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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Jan 06. 2022

스파이의 아내, 그리고 일본의 타자화(他者化)

일본의 반성문, 하지만 무엇을?

혹시 '스파이의 아내'라는 영화를 보신 분이 있을까 모르겠다. 아오이 유우 주연의 일본 영화로, 이동진 평론가가 별 다섯 개를 준 작품이기도 하다. (굳이 이동진 평론가를 언급하는 이유는 파이아키아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알았기 때문..)


작품성은 그렇다 치고, 이 영화를 보고선 두 가지 면에서 놀랐는데.. 첫 번째는 일본에서 이런 영화가 나오다니! 하는 점이고, 두 번째는 (시간이 좀 흐른 후에 느낀 것이지만) 일본 국민들이 자신들의 제국주의 시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우리와는 차이가 크구나 하는 점이었다.


이 글은 영화에 보다는 일본의 역사관에 대한 생각을 담은 것이니 참고 부탁드리며...




일본은 단순하게 나쁜 나라?


첫 번째 놀란 지점에 대해 말하기 위해 영화의 내용을 잠깐 소개해야겠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40년 대인데, 우연히 만주 출장 중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한 된 '스파이의 아내의 남편'(정성일 평론가의 표현)은 그 증거들을 수집해 국제 사회에 폭로하려 한다. 그리고 영화는 이 사실을 알게 된 '스파이의 아내'(아오이 유우)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여기서 내가 놀란 부분은 바로 이런 소재, 즉 일제가 만주에서 행한 충격적인 만행이 영화로 다루어지고 (일부 사진도 등장), NHK에서 제작 투자를 했다는 점이다. (처음엔 투자를 받지 못하다가 NHK의 지원으로 간신히 만들어졌다. 그래서 원래는 TV 단편 드라마) 심지어 영화에서는 일본이 이 전쟁에서 져야 한다는 대사까지 등장한다.


그간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1.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들, 2. 정치권에 부화뇌동하는 언론, 3. 정치에 관심 없는 국민. 종합해 보면 '나쁜 나라&생각 없는 국민'이었다. ('나쁜 국민'이라고까지 여기지 않은 이유는 일본 여행을 하며 직접 그들을 접했기 때문..)


우리에게 '일본'이란 아래 신형철 평론가의 글 대로, '단순하게 나쁜 나라' 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본' 전체를 적대시하고 불매운동을 했다. 보수언론과 일본 여행을 가는 사람들을 '토왜'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우리는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그런데 일본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지? 일부 지각 있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일종의 코스프레인가?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일본에게 제국주의란 무엇일까?  


결국, 일본에 이런 시각도 존재하는구나 정도로 결론을 내렸다. 대체로 나쁜 건 맞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우연히 '가모우 저택 사건(미야베 미유키)' 읽게 된 후 뭔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에게 '사죄'를 요구할 때, 그에 해당되는 범죄 행위는 일본의 국권침탈과 강점 기간 중 발생한 폭압에 대한 것이다. 이는 대략 1900년대 초에서, 1945년 광복을 할 때까지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해당한다. 당연히 일본이 '반성'해야 할 부분 동일하다 여겼다.


하지만 '가모우 저택 사건'을 비롯한 몇몇 영화나 책 등을 종합하면, 일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시기는 대체로 1930년대 이후다. 일본이 바라보는 근대화 시기는 크게 메이지(1868~), 다이쇼(1912~), 쇼와(1926~) 시기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일본에 있어 메이지는 가장 자랑스러운 시기이고, 다이쇼는 향수를 느끼게 되는 '벨 에포크' 시기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서는 '귀멸의 칼날과 다이쇼 로망'에서 다룬 바 있다)


그럼 쇼와 시대는 무엇이 문제인 걸까? 1931년 만주군에 의해 만주사변이 일어난 이후. 일본 내에서도 강경파 군부가 득세를 하면서 2.26 사건(군부 쿠데타)이 일어난다. 이후 일본 정부는 군부(특히 육군)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다. 일본은 이를 '군부의 폭주'로 보고 있는데, 이 시기에 일본이 일으킨 문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잘못을 인정하되 그것은 일부 '군부'(도조 히데키로 대표되는 통제파)의 잘못된 판단 때문으로 여긴다. (이에 대해선 일본제국패망사에 관한 글 중 게코쿠조 참고) 


그들은 전 세계와 전쟁을 벌이고, 국민을 수탈하고 전장으로 내몰았다. 핵폭탄이 두 번이나 떨어질 때까지 '일억 총옥쇄' 운운하며 버텼다. 대다수 국민들은 스스로를 피해자일 뿐이라 여기고, 이때의 일본(정확히는 일본의 군사정권)은 타자화 시킨다. 일본이라는 이름을 걸고 저지른 짓은 맞지만, 그것은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닌 것이다. (일종의 심신 미약 상태랄까?)


그때 '그들'의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다면, 일본은 연합국 편에 서서 승전국이 됐을 것이고, 지금까지 조선 등 아시아의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진 않겠지만 그 나라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함께 승전국이 된 영국을 모방해 천황을 국가수반으로 하는 '일 연방' 같은 체제 만들었을 것이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상상인가?


그렇기에 그들이 돌아가고 싶은, 가장 영광스러운 시기는 1910년 이전이 아닌, 다이쇼 시대(1912~1926) 다. 일본과 우리가 제국주의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렇게 다르다.




일본과 독일은 뭐가 다를까? 대체로 잘못한 '그들'(독일은 히틀러와 나치)을 타자화 시키는 것은 두나라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독일은 '그들'이 현재 권력을 잡고 있지 않다. 일본은 1급 전범자들의 후예들이 총리를 하고 장관,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 자신들의 죄를 덮기 위해 국민들에겐 주변국들이 돈이나 더 타내려고, 또 일본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일본을 악마화한다는 생각을 주입시킨다.



아마도 그들은, 일본인들이 가장 자랑스러운 시기를 쇼와로 확장시키는 것이 최종 목표이지 않을까? 비록 실패했지만, 아름다운 도전이었다라고..


P.S. 타자화(他者化)는 누군가를 나와 다른 대상화시키는 걸 말한다. 대표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그들은 나와 다른 족속이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타자화는 나 스스로의 자아 중 하나를 나와 분리된 개념으로 만드는 뜻으로 썼다. 일종의 유체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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