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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범 Jan 05. 2023

통증의 척도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알 수 없다

지난주부터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두통과 허리 통증이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힌다. 처음에는 그저 대수롭지 않은 감기 몸살이나 코로나19일 줄 알았는데, 잠을 못 이룰 정도의 예상치 못한 통증이 지속되어 병원을 다시 찾는다. 병원이라는 하얗고 엄숙한 공간과는 대조되는, 멍한 표정으로 머릿속이 부산스러운 나에게 의사 선생님이 묻는다.


 "저번에 받아 가셨던 약이 효과가 좀 있을까요?"


선생님의 한마디에 헤매던 길을 찾은 나는, 선생님께 나를 설명한다. 나의 설명을 따라 선생님은 이것저것 물으시더니 이내 길을 잃었다는 표정으로 진통제를 다시 처방해 주신다. 우선, 원인이 명확하지 않으니 진통제를 먹어보고 그 후에도 차도가 없으면 다시 오라는 말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금 머릿속이 복잡하고 시끄러워진다. 올해 들어 나는 몸 이곳저곳이 자잘하게 아프다. 혹시 큰 병이 있는 건 아닐지, 불안한 마음에 가지고 있던 전화기를 들어 나의 증상에 대해 검색해 본다.


 '아침에 허리가 아플 때', '허리 통증 고열', '허리 통증 구토', '허리 통증 두통'


내 증상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포털 사이트 알고리즘이 나에게 희귀병, 난치병 환자들의 브이로그 동영상을 보여준다. 가끔 생각해 보면, 포털 사이트들의 알고리즘은 사람들의 불안감, 우울감을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게 아닐지 의심되는 순간이 있다. 사람들은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부정적인 이야기에 더 관심을 보이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던가. 알고리즘이 제시한 이야기들은 불안감에 사로잡힌 나의 이목을 끌기 충분한 주제들이었고 지체 없이 그것들을 재생해 본다.


나와 동갑인데 말기 암 환자인 분들부터, 불의의 사고로 신체 일부에 장애가 발생한 분들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나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고통을 겪고 계시는 분들이 많았다. 문득, 의사 선생님의 질문 하나가 고요한 폭풍우가 불고 있는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지난번 오셨을 때 통증을 5라고 가정했을 때, 지금 느끼는 통증을 10점 척도로 나타낸다면 어느 정도일까요? "


나의 고통을 5라고 했을 때, 그들의 고통은 과연 몇이었을까. 나는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통증이 어느 정도이겠거니 상상할 뿐이다. 통증은 주관적이다. 같은 병이라도, 어떤 사람은 그것을 참고 넘기는 반면 어떤 사람은 죽겠다고 소리를 지르곤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가 어떠한 고통을 느끼며 살고 있는지 쉽사리 알 수 없다. 그저 상상할 뿐이다.


문득, 얼마 전 고민 상담을 해오던 친구가 생각났다. 처음에는 사뭇 진지하게 친구의 말을 들으며 같이 화를 내기도, 또 등을 토닥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건 나의 고통이 아닌 친구의 고통일 뿐이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을지언정,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마치 의사 선생님이 환자의 상태를 듣고 진단을 내리듯, 우리도 상대방의 말을 듣고 적절한 반응을 보일 뿐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슬픔을, 삶의 무게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노력한다. 참 신기한 건, 이해하지 못한 자들의 공감일지언정 슬픔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종종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병원에서 환자의 고통을 덜기 위해 이 처방이 아니면 다른 처방을 시도해 보듯, 우리도 고통을 겪는 사람의 무게를 덜어주기 위해 다양한 반응들을 시도해 본다. 때로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미소를 지어주기도 하고, 힘내라는 작은 위로 한마디를 건네고는 한다.


타인의 목소리에 더 온 힘을 다해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한 이해를 할 수는 없을지언정, 공감을 해줄 수 있도록. 내 이야기를 듣고 처방을 내려주시던 의사 선생님처럼, 오늘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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