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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May 20. 2020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우리가 외면하는, 하지만 관심 가져야 할 역사

요즘 역사 관련된 유튜브 강의 등을 함께 보다 보니 우리 근대사를 보는 관점에 조금 다른 시각들을 갖게 됩니다. 그중 <역사탐구생활>이라는 오디오 클럽으로 시작한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는 우리 근대사에 있어 생각해 봐야 할 사안들을 중심으로 풀어 나갑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국판 서문에는 '미국인들의 38%가 미국 사회를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 데 반해, 한국 사회를 불공정하다고 생각한 한국인은 74%나 되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는 한국이 미국보다 더 정의롭지 않아서라기 보다 스스로에 대해 비판적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라는데.. 물론 이런 자기부정이 긍정적인 작용을 한 것도 있겠으나, 일제가 심어 놓은, 또 그 이후 우리나라의 지배층이 지속적으로 이를 이용한 것도 있지 아닐까 의심을 하게 됩니다. 너희는 아직 멀었다, 샴페인을 일찍 터트리면 안 된다 같은.... 


이 책은 특히 그런 인식이 깊이 배어 있는 한국 근대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그중 몇 가지 핵심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들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1. 우리는 왜 근대화에 뒤쳐졌을까?


역사에 가정이란 없겠지만, 우리는 가끔 광개토태왕이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면? 같은 상상을 해보게 되죠. 근대사에도 마찬가지로, 흥선대원군의 쇄국과 고종의 무능이 근대화의 기회를 놓치게 되고, 또 식민지배를 받게 된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지만,, 과연 흥선대원군이나 고종이 아닌 좀 더 나은(?) 왕이 있었다면 결과가 크게 달라졌을까에 대해선 아리송합니다. 


조선 후기는 여러 면에서 근현대의 세계가 추구하는 실리적인 면과는 다른 방향성을 가진 시기였는데, 아마도 서구나 일본처럼 가려면 왕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나라가 뒤집어지는 수준의 혁명이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총 균 쇠'에서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유럽이 중국에 앞서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유럽의 만성적 분열과 중국의 만성적 통일'을 원인으로 들며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아주 장기적인 안목으로 본다면 적당히 연결되어 있는 곳, 다시 말해서 연결성이 너무 강하지도 않고 너무 약하지도 않은 곳에서 기술은 가장 빠르게 발전했을 것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608p.


아마 당시 조선과 일본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왕과 사대부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던 조선과 달리 일본은 쇼군 중심의 막부 체제이긴 해도 각 번주들에게 권력이 분산되어 있고, 변방으로 밀려났던 세력들*이 반란(삿초 동맹)을 일으켜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본다고 하면, 근대화에 대한 가정을 할 때.. 동학농민운동이 좀 더 일찍 일어났다면? 갑신정변이 좀 더 대중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진행됐더라면?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상상(?)'이 아닐까 싶네요. 


* 反 도쿠가와(德川家康) 세력. 도자마 다이묘라고 불리는 이들은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편에 섰던 이들로, 에도막부가 들어서자 주로 에도(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의 영지를 받았다. 이 점이 오히려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게 된 계기로 작용한다 




2. 우리 독립은 미국의 은혜인가?


식민사관의 영향인지, 정치적인 목적 때문인지..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흔드시는 분들과 뉴라이트 같은 분들 중엔 이런 생각을 하시 분이 꽤 되는 듯합니다. 미국이 우리를 해방시켰으며, 그 중심엔 이승만 박사가 있다고.. 


더 나아가서 우리의 독립운동 같은 것은 큰 영향력이 없었고, 미국 만이 유일무이한 우리 혈맹이라 여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역할이 큰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독립운동이나 다른 역사적 사실을 폄훼하고 현재의 우리에 대해서까지 자기 비하로 나아가는 것은 지나친 면이 있지 않을까요?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에 함께한 장제스, 루스벨트, 처칠 (왼쪽부터)


우리 독립운동의 주 활동 무대는 중국입니다. 당시의 중국(정확히는 중화민국)은 함께 일제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우리의 독립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고, 카이로 회담에서 특별 조항으로 한국의 독립을 넣게 한 것은 장제스(蔣介石)의 역할이 큽니다. 물론 이는 우리의 임시정부(특히 김구, 김원봉 등)와 장제스의 특별한 관계에서 기인했을 테죠.. 


우리가 중국의 역할을 다르게 보게 된 것은 1949년에 중국이 공산화된 후 한국전쟁 때 총부리를 마주한 경험 때문일 것 같은데, 덩달아 독립운동의 역할까지 축소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낮추게 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선대에 오랜 시련과 고통을 겪은 집안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집안의 어른은 자녀들에게 집안의 역사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는 게 좋을까? 선대의 시련과 고통에 대해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가급적 미화해서 말하는 것이 좋은가?...(중략) 과거에 겪은 시련과 고통이 밑거름이 돼 오늘의 성공을 이루었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는 게 오히려 더 큰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다

<한국 근대사 산책> 머리말 중 강준만  


강준만 교수가 얘기처럼, 이제는 우리가 어느 정도 자랑스러워할 정도의 성공을 거둔 만큼, 레드 콤플렉스에서도 안티 식민사관에서도 벗어나 역사를 제대로 보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친일 했다고, 사상이 의심된다고.. 이런저런 이유로 다 빼버리면 우리 근대사는 너무 공허하니까요.. 




