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프로 Feb 06. 2023

작은 브랜드, 혹은 스타트업의 굴레. (1)

마케터의 인문학 

인문학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마케팅을 업으로 삼고, 또 인문을 좋아하는 1인으로, 이 두 가지를 접목해서 브랜딩과 마케팅에 도움이 되는 인사이트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일본의 굴레'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오래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교수가 쓴 책인데요. 흔히 일본을 갈라파고스에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 스스로 옭아매고 있는 여러 가지 상황의 원인은 무엇이고 왜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나를 다룬 책이죠.



'굴레'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말이나 소 따위를 부리기 위해 머리와 목에서 고삐에 걸쳐 얽어매는 줄'이라는 뜻과 '부자연스럽게 얽매이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짐작하시겠지만 여기서 일본의 굴레라는 것은 폭발적인 고도성장 뒤에 정체되어 있는 -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 현상을 뜻하는 것이겠죠. 


최근엔 일본에 있던 BBC 기자가 일본을 떠나며 쓴 기사가 이슈가 됐습니다. 내용은 비슷하죠. 한때 일본은 미래였지만 지금은 과거에 묶여 있다.. 뭐 그런 내용인데요. 일본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도 일본(또는 중국)에 대한 안 좋은 소식이 뜨면 언론에서 잽싸게 퍼오는 지라 이미 뉴스로 접한 분도 꽤 있을 겁니다. 아래는 그 원문이에요. (최초의 기사는 일본어 버전입니다) 



사실 이런 글들을 보면 그냥 쌤통이다~하고 넘어가거나, 아직도 메일 보다 팩스를 쓰고, 전자 결재가 아닌 도장을 찍는다는 뉴스를 보며 혀를 끌끌 차주고 끝날 일이죠.. (남일이니까요) 


결재 도장도 상사에게 인사하듯 찍어야 한다는 겸양도장 (한경비즈니스)


하지만 이런 일이 막상 우리나라, 우리 회사에서 벌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해결책을 낼 수 있을까요? 그냥 일본은 원래 이상한 나라라서 그런 것이고 우리는 다를까요? 사실 일본 사람들도 한때 세계 경제를 휘어잡던 걸 생각하면 (그리고 여전히 그들의 수출에 우리가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들도 바보는 아닐 텐데.. 어떤 이유 때문에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까가 궁금해집니다. 


사실 스타트업이나 작은 브랜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급격한(로켓) 성장을 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수렁에 빠지는 경우가 생기죠. 오늘은 이러한 위기는 왜 오는가? 그리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에 대해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한번 살펴보려 합니다. 




총동원 체제의 명과 암 


한 국가가, 또는 조직이 왜 정체되었는가를 알아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성장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분석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굴레'의 정체가 보일 테니까요.


일본의 경우 성장의 배경을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전쟁이죠. 일본은 메이지 유신 (대략 1868년) 이후 불과 30년이 채 되지 않아 청나라와 맞짱 뜰 수준까지 성장합니다. (또 한편으로 청도 일본의 성장과 비슷한 속도로 망가져 가고 있었죠) 그리고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며 엄청난 배상금을 뜯어내죠. 이 돈이 대략 일본 1년 국가 예산의 3~5년 치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이후 묻고 더블로~~를 외치며 있는 돈 없는 돈 다 쏟아 러일전쟁을 일으킵니다. 결과는 애매해요. 이겼다고는 하는데, 잭팟은 없었죠. 이때 내부적으로도 엄청난 반발이 일어나고 일본은 크게 휘청 거리게 됩니다..만, 운(!) 좋게 곧바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납니다. 당시 영국과 미국의 우방이던 일본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들을 공급하며 큰 성장을 이루게 되죠. 


이런 상황으로 보면 일본이 이후에도 왜 계속 전쟁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전쟁주식회사인 셈이죠. 정확한 통계는 몰라도 아마 당시 가장 많은 사람을 고용한 직장 역시 군대였을 겁니다. 그러다 1945년 패망했지만 한국전쟁으로 일본은 다시 재건의 기회를 잡습니다. 


이때 일본이 또다시 전쟁 공장 역할을 한 걸 그저 우연(그냥 가까이 있는 나라라서?)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일본만큼 전쟁에 최적화된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그리고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단지 운 때문이었고, 패망 후 폭싹 망할 뻔한 것을 우리나라의 전쟁 덕에 살아남았을 뿐이라며 일본의 역량을 폄훼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일본은 한때 잘 나가도 너무 잘 나갔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국가주도의 경제 체제입니다. 이것도 사실 전쟁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국가주도의 총동원 체제죠. 사실 이런 체제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소련도 한 때 미국과 양강을 이룰 정도로 급격한 성장을 한 것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어디서 많이 들어 본..?) 같은 국가주도의 계획 경제 덕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런 방식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당시 소련의 경우도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되는 곡물은 몽땅 수출해서 그 돈으로 중공업 등 중점 육성 부문에 투자했거든요. 중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 수천만 명이 굻어죽은 일이 있었구요. 일반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입니다. (이쯤 해서 우리나라의 60~70년 대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일본의 경우도 비슷한데요. 이러한 국가주도 성장 방식의 기원은 '만주국'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때 만주에 있던 엘리트들은 나라도 회사처럼 경영할 수 있다는 걸 (여러 실험을 통해) 깨닫죠. 그리고 그때 만주국에서 실험을 하던 사람들이 전후 일본의 성장을 주도합니다. 대표적으로 기시 노부스케 같은 사람이죠. 바로 아베의 외할아버지입니다. 


