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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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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Oct 26. 2020

세 남자의 '탐식도시',
4월 어느날의 여수 여행

박찬일, 레이먼 킴 그리고 최갑수 작가가 함께 떠났던 음식 여행

‘탐식도시’는 이렇게 시작됐다.
지난 4월, 봄이 한창일 때 여수에서. 



플래시백


망할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플래시백(Flashback)’을 해야겠다. 지난 한 달 동안 우리는 강릉으로 갈까, 춘천으로 갈까, 인천으로 갈까 고민하며 단톡방에서 온갖 식당 정보를 나누고 공유하며 수선을 떨다 마침내 인천으로 행선지를 정하고 호텔을 예약했지만 ‘빌어먹을’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취소해야만 했다. 우리만 그럴까. 다른 모든 이들의 일과 여행과 약속이 취소되고 연기되고 있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여수를 소개한다. 지난 4월, 봄이 한창일 때 다녀왔던.




어떻게 된 거냐면


여수는 ‘탐식도시’ 팀(이렇게 써 놓고 보니 굉장히 그럴듯해 보인다)이 처음으로 찾은 여행지다. 여수라면 탐식도시 리스트의 가장 위에 갖다 놓아도 다들 고개를 끄덕일 도시다. 장어도 있고 한정식도 있고 금풍생이 구이도 있고. 그런데 우리는 그런 거 먹지 않았다. 


여수 돌산공원에서 바라본 돌산대교의 야경


그 맛있는 걸 왜 안 먹는데 하고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인데,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이렇다. ‘남들 다 먹는 걸 우리까지 먹을 필요가 있냐’ 하는 알량한 자존심 두 큰술, ‘이미 다 먹어 봤던 음식들이지’ 하는 그럴듯한 이유 두 큰술, 줄 서기 싫다는(요즘 웬만큼 알려진 식당들은 다 줄 서니깐) 귀차니즘 두 큰술,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안 먹어 봤던 거 먹어야지! 세상에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먹었던 걸 또 먹냐?’ 하는 호기심 두 큰술. 


여수바다. 푸르고 또 푸르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우리가 어떻게 탐식이라는 주제로 도시를 여행할 작정을 하게 됐냐면, 출발은 이렇다. ‘탐식도시팀은 되도록 새로운 식당을 탐방하는 것을 팀이 생길 때부터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면 멋있겠지만, 사실은 ‘심심하다, 답답하다, 어디로든 가 보자, 가서 뭐라도 먹어 보자!’라며 시작된 일이다.

빌어먹을 코로나(더 심한 욕을 해 주고 싶지만 <트래비> 지면의 품격 때문에 참는다)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우리(박찬일 셰프, 레이먼 김 셰프, 최갑수 작가)의 출장을 빙자한 여행은 금지되어 버렸고, 어디론가 가지 못하면(사실은 어디론가 가서 뭐라도 먹지 못하면) 병이 나는 우리는 어느 날 충무로 인현시장의 허름한 막걸리집에 모여 고등어구이를 앞에 두고 투덜거렸으니. 

박: 어디라도 가자, 이러다 죽겠다.
레: 안 가도 죽어요.
최: 마스크 잘 쓰고 다니면 되지 않을까.
레: 네. 그러면 될 거 같아요.
박: 어디 갈까?
최: 여수나 가시죠. 봄인데. 동백도 필 테고.
레: 그거 못 먹잖아요.
최: 동백은 못 먹지. 그래도 여수엔 장어도 있고 금풍생이도 있고…, 회도 있을 테고.
박: 그런 거 안 먹어.
최: 다른 거 뭐라도 먹을 게 있겠죠, 그래도 여순데.
레: 네. 그래도 여순데. KTX도 다녀요. 금방 가요.
박: 어, 그래? 그럼 내일 가자.


*박: 박찬일 셰프, 레: 레이먼 김 셰프, 최: 최갑수 작가

그렇게 시작된 거다.





요리사와 요리사와 여행작가


나른했다. 여수엑스포역에 내렸는데 봄 햇살이 환했다. 4월이었고 봄이 한창이었을 때다. 그나마 코로나가 잠잠할 때다. 그래도 우리는 마스크를 내리지 않고 걸었다. 중년의 남자 셋은 역을 나와 거리를 어슬렁거리며 ‘이 도시엔 어떤 먹을 게 있나’ 하며 도시를 탐색했다.


