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프로 Apr 09. 2021

존 톨랜드, 일본제국 패망사 Part II.

가미카제, 그리고 원자폭탄.

내용이 내용인지라, 다수의 일본어와 비속어들이 등장하는 점 양해 부탁드리며.. 




#2. 가미카제(神風), 또는 독고다이.


'가미카제'를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면 아래와 같이 설명이 나와 있다. 역사 시간에 배웠던 기억으로 '가미카제'는 원나라(여몽 연합군이었죠)가 일본을 침략할 때 태풍 때문에 두 차례나 무산되었던 것에서 유래된 말인데, 이런 걸 보면 일본도 이스라엘 못지않은 '선민의식(選民意識)'을 갖고 있는 듯 하다.


가미[神]는 신, 카제[風]는 바람이라는 뜻으로 신이 일으키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던 필리핀에 연합군이 상륙하자 일본군은 연합군의 진군을 막는 수단으로 가미카제 특공대를 편성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종사들은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을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여 연합군 함대에 동체(胴體)와 함께 부딪치는 무모한 공격을 가했다. 1945년에는 오키나와를 방어하기 위해 1,000명이 넘는 특공대원이 가미카제 공격을 했다.      

네이버 두산백과 중.


'가미카제', 보통 '우리 말로 ‘자살특공대'라 칭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나쁘게는 '독불장군', 좋게는 '난 내 갈 길 간다!(My Way)'고 할 때, '독고다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는데, '독고'라고 하니 우리나라 성씨에도 있는 '獨孤'(홀로 외롭다) 생각할  있지만.. 아니다. 독고다이는 2차 대전에서의 '특공대'를 칭하는 일본어로, 이는 곧 가미카제를 뜻한다. 단순히 일본어인 걸 넘어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다. (일제의 영향은 질기게도 오래가는 듯)


우리는 '가미카제'를 굉장히 무모한 짓으로, 또는 일본 제국주의의 광기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어릴 적 봤던 우리나라 전쟁 영화(한국전쟁을 다룬)에서도 수류탄을 들고 탱크로 돌진하는 장면들을 꽤 봤던 기억이 있다. 이런 자살 공격법은 일본만의 전유물만이 아지만, 일본군의 경우 항복이라는 것은 애초의 옵션에 없으므로, 어차피 죽을 거 적군 하나라도 더 죽이고 죽자는 논리로 쉽게 귀결된다. 또 이는 국가신토와 결합해서 국가를 위해 죽으면 가미(신)이 될 수 있다는 종교적인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제국 패망사'에서는 '가미카제'의 모습이 아래와 같이 묘사되어 있다.


일본 비행기들은 수백 미터 상공으로 올라갔다. 양쪽 날개에 폭탄을 부착한 제로기 5대가 편대에서 벗어나 항공모함들을 향해 급강하했다. 이들은 얼마 전 결혼한 세키 유키오 해군 대위의 지휘를 받았다. 제로기 1대가 ‘깃쿤베이’ 함교로 향했다. 항공모함의 대공 기관총들이 탄막을 만들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기관총이 적기를 저지하길 바랐다. 하지만 비행기는 좌현의 좁은 통로로 돌진해 폭발한 다음 바다로 굴러 떨어졌다. (중략)

연기를 내뿜는 한 대는 우측으로 선회하며 마치 착륙하려는 듯 ‘세인트로’로 향했다. 하지만 조종사는 이 작은 비행기를 비행갑판에 충돌시켰다. 격렬한 내부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불길이 격납고 갑판 전체에 옮겨 붙었다. 오랫동안 전투에서 손상되지 않은 채 견뎌냈던 ‘세인트로’는 침몰하고 말았다.

일본제국 패망사, 존 톨랜드.


가미카제 공격에 직면한 연합군은 폭발의 위력 보다는, 죽음을 감수하고 달려드는 처절함에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일본이 이런 자살공격을 감행한 이유는, 절대적인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함인데,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전력이 열세라면 이를 뒤짚을 뭔가 특별한 전술을 생각하거나 정 안되면 항복을 고려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본은, 아니 제국주의 하의 군인(그중에서도 특히 육군)들은 이러한 '물질'적인 것은 '정신'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도 그런 일본 특유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사례가 실려 있다.


