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가는 기쁨, 그리고 슬픔
다시 '소설'을 읽기 시작한 건 오래된 일이 아니다. 사실 '소설'이라고 단정 짓기도 뭐한 게..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 한참 읽을 땐 책 안 읽는 이들이 이해되질 않더니만 ('지하철 오가는 동안만 읽어도 일주일에 두 권은 보겠네?'라고 친절히 일러주면서..) 한번 안 읽기 시작하니 1년에 한 권 읽는 것도 버거웠다..
소설을 다시 읽어도 이른바 고전, 또는 명작 같은 걸 읽을 때 느끼지 못하는 '시의성' 있는 책들이 있다. 바로 '오늘'을 대변하는 글이랄까? 작년에 나름 핫하다고 생각해서 담아둔 책 중 '김초엽'과 '장류진'은 내게 오늘.을 알려 주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마치 누군가의 (쓰다만) 일기를 보는 듯하다. 이 소설집 속 주인공은 대부분 '내'가 아니지만, 모두 '내' 속마음을 내보인 듯한 글들이다. 굳이 '쓰다만'이라 표현을 쓴 건, 어느 순간 툭.. 하고 끝..
나 역시 '오늘의 회사'를 다닌 사람으로, 이 글 속 등장하는 회사 내 갈등이나 크고 작은 '부조리', 그리고 업무와 인간관계에서의 디테일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후쿠오카' 여행이나, '도우미 아주머니', 또는 '학교 방송국'에 대한 부분 역시.. 내 개인적 경험을 되살릴 장치로 가득하다.
요즘 많이 읽히는 책들을 보면, 작은 순간의 감정을 끄집어내는 내용들이 많다.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라던가,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했다'라던가...
내가 특히 그랬는지는 몰라도, 예전엔(라떼는) 주로 자기 계발서를 많이 읽었다. '내일의 나'를 위해, 어떤 '롤모델'을 따라가도록 돕는 게 일반적인 '책'의 역할이라 여겼다. 광고나 마케팅을 할 때도, '내'가 쓰는 것이 아닌 그런 '미래의 나', '닮고 싶은 나'(한때 워너비란 표현을 많이 썼다)가 쓰고 있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주길 원했다.
물론, 지금도 그런 경향이 아주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이젠 다소 '찌질한(?)' 나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해답을 구한다. 예전 같으면 '내가 민감해서 그래..'라고 치부할 문제를, 상대방이 예의 없음이었음이라 생각하고 치유받는다.
<일의 기쁨과 슬픔> 역시, 그런 감정들 위에 글을 쌓아 올린다. 거대한 사회악이나 시대와의 불화가 아닌, 집 청소를 위해 부른 '도우미 아주머니', 한때 같이 일했던 '돌싱녀', 세상 물정 모르면서 혼자 해맑은 '빛나 언니'와의 감정 소모가 주를 이룬다.
왜 그런 사소한 일에 집착하면서 피곤하게 살아야 하는지는.. 나도 모르고, 그 주인공들 역시 알 수 없다.
이 책에 대한 한 댓글을 보니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들을 짜깁기한 것 같은 수준..이라는 글이 있던데.. 얼핏 공감이 가면서, 그런 순간순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이 소설의, 이 작가의 힘이 아닐까 싶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제일 앞에서 넘어온 사람 중 하나로, 이 소설 속에서 그린 세상이 한편으론 반갑고, 한편으로 좀 묘한 기분이 든다.
P.S. 한가지 걱정인 것은, 내 입장에선 분명 어처구니 없는 무례를 범한 빛나 언니, 도우미 아줌마가.. 어디선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용서해주는 그런 책을 먼저 읽었으면 어쩌지? 마치 영화 '밀양'에서 신께서 나를 용서하셨다며 구원 받았다는 범죄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