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반격
이 글을 쓰는 시점(2020년 말) 미국은 너무나 혼란스럽다. 코로나 덕에 (서방) 선진국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많이 걷히긴 했어도 세계 초일류국가이자, 민주주의와 동격이라 여겨졌던 미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트럼프가 선거부정을 주장하지만, 이게 선거부정이 아니라면 도대체 트럼프를 찍은 7,000만 표는 어디에서 나왔단 말인가?
미국인들이라고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특히 진보라 불리는 층은 4년 전 선거도 놀랍지만, 4년 간 트럼프를 겪고도 여전히 그들을 지지하는 7,000만이 대체 누구인지 궁금할 것이다. 이에 대해 예일대 교수이자 중국계 미국인인 ‘에이미 추아’는 정치적 부족주의(Political Tribes)로 이런 현상들을 설명한다.
역사책도 그렇지만, 이런 책의 경우 배경이 되는 상황에 대해 자칫 우리의 잣대로 읽으면 저자의 의도가 잘못 전해질 수 있다. 우리는 미국 영화를 보고, 실시간으로 뉴스를 전달받고, 또 서구화된 교육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우리와 다른 점들은 꽤 있다.
특히 주의할 점은 서구와 우리나라의 국가관은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는 점이다. 저자 역시 미국인(중국계이긴 하지만)이므로, 미국인의 시선에서 이 책을 썼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구대륙에 속하면서 대륙 끝에 위치한 나라는 '민족=국가=정체성'의 흐름을 갖고 있다. '한국인'은 곧 우리의 민족적, 국가적 정체성을 대변한다. 그것도 수십수백 년이 아닌 통일 신라 이후 1,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하지만 신대륙이나 대륙의 길목에 위치한 나라들은 민족, 국가, 종교 등 어느 정체성을 우선할 것인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미국을 흔히 멜팅팟(Melting Pot)으로 표현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미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복잡한 구조인지에 대한 반증이자, 통합을 유지시킬 지속적인 힘(이념)이 필요로 한다는 점을 나타낸다. 그것이 일종의 '선민의식(God Bless America...)'이나 '애국주의'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에이미 추아는 이를 '부족 본능'에서 찾는다. 즉, 인간은 어느 집단이든 속하고 나면 우리의 정체성은 그 집단에 단단히 고착된다. 하지만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집단의 정체성은 ‘국가’가 아닌 인종, 지역, 종교, 분파, 부족 등에 의해 결정된다.
저자는 왜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 미국이 실패했는지를 분석한다.
미국은 역사는 선형적으로 발전하며, 그들이 그러한 발전을 선도한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vs. 공산주의’, ‘민주주의 vs. 권위주의’ 등의 대립에서, 각 나라에 기회만 제공해준다면 (즉, 미국이 약간 개입하면) 스스로 올바른 자리를 찾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자본주의를 버렸고, 이라크에선 후세인을 축출한 뒤 민주주의를 찾아 주었으나 곧 ISIS가 탄생했다. 남미의 베네수엘라는 자신들의 손으로 차베스를 뽑았다. 왜 그들은 그런 선택을 했나?
하지만 전문가, 일반인 할 것 없이 대부분의 미국인이 오늘날까지도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서 맹렬히 증오를 사고 있었던 화교가 인구 비중은 1% 밖에 안되면서도 베트남 역사 내내 경제적 부의 70%~80%를 장악해 왔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부족주의 - 에이미 추아
베트남 국민들에게 자본주의 또는 미국이 들어온다는 것은, 곧 베트남의 시장 지배적 소수 민족*인 화교들만 배 불리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1,000년 간 중국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을 증오해왔던 베트남인들에게 이는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우리 역시 만약 해방 후 미군정이 일본 기업이나 일본 관료들을 통한 지배를 유지하고자 했다면(물론 초기엔 그렇게 했지만..), 설령 그것이 우리에게 더 경제적 이익이 되는 방법이라 해도 미국을, 그리고 미국의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을 수용할 수 있었을까? 이런 뿌리 깊은 민족주의를 간과하고 단순히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싸움이라는 인식만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베트남전은 실패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이러한 분석과 연계하면 왜 플로리다의 히스패닉들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를 지지하는지와 같은 문제도 단순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정치적 부족주의를 결정짓는 정체성은 '인종'보다는 '이념'이다. 주로 쿠바에서 탈출해온 그들에게 사회주의적 정책을 제시하는 민주당은 '빨갱이'와 같은 부류다.
