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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Oct 29. 2018

로맨스를 글로 배운
싱글 기자의 파타야 혼행기

파타야에 발을 내딛고 나서야 듣게 된 비보였다.
이번 여정이 철저히 ‘커플여행객’을 위한 ‘로맨틱(Romantic)’하고 ‘럭셔리(Luxury)’한 콘셉트의 여행이라는 건. 로맨스와 럭셔리라니...
양심에 아무리 털을 붙이더라도 일생에 단 한 번도 누려 본 적 없는 단어들이었으니, 의문과 불만이 담긴 주름을 미간 가운데 새긴 채 일정을 시작하는 수밖에.


은은한 박하향이 풍겨 왔던 바다


방콕에서 남동쪽으로 약 147km, 비교적 가까운 거리 덕분에 파타야는 방콕과 연계한 패키지 상품으로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굳이 방콕을 거칠 필요는 없다.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에서 파타야까지는 120km 정도 떨어져 있어 2시간 내에 닿을 수 있으니까. 파타야와 가까워질수록 청명한 하늘이 다가왔다. 미세먼지도, 구름 한 점조차도 없이 펼쳐진 파타야의 하늘을 멍하니 감상하고 있으니 널찍한 호수를 머리 위에 얹어 놓은 듯했다.

하지만 파타야의 얼굴은 역시나 바다였다. 번화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해안 소도시만의 나긋하고 안락한 풍경이 펼쳐졌다. 화장기 없이 청초한 분위기를 풍기던 파타야 좀티엔 비치(Jomtien Beach)의 저편에서는 바람을 타고 박하내음이 은은하게 풍겨 왔다. 그 위로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파도소리까지 더해지니 도무지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두 개의 ‘ㄹ’로 인한 걱정과 고심으로 뾰로통해진 얼굴도 무장해제가 되는 건 당연지사. 이제 몸과 마음을 내던지고서 로맨틱하고 럭셔리한 파타야 여행에 뛰어드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로맨스를 노래로 배웠습니다만


로맨스라는 건 도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디서 정식으로 배워 본 적 없으니, 그간 읽었던 연애소설과 한없이 들어 온 사랑노래를 기반으로 합리적 추론을 해 내는 수밖에. 애창곡의 가사에 의하면 로맨스에는 알코올이 빠질 수 없다고 했다. 그 알코올이 와인이라면 더욱이 좋을 거란 건 언뜻 떠올려도 자명했다.



그 태생마저도 로맨틱한 실버레이크 와이너리(Silver Lake Winery)는 이번 여정에 제격이었다. 태국의 유명 배우인 쑤판사 느엉피롬(Supansa Nuerngpirom)과 그의 남편이 조성한 와이너리는 그들이 동경했던 유럽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모양새였다. 


거대한 와인병이 실버레이크 와이너리의 표지판 역할을 한다


대문자 S가 라벨에 새겨진 거대한 와인병은 이 일대가 실버레이크의 와인이 태어나는 곳임을 멀찍이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표지판의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토스카나(Toscana) 양식으로 세워진 건물을 지나 온몸으로 이곳이 포도농장임을 알리는 커다란 포도모형 앞에 다다르자 와이너리 곳곳을 쏘다니는 트램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양한 조형물과 장식이 있는 포토존


한껏 기대감을 품고 승차한 트램은 원색을 뽐내는 꽃밭 사이로 나아갔다. 형형색색의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고개를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까 내적 갈등을 벌이려는 찰나, 트램은 그 마음을 진작 알고 있다는 듯 바람이 땀을 식힐 정도의 적당한 속도를 유지하며 움직였다. 게다가 포토존을 찾아 정차하는 기사님의 센스 또한 일품이었다. 꽃밭 위에 세워진 풍차와 거대한 해바라기 모형에서는 유럽여행지의 향이 물씬 풍겨 왔다.


실버레이크 와이너리의 양조장과 레스토랑, 바가 있는 유럽풍의 건물


비닐하우스 뒤편은 동화 속 같았다. 머리 위에 안테나를 달고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를 돌림노래로 부르는 덩어리 인형들이 뒤뚱거리며 걸어올 것만 같은 풍경임에도 딱 하나 아쉬움이 남았다. 실버레이크라는 이름에 짐짓 은빛이 일렁이는 호수를 기대했건만, 이곳의 호수는 무심하게도 짙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코올을 들이키고 나면 저 호수가 은빛으로 보일까, 다소 비겁한 변명을 계단삼아 와인을 맛보기 위해 양조장 건물 안으로 올라섰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되고 있는 포도. 만지면 적지 않은 벌금이 부과


실버레이크 와이너리 Silver Lake Winery
오픈: 월~일요일 09:00~19:30
주소: 32/62 Moo 7, Na Jomtien, Pattaya, Chonburi 20250, Thailand
전화: +66 2261 6565
홈페이지: silverlakethai.com


패키지A_포도농장 및 정원투어
요금: 어른 180바트, 어린이(12세 이하) 140바트(포도주스 1병 포함)

패키지B_포도농장, 정원 및 양조장 투어
요금: 어른 250바트(포도주 2잔 포함)




로맨스는 모르지만 와인맛은 알겠네


실버레이크 와이너리의 대표상품인 실버레이크 ‘S시리즈’는 바다 건너 호주에서 공수해 와 개량을 거친 포도종자로 만들어진다. 포도에게 낯선 이국땅일 파타야 토양에서 뿌리를 내린 채 몇 개월의 시간과 햇빛을 양분 삼아 송이를 맺는다. 수확한 포도는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제조공법을 통해 와인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포도나무의 일대기를 들은 후 본격적인 와인 충전에 나섰다.


