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문을 나서며, 문득 자기 자신이 어렸을 적의 기억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떠 올렸다.
손에서 미끄러져 자동으로 닫히는 오피스텔의 철문을 놓으면서 ' 그러네, 초등학교때 친구들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네?' 라는 생각을 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 '그때 반장 녀석이 누구였더라? '
'아, 맞다. 기태 녀석이었구나' 희미한 연기처럼 기태의 안경 쓴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랐지만, 금방 사라져 버렸다.
문이 열리고, 정문을 나서자 추위가 내 옆구리를 훅 하고 파고 들어서, 내 얼굴까지 툭 치고 지나가 버린다.
'아..겨울이구나'
' 가만, 내가 무슨 반이었었지?, 맞다, 국화반이었다'
그때 반이 숫자가 아니라 꽃 이름이었다는 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게 신기했다. 반 이름에 맞는 선생님 얼굴도 떠올랐지만, 금방 미간에 금이 갔다.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면서, 초등학교때 기억에 남을만큼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없다는 게 떠올랐다. '설마, 제대로 기억나는 친구가 없을까?' 하면서 기억해 보려고 했지만, 짝사랑했던 소희 하나 빼고는 제대로 기억 나는 애들이 없었다.
어느덧 3개의 횡단보도를 건넜다. 앞으로 같은 수의 신호만 기다리면 되는 거다.
'왜 나는 이렇게 초등학교때 기억이 없지? 내가 무언가 어두운 시절을 보냈던 것이 틀림없어.' 다시 생각해 보니, 왜 내가 그렇게 기억을 못하는 건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아침부터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는 주인들의 힘찬 발걸음을 뒤로 하고, 커다란 공원 부지를 가로 질러서 사무실에 다다 랐다.
자취 오피스텔을 회사와 너무 가깝게 옮긴 탓에 이렇게 짧게 도착한다.
출 퇴근 시에는 직장 모드와 가정 모드의 전환을 위해 최소한의 거리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인사팀에 요청했건만, 일의 효율성을 핑계로 그들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오피스텔을 얻어 준 것이다.
그 짧은 거리 사이에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모드를 전환하며 출퇴근을 해내야 하는 것이다.
'아, 내일은 중학교때 일을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라면서 엘리베이터에서 13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