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남포동
부산 남포동에 왔다. 오랜만이다. 도대체 얼마 만인가. 30년 전 여기서 많이 놀았다. 고등학교 시절, 주말이면 부산극장에서 영화를 봤고 국제시장 먹자골목에서 김밥과 어묵, 떡볶이로 배를 채웠다.
대학교 시절에는 전경에게 쫓기며 남포동 거리를 뛰어다녔다. 자주 남포동으로 나가 ‘가투’를 벌였고 그만큼 자주 최루탄 냄새를 풍기며 자갈치 시장으로 숨어들었다. 전경들이 물러가면 아지매들은 우리에게 생선과 오징어를 듬성듬성 썰어 소주와 함께 내주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와 맨날 데모질이고.”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먹자골목도 그대로고 국제시장도 그대로다. 자갈치 시장도 그대로다. 다만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바뀌었을 뿐이다.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만두를 내는 도시
“부산에 왔으니 만두부터 먹어야지!” 부산역에 내려 박찬일 셰프가 이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부산 하면 돼지국밥 아닌가요?” 레이먼 킴 셰프가 물었다. “아니야, 부산은 만두의 도시야.” 내가 답했다.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에 신발원, 홍성방, 마가등 만두를 잘하는 중국집이 늘어서 있다. 우리는 어느 집 문을 열고 들어가 군만두를 시켜 놓고 맥주를 마셨다. 만두피는 탄력 있고 만두소는 넉넉했고 육즙은 풍부했다. 군만두를 한 입 베어 물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니 여름이 고맙게 느껴졌다.
부산은 만두의 도시다(라고 생각한다). 내공 있는 만두집이 서울보다 많다(고 생각한다). 구포역 앞 ‘금릉’, 대신동 ‘편의방’ 등 부산의 오래된 동네 곳곳에 만두집이 숨어 있다. 동광동 코모도 호텔이 보이는 언덕길에 ‘석기시대’라는 만두집이 있다. 초록색 간판에는 ‘만두, 오향장육’이라고만 크게 쓰여 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테이블 서너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가게 한켠에서 런닝셔츠를 입은 아저씨가 묵묵히 만두를 빚고 있다. “군만두 하나, 오향장육 하나 주세요!”라고 주문한다.
오향장육이 먼저 나왔다. 쫀득쫀득하게 삶아진 고기가 잘 씹힌다. 다진 마늘이 듬뿍 올라가 있어 풍미도 좋다. 곧이어 군만두도 나왔다. 크기가 실하다. 하얀색 접시 위에 노릇하게 잘 튀겨진 만두 10개가 올라 있다. 요즘 만두의 개수가 점점 줄어들어 불만인데, 10개가 올라간 만두 접시는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맛있었다. 만두를 잘한다는 서울의 유명 중국집보다 훨씬 나았다. 오향장육 소스에 군만두를 찍어 먹어도 맛있다. 만두를 가져다준 후 주인아저씨는 묵묵히 주방에서 다시 만두를 빚고 계셨다. 이런 실력자가 왜 강호로 나가지 않는가.
석기시대
주소: 부산 중구 동광길 113
영업시간: 매일 12:00~24:00
전화: 051 465 0358
가격: 군만두 5,000원, 오향장육 1만2,000원
영도 ‘복성만두’는 깡깡이 마을 골목에서 40년째 군만두를 팔고 있다. 아침 9시에 가서 군만두와 찐만두 그리고 만두 백반을 시켰다. 부산 사람들은 만두 백반을 즐긴다. 사골육수로 만든 만두국에 백반, 단무지와 김치가 함께 나온다.
경상도와 부산에서는 만두국에 밥을 ‘원래’ 말아먹는다. 레이먼 킴 셰프가 말했다. “만두 백반은 처음 먹어 봐요.” 밥을 말려는 그의 손을 잡았다. “일단 만두부터 먹고. 만두가 하나 남았을 때 그걸 톡 터뜨려서 국물에 풀고 밥을 마는 거지.” 만두 백반을 먹는 방법이다. “이 집 찐만두는 제가 먹은 찐만두 중에 제일 맛있어요.” 레이먼 킴 셰프의 감탄은 진심이었다.
복성식당
주소: 부산 영도구 대평로34번길 5-8
영업시간: 매일 09:00~19:00
전화: 051 412 9468
가격: 만두백반 3,500원, 찐만두 3,000원
만두로 배를 채우고 후식으론 낙곱새를 먹었다. 서울에도 낙곱새를 파는 집이 많은데 원조는 부산이다. 낙곱새는 낙지와 곱창, 새우를 한 냄비에 넣고 끓이는 전골이다. 중앙동에 ‘옹골찬’이라는 낙곱새 가게가 있다.