3. 식민지 근대화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는 두 가지 관점에서 봐야 할 것 같다. 첫 번째는 식민지 시대 자체의 영향력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그와 관계없이 <일본>과 <대한민국 현대화>의 관계입니다.


첫 번째와 관련해서는, 주로 식민통치에 대한 일정 부분의 미화, 또는 우리에 대한 자학과 연결됩니다. 식민 통치를 통한 물적(기차, 전기, 공장 등) 가치보다는 아마도 체제(신분제, 교육 등)와 관련해서 강압적인 수단이 아니었다면 우리 스스로 적극적인 변화가 과연 가능했겠는가?라는 면입니다. 보통 이 경우, 일부의 희생(물론 못 배우거나 신분이 낮은 계층)은 어쩔 수 없다는 전체주의적 논리가 함께 수반되죠. 

 

아직 남아 있는 인류의 문화적 성취 중 상당한 몫은 제국의  피정복민을 착취한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다. (중략)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네 조상들이 칼로써 강요당했던 제국의 언어로 말하고 생각하고 꿈꾼다. 

사피엔스 '제국의 비전'- 유발 하라리 


제국주의에 따른 기술과 문화의 수용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새로운 기술과 문화 자체가 제국주의니까요.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역사란 무엇인가'의 아래 구절이 와 닿습니다. 국가적으로 보면 다소간의 이익이 있다 쳐도, 그렇게 희생되어간 이들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할까요? 작은 희생은 항상 존재한다라고 할 수 있겠으나, 누가 감히 작코 큼을, 무겁고 가벼움을 결정할 수 있다는 걸까요? 


역사가들은 19세기 서구 국가들에 의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화를 용서하면서, 그 근거로 세계경제에 미친 직접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그것이 그 두 대륙의 후진 국민들에게 가져다준 장기적인 결과를 들먹이고 있다
(중략) 중국 혁명이 어떤 영광이나 이익을 가져다주었든지 간에, 그것을 누릴 수 있을 만큼 오래 살아남았던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서양인이 소유한 개항장의 공장에서 또는 남아프리카의 광산에서 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서부전선에서 일했던 중국인 노동자들이 아니었다.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이익을 거두어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역사란 무엇인가 113 p. - E.H. 카.


두 번째, 즉 해방 이후의 '현대화'와 일본의 관계에 대해서는, 얼마 전 반도체 관련 수출 규제에서도 보이듯이.. 대한민국이 그간 일본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가려고 얼마나 노력을 해왔을까?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순수한 사죄의 의도는 없었겠지만.. 우리가 가까이에  선진화된, 또 약간(?)의 부채 의식을 가진 나라를 통해 현대화에 도움 얻은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돈으로 동아시아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도 있죠) 문화든 과학 기술이든, 멀리 있는 미국보다 일본을 통해 가져 오는 것이 우리에게 훨씬 잘 맞았을 테니까요.. 아마도 이러한 기류는 적어도 1980~90년대까지는 계속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마징가 Z>가 우리 만화인 줄 알던 때가 있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많은 것들이 일본의 그늘 아래 있다. 


지금도 일본이 이미 만들어 놓은 더 효율적이고 편리한 것들이 있는데 굳이 우리가 새로 만들어야 하는가 라는 주장이 존재합니다. 일반 국민들과 달리 기업인들은, 만화든 방송이든.. 또 다른 기술이든 일본 것을 들여와서 쉽게 돈을 벌었던 지라 아직 그 환상을 벗어나지 못하죠. 


하지만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들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정책적인 면에서는 독자화 내지는 다변화를 가져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단순히 감정적 문제를 넘어, 경제적인 면에서 상호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야 좀 더 진전된 관계를 만들어내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역사라는 것은 정해진 'Fact'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역사가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고 해도, 그건 우리가 알 수 없는 먼 과거의 일들이겠지 생각했던 때가 있었죠. 하지만, 가까운 근현대사에 대해서도.. 심지어는 지금 눈 앞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언론에 따라, 정파에 따라 서로 대립된 이해와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역사를 알지 못하면 정말 누군가에게 '개돼지'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생기네요. 


자신이 이익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까지 하는 시도가 없어지면 좋겠지만,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으리라는 전제로,,, 좀 더 넓게 보고 깊이 생각할 줄 아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P.S. 공부가 부족해서이겠지만.. 우리 역사를 공부하며 의문이 드는 점이 있습니다. 민족주의가 태동한 것은 근대부터라고 합니다.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 또는 하나의 국가라는 것에 대한 개념도 근대 이전엔 약했죠. 그럼 우리 역사에 계속 등장하는 '의병' 또는 '독립투사'들은 무엇을 위해 싸운 걸까요?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근대사 의병이나 독립을 위해 싸운 분들의 사진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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