한가로운 풍경의 여수항. 여수항을 따라 시장이 만들어져 있고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세 사람에 대해 자세한 소개를 하자면, 박찬일은 셰프다. 서교동과 광화문에 ‘몽로’라는 이태리 식당을 하며 파스타와 기타 안줏거리를 판다. ‘광화문국밥’이라는 국밥집도 하며 돼지국밥과 수육, 냉면을 판다. 그런데 요리보다 글을 더 많이 판다. 신문과 잡지 등 각종 매체에 음식 관련 칼럼을 쓴다.

레이먼 김 세프는 “찬일형은 요리보다 글이 나아요”라고 한 적도 있다(미안하다 레이먼아). 레이먼 김도 셰프다. 덩치가 크고 고기를 잘 다룬다. 보기와 달리 요리를 잘하고 생긴 것과는 달리 순하고 부끄럼을 많이 탄다. 형님들에게 깍듯하고 예의가 바르다. 가끔 김조한으로 오해를 받는다. 같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으면 “와, 김조한이다”라고 옆자리 손님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여행작가다. 20년 동안 여행작가로 살았지만, 많은 곳을 가 보진 못했다.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음식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가자미회를 홍어회라고 했다가 욕먹은 적이 있다. 가끔, 자주 가끔,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구분하지 못한다. 일명 ‘저주받은 미각’이다.

어쨌든, 요리사와 요리사와 여행작가가 걸어가는 4월의 여수 거리에서 레이먼 김 셰프가 말했다. “뭐부터 먹을까요?”, “짜장면에 빼갈!” 박찬일이 대답했다. 4월의 여수 거리는 따뜻했고 햇살에 눈이 부셨지만, 요리사와 요리사와 여행작가는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요리사와 요리사와 여행작가. 참 좋은 직업이다. 평일 낮에 먹을 걸 고민하는 직업이라니.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라면 버스정류장에서 다가오는 버스를 향해 타지 않는다는 신호를 온몸으로 보내는 경기도민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몸짓으로 거부감을 표시하고 싶다. 회사원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잔뜩 있으니까.

요리사와 요리사와 여행작가는 하기 싫으면 (다는 아니고 몇 개) 안 해도 되니까. 그러니까 요리사와 요리사와 여행작가가 된 건 필연이다. 그것밖에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날 여수 하늘은 더 이상 파란색이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파란색이었다.




그냥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면 되는 거지,
낮술이나 마시면 더 좋고


천사골목. 좁은 골목길 담장을 따라 바다를 그린 벽화가 그려져 있다


은혜반점 앞에 도착했을 때는 12시30분이었다. 이미 가게 앞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다. 골목 구석에는 아저씨들이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담벼락에는 가족과 연인들도 보였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인 아주머니께 물었다. “일단 주문부터 하세요.” “짜장면 하나, 국밥 하나, 볶음밥 하나요, 술도 마실 수 있나요?” 아주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따, 다들 밥 먹기 바쁜 시간에 웬 술이여. 그럼 5만원어치 먹어!” “네. 더 먹을 수도 있어요.” 주문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기다렸다.

요리사 한 명은 짝다리를 짚은 채 줄 서서 먹는다고 투덜댔고, 또 다른 요리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내미랑 영상통화를 했다. 여행작가는 우리가 들어가려면 몇 명이 남았는지 고개를 까닥이며 머릿속으로 헤아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20분쯤 기다렸을까, “짜장 하나 국밥 하나 볶음밥 하나 빼갈 들어와요!” 아, 여긴 번호표 같은 게 없구나. 


은혜반점의 짜장면과 국밥(짬뽕밥)


은혜반점은 여수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집이다. 계란 프라이가 올라간 간짜장과 양배추가 듬뿍 들어간 짬뽕, ‘국밥’이라고 불리는 짬뽕밥이 유명하다. ‘우리도 줄 서서 한 번 먹어 보자!’ 하는 생각으로 들어간 집. 테이블은 4~5개 정도가 있었다. 메뉴판 맨 아래에는 ‘단말기가 업서서 카드 안됩니다’라고 매직 펜으로 크게 쓰여 있었다.

