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지에서 예측 가능한 무언가를 만나는 일은 반갑고 편리하다. 스타벅스나 맥도날드만 봐도 그렇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여행하든 스타벅스에 들어서면 익숙한 인테리어와 서비스, 맛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바리스타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오차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숙소를 선택할 때 여행자들이 호텔의 별 등급을 따지고 유명 호텔 체인을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사진만 보고 예약했다가 당황하는 일 없이 시설과 서비스 수준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힐튼, 메리어트 등 특급 호텔 체인은 여행자에게 동일한 만족을 주기 위해 매트리스와 침구는 물론 로비에 들어섰을 때의 향까지 여러 요소에 통일감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단점도 분명하다. 예측 가능함은 안전하지만 신선함과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맥도날드를 섭렵하겠다는 덕후가 아니라면 맥도날드보다는 로컬 레스토랑을 찾고 맥도날드라면 국내에는 없는 메뉴를 주문하기 마련이다.
Small Luxury Hotels Of the World(이하 SLH)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지만 안전장치가 필요한 여행자를 위한 개별 호텔들의 연합이다. 전문 용어로는 호텔 컬렉션이라고 하는데 1990년에 시작된 SLH에는 전 세계 80여 국가의 작지만 개성 가득한 539여 개 호텔이 가입돼 있다. SLH는 이름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대형 체인 호텔에 속하지 않고 작지만 독립적으로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지키고 있는 개별 호텔들이 SLH의 구성원이다. 1915년 개관한 도쿄역 안에 있는 도쿄 스테이션 호텔처럼 100년이 넘은 호텔도 있고 개인 소유 섬에 숨은 보석 같은 호텔도 있다.
럭셔리 부티크를 표방하는 만큼 SLH는 ‘최고의 품질’ 유지에 공을 들인다. 700개 항목의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100명의 감독관이 직접 호텔을 방문해 꼼꼼히 확인한다. 미스터리 방문도 수시로 이뤄진다. 가입이 된 후에도 SLH의 기준에 미달되면 3개월 뒤 재방문이 있고 그래도 안되면 자격을 상실한다. SLH 측은 최근 3년간 33개 호텔이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탈락했다고 밝혔다.
멕시코 푸에르토 아벤투라스에 위치한 카사 호텔 리비에라 마야는 전용해변을 갖고 있으며 바다 및 골프장이 근접해 있다. ©SLH
SLH 호텔은 60% 이상이 유럽에 포진해 있지만 아시아에도 100개가 넘는 호텔이 있다. 국가별로는 태국이 21개로 가장 많고 중국과 일본이 각각 11개와 10개 호텔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에는 호텔 28 명동에 이어 아트 파라디소 호텔 2곳이 SLH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540여 개 호텔 중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호텔만 30곳에 달하며 이들 레스토랑의 별을 모두 더하면 40개가 된다. www.slh.com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SLH
아트파라디소
전 객실이 스위트, 호캉스를 위한 최고의 선택
아트파라디소는 흔히 생각하는 호캉스를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호텔이다.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 안에 2018년 9월 문을 연 신상으로 58개 모든 객실이 스위트룸으로 구성돼 있다. 기본 객실 타입인 듀플렉스 스위트 Duplex Suite는 복층으로 꾸며져 있다. 1층에 침대와 소파, 미니바, 욕실이 있고 2층에도 와인셀러와 대형 TV가 설치된 응접실이 있다. 복층이라고는 하지만 막상 2층에 올라가면 고개를 숙여야 하는 곳들도 있는데 아트파라디소는 층고가 굉장히 높아서 1층과 2층 모두 옹색함이 전혀 없다.
가전을 비롯한 세세한 부분도 신경을 많이 썼다. 일반적인 킹사이즈 배드보다 훨씬 큰 슈퍼 킹사이즈 배드는 한번 이불 속에 들어가면 나오기가 싫을 정도로 안락하다. 욕실은 변기와 세면대, 샤워부스, 욕조가 모두 따로 분리돼 있어 쾌적하다. 미니바가 무료라는 점도 인기다. 다양한 스낵과 음료를 비롯해 맥주와 화이트 와인 1병이 꽉 채워져 있는데 1회에 한해 모두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어메니티는 바이레도 제품이 제공되고 가습기를 겸하는 공기청정기는 LG 시그니처, 블루투스 스피커는 마샬 제품이 놓여 있다.
아트파라디소는 성인 전용 호텔이다. 그렇다고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아동 동반을 제한해 차분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호텔 인테리어도 전체적으로 골드와 마블을 적극 활용하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을 사용해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로비 옆에는 한식을 새롭게 해석한 레스토랑 새라새가 있다. 조식은 뷔페가 아니라 양식이나 한식 중에 고르면 한상 차림으로 서빙된다. 뷔페에 비해 훨씬 대접받는 느낌이고 분위기 있게 먹기는 좋지만 내용에 비해 4만8,000원이라는 가격은 다소 아쉽다.
호텔이 위치한 파라다이스시티 자체도 볼거리가 가득하다. 호텔에는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대표작인 ‘Paradise Proust’를 비롯해 국내외 작가들의 예술 작품 3,000여 점이 있어 거대한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같은 느낌을 준다. 밤의 유원지를 콘셉트로 한 실내 테마파크 ‘원더박스’는 최근 종영한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로도 익숙한 곳이다. 예약을 하면 둘만이 이용할 수 있는 프라이빗 스파도 유료로 이용 가능하고 한국의 찜질방 문화를 재해석했다는 힐링 스파 ‘씨메르Cimer’의 입장료는 할인된다. 체크아웃 시간이 11시가 아니라 12시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별것 아닌 것 같은 1시간이지만 오전 1시간의 여유는 호캉스의 만족도를 크게 높여 준다.
호텔28 명동
영화의 재미를 더하는 명동에서의 하룻밤
한국에서 처음 SLH에 가입한 부티크 호텔이다. 명동 한복판에 위치한 호텔28 명동은 영화를 모티브로 꾸몄다. 영화 티켓을 연상시키는 카드 키 홀더를 비롯해 객실과 복도까지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나 빈티지 카메라, 슬레이트 같은 촬영 소품으로 장식을 했다.
심지어 체크인을 할 때 팝콘을 준다. 원로 배우인 신영균이 에르메스로부터 헌정 받은 디렉터스 체어를 기념해 객실 가구를 에르메스 제품으로 배치한 디렉터스 룸도 있다.
에디터 트래비 사진 SLH, 각 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