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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By 트래비 매거진 . Apr 17. 2017

초밥 덕후들의 천국
시모노세키, 가라토 시장

“껴입고 왔던 코트도, 칭칭 감고 왔던 목도리도 무용지물이 됐다.
얼굴에 살살 스치는 바람과 새빨갛게 물든 단풍잎은 분명 겨울의 것이 아니다.
그렇게 다시 가을이 왔다. 한겨울에 떠난 일본 여행에서.”


아카마신궁 정문. 천황이 상상했던 바다 속 용궁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저 바다 아래 우리 집이 있어
아카마신궁


신비롭다 혹은 몽환적이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강렬한 붉은색으로 유려하게 장식된 정문에서부터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시모노세키(下關)의 간몬해협 바로 앞에 위치한 아카마신궁(赤間神宮)은 지금으로부터 약 800년 전, 8살의 어린 나이로 죽은 안토쿠 천황(安德王, 1180∼1185년)을 기리는 신사다. 고작 8살에 생을 마감하다니. 짧은 정보만을 들었을 뿐이지만 설명하기 힘든 이 분위기의 정체가 조금은 짐작은 갔다. 이곳엔 또 어떤 안타깝고 슬픈 사연이 있는 걸까.

일본 헤이안 시대* 당시, 안토쿠는 외할아버지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의 뜻으로 어린 나이에 천황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헤이시(平氏) 집안은 무사 집단이었던 겐지(源氏) 세력과의 최후 전쟁에서 패한 후 곧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이에 안토쿠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어린 천황을 안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저 바다 밑에 우리가 살 궁이 있단다.” 이유도 모른 채 삶의 끝에 선 어린 아이를 바다 아래 희망으로 달래면서. 그 후 후손들은 바다 속 용궁과 같은 모양으로 신궁을 지었다. 깊은 바다 속에서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잠시나마 떠올렸을, 가엾은 어린 영혼을 위해. 

아카마신궁에는 다소 무시무시한 전설도 전해져 내려온다. 신궁 안쪽 건물 옆쪽에 자리한 ‘미미나시호이치(耳なし芳一)’ 불상 이야기다. 시모노세키에서 유명한 악사였던 호이치는 어느 날 왕 앞에서 연주를 하도록 초청되었는데, 그 왕은 다름 아닌 사후세계의 염라대왕이었다. 호이치의 뒤를 밟은 마을 주지스님이 곧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스님은 사신들의 눈에 호이치가 보이지 않도록 그의 온몸에 불경을 적었다. 그런데 이때, 실수로 그만 귀를 빼먹었던 것. 염라대왕 앞에 호이치를 데려가야 했던 사신들이 호이치를 찾다가 그의 귀만 발견해 귀를 잘랐다. 그렇게 호이치는 귀를 잃었고, 그때부터 귀 없는 호이치란 뜻의 ‘미나시호이치’라 불리기 시작했다. 일본판 베토벤 정도로 비유할 수 있을까. 그럴 리 없겠지만, 홀로 유유히 악기를 들고 있는 호이치의 불상에서 처량한 노랫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헤이안 시대│794~1185년, 일본 고대사 말기에 해당한다.
아카마신궁 뒤쪽에 매달려 있던 등
귀 없는 불상, 미미나시호이치. 악기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이 처량해 보인다

赤間神宮

일본 〒750-0003 Yamaguchi Prefecture, Shimonoseki, 阿弥陀寺町4−1





쵸후 성하마을의 거리. 담벼락 너머 나뭇잎들이 색색의 수채화처럼 물들었다


잊을 수 없는 가을과 녹차의 맛
쵸후 모리 저택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새빨간 단풍잎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서울의 삼청동이나 부암동, 아니 북촌 같기도 한 거리는 한적함 그 자체였다. 그냥 온종일 걷고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아직도, 쵸후長府 성하마을(城下町) 에는 겨울이 찾아오지 않은 듯했다. 

쵸후 성하마을이라는 이름은 ‘쵸후 모리(長府毛利)’의 성 아래 마을이라는 의미다. 쵸후 모리는 1900년대 초 시모노세키 지역을 다스렸던 영주로, 모리 집안의 사람들이 살던 쵸후 모리 저택(長府毛利邸)이 아직도 마을에 남아 있다. 이 저택은 모리 가문의 14대 자손인 모리 모토토시에 의해 1898년부터 1903년까지 지어졌는데, 1919년까지 모리 가문 사람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가 현재는 방문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쵸후 모리 저택으로 들어가는 문

쵸후 모리 저택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널찍널찍한 다다미방과 천장에 은은하게 달린 꽃 모양의 등이 집의 차분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저택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안채와 연결된 정원이다. 어찌 저리도 잘 가꾸어 놓았을까, 나무와 아담한 연못과 바닥에 깔린 돌길까지도 어느 하나 모나지 않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던 이유는 또 있었다. 빨간 단풍과 노란 은행이 흐드러진 한낮의 정원은 그야말로 가을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느새 정원으로 나가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하나둘 주워 담기 시작했다. 한동안 볼 수 없다 생각했던 사람을 다시 만난 듯, 뜻밖의 반가운 마음으로.

