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프로 Jan 20. 2023

파타고니아에는 왜 최고철학임원(CPO)이 있을까?

마케터의 인문학

2023년 CES를 앞둔 시점에 삼성전자는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에서 비전을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이날 등장한 인물 중 한 명이 파타고니아의 임원이었는데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파타고니아는 ESG와 관련한 확고한 경영철학으로 잘 알려진 기업이죠. 


이때 발표한 삼성전자의 제품이 미세플라스틱 저감 기술이 도입된 세탁기였다고 하니, 아마도 파타고니아는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였을 겁니다. 



그런데 이 분의 타이틀이 독특합니다. 'CPO(Chife Phylosophy Officer)'인데요. 직역하면 '최고철학임원' 정도가 될 듯하네요. (아마 우리나라에서라면 동반성장이나 사회공헌이나 뭐 이런 류의 네이밍을 더 선호했겠지만..) 


교육 기업도 아니고 웬 철학 임원? 싶기도 하지만, 파타고니아라면 수긍되는 면도 있죠. 위 기사처럼 우리나라 언론은 대체로 삼성의 '미세먼지저감 세탁기'를 강조하려고 파타고니아를 살짝 들러리 세운 느낌인데, 저는 초점을 파타고니아에 맞춰 한번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파타고니아라는 기업과 그들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창업 스토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창업자인 이븐 쉬나드는 어릴 적부터 등반과 서핑의 마니아였고, 수선공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신이 직접 관련 도구들도 만들어 쓰던.. 소위 금손입니다. 덕업일치를 한 셈이죠. 최고 철학임원인 빈센트 스탠리는 이븐 쉬나드의 조카로 창업 초기부터 함께했던 인물이구요.  


이들은 사업을 하던 중에 두 번 충격을 받게 됩니다. 첫 번째는 장비 회사인 '쉬나드 이큅먼트'가 만든 등산용품들이 자연을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엄청난 벌금을 맞고 파산하게 된 일이죠. (지금은 '블랙다이아몬드'라는 회사가 됐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장비 회사보다는 훨씬 만만하게 생각했던 자회사에서 일어났는데요. 원재료에 묻어온 포름알데히드 등의 약품에 의해 직원들이 중독되는 일이 발생한 거죠. 이 회사가 바로 파타고니아입니다. 당시엔 목화를 키우기 위해 유독 농약을 많이 뿌렸는데 이런 것들을 잘 몰랐던 겁니다. 


그 결과로 쉬나드와 스탠리는 인간이 하는 모든 일들이 어떤 형태로든 자연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과, 그런 일들이 곧 인간, 그리고 기업의 생존에 직결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죠. 


그렇다고 파타고니아가 환경을 위한 신념만 가진 뭉친 회사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 회사의 가장 큰 정체성은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Let My People Go Surfing)이라는 말로 대표될 수 있습니다. 파타고니아의 직원들은 일을 하던 중이도 좋은 파도가 친다면 언제든 서핑을 하러 나가라는 뜻이죠. 


아웃도어 브랜드다운 복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좀 오버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이는 복지 같은 부가적인 문제가 아니라 회사의 구성원들도 등반과 서핑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들이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말을 빌어서 설명해 볼까요?.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이 말처럼 이들은 자연을 즐기는 이들이기에 환경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죠.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유명한 카피도 광고회사가 아닌 환경 담당 임원이 작성한 것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성공의 요인으로 '진정성'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진정성'이라고 할 때 우리는 흔히 '진심을 다한다' 같은 뜻으로 오인하곤 하죠. 진심으로 제품(또는 요리)을 만든다, 진심으로 손님을 대한다 같은 겁니다. 하지만 제가 봤을 때 진정성은 크게 두 가지로 요소로 나눠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경영철학(또는 비전)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노력과 열정이죠. 파타고니아의 경우 창업자에서 직원, 그리고 고객까지 모두 산과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그것에서 비롯된 환경과 관련된 철학은 모든 구성원들에게 자연스럽게 체득되어 있는 것처럼요. 


진정성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요?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만약 진짜로 좋아하는 것은 돈, 또는 명예이고 내가 하는 일은 단지 그 수단이기 때문에 열심히 할 뿐이라면 그건 진정성이 아닌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너무나 많거든요.  


누군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척'을 한다면 우리는 쉽게 알아봅니다. 마찬가지죠. 돈을 많이 쓴다고, 또는 그럴 듯 한 캐치프레이즈를 만든다고 진정성을 가장할 수는 없습니다. 




찐팬 보다 찐브랜드가 먼저. 


요새 찐팬이라는 말이 유행인데요. 우리 브랜드를 진짜로 좋아하는 팬덤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내가 진짜가 아닌데 진째 팬이 생길 리가 없죠. 


마케팅이나 브랜딩에 관한 여러 기법들이 있습니다. 서점에만 가봐도 정말 다양한 책들이 나와 있어요. 저도 요즘 브랜딩의 법칙 같은 글을 썼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그런 기법들이나, 다른 회사의 성공 스토리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거 몇 개 익힌다고 갑지가 브랜딩을 잘하게 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먼저 우리 내부에서 찾아봐야 합니다. 우리 회사가, 우리 브랜드가 진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우리가 진짜 좋아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일은 무엇인가? 하는 거죠. 흔히 고객이 진짜 원하는 걸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러기 전에 먼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진짜 고객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죠.


지금 브랜딩에 대해 고민이라면 먼저 '나(우리 회사)는 누구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에서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