자리에 앉자 단무지와 양파가 담긴 접시가 나왔다. “아주머니, 여기 고량주 하나 주세요. 대짜로요.” 아주머니가 초록색 고량주 병을 가져왔다. 북경 특급 고량주! 5,500원! 우리는 잔에 술을 가득 따라 마셨다. 오후 12시50분. 바깥의 하늘은 더 이상 파란색이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파란색이겠지.

짜장면의 면은 소다를 많이 넣지 않아 하얀색을 많이 띄고 있었다. 근래에 보기 힘든 스타일의 면이었다. 요즘 짜장면에는 배달 중에 불지 말라고 소다를 잔뜩 넣는다. 그래서 면이 노란색을 띤다.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다는 사람은 이 소다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양 사람들은 하루 종일 빵과 파스타를 먹지만 속이 더부룩하다고 하지 않는다.

뭐, 아무튼 짜장면 속의 양파에서는 단맛이 충분하게 올라왔다. 캐러멜 맛은 진하지 않았다. 양배추가 잔뜩 들어간 짬뽕에서는 ‘옛날 맛’이 났다. 적당히 매웠고 묵직했다. 볶음밥은 고슬고슬했다. 밥알에 계란 코팅이 잘 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것들을 안주 삼아 고량주 잔을 빠르게 비웠다. 옆 테이블의 남녀가 흘깃흘깃 우리 테이블을 훔쳐보았다. 네, 김조한 맞습니다, 맞고요. 레이먼 김 셰프가 계산대 앞에 있는 아주머니를 향해 말했다. “아줌마 고량주 한 병만 더 주세요.”

“잠깐만, 이 고량주가 이상하다.” 내가 말했다. 박찬일 셰프와 레이먼 셰프가 나를 바라보았다. “2011년 4월 8일이네요. 오늘이 4월 15일이니 지금으로부터 딱 9년 일주일 전에 고량주 250ml가 이 병 속으로 들어갔네요.” 레이먼 셰프가 병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량주 병에 지니가 들어 있을 수도. 잠자는 알코올의 요정을 우리가 깨운 걸 수도.” “닥치고 술이나 마셔.” 박찬일 셰프가 말했다. “9년 동안 이 집에선 고량주를 시켜 먹은 사람이 없었구나.”

고량주 3병을 더 비우고 은혜반점을 나왔다. 각 1병씩. 은혜반점에서 술을 마시다가 주인이 얼마 전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됐다. 간판은 그대로인데 다른 사람이 은혜반점을 인수해 운영하는 것이다. “좀 걷자, 소화라도 시킬 겸.” 박찬일 셰프가 앞장서 걸었다.

약 500m를 걷는데 약국이 나왔고 우리는 그 약국으로 들어가 각자 소화제 2알과 드링크를 사서 마셨다. 술을 마셔서인지 나는 입고 있던 후드 셔츠를 벗고 반팔 셔츠 차림으로 걸었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겠지. 세상의 모든 식당들은 옛날처럼 붐빌 테고 우리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며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맘 놓고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겠지.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나라로 가서는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을 수 있을 거야. 아 물론 그때도 취재지, 놀러 가는 게 아니라고. 코로나가 곧 물러가면 말이야,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을 거야. 길 끝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은혜반점
주소: 전남 여수시 공화북2길 21-2
영업시간: 화~일요일 11:00~19:00,월요일 휴무
전화: 061 662 7189
가격: 자장면 5,000원, 간짜장 7,500원, 볶음밥 7,500원, 국밥 7,500원, 탕수육 2만2,000원




도대체 넌 뭐가 맛이 없니


여수에는 백반집이 많다. 부산이 만두의 도시라면 여수는 백반의 도시다. 여수의 많고 많은 백반집 중에 인터넷에서는 ‘로타리식당’이 가장 유명하다. 8시에 문을 여는데,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선다고 한다. 우린 8시부터 줄을 서기도 싫을 뿐더러 그 시간에 일어나지도 못한다. 로타리식당 말고도 자봉식당이며 진남식당, 통일식당, 여수식당, 오뚜기식당 등이 있고 봉산동 게장 골목에도 게장백반을 내는 집들이 늘어서 있다. 아무 곳에나 들어가도 6,000~8,000원 사이인 백반값이 아깝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 집이나 들어갔냐면 그건 또 아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덕충식당’이라는 곳이다. 소화나 좀 시키자고 걷다가 우연히 그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야, 이 집 맛있을 거 같다!”라며 박찬일 셰프가 문을 열고 불쑥 들어갔다.


