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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Jun 22. 2021

일본의 굴레, 태가트 머피

일본은 도대체 왜 저럴까 궁금하다면…

가끔 일본의 미디어를 보면 스토커인가 싶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자잘한 뉴스를 내보내는 걸 볼 수 있다. (예전에 국회에 시각장애인 안내견 출입 금지가 이슈가 됐을 때는.. '의사진행에 방해가 되는 물건이나 음식물 금지'라는 조항 때문이라며, 한국은 '개'를 음식물로 보기 때문에 출입이 안된다는.. 독특한 해석을 한 기사도 있었다) 한국의 중요한 선거 결과 같은 것은 실시간 속보로 나간다.


아닌 척 해도 우리 역시 마찬가지인데, 관심이 없는 척하면서도 서점가 베스트셀러를 보면 사회, 역사 관련 분야 중 국가별로 따지면 일본에 대한 책이 가장 많다. (물론 이 책도 그 중 하나다) 또 베스트셀러 소설이니 자기계발서 같은 것은 대다수가 일본 작가의 것들이다. 여전히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이들이 많고, 불매 운동도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한데 왜일까? 상투적 표현이지만, 가깝고도 먼.. 이라는 말처럼 어떤 때는 정말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어느 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1982년 여름 20대 초반의 나이에 일본을 처음 방문했던 나는 충격에 빠졌다. 처음으로 땅을 밟는 외국인이었는데 너무나 익숙했다. 내가 일생을 살아왔던 한국 사회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내가 익숙하던 일상의 자잘한 모든 것이 거의 다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착각될 정도였다. 그게 아니고선 이렇게 흡사할 수가 없었다.

일본의 굴레 서문 중 주진형


일본 여행을 가본 분이라면 이런 익숙함을 많이 느끼셨을 듯하다. 일본에 대해 좀 더 공부하다 보면 ‘이런 것까지?’ 싶을 정도로 우리와 똑같아서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이것도 식민의 잔재인가 싶은 아찔함? 내지는 우리가 전수해준 것일까 싶은 일말의 기대?) 그렇기 때문에 이질감 없이 접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일본의 역사나 본모습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중국(신해혁명 이전까지의 중국으로 한정하자.)이나 미국, 심지어 유럽보다 잘 모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런 일본의 이해를 위해 바이블처럼 거론되는 책들이 있다. 해외 저자의 것으로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 있고, 국내에선 이어령 교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같은 책이다. 하지만 너무 오래됐다. 그 후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 (‘일본은 없다’나 ‘굿바이 일본’ 같은)은 다분히 편협하다. ‘일본의 굴레’는 그런 면에서 꽤나 객관적이면서 깊이가 있고, 최신성을 갖췄다.

 



일본에 대한 의문들...


우리 (또는 나 개인적으로) 가질 법한 질문들은 이런 것이다.


1.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많다고는 하지만, 자동차 회사나, 가전 업체, 심지어 해외에서는 아무도 쓰지 않는 휴대폰 제조사까지 어떻게 저렇게 난립을 했나? 최근에는 해외로 매각되거나 사업 철수를 하는 경향이 많지만 이들이 오래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 일본의 연예계나 드라마는 왜 고루한 옛 방식을 왜 고수하고 있을까? 요즘 중국에서 우리나라 예능이나 드라마를 베꼈다는 기사들이 종종 나오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방송 상당수는 일본 것을 그대로 베꼈다는 의혹이 많았다. 방송이나 음악뿐 아니라 패션, 유행어와 사회 현상까지 우리의 미래를 보는 마법의 거울 같던 그들은 왜 정체되었을까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3. 가장 심각한 것은 정치인데, 저렇게 부패하고 무능한 자민당은 꾸준히 선거에서 승리를 하는 것이며 잠시나마 정권을 잡았던 민주당은 왜 붕괴할 수밖에 없었나? 국민들의 80% 가까이 반대하는 올림픽은 왜 그렇게 고집할까? 또 최근 G7에서의 사례만 보아도 (우리 언론들이 편파 왜곡 보도한 것이 아니라면) 스가 총리는 일국의 정상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샤이한 이미지다, 오히려 트럼프나 푸틴처럼 마초적 인물이 더 어울려 보이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가 아닌가?


먼저 정치에 대한, 아니 총리에 대한 이 책의 설명은 아래와 같다. 나머지 의문들에 대한 답도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책을 직접 참고하시길 바라며..


명문 집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엘리트 대학을 졸업한 뒤, 20여 년 주요 부처에서 경력을 쌓는다. 그 뒤에 본인의 능력이 충분하다면 국회의원이 되어서 주요 정치적 직위를 섭렵하다가 마지막으로 총리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호소력을 발휘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능력이 있느냐는 큰 상관이 없었다. 요시다, 기시, 이케다, 사토 넷 모두 똑똑하고 노련한 사람들이었지만, 이들 중 누구도 민주 정치에서 성공하기 위해 보통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카리스마 같은 것은 갖고 있지 않았다.

