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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Nov 27. 2019

요즘 대세라는 '혼행'
나 홀로 떠나는 발리 여행

올해가 가기 전에 발리에 간다면


쉴 궁리를 하는 것조차 귀찮고,
짐을 싸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던 때.
발리의 스위트룸을 질렀다.


언덕에서 해변까지 층층이 이어지는 리조트 구조가 발리 전통 계단식 논을 닮았다


나 혼자 간다, 발리


혼자면 뭐 어떠리. 모처럼 구미가 확 당겼다. 널찍한 욕실에 풀과 테라스가 하나로 이어진 이 방에서라면 적어도 무료하진 않을 것이다. 오션 프런트 주니어 스위트룸을 예약했다. 올해 2월, 힐튼과 물리아 등 유명 호텔들이 여럿 자리를 점한 누사두아 해변의 ‘럭셔리’ 대열에 아푸르바 켐핀스키 발리(The Apurva Kempinski Bali)가 이름을 올렸다. 독특하고 웅장하게. 인도네시아어로 ‘아푸르바(Apurva)’는 정확히 그런 의미다. 


밤이 될수록 몽환적인 리조트 외관


깜깜한 밤이라도 이 호텔, 감이 온다. 경험상 로비가 높은 층에 있는 데는 늘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나. 역시나. 리조트 맨 꼭대기 층에 자리한 로비는 수영장과 정원, 바다에 이르기까지 거리낌 없는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1897년 유럽을 시작으로 세계 각지에 진출한 켐핀스키는 각 지역 특성을 살려 호텔을 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리에서는 발리의 전통 계단식 논에서 영감을 얻어 언덕에서 해안 방향으로 리조트를 촘촘하게 설계했다. 로비에는 인도네시아 고대 왕국 마자파히트(Majapahit) 양식의 조형물을 비치했고, 인도네시아 전통 문양인 바틱(Batik)을 나무에 새겨 장식했다.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250개 계단을 놓은 것은 발리의 대표사원인 푸라베사키(Pura Besaki)를 형상화한 거라고. 물론 엘리베이터가 있다. 


꼭대기 층에 있는 로비는 그 자체로 명소다


인간 대 신,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우주(Human to God, Human to Human, Human to Universe). 발리 사람들이 추구하는 ‘균형(Balance)’에 따라 켐핀스키의 브랜드 감성에 지역 특성을 조화롭게 녹였다는 게 리조트 측의 설명이다. 유럽과 아시아, 전통과 현대, 시설과 서비스 사이에도 어김없이 균형의 개념은 통한다. 조화로운 우주에 인간은 그저 호화로울 뿐이지만, 그중 가장 호화로운 사실은 아직 룸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는 거다.




제로섬 게임


날이 밝으면 꽃이 떠다녔다. 최소한(?!)의 복장만으로 눈곱만 겨우 떼고 풍덩. 일어나자마자 수영장에 몸을 담그고 물 위에 떨어진 꽃잎과 함께 떠다니는 여유만으로 이곳에 온 이유는 충분했다. 끝과 끝을 오가길 몇 번 반복하다 테라스에 앉아 몸을 말리면 마음이 촉촉해졌다. 세상 좋다.


플런지 풀이 딸린 오션 프런트 스위트 룸


바로 이 타이밍, 조식 먹기 전에 한 잔. 그러고 점심시간에 한 잔, 오후에 당 떨어질 때쯤에도 한 잔, 저녁 먹으면서 또 한 잔. 이번 발리 여행에서 가장 많이 마신 음료라면 ‘자무(Jamu)’다(자무로 만든 칵테일도 포함한다). 약 2,000년 전 인도네시아 궁궐 여인들이 마셨다는 자무는 서민들에게도 널리 퍼져 인도네시아 국민 건강음료가 됐다. 아푸르바 켐핀스키 발리에서는 웰컴 드링크로, 레스토랑에서도, 스파에서도 자무를 활용하며 별도의 자무 테이스팅 액티비티(Jamu Experience) 또한 운영하고 있다. 