공중전이 끝난 후 일본 비행대는 석 대 또는 넉 대의 소편대로 나뉘어 기지로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맨 처음 돌아온 몇 대 가운데 한 대에 어떤 대위가 타고 있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린 그는 지상에서 쌍안경으로 하늘을 살펴보았습니다. 귀대하는 부하들의 비행기를 셌던 것이지요. 그런 대위의 안색은 약간 창백하기는 했지만 매우 침착하고 견고해 보였습니다. 이윽고 그는 마지막 비행기가 귀착한 것을 확인한 후 보고서를 작성하여 사령부로 갔습니다. 그런데 사령관에게 보고를 마치자마자 그는 갑자기 무너지듯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중략)

그의 몸을 잘 살펴보았더니, 가슴에 한 발의 적탄을 맞았고 그것이 치명상이 되어 한참 전에 사망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숨이 금방 넘어간 시체라면 그렇게 차디찰 리가 없겠지요. 그런데도 대위의 몸은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이로 보건대 대위는 한참 전에 사망했음에 틀림없습니다. 사령관에게 보고를 한 것은 대위의 정신이었던 것입니다.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바로 이러한 측면이 '게코쿠조'와 연결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믿는 것, 특히 그것이 국가를 위한 일이라면 정황이든 수단이든 상관없는 '무대뽀' 정신을 갖게끔 만들어준다. 또 그런 '열정(!)'이 아름답게 포장된다. 


바로 이 '가미카제'의 공격이 등장한 것도, 이미 전세가 기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남아 지역 각 섬들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군인들의 고육지책이었는데, 이러한 공격에 많은 피해를 입은 미국은 결국 '원자폭탄'의 카드를 꺼내 들게 된다. 




#3. 학의 목소리.


흔히 우리가 '항복 선언'이라고 알고 있는, 일본 '천황'(일본은 '천황'을 '학'에 비유한다)의 라디오 방송은 8월 15일 정오를 기해 일본 전역에 방송된다. 언젠가 이 방송에 대해 일부러 알아듣기 못하게 어려운 단어와, 발음. 그리고 항복이라는 단어 또한 교묘히 피해 갔다는 비판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어 보면 이는 좀 오해에서 비롯된 관점이다.


이 방송은 정확히 말하면 '항복 선언'이 아니다. 항복은 미국에 문서로 따로 하는 것이고, 굳이 방송으로 대국민 선언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짧게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지 4년, 길게는 일본의 팽창 정책이 시작된 지 반백년 간 전쟁 체제에 익숙해진 군인들과 국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는 천황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었다. 애초에 '수출용'이 아닌 '내수용'이며, 어차피 내용은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천황이 이런 쇼를 하지 않으면, 2.27 상태처럼 내부적으로 엄청난 반발이 있을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천황이 이 방송—천황 교서—에서 정확히 무엇을 말할 것인지가 내각에서 여전히 논의되고 있었다. 아나미는 “전쟁 상황이 매일 우리에게 점점 더 불리해지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묵과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런 표현을 어찌 지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대본영의 모든 공식 성명이 거짓말이었음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게다가 일본은 아직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다.

일본제국 패망사, 존 톨랜드.


일반적으로 두 번의 원폭 투하가 일본의 항복에 결정적이었다거나, 또는 원폭까지 쓰지 않았어도 일본은 어차피 항복할 거였다, 또는 소련은 이미 끝난 전쟁에 뒤늦게 숟가락만 얹었다 등 일본의 패배를 기정 사실화하는 얘기들이 많다. 이미 일본은 진 거나 다름 없었다, 라는 생각인데.


위의 글에서 보이듯이 일본 육군은 '항복'할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1945년 8월 까지는... '아직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직 싸울 수 있는 군인이 남아 있다는 뜻이며 '1억 총옥쇄*'를 하더라도 끝까지 가야 한다는 뜻이다. 군인들의 목표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적군을 몇 명이라도 더 죽이는 것이 가치가 있다는 쪽이었다. 자신이 죽는 것보다 항복을 해서 무장해제를 당하는 것이 이들에겐 더 큰 수치였다. (만약 이런 일본 육군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남한산성' 속 김상헌(영화에선 김윤식 배우가 분한)의 캐릭터를 생각해 보면 된다) 


* 당시 일본 인구는 1억이 되지 않았는데, 1억 총옥쇄라 함은 조선을 포함한 숫자이다.  


