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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Apr 16. 2021

2050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스.

문제는 '탄소'가 아니라 '인간'.

우리는 생선이나 조개를 먹을 때 '미세 플라스틱'을 함께 먹고, 매번 숨을 쉴 때(유연 휘발유 덕에) 공기 중에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납'을 흡입하며, 높아진 '이산화탄소'의 농도 덕에 정신은 멍해진다. 그 때문에 더 많은 카페인을 섭취해야겠지만, 커피는 물론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다른 농작물을 키우기 위해, 또 그 농작물들을 우리와 나눠 먹어야 할 가축들 덕에 물은 점점 부족해진다. 이제 인간이고 동물이고 너나없이 지구살이는 점점 팍팍해진다. 


석기시대가 끝난 후의 멸종들이 실질적으로 하나의 멸종 사건인가가 의문이다. 짧게 말해서 인류가 다른 생물들에게 근본적으로 나쁜 존재인가라는 문제이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그런 존재일 수도 있다. 시카고 대학의 화석학자 데이비드 라우프에 따르면, 생물학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지구의 멸종 속도는 평균 4년마다 한 종이 사라지는 정도라고 한다. 최근의 추정에 의하면, 오늘날 인간에 의한 멸종의 규모는 그보다 최대 12만 배나 된다고 한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구 걱정 말고, 너나 잘하세요.


우리는 북극곰이나 멸종된(또는 멸종 중인) 동식물들을 안타까워 하지만, 이제 착한 척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또 마치 환경 문제가 '지구'를 위한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조차 순진한 소리다. 사실 지구는 수십억 년의 세월 동안 우리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울 때도, 차가울 때도 있었다. 몇 도 더 올라가는 건 지구의 고통이 아니다. 문제는 오직 이 환경에만 적응된 (이 환경이 아니면 살지 못할) 우리 사피엔스들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산업 혁명 이후 화석 연료를 많이 사용해서 그렇다지만, 솔직히 궁극적인 원인은 영화 '매트릭스'의 AI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이 내린 결론, 그리고 지구 최후의 날에서의 외계인 '클라투'가 내린 결론, 그리고 AI나 외계인이 아니어도 '맬서스'가 내린 과격한 결론은 일치한다. 바로 '인간'이 문제다.


'2050 거주불능 지구'는 기후위기가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현상을 자극적으로 보여주면서 이런 위기가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보기에 상당히 불편하다. (그게 이 책의 목적이지만..) 왜 그런 걸까 생각해보니, '너네 이제 다 큰일 났어 ㅉㅉ'하고 놀리는 것 같기고 하고, 그래서 어쩌란 것인지도 갑갑한 데다, 때로는 '기승전-기후변화'처럼 무리한 비약도 보이기 때문이다.


온갖 안 좋은 일들의 원인으로 온난화를 연결시키는데.. 대표적으로 이런 거다.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야금야금 비용을 치르는 부분도 있다. 바로 생산성이다. 경제학자들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컴퓨터 혁명과 인터넷 혁명이 있었음에도 어째서 선진국에 뚜렷한 생산성 증대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의문을 가졌다. 스프레드시트, 데이터베이스 관리 소프트웨어, 전자우편 같은 기술만 하더라도 사업 및 경제 부문에서 효율성을 극도로 높여 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효율성 증대는 물질적인 실체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중략)

한 가지 가능성을 추측해 보자면 컴퓨터 덕분에 효율성과 생산성이 올라가기는 했지만 동시에 기후변화 때문에 기술 혁신의 영향력이 줄어들거나 완전히 상쇄돼서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났을 수 있다.

2050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컴퓨터나 인터넷에 의한 혁명이 생각보다 생산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원인은 '기후변화'보다, 오히려 필요 없어진 인간의 '노동력' 때문이라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공장 자동화나 AI로 불필요한 노동력을 계속 보유한다면 기업의 경쟁력에 문제가 생기고, 이들을 내보낸다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현재 그러한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상태다. '러스트 벨트'가 미국의 정치 판도에 미치는 영향만 봐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작가도 '억지스러우면서 직관적인 주장'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자백하고 있지만.. 사실 이 외에도 다른 모든 문제의 원인을 한 가지로 몰고 간다는 기분은 지울 수가 없다. (이게 다.. OOO 때문이다는 정파적 주장처럼)


결국 이런 '운동가'들의 주장들이 불편한 이유는, (나의 까칠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미래의 결과를 보여주는 데는 지나치게 말초적('기후 포르노'라는 말까지 등장)인데 반해, 그 '원인'을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너무 나이브하다는 데에 있다. '환경론자'들 뿐 아니라, 노동운동이든, 다른 정치적인, 또는 젠더 이슈 면에서도 보통 비슷하게 흘러간다. (개인적 견해입니다)  

 



결국 '맬서스'와 '타노스'가 옳았나?


그럼 궁극적 '해결책'은 뭘까? 결국 우리의 '소비'가 문제인 걸까? 이런 답을 제시하는 책이나 주장은 쉽게 만나볼 수 있지만, 솔직히 이런 해답이 가능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정말 '소비'를 줄인다면 (그게 정말 유의미할 정도로 강력해질 수 있다면), 환경에 영향을 미치기 전에 그 피해는 바로 우리(특히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흔히 이런 문제를 외면하는 거대 자본과 정치를 탓하지만, 정작 모두가 소비를 줄인다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디로 가고, 그 노동자들에게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들은 또 어떻게 될까? (사무직이라고 무사할 거란 얘기는 아니다..)