마신 만큼 건강해지리. 자무 테이스팅 시간


“생강, 강황, 라임 등 들어가는 식물의 조합에 따라 가능한 가짓수만큼이나 그 효험도 무궁해요.” 식욕 증진, 해독, 면역력 향상, 다이어트 등등. 효능이 각기 다른 자무를 차례로 맛보는 동안 레스토랑 직원의 결정적인 한 마디. “자무는 남성에게 스태미너 음료로, 여성에게는 외모를 가꾸는 용도로 쓰이기도 해요.” 일단은 쭉 들이켜고 본다.


웨딩홀을 보는 순간 버킷리스트가 늘었다


입에 쓴 건 그만큼 몸에 좋을지니. 자무의 효력 덕인지, 발리 현지식에 온갖 그릴 해산물과 사케를 곁들인 일식 코스까지 리조트의 모든 레스토랑을 거뜬하게도 소화해 냈다. 수영장에 노닐다가, 선 베드에서 졸다가. 크게 움직인 적도 없이 또다시 배를 빵빵하게 채우고야 만 저녁이면 로비로 향하는 250개 계단 앞에 서곤 했다. 죄책감, 아니 기도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사원을 올랐다. 부디 다이어트 효능을 가진 자무가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하기를. 




아주 서서히 달아나 줄래


발리, 더구나 해변이라면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던 일. 이튿날은 늦잠 대신 요가 수업을 택했다. 아침 7시, 힘겹게 일으킨 몸을 달래 바다 앞 잔디로 옮겼다. 곱게 깔린 매트 위에서 명상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요가 동작이 이어졌다. 두 손을 합장한 채 하늘로 뻗어 올렸다가 다이빙하듯 상체를 하체에 바짝 붙인다. 두 무릎과 손을 바닥에 단단하게 고정하고 등을 아래로 굽히는 소 자세, 등을 위로 동그랗게 마는 고양이 자세를 반복한다. 소가 되면 하늘이, 고양이가 되면 바다만이 전부인 순간, 있는 힘껏 호흡했다.


모래사장에서 진행된 정화의식. 알아들을 수 없어도 빠져든다


후에 예정된 일정은 리조트에서 가까운 사원에 가는 것이었지만 때마침 사원이 공사 중이란다. 그럼에도 몸과 마음의 정화는 계속되었고 사원 옆 외딴 모래사장, 바위 사이 좁은 틈바구니에서 그렇게 뜻밖의 의식이 열렸다(이 또한 리조트 액티비티 중 하나다). 새하얀 복장을 한 할아버지가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고 향을 피웠다. 모래사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가 주는 코코넛 물을 두 손을 모아 받아 들고는 3번을 머금었다가 뱉기를 반복했다. 착, 착. 할아버지는 머리에 코코넛 물을 뿌리며 액운을 좇았다. 머리에 꽃을 꽂고 소원을 빌란다. 그러고는 듣는 귀를 의심했다.


객실 테라스에서 찾은 한가로움의 미학


정말로, 이마에 생쌀을 붙이라는 것이다(‘A Unique Way to Discover Balinese Village’가 이 액티비티의 이름이다). 이마에 붙은 쌀을 확인한 할아버지는 그제야 실 팔찌를 동여매 주며 의식을 마무리했다. 팔찌는 3일간 매고 있으면 된다고 일렀지만, 발리를 떠나서도 한동안 빼지 않았다. 코코넛 의식(?)은 난생 처음이라 제대로 소원 빌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고, 한 번의 짧은 정화로는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해서. 무엇보다 그땐 그냥 뭐든 서서히 느슨해지길 바랐다고, 팔찌가 저절로 달아날 때쯤에 단단히 되새겼다.  




아푸르바 켐핀스키 발리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럭셔리 호텔 그룹, 켐핀스키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이어 발리에 오픈한 5성급 리조트. 딜럭스부터 스위트까지 전체 객실의 60%가 전용 플런지 풀(Plunge Pool)을 구비하고 있다. 지난 2월 가오픈 이후 웨딩홀, 아쿠아리움 레스토랑 등 시설을 보강했고 현재 짓고 있는 독채형 빌라 완공과 함께 내년 초 그랜드 오픈을 목표하고 있다. 
주소: Jalan Raya Nusa Dua Selatan, Sawangan, Nusa Dua, 80361 Bali, Indonesia



글·사진 김예지 기자  
취재협조 아푸르바 켐핀스키 발리 www.kempinski.com/b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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