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 대작전(1)

글쓰기 연습 82

by 프라하

서울에 거주하는 나는 10여 년 전 지방에 투자용으로 10평 남짓되는 조그만 아파트를 매입했다.

20년이 훨씬 넘은 낡은 아파트는 팔아야 하는데, 정부의 규제도 규제지만 가격이 점점 떨어지고 있고,

매도 타이밍도 놓쳐 시간만 흐르고 부담만 커져가는 상황이다.


완공한 지 20년을 넘기니, 이곳저곳 아파트 관리에 문제가 많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보일러도 교체했고, 도배와 화장실 타일 교체도 몇 년 전에 단행했다.

그런 즈음에 요번에는 윗집 화장실에 누수가 발생, 세입자가 불편해서 수리해 달라는 전화를 여러 번 했다.

이번만 세 번째였다. 그것도 같은 부위로. 웬만해선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지 않던 나는 세입자의 반복되는 불만에 터지고 말았다.


자꾸 같은 곳에서 누수가 발생해서 화가 날대로 난 상태로 윗집 주인에게 전화하여 엄청 뭐라고 해댔다. 수리 업체도 전문가 소개 플랫폼에서 내가 섭외 소개해서 상황을 마무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누수 공사가 진행될수록 사건의 발단은 다른 곳에서 빌생했다.

내가 섭외한 누수 업체 사장은 윗집 주인과 내 사이를 잘 중재하면서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의 발단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됐다.


" 안녕하세요. 지난번 누수 공사 진행하던 K업체입니다. 누수 공사는 잘 진행되고 있는데,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 누수 업체 사장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무슨 일일까? 내가 할 것은 없는데.. 또 뭐 윗집 주인이 공사 비용을 지불 못하기라도 했나? ' 하면서

전화로 흘러나오는 내용을 들었다.

" 예,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신데요? "


요지는 이랬다.

윗집 주인이 수리 비용을 아끼기 위해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을 나중에 들고, 보험사에 누수 발생 시점을 실제 발생 시점보다 나중이라고 허위로 이야기한 것이다. 작년까지는 대부분 넘어갔으나, 올해부터는 기업들의 비용 세이브 기조로 실제 사건의 실사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일로 손해사정사가 나에게도 연락을 할 테니, 윗집 주인이 이야기한 내용과 말을 맞춰달라는 거였다.

전화 통화로 말만 잘하면 되는 상황이고, 내가 피해자라 괜히 이슈가 생기면 수리가 늦춰지거나 지장을 초래할 수 있어서 떨떠름하긴 했지만, 그러자고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손해사정사가 전화하기까지 두어 번 다짐을 받은 터라 대략적인 시나리오까지 생각해 가며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스마트폰에 모르는 번호가 뜨며 전화가 왔다. 머릿속으로 시나리오 그리며 약간의 긴장 속에 전화를 받았다.


수리를 잘 마무리해야 했기에 손해사정사와의 전화통화는 무리 없이 잘 진행되었고, 나도 응대를 잘했다.

그러다 잘 마무리되어 가는 마지막에 이런 이야길 했다.

" 예, 사장님 말씀 잘 들었고, 잘 진행하겠습니다.. 수고하시고요. 참 그리고, 세입자와 이번주말에 직접 인터뷰를 했으면 하는데,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사진 찍어놓은 것과 통화 목록만 보면 끝날 것 같아요.."


순간 털컥하며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세입자는 80 중반의 할머니라서 사정사가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으면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것이었다. 매번 "나는 잘 몰러요. 사장님이 잘 이야기해 주세요." 하면서 충청도 사투리를 쓰던 할머니의 말투가 뒤통수를 치고 지나갔다.

직접 거주하고 있기에 사건(?)의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세입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인데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한 것이었다. 수상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 연락처를 안 알려줄 이유가 없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아.. 할머니도 연습을 시켜야 하나?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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