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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Apr 03. 2021

존 톨랜드, 일본제국 패망사 Part I.

The Rising Sun

무려 1,400 페이지 짜리 책이다. 서점에서 직접 보게 되면 깜짝 놀랄만한 두께다. 이런 류의 책을 '벽돌책'이라고 한다는데.. (대학 시절 두꺼운 전공 서적을 ‘무기’라고 하던 기억이..) 단권 기준으로 그간 읽은 책 중 가장 두꺼웠던 '중국 군벌 전쟁'에 비해 4p가 더 많다. 그런 만큼 책값도 비싸다. 이 책 한 권이 무려 5만 원이 넘으니..


그래서일까? 일반적으로 온라인 서점의 책 소개 이미지는 정면으로 되어 있는데 이 책은 유독 약간 사선으로, 옆라인이 보이게끔 되어 있다. 아마도 책값이 비싼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설득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책값보다 두께에 먼저 질리지 않을까? 

'중국 군벌 전쟁'과 비교해 보면.. 같은 논픽션 책이고, 페이지 수도 엇비슷하지만, 읽기의 난이도로 따져보면 이 책이 5배(최소한)는 더 힘들었다. '중국 군벌 전쟁'은 이 책보다 훨씬 후에 읽은 책인데 대략 5일 만에 다 읽었으니..  


책 두께나 스케일이 남다른 클라스를 자랑하는 만큼, 책을 읽는 데도 많은 에너지가 들어갔다. 그럼 왜 굳이 그런 책을 읽으려고 했느냐,라고 물으실 수 있는데. (무슨 고행을 자초하는 것도 아니고) 대답이 될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가장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써온 리뷰들은 주로 일본사나, 한국 중국의 근대사 같은 것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가장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고 있는 과학 서적들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읽는 데에 나름 우여곡절이 많았던 책인 만큼, 그 얘기를 먼저 해볼까 한다. 쓸데없이 '사설(辭說)'이 길다 싶으신 분은 저 아래 '#1' 부분부터 보시면 될 듯...




#0. '벽돌깨기'의 기쁨과 슬픔.  


기쁨이야 사실 뻔하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시험을 잘 친 뒤의 뿌듯함 (그런 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상으로..), 힘들지만 높은 산을 올라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시원한 물 한잔 마실 때의 상쾌함.. 뭐 그런 것과 비슷하다. 그 과정에서의 괴로움과 슬픔 같은 것도 실상 다르지 않다. 도대체 내가 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싶은 나 스스로 대한- 원망과, 과연 끝나긴 할까, 내가 중간에 포기하진 않을까? 싶은 두려움과, 이 책 외에 고려했던 다른 책이나, 요즘 재미있다는 영화나 드라마가 머릿속에 떠올라 몇 번이나 책장을 덮었다가 다시 열었다가 하게 된다.


'일본제국 패망사'(이하 '패망사')의 경우 처음 읽기 시작한 건 얼추 2년 전쯤이다. 나름 착실하게 읽다가 (절반 정도 읽는데는 열흘쯤 걸린 듯) 중간에 읽어야 할 다른 책이 생기면서(독서토론 모임 때문에) 꼬이기 시작했다. 그 책이 가벼운 책(내용과 무게 모두)이었다면, '패망사'를 읽다가 좀 지칠 무렵 잠깐씩 짬을 내서 읽어도 되겠지만, 그 책('0년' 이안 부루마의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책)은 더 무지막지했다.. 


대하소설 같은 것도 한번 보다가 흐름이 끊기면, 등장인물들도 가물가물해서 읽기가 참 난감한데.. 그래도 소설이라면 줄거리라는 것이 있고, 재미있게 읽다 보면 하루에도 두어 권씩 읽기도 하지만.. 이런 논픽션은 딱히 맥락이라고 할 게 없는 지라 더 몰입도가 떨어진다.


