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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Apr 21. 2020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자유와 분배에 대한 생각

대한민국에서 2백만 부 이상이 팔렸다는 이 책은, 책 좀 읽는다는, 아니 독서량과 상관없이 웬만한 집 책장에는 한 권씩 다 놓여 있기 마련입니다. 책으로 장식된 카페나, 독서 장려 캠페인 같은 곳에서도 필독서의 상징적으로 <정의란 무엇인가>가 있죠. 그만큼 인문 교양서라 하면 이 책이 떠오릅니다.


그런 책이지만 막상 완독한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죠 (저도 꽤 오랜 기간 그런 상태였고..) 인문학 책이 어떤 스토리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한번 책을 은 뒤 끝까지 읽어 내기란 쉽지 않고, 어떤 경로로 이런 책이군 하고 어디서 한마디 할 정도 알게 되면 흥미가 확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럼에도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왜 그렇게 인기가 있었을까요? 마이클 샌델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합니다.


미국인들의 38%가 미국 사회를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 데 반해, 한국 사회를 불공정하다고 생각한 한국인은 74%나 되었다. 하지만 이 조사를 바탕으로 미국 사회가 한국 사회보다 더 정의롭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그 조사는 얼마나 정의롭다고 생각하는지를 측정한 것이지, 정의 그 자체를 측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부당함에 대한 비판을 한국인들이 미국인들보다 더 잘하기 때문인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서문, 마이클 샌델


우리는 정말 우리 사회를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할까요? 포털에 댓글들을 보면 바로 체감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헬조선'이니 '이게 나라냐'하는 말들이 오갔던 걸 생각해도 그렇고, 우리는 뉴스들을 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분노하고, 정의롭지 못함에 비난을 쏟아 냅니다.


이 책은 '정의'에 대해 다양한 현실적 사례들을 토대로 접근해 나가고 있습니다. '정의'로운가를 따져볼 때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들이 많죠. 샌델은 그중 '자유' '복지' '미덕'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어떤 사회가 정의로운지 알려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명예)을 어떻게 배분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1장. 정의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일까?


책에 대해 평을 하거나 요약을 하기보다는(되지도 않을 듯하고) 현재 대한민국에서의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생각해 볼까 합니다.




대한민국의 '자유'


얼마 전 어떤 블로거의 글에서 새로운 한국사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가 빠졌다며 분노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중국도, 심지어 북한 마저도 '민주주의'를 표방한다며, 우리의 정체성은 민주보다는 '자유'에 있다고 보는 관점이죠. 이를 부정하는 자는 곧 빨갱이다! 식의 논리까지 나아가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를 강조하는 쪽은 기존에 '독재'를 했던 정파에 가깝고, 이 단어를 부담스러워(?)하는 쪽은 '민주운동'을 했던 쪽인 경우가 많습니다다. 왜 '자유'라는 단어는 이렇게 민감해졌을까요?


자유를 근간으로 정의를 규정하는 접근법은 여러 유파를 형성하고 있다. (중략) 이 두진영이란 자유방임 진영과 공정성 진영이다. 자유방임주의 진영을 이끄는 자들은 자유시장주의자들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1장. 마이클 샌델


최근 이슈가 되는 '자유'는 정치적인 면 보다, 주로 경제적 '자유'를 의미하게 됩니다. (좀 더 나아가서 공산주의와 대비해서 말하는 '자유대한민국'은 '자본주의'로 대치해도 대체로 큰 무리가 없다) '신자유주의'라던가 '자유시장경제'라던가.. 미국도 우리나라도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집단(공화당)이 경제적으로는 '자유'를 외치며, 경제적으로 '보수'적 집단이 정치적으로는 '진보'적(민주당)인 성향을 가지고 있죠.


자유방임 경제 정책을 지지하는 보수주의자들도 학교 내 예배활동, 낙태, 외설물 규제 같은 문화적 문제에서는 자유지상주의자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가 하면 복지 국가를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게이의 권리, 출산 결정권, 언론의 자유, 정교분리 같은 문제에서는 자유지상주의자들과 견해를 같이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3장, 마이클 샌델


2012년 대선에서 당시 새누리당(정확히는 김종인)은 '경제민주화'라는 것을 들고 나왔습니다. 처음엔 경제에 '민주화'라는 말을 붙이는 게 좀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기존의 가진 자들을 위한 '자유'에서 좀 더 일반 국민을 중심에 두자는(민주)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 경제민주화가 되었냐는 별개로..)   


적어도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분들이 우려하는 지점이 우리나라가 정말 '반민주화, 독재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은 아닌 듯 합니다. (정치적 수사로 독재정권을 외치긴 합니다만)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것이 맞느냐는 가치관이 다를 수 있지만, 단어를 교묘히 사용해서 일반 국민들을 속이는 것은 정의롭지 않은 것 아닐까요?  




'분배'의 정의에 대하여..


이익을 취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폭리를 얻는다고 생각되어 느껴지는 특별한 종류의 분노, 즉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다.

정의란 무엇인가 1장 - 마이클 센델


그 사회가 얼마나 정의로운가를 보려면 분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보면 된다고 합니다. 이 분배의 정의는 굉장히 큰 문제이므로, 최근 발생한 한 사건을 가지고 생각해 봤습니다.


얼마 전 한 연예인이 긴급 생계지원자금에 대해 "짜증스럽다, 정말. 우리나라에 돈이 어디 있느냐... 국민을 살리는 정부 맞나요?"라고 인스타에 올렸다가 논쟁 끝에 은퇴 선언을 하기까지 했죠. 생계자금을 정부가 줘야 할까. 얼마를 줘야 할까.. 더 나아가 과거에 있었던 무상급식 이슈든, 미래의 기본소득에 대한 문제든 방향이나 찬반에 대해서는 논의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왜 '짜증'이 난 걸까요?


아마 생계지원자금이 '정의'롭지 못 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세금 내는 사람 따로 있고 받는 사람 따로 있냐는 거죠. 여기서 샌델이 언급한 부분에 대입하면 '이익을 취할 자격이 없는 사람'에 대한 분노인 셈인데, 안타까운 점은 보통 이 '자격이 없는 사람'들로 지목되는 이들은 대개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대한민국의 부는, 아니 세계적으로 '부'는 특정 계층에 쏠려 있는데, 왜 우리는 '약자의 이익'에 대해 더 불편함을 느낄까요? 부동산으로 대박을 낸 사람은 '능력'이 있는 것이고, 코로나 때문에 직업을 잃은 사람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일까요? 특히 '강자'라고 할 수 없는.. 스스로 '약자' 쪽에 더 가까운 이들이 이러한 비난과 분노에 더 적극적인 이유는 뭘까요?  


물론, 이런 분노는 약자들을 향한 것이 아닌, 이른바 포퓰리즘을 행하는 정치인을 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방법상의 문제는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지원'이 필요한 누군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정의가 무엇인지가 명쾌해질리는 없겠지만, 감정적으로 또는 정파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좀 더 깊이 있는 고민들을 토대로 '정의롭지 못하다는' 한국 사회를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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