정원 구경을 마치고 안채로 돌아오니 따뜻한 말차 한 잔이 기다리고 있었다. 과자 한 입에 차 한 모금, 달달함과 쌉쌀함이 입 안에 번갈아가며 기분 좋게 맴돌았다. 적어도 올겨울 동안은, 한동안 머리와 가슴 속을 번갈아 맴돌 것 같다. 그렇게 우연히, 다시 만난 가을의 달콤쌉쌀했던 그 맛. 

정원을 바라보며 말차 한 잔은 필수코스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그 어떤 집보다도 깔끔하고 정갈한 쵸후 모리 저택

長府毛利邸

4-10 Chofusoshamachi, Shimonoseki, Yamaguchi Prefecture 752-0970 일본




초밥덕후들 여기여기 모여라
가라토 시장


기왕 시모노세키에 갈 거라면, 평일보단 주말이 백배 좋겠다. 시모노세키 선착장 앞 가라토 시장(唐戶市場)이 문을 열기 때문이다. 가라토 시장은 우리나라의 노량진시장 같은 수산시장으로, 일본 복어 생산량의 80% 정도가 이곳을 거쳐 유통된다.


가라토 시장에 가야 할 이유이자 목적은 단연 ‘초밥 세계 평정하기’. 평소 결정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적잖이 당황할 만큼 온갖 초밥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연어, 성게 알, 장어, 새우 등 익히 봐 왔던 종류에서부터 생김새도 이름도 생소한 생선까지 구경하는 것만으로 배가 부를 정도다. 


가라토 시장의 시스템은 간단하다. 우선 맘에 드는 집을 선택한 후 일회용 용기와 집게를 집어 들고, 맘에 드는 초밥을 맘껏 골라 담으면 된다. 가격은 100엔대부터 300엔대까지 종류마다 다른데, 메뉴 앞에 가격표가 붙어 있으니 참고할 것. 손수 고른 초밥들을 들고 계산대로 가면, 젓가락과 간장을 함께 챙겨 준다. 초밥을 먹을 공간은 1층에는 마땅치 않아 사람들은 보통 2층에 있는 바 형태의 공간이나 아예 시장 밖으로 나가 바다를 보며 먹기도 한다. 가라토 시장에서 즐기는 초밥. 무엇보다 일품인 건 두툼한 회와 신선한 맛이다. 

가라토시장

일본 〒750-0005 Yamaguchi Prefecture, Shimonoseki, 唐戸町5−50




바다 생물들과의 깜찍한 조우
카이쿄칸


가라토 시장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카이쿄칸(海響館)은 2001년 오픈한 대형 수족관이다. 시모노세키에서 유명한 복어가 100종류 이상 서식하고 있고 이외에도 고래, 해파리 등 각종 바다 생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2010년에 생긴 펭귄 존에는 140여 마리의 펭귄이 살고 있는데, 시간대별로 조련사가 함께하는 펭귄 쇼가 열린다.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뒤뚱뒤뚱 펭귄들의 깜찍한 재롱에 절로 흐뭇한 아빠미소를 짓게 된다.

Kaikyokan

6-1 Arukapoto, Shimonoseki, Yamaguchi Prefecture 750-0036 일본




ACCOMMODATION
바다 전망을 갖춘 모던한 호텔
시모노세키 그랜드 호텔(Shimonoseki Grand Hotel)


가라토시장과 카이쿄칸이 근처에 위치한 호텔로, 바다가 내다보이는 발코니 전망이 훌륭하다. 싱글, 더블, 트윈, 트리플, 딜럭스, 스위트 룸이 있으며 3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 객실은 모던하고 현대적인 분위기지만, 원한다면 일본식 다다미방도 선택할 수 있다. 호텔에서 나가면 바로 편의점과 스타벅스 등 편의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어 편리하다. 조식은 일본식과 서양식으로 나뉘는데, 둥근 바구니에 깔끔하게 담겨져 나오는 일본식 아침식사를 단연 추천한다.

주소: 31-2, Nabecho, Shimonoseki-shi, Yamaguchi, 750-0006, Japan
전화: +81 83 231 5000
홈페이지: www.sgh.co.jp/en


글 김예지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문미화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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