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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Aug 03. 2021

'죄의 궤적'과 '도쿄 올림픽'.

'오쿠다 히데오'하면 대부분 '공중그네'를 떠올리지 않을까? 공중그네를 읽다 보면 오쿠다 히데오가 왠지 '이라부'를 닮았을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를 갖고 '죄의 궤적'을 읽게 된다면 깜짝 놀랄 수 있다.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저자 소개'를 한번 살펴보자.


쉽고 간결한 문체로 인간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면서도 부조리한 세상에서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잊고 있던 가치를 묻는 주제의식을 보이고 있는 그는 포스트 하루키 세대를 이끄는 선두주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과 함께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일본의 크로스오버(crossover) 작가로 꼽힌다.


'공중그네'가 대중문학'의 범주에 있다면 '죄의 궤적'은 '본격 문학'에 속하며, 그중에서도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범인은 과연 누굴까?라는 질문을 따라가는 미스터리 소설의 특성과 달리 이 책에선 '누가?', '왜?'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이 책의 매력은 오히려 그 시대의 '공기'에 대한 생생한 묘사에 있다.


작가는 올림픽이 열린  시기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는 듯한데, '죄의 궤적' 바로 다음 해를 배경으로 하는 '양들의 테러리스트' 같은 소설뿐 아니라, 개인적인 올림픽 관전기를 담은 '오쿠다의 히데오 올림픽' 같은 책도 냈다. 어릴  올림픽이 열리던 시기의 강렬한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한번 조사해 놓은 자료들이 아까워서인지 몰라도  시기에 대한 재현이 필생의 업이라고  정도다.


뒤늦은 2021 도쿄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이 시점에, 일본의 첫 올림픽이었던 1964년 도쿄 올림픽은 일본인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궁금해진다.




도쿄, 그리고 서울 올림픽.


소설의 배경인 1963년은 도쿄 올림픽이 열리기 1년 전으로, 도쿄는 도시 곳곳이 파헤쳐지고 생동감 있는 올림픽 중계를 위해 처음으로 컬러 TV가 등장하는 등 사회는 전체적으로 올림픽 준비에 들떠 있다. '죄의 궤적'이 1960년대 도쿄의 모습이라면, '20세기 소년'은 비슷한 시기 열리는 오사카 만국박람회(만박, 또는 엑스포)와 얽혀 있다.


재미있는 건 1960년 대와 마찬가지로 2020년 대 역시 도쿄 올림픽과 오사카 엑스포가 연달아 열린다는 점이다. (2025년 오사카 엑스포) 어쩌면 일본은 1960년 대 이후 경제대국으로의 꽃길을 걸었던 그 시기를 되살리는 거대한 굿판을 열고 있는 건 아닐까?!.


여튼, 1960년 대의 이런 흥분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인데.. (물론 직접 보지 못한 이들도 많겠지만) 우리의 1980년 대도 비슷했다. 1986년에는 아시안 게임을, 1988년에는 올림픽을 연달아 개최하며, 서울 역시 지하철과 도로, 교량 등 갖은 토목 공사로 곳곳이 파헤쳐 있었고, 도시 정화를 명분으로 무허가 빈민촌들과 부랑자들은 더 멀리, 보이지 않는 그늘로 숨겨졌다. 물론 이를 반대하는 '운동권' 시위로 최루탄 냄새가 가실 날이 없었던 것도 도쿄와 비슷하다.


한국인은 외국인을 만나면 꼭 두유노싸이, 두유노비티에스 등을 물으며 '검증(?)'을 받고 싶어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그 습관의 기원 역시 이때가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 외국인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딴 거 신경 안 쓰던 시절엔 노상방뇨와 무단횡단(우리가 이웃나라를 보고 욕하는)이 비일비재했다. '외국 손님'이 온다는데.. 라며 부끄러운 짓 하지 말자는 인식이 사회 전체에 파고들었다.


올림픽은 최대의 스포츠 축제이면서 동시에, 주최국에 대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홍보의 장이다. 이번 도쿄 올림픽 중 히로시마 원폭 투하일에 피해자들을 위한 묵념을 하자는 제안을 IOC가 거절했다는 기사가 있다. 일본이 올림픽을 통해 세계에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집요하다. 그들의 원죄를 덮기 위해 스스로 피해자(원폭, 그리고 또 원전 사고의) 프레임을 씌우고, 성공적으로 그걸 극복했다는 이미지를 만든다. 1964년 성화봉송 마지막 주자 사카이 요시노리는 원폭 당일에 태어난 청년이었다.


