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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Apr 19. 2021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난쟁이

요즘 서점에 나오는 책들 중 상당수가 'OO은 어떻게 OO의 무기가 되는가' 같은 류이다. 아마도 이 책이 그 원조가 아닐까 싶은데, 하긴 나도 '인문학'은 어떻게 '마케팅'의 무기가 되는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볼까 하다가, 아직 '인문'도 '마케팅'도 졸렬하여 엄두를 못 내고 있기도 하니까...


먹고사는 것만 신경 쓰기도 바쁜데 왜 이런 시대에 철학이나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대체로 아래의 글로 설명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난쟁이이지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난쟁이다. 우리는 작지만 때론 거인보다 먼 곳을 내다보기도 한다

장미의 이름, 움베르트 에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이러한 거인들의 지혜를 빌리기에 적합한 책이다. 제목처럼, 철학 자체를 공부하기 위한 목적보다 그 철학에서 어떤 삶의 무기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을 펼쳐 놓는다. 실제로 얼마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할지와,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는 온전히 각 독자의 몫이지만..


읽은 지 꽤 된 책이지만, 리뷰 공유를 위해서 몇 가지 내용을 추려 정리해 본다. 이제와 문득 떠올라 정리하는 듯 얘기하지만 실상 예전부터 브런치의 서랍에 넣어 놓고, 게으름 탓에 못 올리고 있었다는 것이 좀 더 솔직한 표현이리라.




#1. 몰입


언제 일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장에서 저자는 '몰입'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미국의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가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능력'과 '만족감'을 끌어올리는 방법에 대해 연구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장의 내용을 나에게 대입을 해보자면, 한참 열심히 일하던 때에 나 역시 일에 엄청나게 몰입을 하고 있었다. 일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고, 성과도 나름 잘 나오니 계속 집중을 하게 되는 선순환이다.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새벽에 주로 택시를 타고 퇴근을 하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으니까.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렇듯 사이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처음에는 ‘불안’의 영역에 있었다 해도 계속해 나가는 동안에 능력이 향상되어 결국은 ‘각성’의 영역을 거쳐 ‘몰입’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몰입 영역에서 같은 일을 계속하면 결국은 많은 기술을 습득하게 되어 몰입에서 ‘자신감’ 영역으로 옮겨간다. 그렇게 되면 이른바 ‘안정’ 영역에 들어가 편안한 상태가 되기는 하지만, 당연히 그 이상의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나에게 있어 일의 '권태'라는 것이 찾아온 것은, 혼자 일을 하던 것에서 팀장이 되고 조직이 확대되면서부터가 아닐까 한다. 열심히 일해서 이른 나이에 승진을 한 것까진 좋은데, 내가 일을 하는 것과 남들에게 성과를 내게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니까. 혼자 일을 할 때만큼의 속도와 결과가 나질 않자 조금씩 일에 대한 재미도 사라지고 이것이 앞서 몰입에서 빠져나오는 역 사이클의 시작이 된다.


이 장을 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럼, 회사를 위해서나, 팀을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몰입'은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라구요. 지금은 그런 것들을 하나씩 찾아 나가는 중이다. 하나씩 천천히..




#2. 혁신은 과거와의 작별에서 시작한다.


이 장은 '변화'와 '혁신'에 대해 내용이다. 쿠르트 레빈이라는 사회 심리학자의 이론을 소개하고 있는데, 조직의 개발과 관련해 '해동-혼란-재동결'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의 해동(unfreezing)은 지금까지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고, 혼란(moving)과 재동결(refreezing)은 그에 따른 변화에서 발생하는 혼란과 안정의 단계를 의미한다.


부끄럽지만 내가 마케팅에 대해 쓰던 '마케팅 리부트' 시리즈에서도 리부트(reboot)의 첫 단계로 기존의 제품과 방식을 다시 해체하는 의미로 'Product Hacking'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적이 있는데, 비슷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혁신은 항상 '파괴'에서부터 시작하게 되니까.


하지만, 이런 이론은 경영학이나 조직 관리 등에 이미 많이 응용이 되고 있어 사실 새로울 건 없고, 내가 주목해서 봤던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저자는 일본인이다. 일본의 사회적 현상에 대해 적용해서 이 이론과 연계해 생각을 밝히고 있는데, 일본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현상을 등산에 비유해 보면 고도 경제 성장기 이래 계속 올라가 산 정상에 이르는 과정이 쇼와 시대, 이후 30년에 걸쳐 같은 산을 계속해서 내려오고 있는 과정이 헤이세이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시대가 쇼와에서 헤이세이로 바뀌었지만 같은 산에서 ‘올라가기’와 ‘내려가기’만 하고 있는 꼴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가 ‘내려가기’만 하는 상황을 문제 삼고 있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올라가고 내려가고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같은 산’으로 만족해도 좋은가 하는 점이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일본은 당연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의 과거의 영광과 잃어버린 30년에 대한 많이 언급한다. 또 경제학자들이나 언론에서는 우리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이나 30년 등이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계하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새로운 시대에 왜 과거의 '산'에 집착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되묻는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부자에게는 계속 특혜를 줘야만 하고, 가난한 자에게는 계속 인내만 강요하는 논리가 통하는 나라라면, 그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3. 자유로부터의 도피.


개인적으로 '에리히 프롬'의 책은 읽기가 난해해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브런치에도 어쩌다 보니 2권이나
(!) 리뷰를 올린 바 있
.(소유냐 존재냐, 사랑의 기술) 이 책에는 기존에 소개하지 않았던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등장한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유'에 대해 생각들을 살펴봐야 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개개인의 자유와 안전을 박탈할 수 있는 권력을 갖는 거대한 권위체를 두고 그 권력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는 이 거대한 권위체를 거대함과 두려움에 빗대어 ‘리바이어던’이라고 명명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흔히 얘기하는 나의 '안전'과 '자유'를 맞거래하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에 합법적인 폭력, 즉 공권력을 주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받게 된다. 흔히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안전한 나라라는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위의 논리와 연계시켜 보면 그만큼 공권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시민의식'이 높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오랜 군사정권의 영향도 없지는 않다고 보인다. 


여튼, 자유는 이렇게 나의 안전하고만 거래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프랑스혁명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1987 같은 영화만 봐도, 자유와 민주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거쳐 왔는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자유의 대가로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독과 책임의 무게에 몹시 지친 나머지 그들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손에 넣은 자유를 내던지고 나치의 전체주의를 택한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미생에 보면,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야'라는 대사가 나온다.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꿈꾸지만, 일정 부분을 포기하는 대신 삶의 안정을 얻는다. 그리고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고 책임져야 하는 고통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물론 직장에서도 자아실현을 하는 분들도 많으니 꼭 모든 이에게 해당되는 비유는 아닐 듯하지만...



쓰다가 생각해 보니, 이 책 이전에 이미 '타이탄의 도구들'이라는 책이 있었다. 바라보는 대상이 현재의 '타이탄'인지 아니면 과거의 '거인'인가의 차이는 있겠지만 얼추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직장이나 학교 같은 곳에서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인생의 멘토를 만나기란 쉽지는 않다. 요즘 같이 만남도 마음고 거리룰 두는 때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만약 그런 분이 있다면 정말 행운이다. 만약 그런 이들을 찾기 어렵다면 마음의 안정을 주는 책들도 좋겠지만, 거인의 지혜를 빌릴 수 있는 이런 책들 통해 그들의 무릎에라도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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