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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Mar 24. 2021

코스모스, 칼 세이건.

꽤 오랫동안 우리 집 서재 한 구석을 장식했던 책이다. 하지만 막상 꺼내서 읽어볼 엄두를 못 냈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랬을 거다. 또 나는 못 읽어도, 내 아들이나 딸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부모의 기대감에 사놓았을 수도 있고) 아마도 과학 서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한참 뒤 생각이 나서 찾아보니, 이사를 하며 중고책들 정리할 때 팔아 버렸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처음 샀던 건 10년도 넘은 얘기일 건데. 솔직히 언제, 왜 샀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 책을,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뒤늦게 읽게 됐냐면,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다가 영화 '인터스텔라’를 다시 보게 되고, ‘인터스텔라의 과학’이라는 킵 손의 책으로 넘어갔다가 ‘코스모스’까지 이어지게 되는 흐름이었다. 나비효과 엇비슷한 연쇄 작용이다. 지금은 ‘우주를 향한 골드러시’라는 책까지 넘어온 상태... 


위에 적었듯 이 책을 샀던 게 꽤 오래전이었던 만큼, 어느 정도 연식은 있을 거라 예상은 했건만.. 1980년에 처음 출간된 책이었다. 무려 40년 전. 전 재산이 29만 원인 전 모씨가 집권할 때이며,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때다. 역자가 남긴 말에도 이렇게 오래된 (번역 당시 이미 20년이 지났다고..) 책을 번역하는 게 의미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고 토로했을 정도니까.


사실 책을 읽다 보면, 지금 알고 있는 것들과는 좀 다른 것들도 있고.. 칼 세이건이 수십 년 후에는, 내지는 20세기 후반에는 밝혀지지 않을까 싶다고 한 부분은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칼 세이건의 부인이기도 한 앤 드루얀이 최근에 쓴 ‘코스모스:가능한 세계들’을 읽어볼까 싶어 밀리의 서재에서 검색을 해보니, 막상 찾는 책은 없고 '코스모스'에 대한 아래 리뷰가 눈에 들어왔다. 


내게는 그냥 두껍고 지루한 책이었다.
도서관에 대한 찬사가 기억에 남는 정도.
미디어셀러의 선구자, 마케팅의 고전으로서는 인정한다.


위의 글은 소설가 장강명 씨가 쓴 글이던데. 개인적인 호불호(다소 지루함은 나도 인정)야 있을 수 있겠는데, 책의 가치에 대해 폄하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좀 어렵다. 이 분도 분명 글을 쓰는 작가인데...


물론 책이 좀 오래되기도 했고, 우주에 대한 지식을 더 넓히기 위해서나, 읽는 재미만을 위해서라면 나 역시 다른 책 읽기를 권할 듯싶다. 하지만, 우주에 대한 누군가의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을 느껴 보고 싶다면 코스모스는 꽤 어울리는 책이다.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나? 내가 좀 더 어릴 때 이 책을 읽었다, 또는 누구를 만났다면 내 인생이 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수능에서 과탐의 성적이 좀 더 잘 나왔을 것 같다는..)




#1. 과학과 종교의 경계에서..


위에 장강명 작가가 언급한 '도서관'은 아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말하는 것일 텐데, 이 도서관은 로마와 기독교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칼 세이건이 이 도서관에 대해 특히나 안타까워하는 것은 '알렉산드리아'가 고대의 과학과 탐구 정신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적어도 과학에 있어서는 길고 긴 1,000년 간의 암흑기(중세)로 접어들게 되니까.. (최근 '중세 암흑론'에 대해 반기를 드는 책들이 꽤 많이 나오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그리스 인 왕들의 지원을 받아서 건립됐다. 알렉산더 대왕의 대제국 중에서 이집트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왕조가 바로 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이다. 기원전 3세기에 건립되어 파괴되기까지 7세기에 걸친 긴 세월 동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고대 사회의 심장부요 두뇌였다. (중략)

이 도서관에는 아이스킬로스나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도 소포클레스의 경우와 비슷할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비유를 하나 들어 보자.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작가가 「햄릿」, 「맥베스」, 「줄리우스 카이사르」, 「리어 왕」, 「로미오와 줄리엣」 등을 썼고 이 작품들이 당대에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의 현존 작품은 「코리올라노스」와 「겨울 이야기」 단 두 편이라면 얼마나 답답하고 애석한 일이겠는가

코스모스, 칼 세이건


만약 고대 이후 지속적으로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져 왔다면, 즉 지금보다 1천 년 정도 더 과학 및 산업적으로 발전된 세상이라면 어떤 모습일까? 지금보다 훨씬 행복한 삶일 수도, 아니면 인류의 대재앙이 더 빨리 찾아왔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이 글을 쓰는 저나, 읽는 분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진 못했을 테지만..)


지금도 종교적인 이유로, 진화론이나 과학의 발전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윤리적인 부분에서 과학의 맹목적인 발전에 대해서 경계를 하는 것은 누군가 꼭 해야 할 역할이겠지만,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들에 대해 섣부른 예단을 하고, 더 이상의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은 우리에게 펼쳐진 커다란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2. 외계 생명체는 존재할까?


외계에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견해로 나뉜다. 첫째로 이 넓은 우주에서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하고, 그리고 인류만이 지적 생명체로 진화해왔다는 믿음은 인간의 가소로운 오만이라는 견해이고, 둘째는 빅뱅에서부터 지금의 단계까지 얼마나 많은 우연과 행운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또 다른 지적 생명체의 출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견해다. 하지만, 칼 세이건은 이러한 견해조차 지구, 또는 우리 중심으로 바라보는 세계관의 한계라 믿는 듯하다. 


