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달은 내 인생의 변혁기였다.
여행을 떠나기 어려우니 작년엔 매일같이 뭔가를 먹어 댔고,
후유증인 비만과 비용의 폐해를 감당하기 어려워
크나큰 결심을 하고 말았다.
중고 86인치 LG TV
당장 넷플릭스에 가입했으며, LG전자의 86인치 TV를 (사용 기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중고로 샀고, 타일랜드(태국)제 피쇼(생선포)를 커다란 봉지로 주문했다. 어차피 산 지 14년이 넘은 TV도 고장이 났거니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좀 쑤심’ 증상을 ‘시각’으로 극복해 보려는 속셈이었다. 이는 옳지 못한 선택이었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카드 할부금으로 남았다.
대체 왜 효과음까지 죄다 자막 처리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넷플릭스 시스템은 넓디넓은 TV 사양과 당최 어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방은 좁았고 당연히 초점거리는 맞지 않았다. 내 시선은 디스플레이 속 화자(話者)의 얼굴과 아래에 자욱한 자막을 번갈아 찾아 보려 방영 내내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차량 뒷좌석 강아지 인형처럼.
서너 명이 동시에 등장하는 영화 <승리호>의 경우, 더욱 정신 사나웠다. ‘태호(송중기)’와 ‘장선장(김태리)’을 화면에서 겨우 찾아내고 나면, 대사를 하는 유해진이 안 보인다. 맨 가장자리 빼빼한 로봇이었다. 그나마 한국어 대사까지는 괜찮다. 우주 청소차가 날아다니는 신에선 어디선가 따갈로그어도 들리고 중국어와 러시아어도 나온 것 같다.
난 누가 말하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폭발음이 들린다, 타이거 박이 문밖에서 외친다, 끼이익 철문이 열린다’ 정도의 자막은 없어도 되지 않을까. 아무튼 매직큐브를 맞추는 데 실패한 초등학생처럼 난 TV 시청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좀은 여전히 몸을 쑤셔댔고 내 휴일(아니, 몸)은 바깥에서 뭔가를 먹는 것으로 다시 채워졌다. 아마도 ‘사용 기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86인치 LG TV’는 나와 같은 과정을 조금 더 일찍 겪은 누군가가 샀다가 되판 것이 틀림없다.
반영구 문신의 기억
돌이켜보니 내게 그 많았던 여행 경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소재는 음식이었다. 각 여행지의 주인공이었던 음식들이 머릿속을 스친다. 생각해 보면 내 여행은 스티치(Stitch)나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일정이 움직였다. 뭔가를 먹고 다시 어디를 이동해 식당 테이블에 앉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아! 그 중간에 잠도 자고 사진도 찍었고 체험도 했다. 당시 사진 폴더를 들춰 보고 기사를 읽어 보니 내가 작성한 사진과 글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기억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다만 음식에 대한 인상만큼은 반영구 문신처럼 선명히 남았다.
중국 산시성 핑야오 고진 낡은 음식점에서 도삭면을 사 먹었으며, 쓰촨의 탄탄면을 먹고 난 후 당장 혀를 잘라버리고 싶었던 기억도 고스란히 난다. 더욱 기억에 남는 것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막시미르 공원 앞에서 샀던 ‘세상에서 가장 비싼 군밤’이다.
일본 음식은 여러 지역을 감안하더라도 대체로 입에 맞았지만, 지갑과는 맞지 않았다. 덮밥 한 그릇에 9,800엔이라니. 맛은 좋았지만 추억은 그 가격과는 별로 상관없는 것 같다. 하나에 500숨(당시 약 450원)밖에 안 하는 사마르칸트(우즈베키스탄)의 샤슬릭은 굉장히 맛이 좋았고, 코친(인도)의 길거리에서 사 먹은 바나나 튀김은 100루피(약 1,500원)였지만 사흘 동안 먹을 수 있을 만큼 퍼 줬다. 나를 포함한 가난한 동양인 여행자들은 식비를 아끼기 위해 노르웨이 올레순 슈퍼에서 산 차가운 치킨 한 조각을 받아 들고도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다.
