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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Sep 27. 2021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도킨스는 ('다윈의 불도그'라 불린) 토마스 헉슬리의 재림이다. ('다윈의 로트와일러'라고도 하는 듯) 그는 단순히 진화론을 옹호하는 것을 넘어 종교와 한판 싸움을 벌인다. 그것도 치열하게.. 다윈이 살아 있었다면 당장 몸져누울(稱病) 판이다.


독실한 신자라면 결코 안 읽을 책이지만 (자신의 신앙에 의심이 생겼거나, 도킨스를 공격하려는 경우를 제외하고), 만약 읽는다면 생각보다 더 공격적인 것에 당황할지 모른다. 단순히 신이 존재하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으니 종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거나, 종교적 맹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차원이 아니다. 그야말로 그는 'Nothing to kill or die for no religion'(Imagine)을 꿈꾼다.


도킨스는 무슨 종교에 원수진 일이 있다고 그리 열심히 싸울까?  




도킨스 씨, 왜 종교에 그렇게 적대적인가요?


도킨스의 대표작은 물론 '이기적 유전자'지만, 이 책을 제외하면, '만들어진 신' 외에도 '눈먼 시계공'이나 최근의 '신, 만들어진 위험' 등 종교에 대한 (물론, 주로 부정적인) 내용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 이런 책만 쓴 건 아니다) 이쯤 되면 본업이 무엇인지 묻고 싶을 정도인데.. 마치 무신론이 종교인 것 마냥 전도에 진심이시다.


신이 없다는 데 동의하고, 우리가 도덕적이 되기 위해 종교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데 동의하고, 비종교적인 방식으로 종교와 도덕의 뿌리를 설명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는 동료들도 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왜 그렇게 적대적이지? 종교에 정말로 잘못된 것이 있나? 우리가 적극적으로 싸워야 할 정도로 종교가 정말 해를 끼치는가? 황소자리와 전갈자리, 수정 에너지, 레이선을 믿는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살라고 놔두면 안 되나? 그저 다 무해한 헛소리에 불과하지 않나?

"만들어진 신"중에서


이런 궁금증이 나만 있었던 건 아닌가 보다. 주변의 많은 과학자들조차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싶었던지 살살하시라는 이야기들을 한 모양이다. (뭐든 적당히가 편하지 않나?) 하지만 도킨스가 보기에 종교는 '무해한 헛소리' 수준이 아니다. 그에게 종교는 금단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종교 신앙은 신앙이기 때문에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한, 빈 라덴과 자살 테러범들의 신앙에 대한 존중을 유보하기도 어렵다. 너무나 평범하기에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는 대안이 하나 있다. 그것은 종교 신앙을 자동적으로 존중하라는 원칙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갖은 노력을 다하며 사람들에게 ‘극단주의’ 신앙이 아닌 신앙 자체를 반대하라고 경고하는 한 가지 이유다. ‘온건한’ 종교의 가르침은 비록 그 자체로는 극단적이지 않아도 극단주의로 이어지는 공개 초청장이 된다.

"만들어진 신"중에서


종교가 불편한 이유, 믿음에 대한 믿음.


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이들의 논거는 대개 순환논리에 기반한다. 신의 부재를 증명할 수 없으니, 또는 신 외에 다른 (그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하면 그것이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란 논리다. 

흔히 진화론을 부정하는 예시로 쓰이는 나뭇잎 벌레. (출처 : 나무위키


위 사진처럼 진화론을 부정할 때 이야기하는 것이 '완벽함'이다. 이른바 '지적설계론'이 등장하는 배경으로, 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렇게 복잡한 설계를 했겠는가?!하는 주장이다. 다윈조차 '인간의 눈'에 대해서는 진화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고백했을 정도다. (어렵다고 했지 불가능하다고 하진 않았다. 다윈 이후의 진화론자들은 이를 시간과 자연의 '장엄함'으로 설명한다.)