지구가 생명의 발생과 서식에 있어 완벽한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 얼마나 놀라운 우연이며 지구인들에게 얼마나 큰 행운이냐고 감탄하는 소리를 우리는 주위에서 종종 듣게 된다. 적절하게 유지되는 온도,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물의 존재, 산소를 충분히 포함한 대기권 등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조건들이 지구에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감탄성 주장이 부분적으로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데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지구의 자연환경이 인류에게 훌륭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모든 생물들이 지상에서 태어나서 바로 그곳에서 오랫동안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외계 생명체가 있다면 그 생김이나 존재의 방식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형태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SF 영화에서 그리듯이 인간과 비슷한 생김새에 머리와 팔, 다리, 몸통이 있는 구조도 우리의 빈곤한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우리에게는 생존에 필수적인 '산소'마저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독가스일 수도 있다. 그들은 이산화탄소를 흡입할지도 모르고, 황산 같은 것을 주 에너지로 삼을지도 모른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과학자들이 발견한 티오바실루스 콘크레티보란스라는 미생물은 금속을 녹일 정도로 진한 황산 속에서 사는데 만약 그런 황산이 없으면 죽어버린다. 미크로콕쿠스 라디오필루스라는 미생물은 원자로의 폐기물 탱크 속에서 플루토늄을 비롯한 방사성 물질들을 먹고산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종종 SF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외계인들이 환경오염으로 인해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자신들의 행성을 대신해, '아름다운' 지구를 빼앗으려고 침공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이런 설정 역시 우리만의 '도끼병'이 불러온 심각한 착각이다.  


외계인의 ‘뉴런’은 물리적으로 서로 붙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뉴런과 뉴런이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더라도 전파 신호를 통한 상호 교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적 개체 하나가 여러 개의 유기체에 분산돼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이산(離散)적 존재를 가능케 하는 매체가 반드시 유기체일 필요도 없다. 심지어 행성 여러 개에 분산될 수도 있다.

코스모스, 칼 세이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싶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매일 뉴스에서 확인하듯.. 현실은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외계인에 대해 가장 과학적인 접근이 이루어진 SF 영화는 2016년 작 컨택트(원제 : Arrival)가 아닐까. 그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소통 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언어에 시공을 초월하는 개념을 담을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먼 언젠가 외계의 생명체를 접할 날이 온다면, 그들이 도대체 어떤 문명을 어떻게 발전시켜 왔을지에 대한 교류가 일어나는 순간 인류는 커다란 전환점을 맞을 거라는 것이다. 




#3. 사피엔스의 미래


사실 이런 우주적인 수준의 책을 보면 인류의 미래는 꽤 암울해 보인다. 일단은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는 중이라는 학설이 유력하니, 어느 순간 임계점이 넘으면 우주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가 된고 한다. 물론 이건 그야말로 억겁의 세월이 지난 후의 일이니 이걸 걱정하는 것은 다소 이른 점이 있겠지만...


칼 세이건이 가장 현실적으로 우려했는 것은 '핵전쟁'이 초래할 상황이다. 아마도 당시(1980년 대)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이는 칼 세이건 뿐 아니라 엄청난 전쟁을 몇 차례나 겪은 20세기 지식인들의 가장 큰 걱정이다. '에리히 프롬' 역시 존재적 삶, 또는 사랑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한다.   


인간이 자유로워지려면,
다시 말하면 병적 과소비로 산업을 추진시키는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려면,
경제 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이 있어야 한다.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불과 몇십 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닥친 가장 큰 위기는 우주의 팽창이나, 외계인의 침공이나, 핵전쟁의 문제가 아닌 다름 아닌 환경의 문제다. 우리 인류가 지금껏 존재할 수 있게끔 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행운과, 아슬아슬한 상황들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전 인류의 생명을 담보로 러시안룰렛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를 또 다른 과학의 힘으로 극복해낼지, 전 인류적인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해서 미래를 바꿀 수 있을지.. 그것도 아니면 인류는 생각보다 빠른 파국을 맞고 지구는 또다시 오랜 기간 불모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시간이 많지는 않다는 점이다. 우리가 멸종시켜온 수많은 생명체들 중에 우리 스스로가 포함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진리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서서히 밝혀지게 마련이다. 우리 먼 후손들은, 자신들에게는 아주 뻔한 것들조차 우리가 모르고 있었음을 의아해할 것이다.

우리 후손들이 끊임없이 연구해서 밝혀야 할 그 무엇을 우주가 무궁무진으로 품고 있지 않다면, 그리고 우리 우주가 혹시라도 그러한 우주라면, 우리는 그것을 한낱 보잘것없고 초라한 존재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의 신비는 단 한 번에 한꺼번에 밝혀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 세네카, 『자연학의 문제』 제7권, 1세기


코스모스를 읽으며 책 중간중간에 인용된 고대의 과학자들, 철학자들의 말들을 보면 저 멀고 먼 과거에 살았던 이들의 고민과 호기심이 현재까지 와닿는 듯하다. 그들은 얼마나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알고 싶어 했을까?


고대 이후 우리가 과학에 다시 눈 뜨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백 년이고, 인류가 지성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몇 천년에 불과하다. 우주에 대해 제대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십 년이다. 앞으로 또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새로운 진리의 코스모스가 펼쳐질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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