메뉴는 단출하다. 낙지볶음과 낙곱새. “메뉴가 적은 집일수록 맛있을 확률이 높지.” 박찬일 셰프가 말했다. 미역줄기볶음, 정구지(부추)무침, 깍두기 등 밑반찬이 깔끔하다. 그리고 낙곱새가 푸짐하게 담긴 냄비가 보글보글 끓으며 나온다.
하얀 밥이 담긴 대접을 하나씩 내준다. 여기에 낙곱새 한 국자를 붓고 김가루를 뿌려 비벼 먹는다. “사실 이거 다 알고 누구나 예상하는 맛이죠. 그래도 먹을 때마다 맛있죠.” 레이먼 김 셰프가 밥에 낙곱새를 넣어 비비며 말했다. “여기 소주 한 병요!” 내가 말했다. 박찬일 셰프는 맛을 설명하고, 레이먼 킴 셰프는 음식을 먹는다. 나는 주로 술을 주문한다. 이게 세 남자 각자의 역할이다.
옹골찬
주소: 부산 중구 대청로141번길 9
전화: 051 462 7002
가격: 낙곱새 8,000원, 낙곱볶음 8,000원
롯데팬입니꺼?
자갈치 시장 앞에는 진주식당과 오복식당, 할매집 등 고등어 백반을 내는 집이 나란히 서 있다. 고등어 백반을 시키면 탁자 위에 반찬 대여섯 가지와 된장국, 공기밥이 오른다. 한가운데에는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가 담긴 접시가 놓인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렇게 차린 상이 5,000원이다. “이런 밥상 앞에선 괜히 미안타.” 박찬일 셰프가 말했다. “그러니까 막걸리라도 마십시다!” 레이먼 김 셰프가 말했다.
우리는 공기밥을 물리고 그 자리에 막걸리 사발을 놓았다. 그때는 야구가 막 시작될 때였고 우리는 야구 이야기를 했다. 부산이니까 당연히 롯데 자이언츠가 화제에 올랐다. “마, 5월 자이언츠는 양키스도 못 이긴다 아입니꺼!” 내가 경상도 사투리로 말했다. 나는 고향이 부산 옆 김해다. 갑자기 옆자리 어르신이 “롯데팬입니꺼?” 하며 막걸리 두 병을 갖다 주었다. 부산은 자이언츠 선수의 아들이 반에서 꼴찌를 해도 아빠가 자이언츠 선수라는 이유만으로 전교 회장을 할 수 있는 도시다. 아무튼 그렇다.
진주식당
주소: 부산 중구 자갈치로23번길 6
영업시간: 매일 03:00~21:00
전화: 051 246 2617
가격: 고등어 정식 5,000원, 갈치 7,000원
막걸리 몇 병을 비우고 우리는 고기를 먹으러 갔다. 나이가 들고 그럭저럭 지갑 사정이 나아지면서 쇠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부산에서 즐겨 먹던 갈빗살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여행작가로 오래 일하면서 지역마다 선호하는 고기 부위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쇠고기도 마찬가지. 예를 들자면 등심은 서울과 경기 지방 사람들이 좋아한다. 호남 지역에서는 홍두깨살이나 우둔살을 즐겨 먹는다.
경상도에선 갈빗살을 최고로 친다. 그래서 갈빗살 중 가장 좋은 고급육은 이 지역으로 몰린다. 등심과 안심은 애써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토시살, 안창살, 제비추리 등 이른바 특수부위에 환호하는 마니아들도 많다. 구워 먹는 생고기로는 그리 인기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생활하며 별맛도 없는 등심을 왜 먹지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꼬소한’ 갈빗살을 놔두고 이렇게 밋밋하고 비싸기만 한 고기를 먹다니. 연탄불 위에 길쭉하게 올려진 갈빗살을 젓가락으로 둥글둥글 구워 먹다 보면 소주가 끝도 없이 들어간다. 여기에 자투리 고기인 ‘기레빠시’를 푸짐하게 넣고 끓여 낸 된장찌개를 곁들이면 빈 소주병은 테이블 위에 끝없이 쌓이게 된다.