* 시장지배적 소수 민족 : 우리나라에는 없는 개념이지만, 개발도상국들의 경우 '시장 지배적 소수 민족'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동남아시아의 화교, 동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연안의 인도인, 공산주의 붕괴 이후 러시아의 유대인 등이다. 이들은 해당 국가의 다수가 아님에도 경제를 장악하고, 다수 계층에게 상실감을 준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역사적인 일이 벌어졌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에 감독상까지 수상한 것이다. 그때는 우리나라 문화가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뿐이었는데, 미국 사회 누군가의 관점에서 보면 이 역시 정치적 부족주의를 자극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다.
2017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이 〈라라 랜드〉(과거를 회상하는 뮤지컬 영화로 재즈에 대해 백인이 아는 척 설명하려 드는 ‘화이츠 플레인’을 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에 가야 하느냐 〈문라이트〉에 가야 하느냐도 막대한 함의를 가진 문제처럼 보였다. 또 시상식에서 〈라라 랜드〉가 수상작으로 잘못 발표된 것도 의미 심장한 사건으로 보였다.
정치적 부족주의 - 에이미 추아
왜 아카데미는 ‘1917’이나 ‘아이리시 맨’이 아닌 ‘기생충’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이런 상황을 미국의 백인들은 어떻게 봤을까? 최근 오스카는 흑인을 사회자로 내세우고 나름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백인 위주의 쇼일 뿐이라는 조롱을 받는다. '기생충' 투표를 한 많은 아카데미 회원들은 아마 보수화 되어 가는 미국과 트럼프에 대한 반발이 있지 않았을까.
다수의 백인 미국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미 많은 문화, 스포츠 영역에서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는 것에서 오스카마저 굴복한 것으로 비친다.
오늘날 수천만의 백인 미국인에게 주류 대중문화는 '비기독교적이고 소수자를 영예화하며 LGBTQ 일색인 미국', 즉 그들로서는 도저히 나의 나라라고 인정할 수 없거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미국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런 미국이 나를 적으로 여기면서 배제하고 있다고 느낀다.
정치적 부족주의 - 에이미 추아
지난 50여 년 사이 거의 6천만 명에 달하는 이민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미국에 들어왔으며, 기존과 달리 이들의 다수는 아시아, 또는 히스패닉 계열이다.
'그 결과 미국의 피부색은 갈색이 되고 있다.'
세대적, 또는 계급적으로 주류 계층에 속했으나 가진 게 없는 자들.. 이들은 새로운 계층이 떠오르거나, 그들이 자신들을 부정할 때 공포와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급기야는 분노한다. 이는 미국 백인 노동자들이나, 산업화 시대를 겪었던 태극기 부대와도 일맥상통한다.
정치적 부족주의에 법칙이 하나 있다면, 지배 집단은 자신의 권력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위기감을 느끼는 집단은 부족주의로 후퇴하기 마련이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고, 더 폐쇄적, 방어적, 징벌적이 되며, 더욱더 ‘우리 대 저들’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된다.
정치적 부족주의 - 에이미 추아
하지만, 그렇다고 트럼프가 이들을 대변한다는 것도 언뜻 이해가 되질 않는다. 백인 노동자들은 어째서 날 때부터 금수저인 트럼프와 동일시하는 걸까? 그들이 트럼프와 느끼는 동질성은 돈의 유무가 아니다.
미국 엘리트들이 놓친 점은 트럼프가 취향, 감수성, 가치관의 면에서 실은 백인 노동자 계급과 비슷했다는 사실이다... 진보 쪽 엘리트는 자신이 얼마나 다른 이들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리려 하는지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조잡하고 싸구려 같은 것에 질색한다. 그런데 그 조잡하고 싸구려 같은 것들 (가짜 선텐, 화려한 머리, 프로레슬링 등) 은 대개 저소득층과 관련이 있고, 이는 우연이 아니다.
정치적 부족주의 - 에이미 추아
트럼프가 외치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Great America Again)’ 나 ‘America First’는 결국 백인 (White)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이 위대했던 시대는 백인의 전성기이며, America First 역시 백인 우선으로, 더 이상 남미에, 아시아에 내어줄 것이 없다는 선언에 다름 아닙니다.
이 책을 읽으며, ‘트럼프’와 ‘노무현’이 오버랩되는 면이 있었다. (정체성은 매우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새로운 시대 흐름에 따라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대통령에 올랐고, 임기 내내 미디어나 기득권으로부터 조롱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말이 안 좋았고 정권이 바뀌었으며, 트럼프도 재선에 실패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그렇듯 미국도 이 흐름이 잠깐으로 끝날 것 같진 않다.
P.S.. 종종 극우끼리는 통하는 것이 있어서인지, 트럼프가 당선이 돼야 중국을 더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 희망하고 지지하는 글들을 보게 되는데.. 트럼프가 싫어하는 게 과연 중국뿐일까 궁금해진다. 아 물론, 집회에서 성조기를 함께 흔드는 분들에게는 의미 없는 이야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