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해결해 줬다는 말

그 말이 생략한 것들

by 이연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시간이 다 해결해 줬다고. 그 말이 전부 틀렸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정확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은 많은 것을 지나가게 하지만, 무엇을 해결했는지는 늘 불분명하다. 우리는 결과를 보고 시간을 말한다. 그 사이에 있었던 결단이나 망설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포기와 유지에 대해서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시간이라는 말은 그 모든 과정을 한 번에 덮어버리기에 편하다.


그 말속에는 묘한 안도가 있다. 누군가의 삶이 어느 정도 정리된 것처럼 보일 때, 그 원인을 그 사람이 아니라 시간에 두면 우리도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력이나 분투를 구체적으로 떠올리지 않아도 되고, 혹시 자신이 놓치고 있는 감각이 있는지 굳이 점검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시간이 해결해 줬다는 말에는 항상 많은 생략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시간은 그저 흘렀을 뿐, 그 시간 안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일은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일어났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하루의 리듬을 조정했고, 감정이 넘치지 않도록 말을 줄였고,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들도 있었다. 그런 일들은 보통 이야기되지 않는다. 이야기되기에는 너무 조용하고, 자랑하기에는 너무 사소하다. 설명하려 들면 오히려 왜소해지는 종류의 일들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시간이 해결했다는 말이 남고, 시간을 살아낸 사람은 사라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악의 없이 이 말을 쓴다. 다만 이 말이 삶을 이해하는 방식 중 가장 간단한 쪽에 가깝다는 생각은 한다.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특히 잘 견뎌낸 삶일수록 그렇다. 어떤 시간은 지나간 뒤에야 정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애써 균형을 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기울어도 무너질 수 있기에 아주 작은 각도를 유지하려 애썼던 시간.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시간. 그 시간의 결과를 오롯이 시간의 공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많은 분투가 그 안에 담겨 있다.


나는 타인의 삶을 바라볼 때, 내가 보지 못한 시간을 함께 떠올리려고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선택, 내가 듣지 못한 망설임, 내가 경험하지 않은 하루의 밀도가 그 사람에게 있었을 거라는 전제를 가능하면 내려놓지 않으려고 한다. 함부로 단정하지 않기 위한 내 나름의 기준 같은 것. 그 기준이 생긴 건 내 삶을 돌아보면서부터였다. 내 삶 역시 겉으로 보기엔 시간이 알아서 정리해 준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날은 없었다는 것을.


크게 말할 내세울만한 일은 없었다. 다만 매일 조금 덜 흔들리기 위해 애썼고,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고, 지나치게 설명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모양이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해결했다’는 말보다 ‘시간을 살았다’는 말이 좋다. 시간은 흐르지만, 그 시간을 통과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버티고, 누군가는 내려놓고, 누군가는 자기 자리를 지킨다.


과정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설명되지 않았다고 해서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산다. 그 시간은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지나가고, 기록되지 않아도 쌓이며, 이야기되지 않아도 분명히 그 사람 안에 남는다. 나는 이제 그 시간을 쉽게 요약하는 말보다는 단단하게 다져진 침묵을 조금 더 오래 살펴보려 한다. 그게 내 삶을 대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하니까. 시간이 흘렀다고 말하기 전에, 그 시간 안에 있었던 사람을 한 번쯤 떠올려보는 것. 그 정도의 지연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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