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도시에는 저마다의 이명이 있기 마련이다.
대전의 또 다른 이름은 ‘과학의 도시’다.
대전에서만 줄곧 이십여 년 살아온 토박이이건만 어떤 연유로 과학의 도시라 불리는 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다.
숲에서 나와야만 숲이 보인다고 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여행에서 이방인의 마음가짐으로 내 고향 대전, 과학의 도시 대전을 자맥질하기 시작했다.
대전엔 성심당만 있다고요?
서울과 부산의 중간 언저리에는 놓여있는 대전은 교통의 도시로도 불린다. 두 대도시뿐만 아니라 영호남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 긴 여정에 말이든 사람이든 지치기 십상이니 예부터 대전을 비롯한 충청도 지역에는 나그네들이 오가며 휴식처로 삼을만한 마을들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그 절묘한 위치 덕분에 열차가 도입된 이후에는 대전에 기찻길이 깔리며 철마가 달리기 시작했다. 경부선뿐만 아니라 호남선까지 대전을 관통하게 되니 대전에 온 적 없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대전을 스쳐간 사람은 없을 수 없을 터이다.
대한민국 어느 곳보다 뛰어난 접근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시민들은 대전을 관광에 적합한 도시로 여기지 않는다. 실제로 인터넷상에서는 모든 코스가 ‘성심당에 들러 집에 보낸다’로 귀결되는 빈약한 ‘대전 여행 알고리즘’으로 관광도시와는 먼 현실을 풍자할 정도다. 아마 충청도 특유의 겸손과 완곡함이 작용한 데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르지만, 관성적으로 대전을 돌아다니는 것을 동네 마실로만 여기며 여행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곳이든 등잔 밑이 어두운 법. ‘우리 동네’라는 편견을 떨쳐버리고 여행자의 심정으로 임하고 나면 과학이라는 테마 하나만으로도 대전의 볼거리는 무궁무진했다.
과학도 백문이 불여일견
대전아쿠아리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건 과학에도 유효하다. 마침 과학과 관련된 대전의 명소 중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곳이 있었으니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전 보문산에 위치한 대전아쿠아리움은 2011년 ‘대전 아쿠아월드’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다.
건물 자체가 전쟁에 대비해 지어진 지하방공호인 천연동굴로, 개장 직후 여러 가지 악재에 부딪히며 부득이하게 휴업하기도 했다. 이후 초기의 문제점을 점검한 후에 대전아쿠아리움으로 2012년 9월 재개장하며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담수어 아쿠아리움으로 자리 잡았다.
대규모 아쿠아리움을 표방한 만큼 세계 각국의 생태계를 재현한 다양한 관들이 갖춰져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토종 담수어가 있는 한국관, 콩코강·차드호수 등에 서식하는 신비한 어류를 관찰하는 아프리카관,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릴 정도로 지구에서 오랜 기간 생존해 온 물고기를 만날 수 있는 고대어관 등 12개 종류의 아쿠아리움으로 구성됐다.
특히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동물을 관찰하며 경각심을 심어주는 타임캡슐관, 2,500여 마리의 어류들이 함께 공존하는 메인관은 산만하던 아이들도 걸음을 멈춰서 고개를 들게 만드는 이곳의 하이라이트다. 마침 선생님의 인도에 따라 아쿠아리움을 찾은 유치원 병아리들은 물고기의 움직임을 따라 고개를 이리저리 옮기곤 했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선도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쫓았다.
대전 아쿠아리움에서는 단순히 보는 것만이 아니라 다채로운 체험도 가능했다. 살아있는 물고기나 샌드피쉬를 직접 만져볼 수 있는 터치풀, 비단잉어에게 먹이를 주는 것도 가능하다. 이중에서 우리가 선택한 건 닥터피쉬 체험이었다. 피부의 각질을 떼어먹는다는 닥터피쉬는 수조에 발을 넣자마자 오래 굶주린 피라니아떼처럼 다리로 몰려들었다. 발가락 끝부터 무릎까지 사정없이 달려드는 통에 다소 민망한 상황이 연출됐다.
