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에 대한 얘기지만 디소 철학적인 질문 몇 개 해보려 합니다. 브랜딩을 포함한 마케팅 분야는 원래 실용 학문이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How to)'이 주를 이루는데요. 가끔은 인문학처럼 그 '개념(槪念)'이나 '정의(定義)에 대해 파고드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One and Three Chairs, 1965. ⓒ Joseph Kosuth
위의 작품을 보죠. 조지프 쿠스스의 '세개의 의자'라는 현대미술 작품입니다. 왼쪽부터 사진, 그리고 물성을 가진 실제 의자, 그리고 의자의 사전적 정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의자'라고 말하면 어떤 것을 의미하나요?
하지만 우리는 마케터니깐 '의자'에 대해 더 깊이 파고 드는 대신, 브랜드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아래의 내용들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내용들이지만.. 일부 저의 개인 의견도 포함되어 있으니 참고만 해주세요. 이 글을 쓰는 의도 자체가 함께 생각해 보자는 의도지 외워야 한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첫 번째, '브랜드'가 뭔지부터 시작해해 보죠..
사전적으로 보면, 또는 학술적으로 보면 '경쟁 업체와 구분하기 위한 이름, 심볼, 디자인 등'을 말합니다. 원래 어원 자체가 나의 소유물을 구분하기 위해 태워서(Brandr) 표시하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얘기도 있구요. 이때 찍는 도장, 또는 그렇게 된 상태를 '낙인'이라고 합니다.
TMI지만.. 요즘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는 'Lee'의 오래된 광고를 보면 끝부분에 낙인을 찍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마 처음 Lee라는 상표를 새길때, 이런 방식을 쓰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보게 되네요.
Lee의 광고와 Lee 로고, 가죽에 불로 새긴 느낌이 든다 (©️왼쪽 나무위키/ 오른쪽 위키피디아) 어원 상으로 보면 우리말의 '시치미'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치미'는 매의 소유자를 나타내기 위해 꼬리애 매단 표식이었는데, 그래서 '시치미를 떼다'라는 말이 남의 물건을 가로채고도 모른 체하는 뻔뻔함을 의미하게 됐죠.
하지만 우리가 '브랜드'라고 말할 때 단순히 남의 것과 구분하기 위한 표식을 뜻하진 않죠. 마치 '그 사람들 알고 보니 다들 누구 아들이더라'라고 할 때, 여기서의 '아들'과 '누구'를 단어 자체로 이해하면 해석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브랜드'는 보통 '네임드(named)'를 뜻하게 됩니다. 명품까지는 아니라도 좀 알만한 정도는 되어야 하는 셈이죠.
에이! 그것도 브랜드냐?!
아저씨, 이거 브랜드 있는 제품이에요?
너 스스로가 브랜드가 되어라..
위와 같은 용례로 사용한다면 역시 '이름 대면 알만한'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두 번째, 그럼 '브랜딩'은 뭘까요?
브랜딩은 한마디로 내가 정한 '정체성'(Brand Identity)으로 사람들이 인식해주기를 바라는 '다양한 활동'입니다. 여기서 작은 따옴표로 처리한 두 요소가 브랜딩에서 중요합니다. 앞의 것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고 뒤의 것은 '어떻게'와 연결이 되겠죠.
여기서 '무엇', 즉 '정체성'은, 사람으로 따지면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예능을 보면 캐릭터 잡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하죠. 어떻게 캐릭터 잡느냐에 따라 연예인으서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무한도전이나 놀면 뭐하니 같은 프로그램은 완전한 캐릭터 쇼죠. 특히 놀면 뭐하니를 통해 '부캐'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후자의 '어떻게'는 캐릭터(Brand Identity)를 알리기 위한 활동이니, 역시 연예인, 정치인 등의 경우로 생각해 보면.. 명함이나 음반을 돌리고 방송에 출연해서 자신을 알리는 활동이 될 듯합니다.
하지만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요. '무엇'을 유명한 것, 갖고 싶은 것..으로 해석하고, '어떻게'를 돈 좀 들여 광고나 홍보를 하면 되는 것 쯤으로 생각하는 거죠.
그냥 네이밍이나 로고 좀 멋지게 해주고, 인쇄물이나 광고 크리에이티브에 돈 좀 더 쓰고.. 여기저기 노출시키면 브랜딩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광고회사가 많이 부추기긴 하죠)
물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마 친구 아들 중 하나가 어쩌다 연예인이 됐다고 해서 너도 나도 다 될 수 있다는 증거는 아니잖아요?
