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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Oct 21. 2021

고구마 전분 공장의 변신,
제주 모슬포 카페 '감저'

제주도의 전분공장


고구마를 발효한 후 증류하면 95% 농도의 무수주정(알콜)을 얻게 된다. 일제는 제주도에 고구마재배를 강요했고 많은 주정 공장을 세웠다. 주정으로 항공기 연료로 쓰일 부탄올과 아세톤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고구마 생산량이 많아지니 자연 전분 공장도 생겨났다. 감저를 얇게 썰어 말린 것을 뻬떼기라고 한다. 농가에서 생산된 고구마는 빼떼기 형태로 전분 공장에 보내졌다. 그 빼떼기는 오랫동안 제주도민의 생활 간식으로도 이어지게 된다.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한동안 제주도는 우리나라 고구마의 최대 생산지였다.



제주도에서는 고구마를 ‘감저’라 하고 감자는 ‘지슬’이라 부른다. 60~70년대까지만 해도 감저는 보리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작물이었다. 가을에 수확한 감저는 ‘감저눌’에 보관했다. ‘감저눌’은 1.5m 깊이의 구덩이로 바닥에는 짚을 깔아 냉기와 습기를 차단했다. 감저눌에 보관된 감저는 적은 온도변화 덕에 익년 2월까지 썩지 않고 온전한 상태를 유지했다. 이렇듯 감저는 벼농사를 지을 수 없는 제주민들의 겨울 식량을 대신했다.

한편, 전분 찌꺼기를 전분박이라 한다. 전분박은 과거 집마다 한두 마리씩 키웠던 돼지의 먹이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집이 개량되고 새마을 운동 등으로 돼지우리가 철거되면서 전분박의 처리가 어려워졌다. 결국, 인근 바다로 방류를 시작한 전분박은 점차 해양오염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또한 70년대 중반부터 농업구조가 서서히 감귤 중심으로 바뀌면서 감저의 재배면적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90년대 들어 값싼 수입 전분이 시장을 차지하면서 전분 공장은 모습을 감추게 된다.



카페 ‘감저’


제주도에는 옛 전분공장을 레너베이션해서 카페로 운영 중인 시설이 2곳 있다. 한림면 옹포리의 '앤트러사이트'와 대정읍 동일리의 카페 ‘감저’가 그것이다.



카페 ‘감저’는 1964년 건축되어 80년대 초까지 운영되었던 전분 공장의 2,000평 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옛 건조장 건물은 카페, 창고는 갤러리로 재탄생하였다. 카페 ‘감저’의 김재우대표는 과거 공장 운영주의 2세다. 한동안 방치되었던 시설을 부인 원정희씨와 함께 10년 가까이 리모델링하였다. 하지만 김재우 대표 스스로가 “사실 거친 부분은 그대로 남아있고 바뀐 거라고는 유리창 정도죠.”라고 말할 만큼 카페는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카페 내부는 매우 인상적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천정까지 닿을 듯한 커다란 전분 기계를 먼저 만나게 된다. 수십 년은 되었을 기계의 역사는 카페 ‘감저’의 가치를 상징하는 듯하다. 카페는 넓고 쾌적한 공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심함이 돋보인다. 유리 벽 너머 시멘트 블록이 옛 모습 그대로 서 있는가 하면 당장이라도 인부들이 달려들어 작업을 시작해도 좋을 것 같은 공장의 시설물이 그대로 노출돼있다. 작은 콘서트가 어울릴 계단식 좌석과 녹음이 흘러내린 창가의 테이블도 시선을 강탈한다.



감저팩토리& 사진창고


카페 옆에는 ‘감저팩토리’라는 건물이 있다. 옛 공장의 기계실이다. 실제로 사용하던 기계와 장비가 그대로 놓여있는 건물 내부는 마치 박물관과 같은 느낌이 든다. ‘감저팩토리’는 화산석과 검은 모래로 시공된 건물이다. 제주의 풍토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돌 건축물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카페 ‘감저’의 갤러리는 ‘사진창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외벽은 인증샷을 찍기에 매우 좋다. 담쟁이덩굴이 온통 초록으로 덮고 있는 벽면 앞에는 하얀 나무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였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문을 닫았던 ‘사진창고’에서는 제주살이 4년 차의 영국 사진작가 사이먼 데이비스의 ‘미완의 업무’라는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미완의 업무’는 완성되지 않은 주거환경과 그로 인한 제주의 생채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김재우 대표는 카페 ‘감저’가 서귀포, 중문 등에 비해 조금은 위축돼있는 대정읍의 문화를 재생하고 알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문화는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이 좋잖아요. 조금은 어려워도 상업적으로 매몰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릿느릿 만들어 갈 겁니다.”



육지의 문화가 밀물 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제주도에 제주다움을 지켜가는 카페 ‘감저’가 있어 참 다행이다.

마라도나 가파도를 다녀온 후 모슬포를 떠나기 전, 카페 ‘감저’에서 커피 한잔 어떠세요?



감저카페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대한로 22 감저카페 
영업시간 : 평일 10:30 - 18:30 (6시주문 마감) /월요일 휴무 휴무
전화: 064-794-5929
인스타그램 kawjcafe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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