당최 유럽의 짠 음식은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선 지우개를 튀겨 줬고 슬로베니아에선 소금에 절인 소금에다 약간의 고기를 섞은 음식을 내 줬다. 게다가 완벽하게 방수(?)가 되는 북부 독일의 빵은 아무도 흘리지 않고서는 먹을 수 없도록 고안됐다. “식용 코르크를 주세요”라 해도 알아들을 것 같았지만 프랑크푸르트 사람이 경기 화폐를 받아든 것처럼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을 뿐이다.
슬로베니아와 오스트리아 등 유럽 내륙 국가의 민물고기 필레는 특히나 싫은 음식이다. 그들은 왜 어탕국수를 배우려 하지 않는가. 보이지 않도록 철저히 숨겨놓은 가시는 가늘지만 단단했다. 식도를 가로지른 출렁다리를 세울 만큼 탄력 또한 대단했다. 다 먹었다며 스스로 대견해 하는 순간, 잇몸을 찌르는 마지막 가시는 어금니 사이에 끼는 바람에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야 뺄 수 있었다.
국산 나폴리탄
“고지혈 1인분과 모둠 당뇨 플래터, 그리고 통풍 샘플러 세트를 주세요” 열대 음식이란 것은 또 어땠나. 대부분 튀긴 것 일색인 데다 달기까지 하다. 바나나 튀김까지는 그나마 괜찮다. 멀쩡한 망고는 왜 으깨서 멀쩡한 음식 위에 뿌릴까. 필리핀의 악어 꼬리 스테이크는 그럭저럭 먹을 만은 했지만 졸리비(패스트푸드 체인점)보단 맛이 없었다. 세부 졸리비에서 파는 마늘밥과 곁들인 닭다리는 과일에 질려버린 내게 꿀맛으로 다가왔다. 수백만 킬로칼로리는 족히 될 듯한 블루베리 팬케이크에다 조금 더 열량을 가미할 작정으로 누텔라를 뿌려 먹었던 곳은 샌디에이고 라호야 비치에 위치한 ‘코디스 라 호야’ 카페였다. 며칠 더 묵었다면 그 지역 명물 물개가 될 뻔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햄버거는 역시 본토 미국이 최고다.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사 먹었던 ‘밍크고래 버거’나 핀란드 키틸라의 ‘순록 버거’는 그냥 관광상품일 뿐이다. 샌디에이고 버거 라운지나 소살리토 버거, 인앤아웃 버거는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을 정도의 맛과 엄청난 칼로리를 과시했다. 특히 고혈압과 당 수치를 급격히 올릴 요량으로 치즈를 듬뿍 끼얹어 주는 인앤아웃의 애니멀 스타일 프렌치 프라이의 열량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현재 내가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매번 근사한 식사만 했던 것은 아니다. 중국 칭다오에서 맛본 매미 유충은 굉장히 풍부한 육즙을 품었으나 끝맛이 비렸으며 청두의 백조 고기 훠궈는 질기고 손톱을 물어뜯을 때처럼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페루 쿠스코에서 맛본 기니피그(꾸이)는 꼬리만 짧지 쥐랑 똑같이 생긴 데다(왜 피그일까?) 배꼽을 후볐을 때 나는 냄새가 났다.
내 혀와 위장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도 멀쩡했다. 미뢰(혀의 돌기)로 여행기를 기록할 정도가 됐다. 여행지에서 먹었던 식사는 지금의 뇌로 올라가 여행의 추억으로 단단히 봉인됐다. 어쨌든 땅속에서 7년을 기다린 애벌레의 비린 맛은 이미 가셨고 그날의 경이로움이 대신 남은 셈이다. 팬데믹의 그림자 속 나는 지난해 외국 음식점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꽤 많은 외국의 메뉴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서울이란 곳은. 유학을 통해 현지 맛을 재현해 내는 집도 적잖다. 하지만 공복으로 전환되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여행의 추억’으로 남지 못한 칼로리다. 꼭 VR 여행 따위를 체험한 느낌이다. 그 행복했던 여행의 식사란 이렇다 할 대체재가 없다. 넷플릭스가 여행 결핍을 메울 수 없는 것처럼. 그저 라면이나 끓여 케첩을 푹 짜 넣고 SNS에 ‘나폴리탄’이라 우길 수밖에.
*이우석의 놀고먹기
‘저세상’ 유머 코드와 황당한 상황극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우석 소장은 오랜 신문사 기자 생활을 마치고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를 열었다. 신나게 연구 중이다. 인스타그램 playeatlab
글·사진 이우석 에디터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