저 회사는 '브랜딩'이 문제야!
어디 '브랜딩' 잘하는 대행사 없나?
우리도 '브랜딩' 한번 해볼까?
위의 표현에서 등장하는 브랜딩은 무슨 뜻일까요? 제대로 우리 회사의 정체성을 만들어 보자는 의미가 들어 있을까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브랜딩'은 결국 '방법'과'성과'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브랜딩에 대해서도 오해해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죠.
세 번째 질문, 그럼 '브랜디드'는 또 뭐죠?
여기서 세 번째 개념 '브랜디드'와 연결됩니다. '브랜디드'를 쉽게 말하면 브랜드화, 브랜드를 담은, 정도로 풀어 볼 수 있겠습니다. 보통 어떤 단어 앞에 붙여서 쓰죠. 한참 유행했던 '브랜디드 콘텐츠'가 그런 예입니다. 브랜드 공감을 위한 콘텐츠란 뜻입니다.
왜 브랜디드 콘텐츠냐..라고 하면 디지털과 관련이 있습니다. 광고의 효과 측정이 가능한 디지털 매체들이 등장하면서 이른바 퍼포먼스 마케팅이 유행했습니다. 광고 비용 대비 효율을 따지는 거죠. 명확한 타깃을 설정하고 그 타깃별로 적확한 메시지를 던져서 전환을 이끌어 냅니다.
이때 메시지에는 정체성을 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마감 임박', '너만 없어..'처럼 사지 않고는 못 배길 자극적인 문구를 내세웁니다. 그러다 보니 '브랜딩을 잘하면 언젠가 고객이 구매해 줄 거야' 같은 믿음은 '연장(아이템?)'은 사용하지 않고 오직 '주먹'으로 승부했다는... 아직 낭만이 살아 숨 쉬던, 담배가 호랑이 먹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또 세상이 달라집니다. 마케팅 자동화나, 프리랜서 마켓, 해외 직구 등이 등장하면서 1인 기업도 중국 같은 곳에서 상품을 소싱해서, 미국 시장에 판매를 하고, 잠든 사이에 잠재 고객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주문된 상품을 자동으로 택배 배송까지 의뢰하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한마디로 시장에 경쟁자가 많아지니, 광고의 비딩 가격은 올라가고, 소비자들은 너무 많은 메시지에 혼란을 겪습니다. 이제 더 이상 판매자의 말을 믿지 않고, 다른 소비자들의 말을 듣기 시작하죠.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죠. 아예 제품을 언박싱 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크리에이터도 생기고, 다들 자신의 소비 생활을 중계하기 시작합니다. 광고 한번 안 한, 간판도 없는 식당이 오픈런을 해야 간신히 사진 한 장 건질 수 있는 (인스타) 맛집으로 등극하는 일도 생기죠.
자, 다시 위의 '브랜디드'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때 이 소비자들 사이에 나도 저 사진 찍고 싶다, 여기 한번 가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콘텐츠가 바로 브랜디드 콘텐츠입니다. 고객의 관심사와 연결이 되면서도 브랜드에 대한 정체성이 녹아 있는 거죠.
메타버스의 시대엔 제품은 몸체(魄)이고, 브랜디드 콘텐츠는 영혼(魂)입니다. 제품은 실제 구매를 해야 만날 수 있지만, 영혼은 유체이탈을 해서 지구 반대편까지 퍼질 수 있죠.
'서칭포슈가맨' 이야기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브랜디드 콘텐츠는 엄청난 인기 몰이를 해서 광고 보다 열배 백배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습니다. 한 틱톡 크리에이터가 자발적으로 올린 '#바밤바송'이 그런 사례가 아닐까 싶네요.
정리하자면, 브랜드, 브랜딩, 브랜디드를 할 때 첫 번째는 우리 브랜드 정체성은 무엇일까? 를 명확히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출시 전이라면 콘셉트를 뾰족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 출시한 제품이라면 소비자들이 왜 사고 있는 것일까? 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생각한 이유랑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거든요.
이 '무엇'을 명확히 한 뒤에야 '무엇'을 담아낸 브랜디드 콘텐츠도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무엇'을 알리는 작업에도 확신을 갖고 예산을 태울 수 있습니다.
물론 어렵죠. 내가 누구인지 나도 모르는데.. 브랜드 넌 누구냐,라고 물으면 순순히 답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마케터죠. 어떤 분들 생각처럼 돈이나 쓰는 부서가 되지 않으려면요.
P.S. 브랜디드는 딱히 용례가 생각나진 않는군요... 좋은 용례가 있다면 공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