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연습 91
합치면 무려 천 쪽이 넘어가는 책 도장 깨기를 하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 시리즈 3권을 정독하고 있다.
1권을 읽을 때 '어이쿠, 무척 두껍네' 했는데, 3권 읽다가 1권을 다시 잡으니 참 귀여웠다.
톨스토이의 또 다른 매력인 아주 아주 초 심리묘사 중 놀라울 정도의 묘사를 필사해 봤다.
"그녀는 유리창 표면을 따라 페이퍼 나이프를 움직였다. 그러고는 매끄럽고 차가운 유리에 뺨을 갖다 대고 있다가, 불현듯 원인 모를 기쁨에 사로잡혀 자칫 소리 내어 웃을 뻔했다. 그녀는 자신의 신경이 줄감개에 조인 현처럼 점점 더 팽팽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눈동자가 더욱더 크게 벌어지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신경질적으로 움직이고, 가슴속의 무언가가 숨을 막고, 이 흔들리는 어둠 속의 모든 형상과 소리가 그녀의 마음에 매우 또렷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고 느꼈다. 기차는 앞으로 가는지, 뒤로 가는지, 아니면 아예 멈췄는지, 그런 것에 대한 의혹의 순간이 끊임없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하지만 무언가가 그녀를 그 속으로 끌어당겼다."
- 223쪽, 1권
(안나가 블론스키와의 무도회 이후에 사랑의 감정이 싹터가는 과정의 심리를 묘사 )
"봄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열어 보이지 않았다. 사순절의 마지막 두어 주 동안 얼어붙을 듯이 춥고 청명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낮에는 햇빛에 얼음이 녹기도 했지만, 밤이 되면 기온이 영하 7도까지 내려갔다. 녹았다가 다시 얼어붙은 빙판이 무척이나 단단하여 길이 없는 곳에서는 그 위로 짐수레가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부활절에도 여전히 눈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부활절 다음 날 갑자기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사흘낮 사흘 밤 동안 따뜻한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목요일엔 바람이 잠잠해지고 마치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신비를 감추려는 듯 짙은 회색 안개가 서서히 깔리기 시작했다. 안갯속에서 하천이 콸콸 흐르고 얼음덩어리가 쩍쩍 갈라지며 움직이기 시작하고 탁한 시냇물이 거품을 일으키며 빠르게 흐르다가, 크라스나야 고르카의 저녁부터는 안개가 걷히고 먹구름이 하얀 새털구름에 밀려 흩어지고 하늘이 맑게 개면서 진정한 봄이 펼쳐졌다. " - 333쪽 1권
(레빈이 농사짓는 지역의 계절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봄이 오는 자연을 자세히 묘사함)
""하지만 뭘 할 수 있겠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은 나에게 알렉세이와 결혼하라고 하지만, 난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요!!" 그녀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일어나 가슴을 똑바로 펴고 무겁게 탄식하더니 특유의 가벼운 걸음걸이로 방 안을 이리저리 걸으며 이따금 멈춰 서곤 했다." - 192쪽, 3권
(돌리가 블론스키와 여행 중인 안나를 찾아와서 근황을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며..)
"당신은 날 위협하는 것 같군. 좋아. 나도 당신과 떨어지지 않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까." 브론스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가 이 부드러운 말을 하는 동안 그의 눈에는 차가운 눈빛뿐 아니라 쫓기느라 잔혹해져 버린 인간의 사악한 눈빛이 번득였다. - 249쪽, 3권
(알렉세이와의 이혼을 두고 블론스키와 안나가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을 묘사)
" 모스크바에 온 처음 얼마 동안, 레빈은 시골 사람에게는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지는, 사방에서 그에게 요구하는 비생산적이지만 불가피한 지출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미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 점에서 그에게 일어난 현상은 흔히 술 취한 사람들에게 일어난다고 들 하는 현상이었다.
첫 잔은 막대기처럼 목에 걸리고, 두 번째 잔은 매처럼 날아가고, 세 번째 잔부터는 작은 새들처럼 마구 넘어가는 것이다. 돈을 얻기 위해 들인 노동이 그 돈으로 구입한 것이 주는 만족과 상응하는가 하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 - 265쪽, 3권
(레빈이 아들 출산을 위해 모스크바로 와 있으면서 돈 씀씀이가 커진 상황을 묘사)
"그리고 도 하나는 그녀가 있는 곳에서, 그녀의 머리맡에서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면 그는 연민으로 찢어질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찢어지지 않는 가슴을 안고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침실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가 그를 망각의 순간에서 끌어낼 때마다, 그는 처음에 그를 덮친 것과 똑같은 기이한 망상에 빠지곤 했다. " - 343, 3권
(레빈이 산통을 겪고 있는 키티를 생각하는 모습을 묘사)
""끝났어요"
그는 고개를 들었다. 놀랍도록 아름답고 조용한 그녀가 이불 위에 힘없이 두 팔을 늘어뜨린 채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미소를 짓고 싶어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때 문득 그는 지난 스물두 시간 동안 살았던 그 비밀스럽고 무시무시한 저편의 세상에서 이제는 그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행복의 빛으로 빛나는 예전의 평범한 세계로 자신이 순식간에 옮겨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이 뚝 끊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기쁨의 흐느낌과 눈물이 그의 몸 전체를 흔들며 너무나 세차게 솟구치는 바람에, 그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347쪽 3권
(레빈이 키티가 아들 출산을 막 하고 났을 때의 그의 심정을 묘사)
이런 묘사들이 끝없이 나온다. 더 이상 디테일할 수 없을 정도로 강아지의 생각까지도 알아서 작성해 주는 아주 친절한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