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프로 Aug 13. 2021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어령.

이 책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X세대 이상이라면!). 워낙 유명한 책이라 마치 내용을 다 아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그런 책이다. 실제론 얼마나 많이 읽혔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이 '이코노믹 애니멀' 소리를 들으며 세계 경제를 제패할 때, 그 아이콘 같았던 SONY '워크맨'은 '축소지향'의 일본을 대표하는 상품이었다. 당시 일본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면서 부러움과 시기를 담아 함께 언급되던 책, 또는 키워드가 바로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다.


하지만 트랜지스터의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서점가에서 이 책 보다 훨씬 오래전에 출판된 '국화와 칼' 같은 책도 여전히 스테디셀러에 올라 있고, 유튜브에서도 일본 관련 콘텐츠(비록 까는 내용들이 대부분)가 여전히 인기지만, 이 책만은 '워크맨'의 몰락과 함께 잊혀 버렸다.


하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이어령 교수는 시류에 따라 어설픈 자기 계발서 찍어내는 작가도 아니고, 경제학자도 아니다. 왜 일본인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는 책을 냈을까? 여전히 일본 분석서하면 ‘국화와 칼’에 더불어 이 책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그냥 단순히 우리나라 사람이 써서인 걸까?


그래서 이 책을 한번 읽어 보기로 했다.




한국인이 일본어로 쓴 일본론 


일본을 분석한 책들 나름 몇 권 읽어 봤지만, 돌이켜보니 그중 일본인이 쓴 책은 하나도 없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나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쓴 책이 있고, ‘일본의 굴레’ '일본제국 패망사'처럼 서양인이 쓴 책들이 있었다. 한편으로 부러운 일이다. 우리나라에 대해 쓴 책들이 해외에선 얼마나 나왔을까? 일본에선 혐한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읽을 만한 책은 못되고, 그 외엔 주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다루는 내용에 주로 집중돼 있다.


지금까지 일본에 대해 쓰인 글들은 프랑스의 패션 잡지처럼 수많은 유행을 낳기도 했다. 그 필진은 일본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저명한 학자, 예술가, 평론가를 비롯하여 관광 여비를 위해 쓴 여행자에 이르기까지 실로 천차만별이다. 일본에 하루 머무는 외국인은 아키하바라에 가서 전자 제품을 사고, 일주일 머물면 후지산을 보러 가고, 한 달 넘어 체류하면 일본론을 쓴다고 할 정도니 전쟁 전에는 그만두더라도 전후 일본에서 나온 일본론 저술이 1천 권 이상이라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어령


이렇게 넘쳐나는 일본론에서 이 책은 어떤 위치를 갖고 있는 것일까? 이어령 교수는 왜 굳이 일본론 책을 하나 더 보태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을까?

 

우리가 해외에 나가보면 흔히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질문을 받는다. (요새는 한국인이냐는 질문도 꽤 많겠지만..) 왜 굳이 알고 싶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이렇게 매번  물어보는 이유는 아시아 사람들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대표적인 일본론이라 할 수 있는 ‘국화와 칼’에서도 나타난다.


일본 문화론의 고전이 된 베네딕트의 대표작 <국화와 칼>에는 '인정'과 '의리'라던가 '수치'의 문화 그리고 체면을 존중하는 육아법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유교 문화, 한국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는 요소가 모두 일본 것으로 등록되어 있다. (중략) 성급하게 말하자면 일본과 일본인론은 한국인의 관점 혹은 한국의 문화 풍속과의 비교를 통해 쓰일 때 보다 그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또 일본이 한국을 잊고 있다는 것, 한국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 자신의 불행이라는 것이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어령.


루스 베네딕트에 의하면 스스로에게 익숙한 것에 대해선 너무나 당연해서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일본인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서양인의 시각이다. 하지만,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만을 살펴봤기에 '서양인'(정확히는 미국인이다)과의 차이점만 살폈다. 물론 이러한 오류를 사전에 알았다고 해도, 당시 다른 아시아인들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문제라고 여기진 않았을 듯싶다.


그렇다면 가장 정확한 관찰자는 그들을  알면서 동시에 이방인인 동양인이 아닐? 이어령 교수는 식민지 치하에서 태어나 모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초등교육을 받았다. 그들의 언어를 알고 그들을 가까이 지켜본 아시아의 이방인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시선(기억이 아니라)으로  책을 저술했다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축소지향'이라는 키워드는 '트랜지스터'와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서 마치 그런 신화적 성공 스토리를 담은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일본 문화 전반에 녹아 있는 '축소지향'(원어로는 지지미)을 설명한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일본에서 일본어로 먼저 출판된 책이라는 점이다. 만약 어떤 외국인이 한국인에 특성에 대해 분석한 (에세이가 아니라) 책을 한국어로 출판한다면 어떤 반응일까를 생각해보면, 이 책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럼, 이 책이 말하는 축소지향이란 어떤 것들일까?




일본 정원과 쥘부채.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일본 문화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장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은 장면이라면, '블레이드 러너'에서 보여주는 디스토피아와, '킬빌'에서 보여주는 일본 정원에서의 칼싸움이다.

킬빌 중 한 장면, 클라이맥스에서 등장하는 일본식 정원에서의 혈투.


아마도 시대별로 일본을 바라보는 서구의 이미지가 반영됐겠지만, '킬빌'에서 일본식 정원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는 좀 궁금해졌다. 한국식 정원은 없는 걸까? 동양식도 아니고 왜 하필 일본식 정원인 걸까? (물론 그냥 타란티노의 취향일 수 있다) 이 영화의 영향인지 당시 일본 정원을 예찬하는 칼럼 비슷한 것을 보고 더 궁금해졌다.


동양의 전통적인 건축은 기본적으로 '차경(借景)'을 중요시한다. 말 그대로 경치를 빌려 오는 것인데, 창밖으로 내다보는 풍경을 중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와 일본은 좀 다른 면을 보이는데, 자연 그대로를 담느냐, 아니면 그 자연을 축소해서 내 정원에 담아내느냐의 차이다.


일본의 축소지향은 자연을 내 집안으로 들이기 위해, 정원을 가꾸고, 돌을 모으고, 모래로 물결을 표현한다 (닌자의 침입을 막는 용도도 있다지만).. 정원이 없어도 분재를 하거나, 요즘 말로 중정(中庭)이라 할 수 있는 작은 공간에 어떻게든 자연의 모습을 담는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은 집안에 작은 사당(?)까지 들여와 제를 지낸다.


이런 축소지향의 결정판은 트랜지스터 이전에 '쥘부채'가 있다. (이 글의 커버 이미지인..) 나는 이 쥘부채가 우리 전통 부채인 줄 알았지만, 이는 축소지향의 대표적 산물이다. 현대로 오면, 접이식 우산 역시 축소지향의 산물이다.


이 책은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그들 문화의 산물을 통해, '너희는 뭐든 축소해서 너만의 세계로 가져오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라고 알려 준다.




이런 (남의 나라) 분석 책을 읽다 보니 궁금해진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일본은 확실히 섬나라여서 그런지 확실히 그들 만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폐쇄성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그런 특성이 외부인들에게 그들의 특성을 분석하고, 또 따라 하고 싶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일본의 굴레'를 쓴 태가트 머피는 한국인은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성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지만, 이제는 우리만의 독특함을 그런 개방성에 함께 담을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무너트린 우리만의 이야기를 다시 쌓아 올릴 때가 아닌가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죄의 궤적'과 '도쿄 올림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