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퇴를 신청하지 않은 자의 마음은...
"어? 이게 무슨 메일이지? "
주변이 온통 시끄럽다.
갑자기 날라온 이메일 한 통에 온 회사가 난리가 났다.
소위 이야기 하는 명예퇴직 메일이 도착했다. 퇴직금이 적네, 많네, 여기는 정글이지만, 밖에 나가면 지옥이라는 말부터 정년 연장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는 대답 없는 메아리 마냥 추측성 의견들로만 무성하다.
혹자는 그렇게 퇴직하고 나간 이전 선배들을 보면, 그다지 성공적인 사람들이 별로 없다라는 좌절인지 한숨인 모를 이야기들을 내 놓고 있다.
그렇다. 신문 기사에 대기업 명퇴 이야기만 나오면 시끌 벅적하게 떠들던 그 현실이 내 앞에 닥친 것이다. 이 전에 지겹게 나왔던 사오정, 오륙도라는 단어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직장인이면 한 번쯤은 심각하게 고민했던 그 일이 나에게도 온 것이다. 메일을 받았을 때의 심정은 마치 무슨 처벌 통지를 받는 느낌에서 부터, 30년 가까이 해온 직장 생활의 무수한 경험들과 기억들, 앞으로 뭐 먹고 살아야 하나? 라는 걱정 그리고 가족들 생각까지 다양한 내용의 화면들이 쭈욱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누가 이야기 하듯이 이제 1막을 접고, 인생 2막을 준비할 때인가?
처음 하루 이틀은 그냥 멍하기만 했다. 앞으로의 일과 퇴직금을 꼼꼼히 따져 보자고 스스로 다짐했건만, 마음의 향방은 과거로만 향했다. 그 동안 난 무얼 한 거지? 회사에서 내가 한 걸로 뭘 할 수 있을까? 그 때 이런 걸 좀 더 했더라면, 지금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텐데..
그 이후에는 자신에 대한 소심한 자책과 앞으로 평균 수명도 길어졌다는데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집중해서 생각을 해 보았다. 잠정 겷론은 기운 빠지는 것이었다. 내 경쟁력으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저 주어진 삶에 충실했을 뿐, 자격증도 벌어 놓은 돈도, 전문성이라고 내 세울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런거지?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거지?
하다 못해 커피 사업을 하고 있는 동생이 어렵지 않게 취득할 수 있다고 몇 년 전에 이야기한 바리스타 자격증도 없다.
몇 십 번을 베겟잇을 뒤척이며 생각해 본 이유는 명확했다. 내 삶을 내 의도대로 살아 본 일이 별로 없었다. 대학은 주변과 부모님의 의견대로 들어갔고, 회사와 결혼은 당연히 부모님 말씀듣는 착한 맏아들로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따랐다. 직장에서는 팀장과 임원의 이야기라면 하늘의 계시마냥 떠 받들고 살아온 시간 속에 내 의견, 내 방향, 내 선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 뿐인가? 가정에서는 애 키우면서 학비에 학원비에 충실히 ATM기를 자처하며 살아왔다. 과연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래도 직장에서 배운 것이 있어, 나름 SWOT 분석을 해보았다. 읽는 책들이 있어서 돈 보다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이를 기준으로 판단한 내 결론은 남아서 퇴직시까지 내 경쟁력을 높이자라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는 남아있지만, 그래도 내가 내린 결론이다.
이미 바깥에서 어려움을 겪은 주변 친구들의 조언은 하루라도 빨리 나와서 너만의 경쟁력을 갖추라는 것이었지만, 아무 준비도 계획도 없이 가족들을 험지로 내 놓을 순 없었다. 물론, 이미 퇴직을 결정한 동료들의 결정이 잘 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개인들의 선택의 문제이고, 그 몫은 온전히 본인들이 감당할 일이기에.
이 글을 적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럴 일은 없어야 하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누구의 강요에 의해, 목 돈에 혹해서 선택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또한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지도 철저히 내가 판단해 보고 내가 직접 알아보고 결정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다. 그 길이 여태껏 내 의지 없이 남의 뜻대로 살아온 삶의 결과물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겐 많은 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