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보

글쓰기연습 83

by 프라하

매일매일

졸린 눈을 비비며

허겁지겁 아침을 욱여넣고

만원 버스를 헤집어 출근한 사무실


엊그제와 똑같은 패스워드를 넣어 노트북을 열고

낡아빠진 갈색 슬리퍼로 갈아 신으며

브랜드가 거의 지워져 가는 텀블러에 미지근한 물을 가득 채우고

어제와 같은 그 하루를 시작한다.


몇 개의 이메일이 도착했는지,

몇 개의 쪽지가 기다리고 있는지,

빠른 눈으로 미팅 일정을 훑는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줄줄이 이어지는 비엔나 소시지처럼

어떤 생활일지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진다.


고개를 들어 잠시 생각에 잠긴다.


기나긴 그 시간들 동안 다른 길을 걸었다면

어떤 삶이 펼쳐졌을까?


가보지 못했기에

마음대로 떠돌아다니는 삶이


해보지 못했기에

평일 낮술을 즐기는 모습이

무작정 좋아 보이는 건 아닐까?


아직 싹도 틔우지 못한 누우런 잔디밭 공원길을

평소와 다른 완보로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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