 있다
기다란 주사기 형태로 만들어진 람세스 9세의 무덤 맨 안쪽에는 관을 놓았던 자리와 벽화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영원히 살아 있는 신들의 동네, 룩소르 동안 


4박 5일간의 마지막 일정은 룩소르 동안에 위치한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대미를 장식하는 장소로 두 신전은 충분히 화려하고 특별했다.


카르나크 신전은 이전에 찾았던 에드푸 신전이나 필레 신전의 탑문과 유사하다. 시기적으로는 카르나크 신전이 가장 먼저 지어졌다. 규모 역시 현존하는 신전 가운데 가장 크다. 중 왕국 때부터 지어지기 시작해, 신 왕국,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까지 무려 1,000년에 걸쳐 증축되었다. 신 왕국 시대에 지어진 신전들은 대부분 한 명의 파라오가 완성한 것이 아니라 후대 파라오들이 계속 건축을 이어 나간 ‘파라오들의 공동작품’이다.    


이집트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왕인 람세스 2세. 룩소르 신전 입구에는 원래 람세스 2세의 좌상 2개와 거상 4개가 세워져 있었다. 현재 복원을 거쳐 5개가 완성되어 있다


카르나크 신전에서 모시는 3신은 룩소르 지방의 수호신인 ‘아몬’과 아몬신의 부인인 ‘무트’, 그리고 전사의 신, ‘몬투’다. 머리는 아몬신을 상징하는 숫양으로, 몸은 사자로 이루어진 스핑크스가 도열한 길을 지나면 첫 번째 탑문이 등장한다. 두 번째 탑문 앞에 마주보고 서 있는 람세스 2세의 거상도 유명한데, 한쪽 석상 발쪽에는 람세스 2세의 왕비 ‘네페르티티’의 조각상도 함께 자리한다. 네페르티티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왕비로 알려져 있다. 어느 기념품 숍을 가도 그녀의 얼굴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람세스 2세 때 완성된 제2탑문을 지나면 대열주실(大列柱室)이 펼쳐진다. 12개의 거대한 원기둥을 포함, 총 134개의 큰 기둥이 숲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카르나크 신전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을 잇는 길에 도열해 있는 스핑크스들. 사람 얼굴에 사자 몸을 한 스핑크스도 현재 복원 중에 있다


룩소르에는 나일강을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신전이 있다. 바로 룩소르 신전이다. 이미 많은 신전들을 보고 온 터라 덤덤할 법도 한데, 룩소르 신전은 또 새로웠다. 특히 신전 입구에 세워진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들과 오벨리스크는 자석처럼 여행자들을 끌어당겼다. 입구에는 본래 람세스 2세의 좌상 2개와 입상 4개가 좌우로 3개씩 서 있었지만 모두 훼손되고 3개만 남았었다.


현재는 복원작업을 통해 총 5개의 석상이 채워졌다. 오벨리스크 탑도 원래는 2개였지만 현재 하나만 남아 있다. 나머지 하나는 이집트 총독이었던 무하마드 알리가 1836년에 프랑스에 기증해 현재 파리 콩코드 광장에 세워져 있다. 반 토막 난 입구임에도 강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모든 석상들이 채워지고 나면 그 위용이 어떨지, 상상만으로도 흥분됐다.    


카르나크 신전의 제3탑문과 4탑문 사이에 있는 오벨리스크. 원래는 투트모스 1세, 2세,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가 있었으나 지금은 두 개가 남아 있다


룩소르 신전에서는 매년 나일강이 범람하는 시기에 맞춰 카르나크 신전의 신들을 배에 태워 신전을 옮기는 의식을 치렀다. 그 의식을 ‘오페트 축제’라고 하는데, 룩소르 신전은 축제를 치르기 위해 지어진 카르나크 신전의 부속 신전이었다. 부속 신전이라고는 해도, 규모가 상당하고, 오페트 축제에 대한 부조도 열주마다 새겨져 있어 볼거리가 가득하다. 본래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은 성스러운 길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길에는 인간의 얼굴에 사자 몸을 한 2,000개의 스핑크스가 세워져 있었단다. 현재 단 하나만 남아 있는 스핑크스를 기준으로 복원하는 작업이 한창이라 꽤 많은 스핑크스가 이미 들어서고 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신전 투어를 마치고, 배로 돌아와 한가롭게 반나절을 보냈다, 때론 저녁 먹을 때까지 아무 일정도 없이 보내는, 이런 한가한 날을 언제 또 누려 볼 수 있을까? 이번 나일 크루즈는 출장이 아니라 개인 여행처럼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배를 나설 때 새로운 승객들이 크루즈에 오르고 있었다. 지배인은 그들을 반긴다. “웰컴 홈!” 룩소르에서 다시 아스완으로 나일강을 따라 내려갈 그들을 보고 있으니, 첫날이 문뜩 스쳐갔다. 모래색 빛 추억이, 바람을 타고 천천히 흩어진다. 





travel  info


AIRLINE


이집트 카이로까지 가는 직항은 없다. 터키항공, 에티하드항공, 에미레이트항공 등 중동국가 항공을 이용해 카이로까지 가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에티하드항공은 이집트항공과 코드셰어를 한다.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는 이집트항공을 이용해 갈 수 있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 30분 정도. 




HOTEL


그랜드 나일 타워 호텔 Grand Nile Tower Hotel 

카이로 도심 중부의 나일강에 위치한 로다섬은 여의도처럼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섬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그랜드 나일 타워 호텔이 자리한다. 이집트 고유 브랜드 호텔이었으나,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인이 사들이면서 호텔 내 술 판매를 금지시켰다. 사방으로 장식된 대리석과 거대한 기둥, 이집트를 상징하는 조각과 소품들이 즐비해 이집트의 매력을 미리 느낄 수 있다.  지하 1층의 레스토랑 섹션에서는 일식, 인도식, 이탈리안, 시푸드 요리를 선보인다. 그릴 양고기 스테이크를 꼭 먹어 볼 것. 


주소: Corniche El Nil. Garden City, Cairo

홈페이지: grandniletower.com 




WHAT TO DO


카이로의 나일 맥심 크루즈 Nile Maxim Cruise 

북아프리카의 11개 도시를 거쳐 흐르고 있는 나일강. 카이로는 나일강이 흐르는 마지막 도시로, 카이로 안에서도 몇 시간 동안 나일 크루즈를 즐길 수 있다. 나일 맥심 크루즈는 이집트 현지 관광청이 추천한 카이로 최고의 나일 크루즈로, 2시간 동안 진행된다. 배에 오르면, 음식을 먹으며 벨리댄스와 이집트 춤인 타노우라(Tanoura) 쇼를 볼 수 있다. 


홈페이지: www.maximrestaurants.com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속으로 그리던 인도의 모습, 라자스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