옆 길로 새는 것 같지만, 이런 책을 읽을 때는 나름의 원칙 같은 게 있다.


첫째, 매일 일정한 챕터를 읽는다.. 숙제처럼 꾸준하게 읽으면서 정해진 양을 읽어내는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다. 주의할 것은 좀 읽을만한 부분이라고 해서 많이 읽는 것도 안된다. 많이 읽어두면 고비(?)를 맞았을 때는 좀 쉬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패망사'는 하루 세 챕터씩 읽기로 했었는데, 나중엔 두 챕터로 줄였다. 3 챕터라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이것도 100페이지에 달하는데, 2시간은 갈아 넣어야 했다.    


둘째, 등장인물 관계도를 만들어 두는 것이다. 읽다 보면 앞에서 나왔던 사람 같은 데 누구지? 헷갈려서 한참 집중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앞에 주요 인물들을 소개해주는 친절한 책들도 있지만 (주로 일본 만화책이나 무협 소설이 이런 경우가 많다) 대개의 논픽션 책들은 그렇지 않다. 아마도 인물 소개 자체가 작가의 주관이 들어가게 될 수도 있어서이지 않을까. 그래도 요샌 이북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서 이름을 검색하면 간단히 해결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포스트잇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셋째, 정말 안 읽히는 부분은 과감하게 스킵해야 한다. 논픽션이나 인문학 책들의 경우, 어차피 스토리가 중심이 아니니 중간 부분을 건너뛴다고 해도 책 전체를 이해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경우는 몇 번을 읽어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 자괴감이 들었는데, 이럴 때는 번역 탓을 하고 그냥 스킵하는 게 방법이다 (실제 그럴 가능성이 높고..). '패망사'의 경우, 책의 초반과 종반에는 기승전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는데, 중반 이후는 태평양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각 전투들에 대한 묘사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 부분에서 큰 위기가 오는데 대를 위해 소를 포기하자.  


이쯤 되면,, 도대체 왜 이런 얘기를 장황하게 하느냐,, 궁금할 수 있다. 결국 위에서 언급한 '기쁨'을 공유하고 싶어서랄까. 어디에 자랑질을 하고 싶어서랄까... 이런 책을 다 읽고 나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아니겠지만..) 인터넷에서 검색으로, 또는 유튜브 영상에서 콕 집어주는 짧은 지식과는 비교할 수 없다.





#1. 게코쿠조 (げこくじょう: 下克上)


'게코쿠조  げこくじょう', 위에 한자로 적어 놓았듯 '하극상'이란 뜻이다. 이 책의 저자인 '존 톨랜드'는 태평양 전쟁의, 그리고 비뚤어진 일본 군국주의의 기원을 이 '게코쿠조'에서 찾고 있다. 여기서의 '게코쿠조'는 쉽게 말해 뜻이 옳으면 그 과정은 상관없다는 마인드다. 또 소수(정확히는 '소수'가 아니라 '국민'이다. 소수라면 일억 총옥쇄 같은 표현은 어색하다.)의 희생은 대의를 위해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대의는 '덴노(천황)'로 대표되는 '국체'를 세우는 것이다. 


반란에 가담한 군인들의 동기는 사리사욕이 아니었다. 이전에 여섯 차례에 걸쳐 반란을 일으켰던 무리들처럼—이들 반란은 모두 실패했다—이들 역시 무력과 암살로 사회 정의를 바로잡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는 전통도 있었다. 일본인들은 특별히 ‘게코쿠조(하극상)’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말은 모든 계층에 반란이 만연했던 15세기에 사용되었다.

