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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May 01. 2020

총. 균. 쇠의 역사적 과학

생명과 자연의 장엄함에 대한 연구

누군가 말했듯이 코페르니쿠스(또는 갈릴레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또 <종의 기원>이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면.. <총균쇠>는 서구 중심의 우상화된 세계관을 파괴합니다.




"It's not your fault."  


"왜 우리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총균쇠의 서문 부분에서 '얄리'는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노력'나 '능력' 같은 단어로 쉽게 답을 줄 수 있겠지만,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좀 더 어려운 길을 택했습니다. 이 장대한 역사의 책을 쓴 거죠. 이 책의 주된 저술 동기를 아래와 같습니다.


역사의 광범위한 경향에 대하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어떤 상세하고 설득력 있는 설명이 나올 때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인종차별적인 생물학적 설명이 정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내가 이 책을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총균쇠 35p.


다이아몬드의 주장을 요약하면 발전에 격차가 생긴 것은 우연, 특히 부동산 결정론적인 겁니다. 지리적 이점에 의해 농경과 가축의 사육을 시작할 수 있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인구의 증가와 균에 대한 면역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문명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야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는 것이겠죠. 그 '원인'에 대한 견해 차이가 발뱅합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마치 굿윌헌팅의 로빈 윌리엄스처럼 얄리에게 대답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너희 잘못이 아니었다고.....  




과학적 역사와 역사적 과학


이러한 '지리결정론'적 주장에 대해 불편하게 받아 들이는 시각도 분명 존재합니다.


역사학자들 틈에서 이 같은 환경의 차이들을 언급하기만 하면 당장 '지리적 결정론'이라는 딱지가 붙는데, 그러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 명칭 속에는 어떤 불쾌감이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가령 인간의 창의성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뜻이냐, 우리들 인간이 기후, 동물군, 식물군 따위를 통해서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수동적인 로봇에 불과하다는 것이냐, 하는 식으로 말이다.

총균쇠 596p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위의 글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첫째는 '자연'이 아닌, '신'의 뜻대로 움직였다는 고전적 주장은 인간이 수동적이지 않다는 건가? 둘째는.. '역사학자들 틈에서'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인데, 어디 감히 과학자가 역사를 논해? 하는 불쾌함 같은 게 있지 않나 싶다더군요. (왜 과학적 역사가 아닌, 역사적 과학일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다이아몬드는 과학자이기 때문이겠죠)

 

여튼.. 흔히 이러한 장대한 역사 이야기에 나오는 비판이,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산물이란 얘기냐?라는 건데, 너무 무책임한 것이 아니냐는 반박인 거죠. (다윈주의자들이 흔히 겪는 일입니다)


하지만 카(E.H.Carr)가 말했듯 적어도 역사가는 역사를 우연이 아닌 그 배경을 연구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역사는 몇몇 거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라거나, '지적 설계가 작용했다' 라고 할 것이 아니라 궁극의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그 설명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신의 영역으로 떠넘기는 조급함은, 마치 소피스트의 궤변마냥.. 당장 논리적으로는 맞게 들릴 수 있으나 과학적일 순 없으니까요. 




생명과 자연의 장엄함


총균쇠의 에필로그를 보면 <종의 기원> 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다윈에게서 주로 '진화'를 생각하지만, 다윈이 하고자 한 것은 미지(신)의 영역에서 현실(자연)의 영역으로 시각을 돌리고자 한 것이 아닐까요? 둘 다 우리가 잘 모르는 것은 비슷하지만, 그 한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이아몬드가 과학자로서 역사적 접근을 시도한 것도 이런 것이겠죠.


이러한 주장은 인간도 그저 이 땅을 스쳐 지나가는 미미한 존재일 뿐이다 하는 허무주의가 아니라, 우리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생명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가 더 영리해서'라거나 '선택 받아서..'라는 자만심을 경계하죠.


종의기원 초판 마지막 문장이 이를 잘 나타내 주지 않나 싶어 인용해봅니다. 원문에서 'There is grandeur in this view of life...'로 시작하는 내용인데, 자연과 생명에 대한 장엄함.. 이에 대한 경이로움이 이 과학자들을 수십 년간의 집요한 연구로 이끌어온 동력이 아닐까요. 


처음에 몇몇 또는 하나의 형태로 숨결이 불어 넣어진 생명이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이 행성이 회전하는 동안 여러 가지 힘을 통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종의 기원, 찰스 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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