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겨울왕국, 사하공화국의 야쿠츠크
존재조차 몰랐던 도시에서의 일주일.
처절하게 시렸던 그 겨울을 천천히 곱씹어 보고 있다.
안개처럼 자욱한 눈보라 속에서 웅크리며 보낸 날을 왜 그리워하게 된 걸까.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
오후 2시. 러시아 동부 사하공화국(Republic of Sakha)의 야쿠츠크(Yakutsk)시. 현재 기온 영하 35도. 나갈 채비를 하며 날씨 앱을 켠다. 어차피 춥거나 혹은 더 춥거나 그뿐인데, 외출 전 숫자 확인이 하나의 의식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강박증 환자처럼 내복부터 울양말까지 하나하나 체크한다. 그래야 문밖을 나설 용기가 비로소 생기니까. 삼중으로 된 호텔 유리문을 밀고 나갈 때도 마찬가지. 특히, 심혈을 기울이는 건 호흡이다. 자칫해서 들숨과 날숨의 리듬이 깨지면 매서운 공기가 목구멍으로 잘못 넘어가 기침을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콧속이 얼어붙는 건 막을 수가 없는데, 코딱지처럼 거슬려도 그럭저럭 참을 만하다. 도대체 무슨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여기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라는 타이틀을 꿰찬 러시아 야쿠츠크다.
겨울이 장장 8개월이나 지속되고, 가장 춥다는 12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평균 기온이 영하 50도에 이르는 곳. 앞자리가 6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기가 막힌 건 곰이랑 늑대들이 사는 문명과 동떨어진 야생이 아니라, 사람 사는 ‘도시’란 사실이다. 높은 건물이 들어서 있고, 도로 위에 시내버스가 달리는, 30만 명 이상이 집이라 부르고 있는 도시.
“여행자들이요? 아무래도 극한을 시험해 보고 싶은 특이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현지인은 나 같은 이방인을 이렇게 판단한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세계에서 가장 추운’, 그 간단한 수사 하나만을 쫓아오는 괴짜들. 나쁜 의미는 전혀 아니다. 이 도시를 방문하는 외국인 중 대부분이 야쿠츠크가 ‘얼마나 추운지 궁금해서’ 영상 20도를 웃도는 선선한 여름이 아닌, 살 떨리는 겨울에 방문하고 있으니. 그러니까, 이전까지 여행의 개념이 ‘날씨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의 마인드였다면, 여기에서는 날씨가 여행의 전부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야쿠츠크에 머무는 동안 ‘추워서 죽겠다’는 말을 차마 농담으로도 내뱉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진짜 죽을까 봐서. 그러나 야쿠츠크 사람 중 열에 아홉은 “당신도 춥나요?”라는 말에 피식 웃어 보였다. “물론 춥지만, 이 정도면 아주 추운 건 아니죠.” 이들에게 영하 30도쯤은 상쾌한 수준. 공식적으로 영하 55도나 돼야 휴교령이 떨어지고, 거리가 한산해진다는 것이다. 단, 대학생과 직장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라며 투덜대기도 했다.
실제로 도심의 레닌 광장에 놓여 있는 미끄럼틀 2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노는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충격이었다. 강력한 추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진화한 걸까? 매일같이 영하 40도를 맴돌았던 지난해 11월 말. 야쿠츠크에 겨우 일주일간 점 찍고 가는 방문자인 주제에 나는 이들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했다. 이토록 혹독한 환경에서 누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인가. “여러분들, 그냥 다른 곳으로 이사 가면 안 되나요?” 이 무례한 질문이 입술에서 꿈틀거렸지만, 우선 추위 불평은 묻어 두고 이들의 일상을 경험하며 하루하루를 지내 보기로 했다.
여행자의 눈에 비친 이상한 광경
안개처럼 비처럼, 먼지 같은 눈보라가 멈추지 않는다. 극심한 대륙성 기후. 바싹 마른 눈송이가 마치 밀가루처럼 공중에 흩날리고, 자동차 뒤꽁무니에서 피어오르는 배기가스가 도로를 덮쳐 시야가 뿌옇다. 오전 9시를 넘기고도 어둑어둑하기만 한 아침. 늑대인지 사슴인지 아니면 여우인지, 어마어마한 털로 덥수룩한 코트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잰걸음으로 바쁘게 움직인다. 그리곤 흐릿한 풍경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간다. 하나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오로지 목적지만을 향해 뚜벅뚜벅. 거리는 기이하리만큼 고요하다. 출근길이 아니라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인 것처럼 등골이 서늘해진다.