부산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부위는 갈빗살 말고 또 있다. 바로 양곱창이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에서도 준석(유오성)이 서울로 유학 갔던 친구 상택(서태화)을 만나 회포를 푸는 곳이 바로 양곱창집이다. 철판에 지글지글 익어 가는 곱창과 대선소주를 마시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부평동 시장에 양곱창집이 늘어서 있다. 밤에 이곳을 찾으면 손바닥을 비비며 삼삼오오 모여 좌판에서 양곱창을 구워 먹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부산의 양곱창은 서울과는 약간 다르다. 고춧가루 양념을 하지 않는다. 대창, 소창, 염통이 한번에 나오는데 한꺼번에 번철에 올리고 지글지글 굽는다. 가격도 싸서 모둠구이 큰 것이 4~5만원 선이다. 곱창이 구워지며 기름이 뚝뚝 떨어진다. 고소한 연기가 길가를 가득 메워 지나가던 행인들이 자기도 모르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우리가 찾은 집은 ‘대양양곱창’이다. 석쇠 위에 두꺼운 양을 푸짐하게 올리고 구웠다. 질겅질겅 씹는 맛이 대단하다. 고소한 육즙도 가득 머금고 있는 데다 기름도 풍부하다. 마무리는 매콤한 전골에 말아 먹는 우동이다. 소주잔 채우기를 그만두려 하지만 이 국물 안주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몇 병을 비우게 된다.
대양양곱창
주소: 부산 중구 자갈치로 27
영업시간: 매일 12:00~00:00
전화: 051 248 4758
가격: 소금구이大 5만원, 양볶음밥 1만원
빙장회를 아시는지요
여기는 부산 영도의 ‘멍텅구리’라는 횟집이다. 외진 골목 안쪽에 숨어 있다. 창문에 메뉴를 써 놓았는데, ‘빙장회’라는 것이 있다. “빙장이라는 생선은 처음 듣네요.” 레이먼 김 셰프가 말했다. “빙은 얼음 빙(氷)이고 장은 저장한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얼음에 저장한 회, 즉 얼음을 채워 재워 둔 회를 말하는 거지. 과거 냉장고가 없을 때는 얼음에 보관했으니까.”
회는 그날그날 달리 나온다. 학꽁치, 오징어, 병어 등등 때에 따라 많이 잡히는 것이 오른다. 2만원인데 푸짐하다. 죽은 물고기이니 당연한 가격이다. 그렇다고 맛이 덜한 건 아니다. 빙장회는 빙장회만의 맛이 있다. 굳이 활어회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회가 많다.
살짝 얼었다 녹은 한치회는 입에 넣었을 때 치즈가 녹는 것 같다. 큼직한 우럭회는 우럭을 이렇게 질겅질겅 씹은 적이 있을까 할 정도로 굵었다. 회도 회지만 이런 집의 특징은 ‘옆에 깔려 나오는’ 반찬이 맛있다는 것. 홍합이 푸짐하게 들어간 미역국은 그것만으로 소주 한 병을 비울 수 있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러고 보니 맛이 있다, 없다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은 맛이 있네, 없네를 따지던 그때에서 한 발자국 지나온 것 같다. 나이를 먹었다는 뜻이다. 나이를 먹어 좋은 건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나이를 먹는 것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이를 먹어 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기지만 나이가 들어야만 할 수 있는 것, 또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생겨난다.
조미료가 가득 든 음식을 구별할 수 있게 되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서 먹을 줄 알게 되고, 사람과 풍경을 한 걸음 물러서서 볼 줄 알게 된다는 것.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디테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걸 뭐라고 먹냐며 타박했던 음식을 지금은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도 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점점 까다로워진 것도 있지만 너그러워진 것도 있다. 가령 지금 먹고 있는 빙장회 같은 것. “이런 회는 막장에 푹 찍어서 묵어야지요.” 내가 아는 척을 했다. 부산에서는 초장과 된장을 섞어 참기름을 뿌리고 다진 마늘까지 넣은 ‘무지막지한’ 장에 회를 찍어 먹는다. “와사비를 푼 간장에 살짝 회를 찍어 먹는 건 싸나이의 법도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나는 큼직한 회 한 점을 집어 막장에 푹 찍어 상추 위에 올렸고 다시 마늘 2개와 고추를 더 올렸다. 그리고 그 쌈을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맛있었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맛이었다.
멍텅구리
주소: 부산광역시 영도구 남항동2가 206-4
영업시간: 매일 12:00~22:00
전화: 051 415 2421
가격: 빙장회 2만원, 섞어볶음 3만원
최갑수 작가의 탐식도시
최갑수 작가의 탐식도시에는 3명의 남자가 함께합니다. 최갑수 작가, 레이먼 킴 셰프, 박찬일 셰프. 맛을 느끼고, 분석하고, 쓰는 사람들의 여행 이야기입니다. 가끔은 술 냄새가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그냥은 못 지나칠 먹거리들이 가득하니까요. 도시의 맛을 탐식하러, 지금 세 남자가 떠납니다.
글·사진 최갑수 에디터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