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사 #1308

글쓰기 연습 103

by 프라하

장면 #1

계단이 사~악 하고 혓바닥 내밀듯이 내려오고, 기차문이 열리면 반가움에 손 흔드는 열차 손님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물결이 끝나면 이제는 올라 탈 손님들 차례다. 마중 나온 계단을 사뿐히 밟고 객차로 들어선다. 수십 번을 타고 내린 열차지만, 아직도 좌석번호 C와 B가 어느 쪽인지 직접 확인해야 파악이 된다. 잔치에 초대된 손님처럼 어색한 분위기에 기웃기웃하며 홀컵에 퍼팅하듯 나에게 할당된 자리를 찾는다.

자리를 확인한 후, 가방에서 두꺼운 책을 꺼낸다. '안나 카레니나 3.. 빨리 다 읽어야 하는데..'

객차벽 눈높이에 툭 튀어나온 독서등을 책 높이에 맞춰 조정하며 네모난 녹색 버튼을 가볍게 누른다. 가방을 올리고, 좌석 테이블을 손끝으로 끄집어내어 펼쳐 놓는다. 그리고, 외투를 벗어서 등받이에 구겨서 놓은 다음 팔걸이를 올리고 자리에 앉는다. 이제 서울로의 짧은 여행 준비가 완료되었다.


장면 #2

책 내용을 생각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행선지 표시를 위한 화면에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정차한 역에서 탑승한 가족이 주섬 주섬 중간 자리로 모여든다. 모르는 사람이면 민망하겠지만, 마주 보며 앉는 이 자리는 4인 가족에게 안성맞춤이다. 딸, 아들 하나씩 데리고 4인석으로 향하던 30대 가족은 배낭과 옷 가지 등을 위 선반에 조심스레 올려놓은 후, 자리에 앉아 자신들의 시간을 즐긴다. 엄마는 딸과 아빠는 아들과 함께 옆자리를 공유하며 파우치를 열어 준비한 간식을 나눠 먹고 자신들만의 이야기속으로 빠져든다.

동그란 얼굴의 세련되게 생긴 엄마는 검은색 물방울무늬의 플레어 치마에 번들번들한 갈색 가죽점퍼를 입었다. 빼꼼 눈만 내민 바닥의 컨버스 운동화는 가족들의 가벼운 여행을 말해 주고 있었다. 새침한 얼굴로 있다가 휴대폰을 꺼내서 씩 웃다가 몇 자 타이핑하고 가족들과 웃으며 영상을 공유한다. 이어 파우더 팩트를 꺼내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턱과 볼 주위에 파우더를 터치하며 바른다.

보라색 머리띠를 두르고 포니테일로 묶은 여자 아이는 엄마에게 뭐라고 계속 질문을 던지고, 엄마는 귀찮은 듯 휴대폰을 보며 답한다.


장면 #3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 후,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스트레칭하듯 손을 길게 뻗어 짐을 내린다. 나는 깔고 앉았던 외투를 주섬 주섬 집어서 입고, 선반의 가방을 꺼내 책을 넣는다.

이제 모두 끝났다는 걸 표시라도 하듯 좌석 팔걸이를 위로 젖힌다. 손목을 비틀어 시간을 흘깃 보니 녹색 스마트 워치 화면이 5분 정도 연착되었음을 보여준다.

'최근에 계속 정시에 도착하는 경우가 별로 없네? '

머릿속으로 집에까지의 여정을 다시 한번 그려본다. 역을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화장실을 들렸다가 역을 나선다. 퇴근 시간이라 발 디딜 틈 없을 지하철 객차를 생각하며 한숨을 내쉰다.


열차는 도착했지만, 이미 마음은 소파에 편히 앉아 TV 리모콘 누르는 것을 상상하고 있다.

조급한 마음에 출입문 앞에 줄 서서 있는 손님들의 줄은 줄어 들 줄 모른다. 계단을 사뿐히 밟고 열차 플랫폼을 왼발로 내딛는다.

'이제 다 왔구나'

에스컬레이터에 몰려든 사람들에 헛웃음이 나온다.

간신히 벌어진 사람들 틈으로 밀고 들어가 발 한쪽을 들이밀면, 나에게 부여된 50cm도 안 되는 계단의 좁은 공간으로 나아간다.

이제부터 에스컬레이터의 시간. 가만히만 있으면 올라간다. 윗층에 도착해서 몇 걸음 가다 보면 출구가 보인다. 많은 사람들 때문에, 그리고 출구와 입구를 혼동한 사람들 덕분에 두세 걸음도 내딛기 힘들어진다. 역시 서울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다 드디어 출구를 찾아 문을 나선다.


'아~ 서울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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