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창 명의의 부고 문자가 날아왔다.
나이도 나이고, 주변 친구들 중에는 이미 부모님 모두를 떠나보낸 친구들이 꽤 있어서, 부모님 중의 한 분이 고인이 되셨구나 하는 생각으로 문자를 본 순간 부모님이 아닌 배우자 부고였다.
이미 2번의 암 수술을 받고, 2번째 수술에서는 괜찮다는 이야길 들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연락이 온 것이다.
생로병사야 인간이 떼어낼래야 떼어낼 수 없는 숙명이지만, 이런 부고는 맞닥뜨릴때마다 황망하고 한 동안 안타까운 생각으로 멍하게 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세상 어느 죽음이 안타깝지 않겠는가 마는,
아이들 다 키우고 이제야 제대로 된 인생의 즐거움을 느낄 시기인데,
이렇게 황망하게 가다니..
평상시 자신의 이야길 별로 하지 않은 사람이라서,
항상 웃으며 회사 일에 매진하던 사람이라서,
괜찮을 줄, 다 회복되어서 어느 정도 일상에 복귀한 줄 짐작만 하고 있었다.
이런 식의 부고는 참으로 당황스럽고, 허망한 기분이다.
이렇게 오늘 처럼 화려한 날씨는 더더욱 안타까운 마음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이나 내가 언제든지 떠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우리가 시원함을 느끼는 이런 기분이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 언제까지고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밀가루를 뒤 엎어도, 거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도 속썩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비 많이 오는데 괜찮냐고, 코로나에 조심해서 다니라고 매번 같은 말씀하시는 어머님의 잔소리가,
그때는 그렇게 귀찮았다. 그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이제는 그립기만 하다.
그걸 알면서도, 그 시간이 다시 되돌아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짜증을 내고 투정을 하고 불만을 토로한다.
왜 나에게 이것 밖에 아니냐고..힘들어 죽겠다고 항변을 한다.
어떤 종류의 변명과 핑계를 대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진지해 질 수 밖에 없다.
지금 갖고 있는 것과 지금 건강한 가족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며,
이 따스한 햇살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 세상 떠난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닌가 이 화사한 날에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