그것을 알고 싶다면, 따로 상상할 필요 없이 우리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면 된다. 당장 코로나 때문에 줄어든 소비로 각 국에서는 쿠폰이든 상품권을 헬리콥터로 뿌려 대며 어떻게든 '소비'를 끌어올리고 혈안이 되어 있다. 또 각종 규제를 풀어달라고 전 세계 곳곳에서 시위를 하는 것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의 주장은 뭘까? 코로나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매한가지다.. 당장 못 살겠다는 것이다. 


환경문제보다 내일의 먹을거리와, 오늘의 쇼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백만 배는 더 많습니다 (나도 그중 하나가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고..) 당장 눈앞에 닥치지 않은 환경 문제 때문에 서로 이해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아름다운 세상은 과연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다소 회의가 들더군요..


이런 비현실적인 제안들은 결국 우리 스스로 궁극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18세기 맬서스가 인류의 종말을 걱정하며 인구론을 쓸 당시의 세계 인구가 불과 10억 정도다. 지금 인구는 70억을 한참 넘어 80억 명을 향해 가는 중이다. 아무리 소비를 줄인다 해도, 인구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과연 어느 정도 효과가 의문스럽다.


혹자는 이런 경각심이 자연스럽게 가족계획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실제로 출산 여부를 선택함으로써 정치적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유럽 및 미국의 부유한 청장년층은 가족계획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중략)《가디언 The Guardian》에서는 2017년에 이렇게 자문자답했다.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고 싶은가? 아이를 적게 낳아라.”

2050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저자도 '일부' 위와 같은 의견들이 있다고 제시하고 있지만, 난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생각이다. 한때 '인구 폭발'에 대한 이슈는 지금의 환경 문제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로 다루어졌다. 이유는 결국 '자원'과 '식량'의 부족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식량의 증산으로 인해 이런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자, 지금은 오히려 '인구 절벽'을 걱정한다. 출산율이 얼마나 떨어졌고, 이대로면 몇십 년 후엔 대한민국에 몇 명만 남는다 그런 분석들이 연일 언론에 등장한다. 


한때 우리나라에선 '한 명만 낳아 잘 키우자'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 꼴을 못 면한다' 등 가족계획 캠페인을 벌이고, 심하게는 남자가 '수술'을 받으면 예비군 훈련을 면제시켜 줄 뿐 아니라 청약 우대를 혜택까지 주는 등 기상천외한 방법까지 쓴 바 있다. 지금은 어떨까? 오히려 정부나 지자체에서 아이들을 많이 낳으면 지원금을 준다. 마치 모든 문제는 이미 해결됐다는 듯이.. 중국도 한때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오히려 인구가 곧 무기라고 생각하는 나라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인구 폭발'과 '인구 절벽'은 다른 문제 같지만 결국 우리가 걱정하는 지점은 하나다. 경제적인, 즉 돈 문제다. 아직 우리가 일본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로 결국 인구 1억을 채우지 못해 자체적인 시장을 못 만들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워하는 견해도  많다. (그런 논리로 '통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고.)


전 세계적인 인구 패권 체제 하에서 이제 각국은 인구를 늘리고 싶어 한다. 특히 중국이나 인도 등 인구 대국들 외에도, 빠르게 인구가 늘어나는 중남미나 아프리카에 각 개인들의 경제적인 여유까지 뒷받침된다면 얼마나 많은 자원의 빨아들일지 가늠조차 되질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해결책으로 삼아 왔던 방법이 있는데 바로 '전쟁'이다. 이제 대규모의 국가 간 전쟁은 아니더라도, 인구가 늘어나는 (앞으로 자원을 많이 쓸 것으로 생각되는) 인종, 예를 들어 아시아계와 아프리카계, 히스패닉 등에 대한 증오 범죄는 더욱 규모가 커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나마 '타노스'(#어벤저스의 빌런)처럼 인종이나 빈부 계층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생명의 절반을 날려 버리는 것은 나름 공평한 처사였을 지도 모르겠다. 




결국 전 줄여야 할 것은, '탄소'가 아니라 '인간'('인구')이 아닌가 싶다. 원인이 된 '변수'를 자꾸 '상수'로 두고 다른 것을 바꿔보려 하니 스텝이 꼬이는 거다. 인간이 아닌 외계인에게 이 결정을 맡긴다면 과연 지금처럼 종이 빨대를 쓰고, 플라스틱병으로 만든 옷을 입고, 진짜 고기 대신 비욘드 미트를 먹으면 충분할 거라고 이야기해 줄까?


결국 인구가 문제다라는 말은 '인류 보완계획'(#신세기 에반게리온) 마냥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경제 문제 때문에 인류의 미래를 놓고 도박을 하자는 것보다는 현실적일 것 같다.


쉽진 않겠지만, 만약 환경론자들의 미래에 대한 예상이 절대 과장이 아니고, 정말 '탄소포집'이든, '그린에너지'든 기술적인 방법이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거라면..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하이퍼 리얼리즘을 추구하면서 대책은 아주 쉬운 것부터 실천하자.. 는 감상적인 캠페인은 그만두고, 또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는 성장해야 하는데 소비는 좀 줄여보자는 이상한 논리도 이제 접어두고 궁극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화성 행 '방주'의 탑승권을 구하느라 아사리판이 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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