우리는 다를까? 서울 올림픽의 가장 강렬한 이미지로 기억하는 굴렁쇠 소년은 전쟁고아를 수출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퍼포먼스다. (개막식을 총괄한 이어령 교수의 말)


20여 년의 간격이 있지만 올림픽 이후 도쿄와 서울, 그리고 나라 전체가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두 나라의 거침없는 경제성장은 이때부터다. 올림픽 전의 20년이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나는 시기였다면, 올림픽 이후로는 빠르게 경쟁자들을 제압하게 된다. 흔히 경제 하면 박정희이고, 경제성장 역시 60-70년 대를 떠올리지만, 절대빈곤을 벗어났다는 것 말고 상대적 성장은 오히려 1980년 대 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60년 대의 '공기'


이야기를 다시 '죄의 궤적'으로 되돌려 보자. 이 소설은 올림픽 즈음 실제로 있었던 아동 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경제적 성장에 따라 자동차가 대중화되고, TV가 보편화되면서 이는 전국구 사건이 된다. 어리숙한 범인과 무능한 경찰의 모습은 '살인의 추억'과 오버랩되는데.. 앞서 비교한 대로 이 두 사건 역시 20년 정도의 시차를 보인다.


책을 읽다 보면 범인에 동화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비난할 수도 없는 애매한 위치에 서게 되는데.. (위에 언급한 대로, 범인은 누구인지는 초장부터 눈치챌 수 있다) 그렇다고 범죄의 원인을 사회 전체로 돌리는 방식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부조리는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 속에 속속 드러난다. 자신들의 이익만 우선하는 언론이나 사회운동가의 모습, 차별받는 가난한 자들과, 자이니치(재일동포). 그리고 호기심 충족에만 관심이 있는 대중들.


무엇보다 '죄의 궤적'은 트릭이나 재미를 위해 상황을 적당히 짜깁기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1960년 대의 공기를 끌어온다. 특히 기차를 타고 범인을 추격하는 부분(장면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지도)에서는 마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을 때의 느낌이 드는데, 작가가 그 현장을 직접 묘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착각 속에 빠진다.


그렇다면 작가가 보여주는 1960년 대의 ‘공기’란 뭘까? '일본의 굴레' 리뷰에서도 한 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일본인들이 말하는 이른바 '공기'는, 아무도 그러라고 지시한 적은 없지만 사회적으로 거역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다.


공기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매우 강력하고 거의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진 일종의 판단의 기준으로, 저항하는 사람을 이단시하고 '공기 거역 죄'로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정도의 힘을 가진 초능력임이 분명하다.

공기의 연구, 야마모토 시치헤이


'오쿠다 히데오'가 1960년 대의 재현에 그렇게 공을 들인 것은 아마도 이 시기의 '공기'를 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죄의 궤적'은 그 공기와 범죄와 맞물린 콜라보다. 물론 그 시대의 그 공기가 모든 이에게 작용한 건 아니겠지만, 그 '공기'와 범인의 특별한 '상황'들이 맞물려 사건은 파국으로 간다. 죄의 궤적은 한 인간이 어떻게 '소시오패스'적인 범죄를 저지르는가의 여정이 된다.




얼마 전 한국의 올림픽 여자 배구팀이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뒀다. 5세트까지 14:12로 앞서던 일본이 14:14 듀스 상황까지 따라 잡혔을 때, 일본 배구선수들의 표정에 일어나는 동요를 보고 우리가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이겼고, 일본팀은 충격을 극복하지 못했는지 다음 경기도 패하면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1964년 '동양의 마녀'라고 불리던 여자 배구팀이 있었다. 도쿄 올림픽을 통해 처음 정식 종목이 된 배구의 우승을 위해 이들은 지옥 훈련을 견디며 무려 '258 연승'을 거둔다. 이와 관련한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이걸 보면 과연 일본이 어떻게 그런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지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1964년에 일본이 세계에 보여준 건 '경이'였다. '동양의 마녀'를 비롯해 '신칸센'이나 최초로 등장시킨 '픽토그램' (이번 개회식에서 퍼포먼스로 활용한) 등은 '오리엔탈리즘'과 맞물려 신비로운 느낌을 만들어냈다. ‘날생선이나 먹는 미개한 나라’에서 그들이 먹고 입고 만들어 내는 모든 것이 세련된 문화로 거듭났다. 올림픽 이후의 영화나 각종 미디어에 등장하는 일본의 이미지가 이를 증명한다.


2020년 올림픽에서도 이런 전략은 비슷했다. 아베가 직접 슈퍼 마리오 분장을 했을 정도로 기대감을 잔뜩 높였지만, 아니메의 나라, 기술의 나라를 보여주려던 기획은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실패했다. 과연 30년째 번아웃에 빠져 있는 일본은 그들이 기대했던 대로, 도쿄 올림픽, 오사카 엑스포를 통해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여자 배구팀의 흔들리는 눈빛을 떠올려 보면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일본의 이런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그들의 재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1964년 당시 여자 배구팀을 다룬 프랑스 다큐멘터리 '동양의 마녀'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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