일본의 굴레, 태가트 머피  




메이지 일본 vs. 전후의 일본.


일본의 현대사를 보면 크게 두 번의 극적인 순간이 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불과 몇십 년 만에 세계의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한 것과, 패전 후 또 몇십 년(이번엔 더 짧았다)만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을 보면 과연 그런 과거가 있었던가 싶은 무기력한 모습이다. 대체 왜 그럴까? 꽤 두툼한 책이지만, 이 책의 대답을 간단히(?) 요약해보면 이렇다.


패전 후 일본은 미국에 의해 국방과 외교의 권한을 잃어버린다. 아울러 미국(CIA)은 보수당 2개를 합당시켜 '자민당'을 만들도록 유도하는데.. 자민당의 주요 역할은 1)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하지 못하도록 할 것. 2) 현재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에게 정치적인 보호막을 제공할 것. 이 두 가지였다. 다시 말해 무엇을 하기 의한 정당이 아닌, 무엇을 못하게 하거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세력인 것이다. 이것이 1955년 체제라 불리는 것인데.. 메이지 지도자들이 건재하고, 관료 주도하에 힘 있는 민간단체(대표적으로 게이단렌)들이 협조를 해나가던 시기 일본은 경이적인 성장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메이지 시대의 지도자들이 사라지고, 각 단체들이 혁신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에 주력하게 되면서 일본은 방향을 잃고 말았다.


일본의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것을 보면, 어떠한 ‘공기를 읽지 못해서’(空氣讀めない, 구키 요메나이 줄여서 K.Y라고도 한다) 불이익을 당하는 개인들에 대한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어떠한 조직이든 그 조직 내에 그냥 그렇게 된.. 관행 같은 것들이 존재하는데 일본의 시스템이 무엇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되어 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에 이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일본 최고의 부자들인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이나, 손정의도 이런 세태를 비판하지만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경쟁력을 잃어버린 회사도 흐름 안에 있으면 협회에서 유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조정*을 해주며, 특정 개인이나 세력이 이 흐름을 바꿀 수 없다. 올림픽을 중단하면 좋겠다는 사람은 많아도, 중단해야만 한다!라고 적극 나서는 사람은 없으며, 이를 중단할 권리는 더더욱 없다. (누군가 강행하는 것이 아니라 멈출 힘이 없다) 판불페런의 표현에 의하면 ‘정치적 책임의 중추’가 없는 것이다. 또 대부분의 국민들도 ‘시카타가 나이 (仕方が無い, 할 수 없군!)’하고 한숨 한번 쉬고 잊어버릴 것이다.


* 대표적으로 일본만의 규격에 대한 것이 있는데, 표준화된 수입품이 자리 잡을 수 없도록 일본 내수를 위한 독특한 규격을 만든다. 경차의 기준이나, 냉장고 크기 등을 보면 일본 시장이 왜 갈라파고스화 되는 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책에는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관련 수출 규제로 일부 알게 됐듯이 일본은 여전히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의 강국이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회사들은 ‘키엔스’, ‘화낙’ ‘히로세 전기’ ‘태평양금속’ ‘유니온 툴’ 같은 곳이다. 더이상 우리에게 익숙한 ‘소니’, ‘샤프’, ‘파나소닉’, ‘미쓰비시’ 같은 브랜드들이 아니다. 또한 문화 분야에서도 음악과 영화 등은 여전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은 예전만큼, 또는 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들을 보면 종교적인 맹신에 빠져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들도 나름 서구화의 길을 모색했던 때가 있으며, 그 실패의 반면교사로 영광스러운 시대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어떨까? 일본 역시 경제적 부침이 계속되면서 과거를 돌아볼 것이다. 세습된 정치 체제에서 아직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들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는 ‘존왕양이’(실제로 그다지 존왕도 양이도 하진 않았지만)를 내세우며 천황을 중심으로 자신들(삿초)이 일본을 이끌어가던 때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은 그래서 과거에 대해 반성하거나 사죄할 수 없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다시 '보통 국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의회나 언론이 아닌, 천황 중심으로 국체(고쿠타이)를 세우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군대를 가지는 것뿐이다.


일본과 우리를 비교해 보면, 일단 우리는 ‘87년 체제’라 불리는 헌법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정권 교체가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덜(!) 싫어하는 당을 선택할 수 있다. 이는 국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이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정치 외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상당 부분 일본의 체제를 가져왔고 그 영향이 많이 남아 있다. 좀 다른 것이라면 일본보다 덜 폐쇄적이라는 것인데, 안 좋게 보면 근대화 이후 외국 것을 가져오는 것에 익숙해져서 일 수도 있다. (일본 것이든, 미국 것이든..) 언론에서는 걸핏하면 일본에 빗대 ‘잃어버린 10년’ 같은 말을 쓰고 있는데, 19세기 후반부터 좋든 싫든 일본의 길을 따라간 역사를 보면 우리에게도 '한국의 굴레'가 존재하리라 추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일본과 거의 대등해진 지금, 향후 우리가 어떤 길을 걸을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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