제대로 기괴한 광경은 노천 시장에서 마주했다. 이런 날씨에 ‘야외’에 시장이 들어선 것부터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일. 눈 쌓인 공터에 덩그러니 펼쳐져 있는 노점이라니, 마땅히 왁자지껄해야 할 시장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 못해 섬뜩하다.
주홍색 천막 아래 정체불명의 붉은 고깃덩어리들이 벽돌처럼 쌓여 있고, 죽은 채로 박제가 되어 버린 새하얀 토끼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서스펜스 영화의 스틸컷이 따로 없다. 주인 역시 마네킹처럼 꼼짝 않고 그 앞을 지키고 있으니 참으로 괴이하고 이상하다.
내가 가판대 위에 시선을 고정하자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칼을 꺼내 고기를 잘라 쓱 내밀어 보였다. 맛을 보라는 뜻. 망아지 고기였다. 꽁꽁 얼어 있는 새빨간 생고기. 야쿠츠크 스타일의 시식인 셈이다. 망설이다가 호의를 거절해 버렸지만, 무뚝뚝해 보였던 그가 새하얀 이를 내보이며 말을 걸었을 때, 나를 위해 고기를 싹둑 자르며 미소를 지었던 순간, 잠시 품었던 선입견이 사그라지는 듯했다. 비록 찬 바람이 쌩쌩 불지언정, 이곳 또한 이들에게는 평범한 시장과 다름없음을 깨닫고서.
노천 시장 한쪽이 고기 판매대라면, 반대쪽 골목은 생선 판매대로 운영된다. 어른 장딴지만큼 크고 굵은 생선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모양새가 딱 바게트 빵집, 물고기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진열 방식이 퍽 인상적이다.
잠시 지켜본 결과, 구매부터 계산까지가 순식간이더라. 손님이 손가락으로 물건을 가리키면, 상인은 생선을 몽둥이 쥐듯 양손에 들고 탕탕 부딪혀 쌓인 눈을 털어 낸 후 비닐봉지에 푹 집어넣어 건넨다. 그러면 끝. 불필요한 흥정이나 잡담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전 8시에 나와 오후 7시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상인도, 장 보러 온 손님도 추위를 못 느끼는 게 절대 아니므로. “아무래도 고기랑 생선만큼은 시장에서 사야 신선하죠. 우리 도시에서는 굳이 냉동 창고가 필요 없잖아요. 하하.” 다들 입을 모아 말하길,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단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가혹한 환경에 노천 시장이 운영되는 것에 큰 의미는 없다. 그저 예부터 시장 가판대에 오르는 물건이라면 산지에서 직접 공수해 온 것이 건강한 식재료라는, 우리가 아는 뻔한 상식이 통할 뿐이지.
야쿠츠크 노천 시장
주소: Block A. St. Lermontova, 62/2, Sakha Republic, Russia
영원한 겨울 왕국
러시아 극동부, 40%가 북극권에 속하는 사하공화국의 수도인 야쿠츠크는 단순하게 춥기만 한 게 아니라, 일 년 내내 얼어 있는 ‘영구 동토층’에 세워진 도시다. 얼음 위에 지은 것과 다름없는, 진정한 겨울 왕국. 야쿠츠크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세르게이의 말에 따르면 불변의 규칙은 하나다.‘땅을 절대 파지 않는 것.’ 건물은 반드시 지면에서 떨어지도록 기둥 위에 짓고, 온갖 파이프와 난방을 위한 열선은 지상에 설치하기. 모두 영구 동토층이 녹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법인 셈이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따뜻하게 살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아 보여도, 오히려 영구 동토층을 지킬 수 있는 저온의 기후를 감사히 여기며 산다. 당연히 생존을 위해 매일 싸워야 할 대상이기도 하나, 이 땅에서 추위란 구름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겨진다.
솔직히 고백하면, 맨 처음 소름이 돋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피로 휘감은 이들이 경악스러워서. 얼핏 야생동물이 두 발로 걸어 다닌다고 착각이 들 만한 코트를 입는다. 늑대, 사슴, 곰, 여우, 소, 다람쥐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물론, 극한의 겨울을 직접 겪어 본 이상 윤리적 잣대를 함부로 들이댈 수는 없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밍크코트를 사면 평생을 입고, 백만원쯤 하는 순록 부츠는 대대로 물려받아 신는다고도 하니 그들의 선택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짐작해 본다.