그리고 만주국, 그리고 기시 노부스케에게 깊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바로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박정희입니다. 아마도 그는 척박한 오랑캐(?)의 땅 만주가 일본에 의해 어떻게 변화하는 지를 감탄하며 지켜봤을 겁니다. 그리고 전후의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은 '재건(再建)'이라는 이름으로 '총동원 체제의 기획국가'가 되어 갑니다. 국가가 경제는 물론 국민의 생활 하나하나를 모두 통제하고 만들어가는 체제죠.. 


기시 노부스케와 만난 박정희, 당시 박정희는 쿠데타에 막 성공한 국가재건회의의장 신분이었다. (️나무위키에서 재인용)


당시엔 산업 전사, 국가 재건을 위해.. 같은 말이 유행했을 때입니다. 우리가 일을 하는 이유는 결국 국가를 위해서인 것이며,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건강해져야 하는 이유도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민족중흥에 이바지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였습니다. 


정리해 보면 일본이나 우리나라의 성장 배경은 철저한 기획에 의한 선택과 집중의 결과입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예요. 창업을 하면 명확한 사업 방향이 있고,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죠.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고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다른 옵션들이 생기죠. 위기에 대한 해결 방법에 대해서도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게 되구요. 



 

그럼, 우리나라는 무엇이 달랐을까? 


자~ 흐름상 이제 총동원 체제가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위기를 초래했는지를 이야기할 차례인데요. 그전에 모순점을 지적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먼저 짚고 넘어 가려합니다. 만약 일본의 총동원 체제를 통한 성장이 굴레가 됐다면, 같은 방식으로 성장해 왔던 우리도 같은 결과를 맞이해야 하지 않나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도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자 잃어버린 10년 같은 말을 쓰며 위기감을 조성한 적이 있습니다만 일본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일본은 저성장이 아니라 아예 성장을 멈추거나 상대적 역성장을 수십 년 지속하고 있으니까요. 


그럼 우리는 왜 다른지가 궁금해집니다. 사실 우리도 별로 다르진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도출됐죠. 1차로 1970년대 후반부터 위기를 맞았습니다만, 80년대의 3저 호황이라는 것을 통해서 탈출구를 찾습니다. 그리고 구조적인 문제는 1990년대 후반에 터졌죠. 바로 IMF 사태입니다. 


바로 이때를 다룬 영화가 있죠. '국가부도의 날'입니다. 이 영화에서 재정국 차관(조우진 역)은 빌런 역할이기도 하지만 뼈 때리는 현실적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그중 아래의 대사도 있었어요. IMF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속내를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국가부도의 날에서의 재정부 차관, 아래의 대사는 이 장면이 아니라 화장실에서 한 말 (영화 국가부도의 날)


근데, 난 이 기회를 그냥 이렇게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
지금이 바로 대한민국이 변하는 순간이야.
이건 그냥 외환위기가 아니라고…. (중략)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기회!


앞서 언급했지만 무엇인가를 바꾸려면 확실한 모멘텀과 희생이 필요합니다. 희생까진 아니라도 한정된 자원의 배분을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공감대(적어도 반대를 못하게 할 명분)가 필요하죠. 


일례로 우리나라의 상수도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상수도에 대한 문제 인식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제대로 된 지도도 없다, 너무 노후됐다 같은 얘기는 계속 있어 왔죠. 그런데 아무도 손을 못 댔습니다. 돈도 시간도 많이 들거든요. 게다가 상수도를 파헤치면 시민들의 불편함도 초래합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전환점을 맞습니다. 수돗물에서 녹물이 나오고 유충이 발견된다는 소식들이 전해지면서입니다.  그 뒤는 아시겠지만 도시 곳곳에서 상수도 공사가 한동안 계속됐어요. 이걸 보고 불편하다며 민원을 넣거나 이제는 보도블록 바꾸는 걸로 부족해서 상수도까지 파헤치냐며 예산낭비를 걱정하는 분은 없었을 겁니다. 


한마디로 모두가 문제를 인지하고 있더라도, 충격적인 계기가 없다면 쉽게 바꾸기 어렵다는 거죠. 국가부도의 날에서 재정부 차관의 말은 그런 면에서 나름 인사이트가 있는 말입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차관의 역할은 철저한 빌런이기에, 그가 바꾸고 싶어 하는 것은 파업이나 해대는 노동자들 싹 잘라버리는 기회라는 뜻..) 


어쨌든, 우리나라는 꽤 많은 부작용과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IMF를 체질 개선의 기회로 활용합니다. 지금 우리가 일본과 다르다고 평가하는 많은 부분들, 대표적으로 문화 분야나 IT 분야에서 성장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봐야죠. 




원래 여러 편으로 나올 것이라곤 생각 안 했는데 쓰다 보니 길어졌네요. 다음 글에선 왜 핵심적인 성장 동력이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이 만약 우리 회사나 조직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