덕충식당의 백반 한 상. 6,000원 짜리 백반의 어마어마한 상차림


3년 전 우리 셋은 오사카를 함께 여행한 적이 있다. 그는 그때도 아무 술집, 밥집 문을 불현듯 열고 성큼성큼 불쑥불쑥 들어갔다. 만두와 와인을 파는 집도 있었고 이자카야도 있었다. 라멘집도 있었고 야키니쿠집도 있었고 일본식 가정식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그런데 희한한 건 그가 불쑥 문을 열고 들어간 어느 집이나 평균 이상이라는 것. 노련한 병아리 감별사처럼 그는 식당의 간판과 문만 보고도 먹을 만한 집을 골라냈다. 식당을 골라내는 능력이 있는 돌연변이 엑스맨 같다. “형은 도대체 이런 집을 어떻게 골라내는 거요?” “그냥 감으로 들어가는 거지.” 역시 인간의 감이라는 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뇌 스스로 빅데이터를 가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덕충식당은 상당히 괜찮았다. 백반 1인분에 6,000원. 은혜반점에서 충분히 배가 불렀던 우리는 백반 2인분과 서대회무침 한 접시‘만’ 주문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뭔가 좀 이상하다. 백반 2인분과 서대회무침 한 접시 ‘만’이라…. 양은 쟁반 위에는 김치찌개가 담긴 ‘스뎅’ 그릇과 게장, 연근조림, 김치, 갓김치, 꼬막, 장어조림, 콩나물무침 등 반찬이 담긴 접시가 가득 올라가 있었다. 반찬은 정확히 14가지.

“아 배가 너무 불러요.” 레이먼 김 셰프가 젓가락으로 꼬막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그런데 다 맛있어요.” “넌 뭐가 맛이 없니.” 테이블 옆에는 쌀자루가 가득 쌓여 있었는데 박찬일 셰프는 그 쌀자루에 기대 막걸리를 마셨다. 그 모습이 덕충식당 주인인 듯 잘 어울렸다. “형님은 꼭 이 집 주인 같습니다.” 레이먼 킴 셰프가 말했다. “고맙다. 좋게 봐줘서.” 박찬일 셰프가 답했다. “끝까지 성실하게 마십시다.” 내가 말했다.

나온 반찬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두 그릇‘밖에’ 안 시킨 밥도, 서대회무침도 양념에 비벼 싹싹 닦아 먹었다. 이 집의 압권은 김치찌개다. 푹 삶아진 김치는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될 정도로 부드러웠다. 고기도 푸짐하게 들어가 있었다. 적당히 달고 매웠다. 반찬의 양념은 짜지 않았다. 입에 쩍쩍 붙었다.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밑간도 확실히 해서 맛이 골고루 뱄어요.” 레이먼 김 셰프가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조금 전과는 전혀 딴판으로 셰프다운 표정이다. 가끔 이런 말을 할 때는 요리사 같단 말이야. 
 
덕충식당
주소: 전남 여수시 공화남3길 9
전화: 061 664 7838
가격: 백반 6,000원, 서대회 1만원




41번 포차에서의 저녁


저녁 7시20분, 우리는 봉산동 ‘41번 포차’의 드럼통 탁자에 둘러앉아 있었다. 박찬일 셰프가 우리를 이곳에 데리고 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현지인들만 찾는 곳이었지만 박찬일 셰프가 그의 책 <백년식당>을 비롯해 매체 여기저기에 소개하면서 여행자들도 제법 찾아 들게 됐다(41번 포차에는 좋은 일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집이 알려지는 게 꼭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41번 포차의 선어회 대짜. 어른 넷이 먹어도 남는 양이다. 옆에 깔리는 반찬도 어느것 하나 맛있지 않은 것이 없다