일본제국 패망사, 존 톨랜드


일본이 식민지 팽창을 하면서 '대동아 공영'을 줄기차게 내세우는 것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의 경우나, 김옥균, 쑨원 등의 경우도 '아시아 주의'라는 측면에서 비슷한 의견이 있었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심지어는 자국 국민들까지)를 수단화하는 것에 동의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대동아 공영이 정말 일본이 내세우는 대로 숭고한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허울 좋은 간판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작가는 일본이 '폭주'를 하게 된 시발점을 '게코쿠조'로 보는데, 근대 게코쿠조의 원형은 '이시와라 간지'와 '이타가키 세이시로'가 만든다. 이들은 관동군 소속으로, 만주에서의 게코쿠조, 즉 만주사변을 일으킨 주역들이다. 이들은 우유부단한 '대본영'의 명령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만주 땅을 차지하기 위한 공작에 착수하는데, 결국 ‘대본영’도 막상 만주의 넓은 땅과 자원이 막상 수중에 놓이자 어정쩡하게 이를 인정하고, ‘이시와라’ 등은 일본 하급 장교들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천황과 육군성은 위장된 침략으로 보이는 이 계획의 승인을 거부했다. 이시와라와 이타가키 등은 이에 굴하지 않고 무단 행동에 나서 ‘게코쿠조’를 범하기로 결정했다. 첫 단계는 늙은 군벌 장쭤린의 제거였다. 1928년 6월 4일, 관동군 참모 장교들이 공병대를 투입해 장 원수의 특별 열차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했고 치명상을 입은 장쭤린은 사망했다. 도쿄의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시와라와 이타가키는 관동군을 마치 자신들의 사병처럼 부렸다

일본 제국 패망사 중에서


이 사건 이후로, '폭동을 일으키거나 국가 전복의 음모를 꾸몄다고 해도 그것이 일본의 영광을 위한 행위라면' 용서될 수 있으며, '정치와 기업들은 몹시 부패해서 군부가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후 우유부단한 정치인과 기득권 기업인들은 과격한 국수주의 이념을 가진 군인들에 의해 총격을 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방해가 되는 이들은 미안하지만 죽어줘야 한다) 


사실 우파 군인들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또 일부 국민들이 이들을 지지하는 풍조가 생긴 데에는 당시의 경제 상황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 계속된 전쟁에 대공황의 여파로 수출이 힘들어지면서 경제 전반이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청일전쟁의 승리로 단맛을 본 적이 있던 일본은, 군인들은 강력한 행동을 통한 팽창만이 살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게코쿠조'를 일으키는 군인들은 나름대로의 '국가 개조' 프로그램을 계회하고, 상급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거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결국 일부 군인(육군)들이 장성들을 살해하고 총리 공관을 공격하는 2.27 (1935년) 사태까지 번지는데, 결국 '천황'까지 나서 진압을 명령함으로써 일단락됩니다. (천황이 직접 명령을 내린 몇 안되는 사건) 사건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이 사건의 본질은 일본, 특히 일본 육군의 팽창주의를 드러낸 것으로, 이후 이들의 야욕은 만주를 넘어 중국 전체로 향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5.16을 일으킨 박정희 장군은 아무래도 이런 '게코쿠조' 정신을 숭상했던 게 아닌가 싶다. 또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책은 '전두환 대위'의 등장으로 시작하는데, 516이 자신의 일생일대 기회가 될 것을 간파한 이 초급장교는 육사생도를 동원해 '지지 시위'를 함으로써 어설픈 쿠데타의 성공을 기정사실화 시키는 데 일조를 한다.


정치적인 군인들이 얼마나 무서운가는 20세기 전반을 통해 우리는 아프게 경험을 한 바와 같다. 




한 큐에 갈까 생각했는데, 쓰다 보니 정말 '스압'이 장난 아니라, 다음 글에 나누어 올려야 할 듯..  읽으면서의 여러 가지 '감회'를 적다 보니 책만큼 리뷰도 길어지고 말았는데,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미리 공개하자면 #2의 내용은 '가미카제'이고, #3는 '학의 목소리'이다.  


위에 언급한 '게코쿠조'는 이 두 개의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이다. 다음 글에서도 다시 언급하겠지만 기억해 두시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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