닥터피쉬 선생으로부터 10분여간 무자비한 각질제거 처치를 받은 후 3층에 위치한 체험동물원으로 향했다. 멀리서부터 인사를 건네는 앵무새부터 태국 정통 조련사들과 호흡을 맞추는 악어, 사자와 호랑이를 비롯한 맹수까지, 여느 테마파크 못지않은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만날 수 있다.
어린아이를 대동한 부모님들을 곧잘 볼 수 있었는데, 어쩐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신이 나 보이기도 했다. 흑표범에게 닭고기를 몇 점 건네주고 있을 때였다. 호랑이가 한바탕 사자후를 터뜨리자 유모차에서 호랑이를 바라보고 있던 한 아기는 ‘어흥’ 소리에 목 놓아 울었다. 아기 옆에 있던 엄마도 덩달아 소스라치게 놀라며 당황한 듯 눈물을 터뜨렸다. 호랑이는 자신이 맹수라는 걸 상기시켰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한바탕 소통 탓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부리나케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대전아쿠아리움
대전광역시 중구 보문산공원로 469
‘문송’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국립중앙과학관
사실 이번 대전에서의 여정은 일종의 과거여행이었다. 학창시절 질릴 정도로 찾았던 국립중앙과학관에 닿은 건 근 10년만이었으니, 강산은 물론 과학관의 풍경도 이전과 확연하게 달랐다. 오래 전 기억을 더듬거리며 과학관으로 들어섰다. 대전 과학의 상징인 꿈돌이를 지나 구석구석을 돌아보자 눈빛을 반짝거리며 주변을 탐방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국립중앙과학관은 1990년 대덕구로 이전해 개관한 이후 창의나래관, 꿈아띠체험관, 생물체험관 등 다양한 청소년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과학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단번에 눈을 사로잡은 건 공터에 우뚝 솟은 나로호였다. 한국의 첫 우주발사체인 나로호를 기념해 실물 크기로 전시한 모형이었다. 한 영화평론가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두고 ‘유년기에 이 영화를 보았다면 과학자를 꿈꿨을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어린 시절 각인된 단 하나의 기억은 꿈을 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수학여행으로 국립중앙과학관을 찾았을 때, 당시 이 과학관을 주의 깊게 봤다면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때늦은 후회를 되뇌며 국립중앙과학관 일대를 거닐었다.
국립중앙과학관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덕대로 481 국립중앙과학관
라라랜드 부럽지 않은 데이트 코스
대전시민천문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대전시민천문대였다. 지자체에서 보유한 첫 번째 천문과학관으로 2001년 개관한 이곳은 관측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별음악회, 시낭송회 등 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영화 <라라랜드> 속 그린피스 천문대처럼 거대한 규모의 천문대는 아니지만, 대전 시민들을 비롯해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명소다. 실제로 인근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늦은 저녁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로맨틱한 데이트 장소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3층 규모의 천문대는 전시실과 주관측실, 보조관측실, 천체투영실로 구성돼 있으며 관측실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개방한다. 때를 기다려 주관측실에 오르니 거대한 굴절망원경이 하늘을 향해 있었다. 닫혀있던 원형돔이 열리고 나면 사다리에 올라 홍염을 관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바로 옆에서 관측을 도와주는 분의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지지만, 역시나 ‘문송’한 탓인지 단번에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만 필터를 통해서라도 태양의 일부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에서 일어나는 묘한 쾌감만큼은 분명했다.
주관측실을 지나 몇 대의 망원경이 설치된 보조관측실, 천체투영기를 통하여 돔스크린에 밤하늘에 박혀있는 별을 투영해 볼 수 있는 천체투영실까지 돌아봤다. 소박하지만 옹골찬 대전시민천문대는 꼭 대전을 닮아있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대전을 이번 여행을 통해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대전에는 비단 성심당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구수한 사투리가 자라나는 대전의 이면에는 과학이 있다는 사실에 일종의 자부심까지 솟아나기도 했으니, 여느 여행지보다 실속 있는 여정임은 분명했다.
대전시민천문대
대전광역시 유성구 과학로 213-48 대전시민천문대
기자가 체험한 우수여행상품
렛츠커뮤니케이션즈 [과학과 미래의 도시 대전&군산]
글·사진=전용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