박셰프는 2008년 차가운 겨울 어느 날, 후배들과 여수에 여행을 왔다가 이 집을 알게 됐다. 당시 여수 연등천을 따라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는데 41번 포차도 그 늘어선 집 중 하나였다. 술꾼들의 저녁을 책임지던 연등천 포장마차는 지금은 사라지고 박덕자 여사가 운영하던 41번 포차도 이곳 봉산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8년의 일이다. 박찬일 셰프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그때 우리는 여수식 미식의 정점을 맛보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기개 넘치는 표현이다. “푸른 반점이 번뜩이는, 은빛의 거대한 삼치가 냉장 쇼케이스에 누워 있었고 독병어(덕자의 다른 이름)와 붕장어, 닭발 같은 아름다운(?) 안주들이 그득했던 것이다.” 아름답고도 비장한 문장이다. 

“선어회 큰 걸로다가 한 접시 썰어 주세요.” 박찬일 셰프가 수저통을 열며 말했다. 단골집에서는 단골손님한테 주문을 맡기는 게 제일이다. 여수에서는 활어회를 잘 먹지 않는다. 현지인들은 선어로 먹는다. 새벽에 들어온 생선을 받아다 적당히 숙성시켜 그날 밤에 판다. 병어, 민어, 삼치가 그득하게 올라간 회 접시가 나왔다. 역시 병어는 여수에서 먹어야 한다. 시루떡처럼 무른 살에 이가 깊숙하게 박히는 느낌이 좋다. 삼치도 기름지다. 꼭 겨울이 아니어도 지금도 맛있다. 

데친 꼬막, 찐감자, 삶은 달걀, 갈치속젓, 돌게찜, 갓김치, 열무김치 등도 회 접시 옆에 가득 깔렸다. “아니 이런 걸 많이 주면 누가 안주를 시켜 먹어요?” 레이먼 김 셰프가 물었다. “장사도 장사지만 그래도 속이 든든해야 술을 많이 마셔도 속을 안 버리지.” 아주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근데, 테레비에서 많이 봤는데, 에이먼인가 레이먼인가 하는 요리사 아닌게벼?” “네, 맞습니다.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이먼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우리는 쉴 새 없이 술잔을 채웠고 젓가락을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역시 여수에 온 보람이 있군. “딱 잘라 말해서 여수에 와서 41번 포차에 오지 않으면 여수에 온 의미가 없다.” 얼큰하게 술에 취한 박찬일 셰프가 이렇게 말했던 것만 희미하게 기억한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난 우리는 ‘자봉식당’에서 백반으로 해장을 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를 탔다. 음, 그런데 말이다. 생각해 보니 우린 여수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거 같다. 여수 밤바다도, 오동도 동백도, 향일암도 아무것도. 거문도에도 가질 못했다. 


만성리 검은 모래 해변의 이국적인 풍경


나이가 드니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닐 필요가 있나 싶다. 그냥 귀찮고 번잡할 뿐이다. 여행을 가서도 맛있는 음식이나 먹고 낮술이나 마시면 더 좋고, 가 봐야 별것 있겠어 하고 적당한 변명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다. 여행이 이래도 괜찮은 걸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뭐 괜찮겠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 책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열심히 여행을 한다고 당나귀가 말이 되는 건 아니다. 박찬일 셰프에게 물었다. “형, 여행을 열심히 한다고 요리사가 더 좋은 요리사가 될까, 여행작가가 더 좋은 여행작가가 될까?” 박찬일 셰프가 답했다. “더 좋은 여행작가가 되겠지, 임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아무튼 탐식도시는 이렇게 시작된 일이다.  

41번 포차
주소: 전남 여수시 봉산남3길 17
영업시간: 매일 16:00~03:00, 일요일 휴무
전화: 061 642 8820
가격: 해물삼합 5만원, 양념삼합 4만원, 삼치 5만원
홈페이지: 41pocha.modoo.at


*세 남자의 탐식도시에는 3명의 남자가 함께합니다. 최갑수 작가, 레이먼 김 셰프, 박찬일 셰프. 맛을 느끼고, 분석하고, 쓰는 사람들의 여행 이야기입니다. 가끔은 술 냄새가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그냥은 못 지나칠 먹거리들이 가득하니까요. 도시의 맛을 탐식하러, 지금 세 남자가 떠납니다.



 글·사진 최갑수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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