실버레이크 와이너리의 대표 상품인 ‘S시리즈’


실버레이크 와이너리의 와인도 최소 1년 이상의 숙성기간을 거친다


2층에 위치한 와인바에 다다르자 정중하게 인사를 건넨 소믈리에는 각 와인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곁들인 후 테이스팅 잔을 건넸다. 레드와 화이트, 처음 경험하는 로제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와인을 잔이나 병으로 판매하기도 하지만, 미니버스와 테이스팅이 묶인 패키지를 이용하면 와인 시음도 가능하다. 마침 술을 못하는 동행자 덕분에 입을 하나 덜고 내 몫의 잔을 하나 얻어 내는 행운까지 겹쳤다. 


호수를 배경으로 꽃장식된 자전거와 벤치


포도가 와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되새기며 눈을 질끈, 마음을 가다듬고 한 모금 머금었다. 와인의 풍미는 잘 알지 못하지만 혀끝에 각인된 ‘맛있다’는 감각만큼은 분명했다. 이국을 떠도는 방랑자 같은 포도나무의 사연은 망각한 채, 눈앞에 놓인 와인을 입 안으로 아낌없이 들이켰다. 




태국에 대한 거의 모든 것


동남아 최대 규모인 농눅빌리지(Nong Nooch Tropical Garden)는 그 크기가 축구장 250개와 맞먹는다. 미니버스를 타고 하염없이 달리더라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진녹색 풍경이 펼쳐졌다. 놀라운 건 비현실적인 규모만이 아니다. 1954년 당시 농눅 탄사차(Nong Nooch Tansacha)가 74만 평방미터 규모의 땅에 과수원을 조성한 게 농눅빌리지 가든의 시작이었다.



각종 열대과일을 키우던 농눅 부부는 해외여행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정원들을 파타야에 하나둘씩 옮겨 놓게 되는데,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본딴 프랑스 정원, 각종 폭포와 분수가 자리한 이탈리아 정원, 스톤헨지를 모티브로 만든 영국의 돌정원 등이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했다.


다양한 동물 조각상을 볼 수 있는 농눅빌리지


세계 각국의 정원을 지나고 나니 곤충과 미어캣, 백호, 매머드 등 각종 동물들의 조각상을 순서대로 만날 수 있었다. 그 뒤로 하늘 높이 목을 쳐들고 있는 공룡 조각상은 카메라 앵글에 미처 다 담지 못할 만큼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농눅빌리지 한편에 자리한 동물원에서 실제 동물들을 보거나 코끼리쇼 등을 감상할 수도 있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태국의 거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는 농눅빌리지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여행객들과 함께 쿠킹 클래스를 진행했다


농눅빌리지의 조경은 더없이 만족스러웠지만 정작 고대했던 순서는 따로 있었다. 일전에 경험한 여행에서 매번 체중을 불리는 기적 같은 경험으로 태국의 미식을 몸소 체감한 바 있었으니 음식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더군다나 이번에는 먹는 것에 더해 태국음식을 직접 만들어 보는 쿠킹 클래스다. 


쿠킹 클래스에서 만든 팟타이


첫 번째로 주어진 과제는 태국의 대표음식인 팟타이 만들기였다. 결론만 말하자면 절반은 성공. 모양은 형편없었지만 맛만큼은 진짜배기 팟타이였다. 맛있는 것을 나누는 건 만인의 태생적 덕목인 걸까. 쿠킹 클래스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이 서로의 팟타이를 권하며 훈훈한 인류애를 과시했다. 


와인과 예술, 자연과 미식까지, 파타야의 여정은 그 자체로 충분히 로맨틱하고 럭셔리했지만 정작 마음을 사로잡은 건 도시 전반에 흐르는 안온한 분위기였다. 코끝으로 박하향을 가져오던 파도, 늘 웃음기를 머금은 사람들의 온기를 홀로 누리기에는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옆자리는 허했지만 마음만큼은 풍요로웠던 이번 여정을 양분 삼아 누군가와 함께 파타야의 공기를 쫓아 다시 찾아오기를, 몇 번이고 다짐했다.

농눅빌리지 가든
오픈: 월~일요일 08:00~17:30
주소: 34/1 Na Chom Thian, Amphoe Sattahip, Chang Wat Chon Buri 20250, Thailand
전화: +66 38 238 061
요금: 성인 500바트, 어린이 300바트



글·사진 전용언 기자
취재협조 태국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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