반대로 진화론 등을 공격하는 포인트는 '미숙함'이다. '원시 수프'에서 생명이 탄생했다고..? 우리가 '원숭이'의 후손이라는데..? 자연과 생명의 경이로움이 그저 우연이라는 건가..! 하는 식으로 비웃는다. 물론 그 이전에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이나, 흑인 또는 이교도가 같은 형제라는 것을 믿(고 싶어하)지 않았다.


우린 인간이기에.. 더구나 과학에 눈 뜬 지 이제 몇 백 년 밖에 되지 않는 (미개한?) 수준이기에 아직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모르는 모든 것들을 신의 영역으로 남겨 둘 수는 없는 일이다. 막히는 것이 나올 때마다 '답정너'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든다면 인간은 어떻게 더 발전할 수 있을까?


앞서도 말했지만, 데닛은 《주문 깨기》에서 신을 믿는 것과 믿음을 믿는 것을 구별한다. 후자는 설령 믿음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해도 믿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믿음이다. “주여, 믿습니다. 제 믿음이 부족하면 도와주십시오”(마가복음 9장 24절)

"만들어진 신"중에서


주변에 내 믿음이 부족해진 것 같아 괴롭다는 사람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주로 모태신앙이다) 그것이 단순히 나태함 때문인지, 아니면 이성과 신앙의 충돌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과정을 거쳐 다시 믿음을 얻게 된다면 더더욱 '맹목성'을 띠게 된다. 그냥 믿어야 하는 것이고, 믿지 않아야 할 이유에 냉소적이고 배타적이다.


도킨스는 가장 위험한 것은 이러한 믿음을 아이들에게 세습하는 것이라 말한다. 아직 스스로 판단할 준비가 되지 못한 아이에게 부모의 믿음을 주입시킨다. 도킨스는 또 다른 저작인 '신, 만들어진 위험'에서 이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로 꼽는다.


그게 왜 문제냐고? 그에 대해선 서문에서 이미 밝혀 놓았듯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되기도 한다.

추측하건대 종교를 믿는 집안에서 자랐지만 종교에 불만을 갖거나, 종교를 믿지 않거나,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사악한 행위를 우려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부모의 종교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막연한 느낌과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있으면서도 종교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당신이 그들 중 하나라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만들어진 신"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하느니 차라리 죽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 버트런드 러셀.




그럼에도, 종교도 나름 선한 영향력이 있지 않나?라는 의문이 든다. '지치고 힘든 자'들에게 종교는 마지막 희망이 아닐까? 종교 덕분에 착하게 살려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들은 일부의 사례일 뿐이다.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종교가 또는 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되진 못한다.

나는 무신론자들이 불행하고 불안에 찌들어 절망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는 증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어떤 무신론자들은 행복하다. 일부는 불행하다. 마찬가지로 어떤 기독교인, 유대인,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불교도는 불행한 반면, 행복한 사람들도 있다

"만들어진 신"중에서


다시 말하지만, 도킨스의 입장에선 종교는 없어도 될 것이 아니라,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는 현존하는 종교들 역시 그리스 신화나 이집스 신화처럼, 문학적, 문화적 영역에서만 남길 원한다.


도킨스의 책을 읽고 최대한 그의 입장에서 글을 썼지만, 나는 그가 비판하고 있는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에 가깝다. 남들의 취향 또는 믿음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나, 또는 사회에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물론 도킨스는 지대한 피해를 준다는 입장이지만..)


다만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종교의 성전(temple)에 불을 지르거나, 인류의 문명의 소중한 자산들을 파괴하거나, 누군가를 멋대로 심판하는 행위는 비난받아야 한다. 하지만 주말에 교회나 절에 가고, 그를 통해 봉사 활동을 하고, 가까운 누군가가 먼저 떠났을 때 좋은 곳으로 갔으리라 믿는 걸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


다른 모든 것들이 그렇지만 종교 역시 과유불급이다. 그리고 내가 믿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니다.


p.s. 혹 이 글을 읽고 나에게 전도 욕구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분이 계시다면 그냥 넣어 두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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