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위대함은 표현이 아니라 소재에 있다

- '작별하지 않는다'를 절절한 심정으로 읽고나서

by 프라하

처음에는 참 지루하고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노벨상이라는 커다란 문구로 가득 들어찬 책을 자신있게 뽑아들었을 때만 해도,

'도대체 노벨상을 받은 책은 어떤 책일까?' 라는 호기심에 빨리 읽고 싶은 조급함이 나를 지배했었다.

하지만, 후반부 되어서야 전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던 '식스센스'나 더 멀리는 '유주얼 서스팩트' 처럼 내용에 대해 갈피를 못 잡고, 서평에 적혀있는 4.3의 이야기는 언제 나오는 거지? 하면서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책은 전체적으로 천천히 아주 지루하고 심심하게 흘러간다.

이 내용을 왜 적었을까? 하는 생각을 거의 매 페이지마다 들었고,

중간 중간에 나오는 제주도 방언은 인선의 설명이 있지 않고는 영어 원서보다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시나브로 펼쳐지는 경하와 인선의 이야기는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아니,


작가의 위대함은 시적 산문의 위대함 보다, 망자들의 억울한 죽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비극적 문장도 비극적 사건의 본질을 뛰어 넘을 수 없듯이, 스러져간 수많은 주검들의 사연에 그 위대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 죽어가는 지도 모른 채, 총살과 학살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떤 위로와 위안으로도 치유할 수 없다.

망자들의 죽음 이후에도 정권의 2차 학살, 사건 당사자들은 강한 부정과 뻔뻔함은 3차 학살을 가한다.

유가족들의 설움은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가?


조금 다른 차원이지만, 나에게는 자꾸 애완동물들의 양육이 겹친다.

우리는 강아지 한 마리의 학대에도 예민한 시대에 살고 있다. 애완동물들의 학대와 파양에 울분을 토하며 도대체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하늘을 쳐다보며 항변을 하는 시대이다.

고양이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 보호 단체의 몇 명의 사람이 다양한 도구를 동원하여 살리려 노력하는 시대이다.

왜 인간은 자신의 이념을 도그마해서 자신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그 수많은 살상을 하는 동물이 된 것일까?

한 없이 서글퍼지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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