한편, 이들은 나와 아주 많이 닮았다. 특히나 쌍꺼풀이 없는 두툼한 눈덩이가.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야쿠트(Yakut)인이 도시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니 야쿠츠크에서 느끼는 동질감이 묘하다. <시베리아 타임스>에 올라오는 뉴스는 남다르다. 종종 헤드라인을 차지하는 사건이 사냥꾼의 매머드 시체 발견. 심지어 2015년 매머드의 혈관에 온전하게 남아있는 피를 찾아낸 후 영화 <쥬라기 공원>처럼 매머드를 부활시킬 수 있을 거란 대화가 현지인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오간다. 당시 황우석 박사팀이 러시아 북동연방대학교의 연구자들과 함께 매머드 발굴을 도왔고, 이후 한국에서 후속 연구가 이어지고 있으니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신성한 자연의 품으로
“일행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신에게 알리는 겁니다. ‘저희 지금 들어갑니다’ 하는 뜻으로요.” 새벽부터 출발한 흰색 승합차가 울퉁불퉁한 눈길을 2시간쯤 달렸을 때였다. 운전기사가 차를 세우더니 나무 밑에 쭈그려 앉아 팬케이크처럼 납작한 빵 조각 몇 개를 내려놓는다. 우리의 발걸음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일이라고 했다.
땅의 신에게, 숲의 신에게, 불의 신에게. 사하공화국 사람들에게 자연은 살아있는 영혼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연의 힘에 기대는 것이 최선이다. 오랜 전통을 따르는 주술사를 만나는 일도 흔하다. 그들은 불을 피워 신을 부른 후, 빵과 말의 젖, 사슴 털 등을 태우며 나쁜 기운을 쫓는 의식을 행하곤 한다.
신께 허락까지 구하며 향하는 목적지는 레나(Lena) 강가. 시내를 벗어나 남쪽으로 200km 남짓을 달려가는데, 4시간을 한참 넘겼으니 황량한 평야와 숲을 뚫고 쭉 이어지는 도로 상황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테다. 고난을 헤치고 나서야 레나 필라스 자연공원(Lena Pillars Nature Park)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을 따라 불연속적인 띠처럼 둘러쳐진 절벽 지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도 이름을 올린, 사하공화국의 자랑이다.
한겨울 거친 강가의 향기는 비 내린 후의 새벽 공기처럼 알싸했다. 가까이서 보려면 다시 설상차 ‘부란’으로 갈아타고 얼어붙은 빙판을 건너야 한다. 사방이 뚫려있는 설상차로 30분쯤 달리자 온몸이 볼품없이 웅크러지고, 유일하게 노출했던 광대는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이 아팠다. 공중으로 삐죽삐죽 솟구쳐 오른 웅장하고 거친 돌기둥이 반겨주지 않았다면 눈물이 왈칵 쏟아졌을지도 모르겠다. 그 높이가 무려 200m까지 치솟는 절벽 앞에서 말문을 잃었다.
암석의 나이는 자그마치 6억 년이 넘는다고 했다. 칼에 베인 것처럼 예리한 석회암 형상은 전부 40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고. 환상의 비경을 창조해 낸 것 또한, 나를 미치도록 괴롭히고 있는 호된 추위라고 했다. 바위 덩어리 사이에 수분이 침투했다가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동결 융해 작용’으로 인해 갈라지고 부서지면서 난 깊은 상처. 바라볼수록 처연해 보였던 이유가 상흔이었기 때문일까.
금세 해가 뉘엿뉘엿 질 시간이 찾아오자 날 선 봉우리들 아래로 축축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바로 눈앞에 두고도 카메라는 두말할 것 없고 두 눈에도 제대로 담아내기가 불가능한, 장엄한 대자연. 예상대로 추위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카메라를 꺼내 셔터라도 누를라치면 양손의 모세혈관이 얼다 못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드는 거다. 나의 날숨에 속눈썹까지 얼어 버리니 뷰파인더를 들여다보기도 쉽지 않고, 사진 한 장 남기는 일조차 고역이었다. 사하공화국이 숨겨 놓은 대자연의 속살이란 이런 것이었나 보다.
주술사가 읊었던 고요한 기도처럼. 자연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작은 인간에 불과하단 걸 깨닫게 하는 그윽한 힘. 도시의 흐릿한 불빛을 쫓아 다시 돌아오는 고된 길, 왕복 10시간쯤을 도로 위에 쏟아부은 하루가 느릿느릿 평온하게 흘러갔다.
레나 필라스 자연공원(Lena Pillars Nature Park)
주소: Pokrovsk, Sakha Republic, Russia lenapillars.ru
글·사진 함희선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디스커버 야쿠티아 discover-yakut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