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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Aug 24. 2021

인문학은 정말 삶의 무기가 될까?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

언젠가 이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는데요. (사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고 나서) 이게 쉽지가 않더군요. 유행 따라 인문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역사나 철학 책 몇 권 읽으면 '이런 거네' 금방 깨달을 거라 믿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 도통 어떻게 무기가 된다는 건지는 찾을 수 없더군요. 


물론 전 인문학이 재미있었고, 공부하다 보면 상식이 풍부해지고, 지적 대화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지만.. 그 외에 진짜 '쓸모'는 대체 뭐라는 건지..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사실 인문학을 권하는 분들을 보면 대개 그쪽 업계(강의? 출판?)에서 일을 하는 분들이거나, 원래 그냥 공부하길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자나 후자나 그래서 뭐에 도움이 된다는 건데? 에 답을 주지 않죠) 인간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어서? 폭넓은 사고가 가능해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어서?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기 위해서? 인문학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말과 글은 주로 이런 추상적인 얘기뿐입니다. 


물론 다 좋은 얘기죠. 하지만 바쁜 현대 사회에서 당장 써먹기엔 여전히 괴리가 큽니다. 하다못해 많은 시간을 들려 공부를 해서 배운 걸 친구나 동료에게 자랑하는데 써먹을라 쳐도 '진지 빤다'거나 '꼰대' 소리 듣기 딱 좋습니다. 이래서야 지속적으로 공부할 맘이 들까요?


인문학은 대체 어디에 도움이 된다는 걸까요? 




때론 'Why'가 더 중요하다.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후더닛(Whodummit)' '와이더닛(Whydunnit)'에 대해 들어본 적 있을 듯합니다. 쉽게 말해 '누가 죽였는가?'와 '왜 죽였는가?'에 대한 것인데, '노킹온 록트 도어' 같은 소설에선 각각의 영역에 특화된 재능이 있는 탐정 두 명이 협력해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죠.


인문 얘기하더니 갑자기 웬 미스터리 타령인가? 의아하겠지만, 전 여기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빠른 결과를 원하죠. 현대 사회에서는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답을 찾아내는 것이 관건입니다. 지식인 같은 곳에는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빨리요!' 류의 질문이 넘쳐나구요. 인터넷의 발달 덕에 조금만 검색해보면 내가 궁금한 모든 것에 누군가 친절하게 답을 적어 놨습니다. 그야말로 'Know Where'의 시대죠. 


문제는 현실이 정말 그렇게 단조롭지 않다는 겁니다. 검색으로 해결될 만한 문제는 진짜 우리 인생의 문제들이 아니죠. 하다 못해 리포트만 해도, 인터넷 잘 모르는 노교수님이라면 모를까 짜깁기한 걸로 좋은 점수받긴 어렵습니다. (아. 잊을만하면 논문 표절 사건이 빵빵 터지는 걸 보면 아닐 아닐 수도) 


미스터리 소설은 결국 범인이 누군가를 알아내는 게 관건이지만, '김전일'이나 '셜록 홈스'가 아닌 이상, 딱 보고 직업이나 성격 등을 알아맞히거나 '범인은 바로 이 안에 있어!' (Whodunnit)라고 외칠 수 없습니다. 이럴 땐 범인의 심정이 되어 '동기(Whydunnit)', 즉 왜 그랬을까를 유추하지 않으면 실마리를 잡을 수 없죠. 


누구나 ‘어떻게’ 해결할까 빨리 알아내고 싶어 하지만, 때론 '왜'라는 질문이 더 적합합니다. 설령 범인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다 해도 '왜'에 따라서 사건은 다르게 보이죠. (아이러니하지만... 앞에 예를 든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역시 '어떻게'를 쓰고 있다!)




인문학은 'Why'를 생각하는 습관이다.


현대의 학문은 대체로 '솔루션'에 집중합니다. 미스터리로 치면 Whodunnit으로 직행하죠마케팅 역시 마찬가지인데, 연일 트렌드에 대한 책이 쏟아져 나오고, 마켓 4.0이니 5.0이니.. 계속 버전을 바꿔 가며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패치(patch) 해줍니다. 그러면 그때그때의 현상에 대해서는 이 '패치'가 딱 맞는 처방 같아도, 우리의 항상 벽에 부딪치게 되죠. 


왜일까요? 우린 무한 경쟁 사회에 살고 있고, 나 말고도 다들 같은 솔루션을 갖고 있거든요. 이 정도로는 좀 덜 뒤처질 뿐입니다. 


인문학은 왜?를 찾아가는 학문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이런 걸 따지죠. 만약 네이버에 물어보면 역사는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이고, 정의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입니다. 


이 정도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할까 싶지만 E.H.Carr나 Michael Sandel 같은 분들은 이 간단한 질문 하나로 엄청나게 두꺼운 책을 써서 설명하는 수고를 하는데, 사실 그걸 다 읽는다 해도 더 아리송할 뿐입니다. 


이런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또 토론을 하다 보면 우리는 누가, 어떻게 등의 문제 외에 추가로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꼭 정답을 찾을 필요는 없죠. 오히려 추가적인 질문이 생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흐름을 읽게 되죠.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를 처음 만들진 않았지만 개인용으로 처음 상용화를 했고, MP3 플레이어를 처음 만들진 않았지만 '음원'과 처음 연결했고, 스마트폰을 처음 만들진 않았지만 통화 외의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잡스는 테크놀로지 외에 인문학은 분명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지만, 저 역시 그 '가치'가 무엇인지는 최근에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죠. 




언젠가 이세돌이 왜 바둑을 그만두었는가에 질문에 얼핏 심경을 드러내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때 바둑을 열심히 해온 것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었는데, 이제 바둑 초보들도 어설피 얻은 지식으로 한 마디씩 보탠다는 거죠. 평생 해온 일에 대한 허무함이 느껴졌다고 하더군요. 이세돌 뿐일까요? 우리는 뉴스나 유튜브에서 얻은 짧은 정보로 이게 문제야 식으로.. 재단을 합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차 한 잔을 음미하듯,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사람과 사물과 사건을 남들과 좀 다르게 보기.. 그게 인문학적인 사고의 기본이 아닐까요? 인문학마저 '하루 한 페이지' 식으로 수집하듯 공부해봐야 도움이 안 되는 이유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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