또한 소련의 참전은 결코 중요도가 낮은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관점도 다분이 미국 쪽의 주장이다) 일본은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고 있었던 소련이 미국과의 협상을 중재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원자 폭탄의 투하보다 오히려 소련의 '배신(?)'이 더 큰 타격이었다. 마지막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결국, '천황'이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 스스로 '용단'을 내렸다기보다 강경파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총리나 원로들에 때문에 떠밀리게 된 것이다. 아마도 더 이상 전쟁을 계속했다면, 일본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될 뿐 아니라, 참전을 선언한 '소련'에 대한 보상으로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이 둘로 쪼개질 수 있었다.  


하지만 군인들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았다. 방송 하루 전날인 8월 14일에 녹음된 이 방송은, 또 다른 '게코쿠조'에 의해 실패할 뻔했다. 일부 군인들이 녹음된 원본이 있는 궁내성과 NHK 방송국을 점거한다. '게코쿠조'가 실패하자, 이 반란의 주모자인 '하타나카'는 결국 자살로 삶을 마무리한다. 다른 많은 군인들처럼..

   

하타나카가 동부군관구 사령부와 전화 통화를 한 이후 헌병대가 도착하자, 모든 반란군은 아무런 저항 없이 NHK 건물을 떠났다. 하타나카는 참모본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가 하고 있는 단 한 가지 생각은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고 폭력적 행동을 제대로 끝마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변함없는 믿음을 주었던 시이자키 지로 중좌만 하타나카와 함께 황궁 앞의 넓은 광장으로 갔다. 여기서 그들은 국민에게 항복을 저지할 것을 요구하는 전단을 배포했다. 마지막 무의미한 몸짓이었다. 오전 11시 20분 하타나카는 모리 장군을 사살한 권총을 꺼내 자신의 이마에 대고 1발을 발사했다. 시이자키는 칼을 허리에 찔러 넣은 다음 권총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일본제국 패망사, 존 톨랜드.


항복 이후에도 태평양의 여러 섬들에서는 끝까지 항복을 하지 않은, 일본의 항복을 믿지 못한 군인들이 한참 후에 발견되기도 했다. 일본에는 아직도 태평양 섬들 중 어딘가에는 아직도 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는 군인이 있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온다.




이 책의 원제는 'The Rising Sun'이다. 우리 정서에는 좀 맞지 않는 제목인지라 '일본제국 패망사'라는 한국어판 제목은 부제에서 따온 듯하다. 작가인 존 톨랜드 역시 책 후반부에 가면 일본의 집요함에 어느 정도의 경외감을 보여준다. 사실 이러한 정서는 이후 서양 서계에 양가적인 면을 남긴다. 적이었지만, 어느 정도 인정을 하게 되는.. 


한편으로, 전후 일본은 '한국전쟁'을 발판 삼아 경제 영역에서 승승장구를 하게 된다. 이러한 불가사의한 성장의 이면에는 메이지유신 이후 수십 년 간 계속된 '국가주의'와 '전체주의'가 있지 않았을까? 국민 개개인의 희생으로 국가와 기업들은 승승장구하게 된다. 최근의 일본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러한 '동력'이 다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치인들이 왜 '전쟁'할 수 있는 나라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한때 우리나라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성장을 하려는 세력들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시도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것이겠지만..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진정 벗어나는가, 일본을 넘어설 수 있는가는 일본과 달리 이러한 독재의 약발이 떨어져도 계속 순항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P.S. 리뷰를 쓰다 보니 꽤 오래전에 읽었던 '대한제국 일본침략사'라는 가상 역사 소설이 떠오른다. 소설을 잡지처럼 매달 한 권씩 내겠다는 거창한 포부로 시작한 나름 참신한 소설이었다. 재밌게 읽고 있었는데, 연재가 갑자기 중단되어 아쉬움이 있었다. 문득 그 소설을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존 톨랜드, 일본제국 패망사 Part I.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